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 언제 풀리나 기다리는데 이건 뭐....

어차피 주로 쓰는 시리즈 아니니까 걍 파놓은걸로 써도 별 상관없지만 언젠간 풀렸음 싶다.

로그인 진짜 귀찮아.







만약 챈의 말붕이들에게 

'경마 중상에서 우승할 말을 기르고 국제 승마대회에서 우승할 말을 훈련시킨 뒤 기수로서 이름을 날리세요' 

라는 미션을 던진다면?


아마 대부분의 말붕이들은 "말붕쿤 말딸과 현실을 구분하도록"이란 소리를 할 것이다.







근데 현실이 더하다고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얼레어 듀폰, 휘트니 스톤처럼 양 측에서 이름이 있는, 활약했던 말을 소유하거나,


해리 르웰린경처럼 양측의 기수로서 이름을 떨치거나 아니면 마이클 매츠처럼 저런 관리사, 승마기수, 경마조교사 순의 커리어를 보유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위 미션은 클리어한 양반들이 있다.

주관적 기준이긴 한데 진짜다.


(사실 글쓰는 놈이 경마는 아직도 모르는게 많아서 저 말들이랑 대회들이 어느정도인지 감도 안잡히는데 아무튼 개인적으론 미션클리어로 보고있다.)














온갖 괴랄한 뻘짓과 삽질을 하면 꼭 튀어나온다는 영국

















의 영연방에 속해있는 호주 출신 말붕이가 이 글의 주인공 되시겠다.


















(저 안경을 쓴 사람이 로렌스 모건. 70년대라 많이 온화해보이지만 절대 저 외모에 속아선 안된다.)


로렌스 모건(1915~1997) 통칭 로리.



이 양반을 소개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걍 오스트레일륨의 증거라고 생각하자.


농담이 아니고 기수를 은퇴하고 50대가 되던 해에 대규모로 소와 양을 기르는 목장을 꾸렸는데, 

당시 시대가 시대라 목장주끼리 주먹으로 대화하는 세계에서 짱먹으신 미친 양반이다.




다른 이야기도 있긴 한데 목장 크기 불린답시고 야생소들을 잡아다 춘식이로 만들질 않나, 

브럼비(야생마) 무리가 지 목초지에 몰래 들어와서 소맥일 풀을 축낸다고 감시하다 총도 없이 고립된 상황에서 아들이 올때까지 맨몸으로 어떻게든 싸운일도 있다.


....쓰고보니 은퇴전 스포츠맨으로서의 삶이 이 양반의 젊은시절 봉인구가 아니었을까 싶다만.












어릴적 멜버른 근처의 농가출신 답게 말을 타며 말타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꿈을 품게 되는데,

경마 중상에서 우승할 말을 기르고, 국제 승마대회에서 활약할 말을 훈련시키고, 겸사겸사 기수로서 이름도 날리는거다.



평범한 사람이 들으면 "말붕쿤 말딸 좀 그만해!"소리를 듣겠지만..... 

이 양반은 평범한 말붕이를 뛰어넘은 길을 걷게 되었다.



그 전에 멜버른에 정착하면서 다른 스포츠에서 이름을 날리지만 이건 다른이야기고,

본격적인 시작은 로리가 1940년 결혼을하고 부터다.


친구인 빌과 2차대전에 종군하려다 당시 연애중이던 부인이 입대하고 해어지던가 아님 호주에 남아 결혼도장 찍던가를 시전한덕에 결국 호주에 남아버린 비운?을 겪었는데,


(빌이 이걸로 많이 놀렸다고 한다.)




대신 로리는 자기 꿈을 밀어붙히기로 했고, 레드뱅크 목장이라는 조그마한 목장을 하나 세웠다.








(발리언트 치프)


그리고 이 양반은 매의 눈으로 여겨보고 있던 발리언트 치프라는 종마를 1마리 사오고, 

덤으로 밴드롤을 비롯한 나름 양질의 암말들도 구매한다.


굳이 따지면 밴드롤이 좀 미친말인거 같은데 얘는 이미 슬하에 1942년에 태어난 베너렛이라는 암말이 있었다.

베너렛은 1948년에 호주 컵을 우승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상마안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염원하던 꿈 하나를 성취하는데 성공했는데....








(우측이 발리언트 크라운)


발리언트 크라운

-1947년 호주더비








로얄 파르마

-1968년 골든 슬리퍼



전자는 발리언트 치프와 밴드롤 사이에서 나온 말이고, 로얄 파르마는 모계가 밴드롤이다.



