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일에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족들 생활비 마련에 여념이 없는 후진
일터에서는 진상들의 온갖 쌍욕은 물론 성희롱, 말딸 혐오 등등에 매일같이 시달리고 있었음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죽자사자 일하고 나서
땀에 절은 몸을 이끌고 힘겹게 돌아가는 길
그러다가 상점가에서 우연히 트레이너와 만남

트레이너는 후진을 슬쩍 훑어보며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밥이나 먹자, 하고 고깃집으로 데려가고
후진을 앉혀놓고 맞은편에서 말없이 고기만 구워줌

후진은 트레이너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알바 도중 겪은 일들을 일부러 익살스럽게 재잘대고
트레이너는 묵묵히 후진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다 익은 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잘라 후진에게 먹여줄 뿐

그러다가 트레이너가 넌지시
그렇잖아도 트레이닝하랴 일하랴 힘들지 않냐, 하고 물어보자
후진은 응? 아냐아냐, 다들 되게 잘해줘서 괜찮은 거야,
오늘도 일 잘한다고 엄청 칭찬받은 거야,
난 언니니까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거야, 하고 애써 웃어보이는데
트레이너는 그 말에 그러냐, 하고 그냥 넘어가나 싶더니

뭐든 다 혼자서 떠안으려고 하진 마라, 하고 후진을 안아줌

후진은 그 말을 듣고 그 동안 꾹꾹 참아온 서러움이 터지면서
사실은 나 너무 힘든 거야, 하며 펑펑 울기 시작함
단지 말딸이라는 이유로 다른 인간들보다 더 많은 일을 떠안는다든지,
성희롱, 인격모독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다든지 하는 고충부터
새로 사고 싶은 액세서리나 옷들이 보여도 동생들꺼 먼저 사주고 나니 남은 돈이 없어 못 산다든지,
레이스에 출주해서 1착을 따도 가족들이 보러 오지를 못해 제대로 자랑도 못 한다든지 하는 서운함을 트레이너에게 토해내다시피 하며 엉엉 울고
트레이너는 그런 후진을 토닥이면서
그래 너 고생 많았다, 너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하면서 달래줌

후진은 한참을 울고 나서 좀 진정됐는지
근데 트레이너, 나 오늘도 하루종일 일해서 땀냄새 나는 거야, 하고 부끄러워하고
트레이너는 다 네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다, 라며 더 꼭 안아줌
후진은 여기서 한번 더 울컥해서 다시 울 뻔한 걸 고기 남았다고 얼버무리며 애써 참음

후진을 기숙사로 바래다주러 가는 길
오늘은 자기 응석 받아줘서 고마운 거야,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거야, 라는 후진에게
나한테 정 고마우면 트레이닝이랑 레이스의 결과로 증명해라, 네가 더 좋은 성적을 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게 나, 너, 그리고 네 가족에게 답례하는 길이다, 하고 대꾸하는 트레이너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기숙사로 뛰어가는 후진을 뒤로 하고
트레이너는 문득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하 씨발 그 놈의 돈이 문제구만, 하면서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봄



뭐 이런 괴문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