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점심뿐이 아니라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정해진 시간에 먹으라고. 아침이랑 점심은 카페테리아에서 제공한 걸 먹기만 해도 되니까”


“저녁은 일단 내가 주변을 조사해서 정리한 음식점 리스트야. 여기서 사서 먹고.”


“그래도 장아찌나 절임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건 몇 개 만들어 두었으니까 즉석밥에 먹어”


“빨래는 미루지 말고 빨래통 넘으려 할 때쯤 빨아. 장마나 태풍이 와도 빨래 건조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당부하는데 음식은 갈아 먹지 말고”


“그만. 그 정도면 충분하네 트레이너”


헤진 정장 바지, 땀에 젖은 와이셔츠, 옷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야구 모자.


그리고 오른손에 꽉 잡힌 파란 캐리어 손잡이.


잠시 휴가를 떠나는 트레이너의 배웅을 위해 공항에 나왔다.


3년간 14전 14승.


말 그대로, 이름 그대로 날 타키온으로 만들어준 트레이너의 휴가.


“그래도 꼭 점심은 챙겨 먹고…”


또 반복되는 잔소리, 이젠 슬슬 흘려듣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보여줄 연구 결과로 뭐가 좋을지 고민하려면 내 전두엽에 그의 말을 경청할 용량을 가져올 수밖에 없으니까.

0과 1로 구현된 세계 같은 거? 이미 보고 있으니 필요 없으려나.


(14:00 대한민국행 xx항공에 탑승하실 고객님은 7번….)


“자 트레이너 슬슬 가볼 참이야.”


“마, 마지막으로 점심은…”


“걱정하지 말고 자자”


내가 그에게 의존하긴 하다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나에겐 카페도, 흠…. 그래 디지털 군도 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둘 다 아직 출시는 안 했지만.


조금 심술이 나 장난스레 그의 가슴팍을 밀었다.


“타키온”


꽈악


“히익!”


샛소리가 목에서 새어 나왔다.


갑작스러운 육체 접촉.

트레이너는 아무리 우마무스메라 할지라도 뭉개질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나, 나 꼭 돌아올 테니까. 점심은 챙겨 먹고”


스윽 하고 팔을 풀고 그의 얼굴을 잡았다.

두 뼘에 흐르는 눈물을 검지로 훔쳤다.


다리에 새 문제가 생겼을 당시 그가 나를 위로하며 한 행동을 오마주했다.


그의 손길이 그토록 따듯했으니 이 손길도 따듯하길 바랐다.


“자 이제 진짜 갈 시간이라네”


“응 타키온”


“잘 가 트레이너”


(우마무스메-프리티 더비를 삭제하시겠습니까?)


비행기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 비치는 반투명한 창


그걸로 된 거야 트레이너.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돌아올 널 기다릴 뿐이야.


천천히 공항의 밖으로 향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서버가 오픈하자마자 1성인 날 얻겠다고 가챠하고, 좋아하던 그.


날 위해 키타산 풀돌 하겠다고 가족 여행 가서 밤마다 리세마라 하기를 3일.


돌아와서 코로나 걸려 놓고선 방해 없이 육성할 수 있겠다며 긍정 회로 돌리던 그.


 에어컨이 고장이 나 과열된 핸드폰이 식지를 않아 하루 한 번 육성하던 그.


아, 그러고 보니 온천은 같이 못 갔네. 그건 좀 아쉬운걸.

골드쉽 녀석, 박신오 녀석 좀 부럽네.


그러고 보니 그는 날 선입으로 개조하는걸 참 좋아했지.


이런저런 추억을 회상하다 보니 어느새 공항의 출입구에 도착했다.


밖은 벌써 0과 1로 나뉘어 무너지는 공간.


최적의 조건에서 전기는 빛의 속도에 맞먹는다고 했거늘 이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뭐 상관없어”


난 타키온이니까, 빛보다 빠르니까.


“그럼 기다리겠네 트레이너군”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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