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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착을 달성한 야요이는 결승선을 지나쳐 천천히 감속했다.

그리고 이내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전력질주로 인한 흥분.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그녀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은 바로 레이스의 결과였다.


‘내가 이겼어.’


지난날의 그녀는 우마무스메들의 승리를 지켜보고 축하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승리를 쟁취해본 지금,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 또한 우마무스메였음을.


“야요이야요이야요이야요이야요이!!!”

“끼얏! 사, 사람을 갑자기 들어 올리면 안 된다! 빨리 내려주도록!”


트레이너는 빈 병을 흔들며 달려와 그녀를 꼭 껴안고 볼을 부비더니, 이내 나주평야의 발바리 치와와를 울부짖으며 그녀를 들어올렸다.

우마무스메의 힘이라면 손쉽게 떨쳐낼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술 냄새를 풍기며 볼을 비벼대는 그 행동은 잊지 못할 과거의 추억을 연상시켰으니까.

자랑스럽다는 듯이 한참동안이나 자신을 들고 돌던 트레이너가 그녀를 내려준 후, 그녀도 모르는 척 은근슬쩍 자신의 트레이너를 껴안아주었다.

직접 레이스를 달려 승리를 차지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

이 남자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평생 이 감정을 알 수 없었으리라.


‘인정! 이럴 때는 솔직하게 이 남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야요이는 숨길 수 없는 환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트레이너를 올려다보았고,

그녀의 트레이너는 숨길 수 없는 사악한 미소로 답했다.


“내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내, 내기라면…….”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훈련에는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 노래방에 갈 거니까 기억해둬.”

“지적! 노래방이 어째서 훈련이란 말인가!”

“이번 경기야 트레이너들끼리 잡은 모의 레이스라 그냥 넘어가지만 위닝라이브도 준비해야지?”


트레이너는 야요이의 등을 두들겨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시내 한복판에서 버스킹 시키고 싶은데 처음이라 봐주는 거야. 그러니 고마운 줄 알아.”

“무리! 버스킹이라니 그런 건 무리!”

“그러니 봐주겠다는 거 아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으응?”

“‘고맙습니다’ 해야지. 공손하게.”


트레이너는 끝내 야요이에게서 고맙습니다를 받아냈다.

꾸벅 인사를 받은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오냐 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학생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런 행동은 부끄러웠지만, 어쩐지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


내기의 승리와 더불어 깨알같이 가스라이팅까지 시전한 나는 그날 이후 본격적인 트레이너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직접 마주한 실제 트레이너의 업무는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훈련은 결국 애들이 하는 거고. 사실상 일정조율이 대부분이네. 훈련장 사용 신청을 넣든가, 날씨에 따라 야외훈련을 다른 걸로 돌리든가 하는 게 태반인가.”


현실은 만화나 영화와는 달랐다.

이상한 특훈 따윈 없다는 뜻.

사실상 훈련법은 이미 정형화되어있어 트레이너는 방향을 잡고 일정을 짜는 게 대부분이었다.

어떤 경기에 나갈 건지 계획하고, 출주 조건과 절차를 알아보고, 훈련을 기획하고, 훈련장 예약을 잡아보고.

사실상 스포츠 트레이너보다는 아이돌 매니저나 실장에 가까운 일.

많다면 많은 일이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들은 아니었다.


“게임에서는 보름씩 팍팍 넘어가는데 현실에서는 하루에 24시간씩이나 있으니 시간이 남아도네. 이것 참.”


사무 업무 외의 시간에는 자신의 담당마를 봐주면 되는 일이었으나, 트레센의 우마무스메들은 기본적으로 학생들.

하루 종일 훈련만 하는 게 아니라 수업도 듣고 할거 다 하면서 훈련하기 때문에 시간이 남는 트레이너는 한가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다들 한 명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팀을 꾸리고 그러는 건가? 애들 수업 끝날 때까지 할 게 없네.”


생각보다 짬이 많이 났다.


“그럼 이참에 서포트 카드 가설을 확인해볼까.”


친구를 데려와서 같이 훈련하면 우정 트레이닝 효과가 발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가설.

이것이 사실이라면 최대한 빨리 키타산 블랙과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남들보다 3달이나 늦게 시작한 바람에 곧 7월이란 말이야. 여름합숙에 데려가려면 최대한 빨리 친해져야 한다.”


데뷔도 남들보다 늦어 이미 데뷔할 놈은 다 데뷔한 상황이었지만 그건 괜찮았다.