일단 그의 친구였던 빌 로이크로프트 그리고 닐이 평하길 그는 작은 목장의 주인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린거라고 평했다.

저 대회들을 정확힌 모르니 대단한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저 종마를 찾는다는 이유 겸 크로스컨트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영국에 방문을 하며 아마추어 경마기수로서 뛰면서 다른 꿈을 이루게 되었다.













(로리가 타고있는거 맞다)


칼리지 마스터

-1957, 1961 폭스헌터 오픈체이스

1961, 1962 세인트 제임스 폭스헌터 체이스


특히 칼리지 마스터를 사들이고 61년에 그랜드 내셔널에 출전도 같이 한 파트너로서 나름대로 다른 꿈을 이뤄냈다.

(당시 리버풀과 챌트넘에서 개최된 폭스헌터 체이스에서 둘 다 1착을 한 경우 그랜드 내셔널 출전권을 얻었다고 함)





그런데 다른 꿈은 좀 의도치 않았다.




어느정도 명성을 얻게된 로리의 상마안을 믿은 지인이 그에게 의뢰를 하나 했다.

마장마술에 쓸 말을 찾아달라 부탁했고, 이 양반은 경마장에서 조교하는 말들 중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말을 찾았는데...


문젠 체구가 너무 작고 깡마른터라 당연히 거절당했고, 로리는 이 말을 훈련시켜 자기가 타기로 했다.

(나중에 다룰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것도 좀 우여곡절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엄연히 따지면 로리의 상마안의 실패사례인데....











샐러드 데이즈

-1960년 로마 하계올림픽 종합마술 개인-단체 금메달

1961년 배드민턴 호스 트라이얼.



............로리는 어느정도 괜찮은 말이라고 했지만 그 범주를 넘어선 말이었고,

그 악명높던 로마 올림픽의 살인코스를 완벽히 주파해낸 말을 골라냈다.


그렇게 이룰 수 있는 꿈은 다 이룬 초특급 말붕이에 등극하고,

기수도 은퇴하고 나중엔 소와 양때를 기르는 목장에 올인하며 배우러 오는 기수들을 가르치는 토끼 공듀가 되셨다.














(맨 좌측이 샐러드 데이즈와 로리, 그 바로 옆이 닐과 미라부카)


그리고 이 양반에게 묻히지만 친구이자 은메달을 땄던 닐 라비스(1930~2019)도 비슷한 테크를 밟았다.

15살 차이라 친구라기보단 형 동생 하는 사이이긴 했는데 아무튼.


닐도 직접 미라부카를 훈련시켜 은메달과 단체금메달을 땄고, 

나중에 승마기수를 은퇴하고 경주마 조교사 겸 목장을 차릴때 로리에게 여러 조언을 받았다.


그 중 하나가 목장을 차린 뒤 위스키 로드라는 말의 신디케이트에 참가해야하나 고민할때 로리는 이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며 추천을했다. 


정작 닐이 자기 형제들을 설득할때 로렌스가 추천했다 식으로 이름을 팔았단 사실을 뒤늦게 알아서 로리가 정말로 기도를 하게 만든 장본인이시긴 한데...






아무튼 닐의 목장에서 저 위스키 로드와 교배하여 튀어 나온 말이 2마리 있으니







저스트 어 대쉬

-1981년 멜버른 컵







그리고 스트로베리 로드.

-1983년 로즈힐 기니, 호주더비, 퀸즐랜드 더비, 프리웨이 스테이크스, 윌리엄 사무엘 콕스 플레이트.

1984년 바댄 대상. 

1985년 그랑프리 드 생클라우드.

1986년 프랭크 E 킬로 마일 핸디캡.




얘네들이 어느정도인진 모르지만 대회 많은거 보면 대단한거라 믿는다....

일단 스트로베리 로드는 그 루돌프가 박살난 재팬컵에 왔던 적이 있는 걔 맞을듯?



아무튼 로리는 이 스트로베리 뭐시기의 활약에 대해 부럽다고 말했는데,

업적보단 (60년대까지에 비하여)입출국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얘가 활약할때 호주에서 전시좀 하게 샐러드 데이의 갈기를 기증이나 대여 좀 해달라는 로리의 역린을 건들었던것도 있었겠지만...




이것만 쓰긴 그러니 저 로리가 경주마 목장을 개업했을 당시에 대한 간략한 서술들이 있으니 그것도 써봄.

이 사례가 모든걸 대표하진 않지만 1940년대 호주의 경주마 영세목장은 대충 이랬다 정도로 보면 편할거 같다.


