너무 많은게 운에 의해 결정되니, 마치 불가항력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하루 종일 코즈믹 호러 장르의 무비를 팝콘조차 없이 쉼 없이 보는 듯한 기분.

영상 속 화성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별하늘처럼, 분명 무한히 펼쳐져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갑갑함이 바로 그것이다.


휴식 버튼을 한 번 누를 때마다 밤샘습관이 불현듯 찾아올 수도 있다는 공포는, '휴식'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없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쌍원인데 잘 뜨겠지?" 하는 조바심과 함께 돌아오는 두 번의 4월은, 너의 거짓말처럼 언제나 밑짱을 뺀 듯한 구라 뿐이다.


0%가 아니면 믿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처럼, 트레이닝을 눌렀을 때 희미하게 보이는 저 한 자릿 수의 확률은 문득 숨통을 조여온다. 우주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1%의 가능성은 분명 적지 않은 큰 수임에 틀림이 없지만 항상 나는 "왜", "어째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미어캣은 또 속았습니다.


마치 과학적인 절차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복잡한 시뮬레이션처럼 컨디션이 양호일 때 나오는 노래방, 그리고 연타석으로 이어지는 인형뽑기는 힘없이 약국에서 사온 미드론정 2.5mg 보다 좋은 효능를 나타낸다.

집게가 5개의 인형을 집어들었을 때 지어지던 미소는 퇴출구에서 아무것도 떨어져 나오지 않았을 때 비로소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되도 않는 짱구를 굴리며 계산한 트레이닝이 다소 완벽해 보일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경기 전 두통으로 우울.

주니어 때 나오는 애교를 보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이미 수 백 번째 "이번엔 진짜"라고 말하고 있는 자신.

6장의 카드를 모두 기적적이게도 주황빛깔로 물들여 놓았지만 기다렸다는듯 단체 노쇼를 펼치는 쨍쨍한 6월의 여름 합숙.

또, 고점의 스탯을 깎았지만 현실을 부정하며 스킬창에서 도저히 보이지 않는 원호의 마에스트로를 찾는 그 모습은 마치 교미할 암컷을 찾아다니는 개코원숭이의 울부짖음과 같이 애달프고 처량하기까지 하다.


미지에서 오는 공포는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공포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라고한다.

이 모든 것들이 아직도 괴기하고 기이하며 또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도망가고만 싶은 공포이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이 모든 불가항력과 같은 불운과 공포 속에서도 나는 여기있다.

티슈를 뽑았을 때도, 세침사의 바늘이 치명상을 입혔을 때도, 다리를 다쳤지만 양호실에서 처방해준 건 감기약 뿐일 때도, 하물며 절대 질 것 같지 않던 경기에서 개방골절이라도 난 건지 내 딸이 뜬금없이 16착을 하고 돌아왔을 때도!

돌 씹을 나이가 지난지 한참이 지났지만, 어느샌가부터 다시 돌을 씹어가며 육성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다.

너무 많은게 운에 의해 결정되니, 마치 불가항력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공포로써 가슴 깊은 곳에 단단한 뿌리가 되어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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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왜? 그야... 재미있으니까!

수많은 억까, 수많은 사고, 수많은 실패, 수도 없이 많은 에어 샤커.

그것들은 마치 내 안에 내재되어있던 마조히즘을 일깨워 주는 느낌이기까지하다.

이토록 좆같음과 상쾌함, 분노와 환희, 환멸과 애증을 동시에 품어내는 것은 처음이다!

도리어 그 모든 불운을 딛고 도착한 목적지에서 받게 되는 보상은 분명 달콤할 것이란 꿈을, 이상을, 기대를 품게 만든다!


그렇다!

내가 선택한 게임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보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루어 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불운과 공포를 이겨낸 나 자신에게 반문한다.


"오히려 과정이 쉬웠다면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겠는가?"

"오르가즘과도 같은 이 중독적이고 진취적인 성취감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그렇다...

해답을 찾을 것이다. 이겨낼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