미승리전에 끼어서 데뷔를 치를 수 있는데다, 미승리전은 클래식 시즌까지 계속 이어지는 걸 확인했으니까.

늦게 시작한 만큼 착실히 훈련시켜 데뷔, 그 후 주니어 시즌은 사우디나 호프풀 정도의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고로 당장은 훈련.

코앞에 온 여름합숙 준비가 더 중요했다.


“좋아, 출동이다.”


학생들은 아직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

나는 키타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사무실을 박차고 나섰다.


“학생부에 따르면 키타산은 야요이랑 같은 1학년인데…….”


1학년 중에서 눈에 띄는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키타산 블랙

사토노 다이아몬드

마야노 탑건 

니시노 플라워

카렌짱

카와카미 프린세스

스윕 토쇼

젠노 롭 로이

그리고 킹든갓택


“카와카미와 킹든갓택이 함께 있다니. 이 세대는 더블 부킹인가? 후훗.”


그와 동시에 저 멀리 학생회실에 있던 에어 그루브의 야루끼가 뚝뚝 떨어지고, 에어 그루브 트레이너의 눈물도 뚝뚝 떨어졌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순 없었다.

또한 내 개소리에 반응한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앗, 너 지금 분명히 마법주문을 외웠지!”


교정을 걷던 내 옆의 풀숲에서 갑자기 야생의 스윕 토쇼가 튀어나왔다.


“왁 시발 깜짝이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수업시간이잖아!”

“흥, 수학 수업 따위보다 마녀 수업이 더 중요한걸.”


풀숲에서 무슨 약초나 버섯 같은 걸 캐고 있었던 건지 스위삐는 흙투성이가 된 채 호미를 들고 있었다.

모두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여고생의 전투력은 1/3 에이브람스다.

그리고 우마무스메의 전투력은 인간의 몇 배나 되고.

그렇다면 여고생(진)에 불과할지언정 우마무스메인 스위삐가 호미까지 들고 있을 때의 전투력은?

천안문 따거와 달리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나는 단숨에 공손해졌다.


“마법주문이라니 저 같은 인남충은 잘 모루겟소요.”

“시치미 떼지 마! 다 들었거든?”


그렇게 말하는 스윕 토쇼의 스테이터스 창에는 그녀의 프로필이 떠오르고 있었다.

[귀에 대해: 모르는 단어는 전부 주문으로 들린다.]


‘이 새끼 더블 부킹이 뭔지 모르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카와이하고도 돈 많은 야요이짱을 두고 스위삐 따위와 어울릴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마법사인 줄 안 스위삐가 들러붙을지도 모르는 상황.

나는 기지를 발휘하기로 했다.


“쳇, 이미 들어버린 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사실 마법사다.”

“오, 오오!”

“이런 곳에서 견습 마녀와 마주치게 될 줄이야. 내 비전 마법을 가르쳐줄 테니 이 일은 비밀로 해다오.”

“오오오!”


나는 JK중의 JK, 롤링 센세에게 배운 필살의 마법을 선보였다.


“아씨오 니엄마!”

“……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소환이 안 되는 걸 보니 엄마가 없는 모양이구나? 저런, 어쩐지 할머니랑만 놀더니. 나중에 스페한테 엄마 하나 분양해달라고 하렴.”

“뭐, 뭐라고! 으아앙!”


불꽃같은 패드립 마법으로 적을 무력화시킨 나는 잽싸게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휴우, 교내에서 저런 게 튀어나올 줄이야. 이 학교 너무 위험하잖아? 앞으로 외출할 땐 야요이랑 같이 다녀야겠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나중에 자기 트레이너한테 가서 이르는 건 아니겠지? 걔 트레이너 누구더라? 싸움 잘 하나?”


ikze라면 자기 담당마와 사이가 안 좋을 테니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결론내린 나는 사무실에서 그랑블루 판타지를 조지다가 점심시간에 맞춰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체중관리를 위해 가능하면 매 식사마다 야요이를 감시하기 위해 같이 먹자고 해놨기 때문이었는데, 이날만큼은 그 행동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앗, 저기 있다! 저새끼야 저새끼!”

“저기 스윕짱 말 좀 예쁘게…….”


불타는 스위삐가 키타산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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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패드립과 가스라이팅이 난무하는 건전소설

야쿠자 공구리는 과연 권선징악이라고 해도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