우선 1940년에 경주마를 기르는 소규모 목장인 레드뱅크 목장을 열었을 당시는 진입비용 자체는 적게 들었지만 그만큼 수익이 안나왔다.


가뜩이나 대공황시기라 그런지 산업들이 활력을 죄다 잃은데다 구매자들도 적고,

이때 즈음 주중에 열리는 경주들은 죄다 문을 닫았다보니 근처에 비슷한 목장들, 특히 말에 올인했던 목장들은 폐업수순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때 오히려 부인 추천으로 소규모로 기르던 소나 양들이 주 수입이었음.


그나마 1943년에 2차 대전이 조만간 끝난다는 관측들이 보이면서 주중경주를 다시 개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몇몇 목장주들이 그 시기에 맞춰 최대한 좋은 망아지를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예상으로 지갑을 열게됨.


그 중 1명이 로리인데, 목장 부지를 늘리고 점찍어놓았던 말들 중 발리언트 치프와 밴드롤을 확보하기로 함.

지금 투자를 안하면 경쟁자가 몰려 답도 없을거란 판단+시기상 지금 승부를 봐야한다 정도?


실제로 나중에 전후 기대+행복감으로 좀 인색하던 호주의 말시장이 활기를 찾으며 말들의 가격이 다시 과열되기 시작했고 나름 괜찮은 투자였다고 한다.


예상대로 1945년 종전 버프는 매우 크게 다가왔는데, 그해 경매부터 1000기니 이상의 가격으로 낙찰된 망아지들이 많았다고 한다.

목장에서 좋은 말을 뽑았고, 나름대로 마주들에게 홍보도 했지만 아무 실적도 없는 목장의 망아지가 1000기니를 넘는거 보고 이 정도일지는 상상을 못했다고.


생각외로 이 시대가 많이 낙천적이었는지 발리언트 크라운의 마주는 호주 더비 출주 기념 축하파티를 더비가 끝난 저녁에 열리기도 했다함..


우승도 아니고 출주기념으로 미리 계획을 짜놓을 정도인데 그날 더비를 우승해서 우승 축하파티가 되었지만.


소규모 목장에서 명마(적합한 표현을 못찾겠다.)를 뽑아낼때 장점은 혹시 다음에도? 식으로 그 목장출신의 말들의 가치가 오르는건데, 특히 그 말의 부모가 되는 종마를 소유한 목장의 경우는 다음해의 경매에서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발리언트 크라운이 1250 기니에 팔렸던 반면, 더비를 우승한 다음해 48년 경매에선 델타?의 구매자였던 아돌프 배셔에게 3300기니에 팔린걸 시작으로 몇년간 나름대로 이득을 보았다고 한다.


그거 외엔 로리의 목장에서 태어난 경주마들의 실적 겸 훈련시킨 승용마들의 활약덕에 작은 목장임에도 일종의 견습생인 자카루들이 찾아왔는데,

일을 하면서 경주마 번식+배합, 승용마 훈련+조마술 배우려는거라 당시 실적을 낸 목장들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던거 정도?






그거 외엔 이렇게 양 분야에서 활약도 하고 돈도 만졌지만, 

이 양반이 경마를 시작으로 승마까지 섭렵하며 깨달은건 생각외로 이 자체만으로 돈이 벌리는 일은 아니란거?


대공황때 스타트를 찍어서 그런지 나름 괜찮은 상마안의 소유자인데도 말은 큰돈을 단기간에 만질 수 있는대신 너무나 불안정하고 오히려 소나 양을 기르는 경우가 돈을 더 잘만진다는 판단이 군데군데 드러남.


당장 로얄 파르마도 목장의 남은 말 재고처리+급전당김이라는 목적이 깔려있었거든.


어릴적 꿈을 다 이룬뒤에 60년대에 대규모 목장을 세웠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알음알음 토지를 사들이고 말을 늘리기보단 양과 소들을 늘려간거 보면 이미 50년대에 계산을 다 끝낸걸로 보인다.


대신 기수를 은퇴하고 나서도 저 시절에 다져놓은 인맥으로 편의나 도움을 받은 일들도 언급되는걸 시작으로 경주마를 사서 구매하는 사람+전문적으로 승마를 즐기는 사람이 사회적 명사들이고, 말들을 기르는 목장주와의 연결을 통해 말 산업이 자체적인 수익보단 사회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능력이 높은 산업이고, 이 기회들을 굴려서 돈을 버는 구조로 인식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