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오후. 나는 담당 우마무스메인 토카이 테이오의 트레이닝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음 확실히 저번보다 페이스 조절도 잘했고, 스퍼트도 좋아졌어. 수고했어 테이오"


"파하..! 하...! 그럼 당연하지~!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 하아... 다고....!"


전력질주를 한 직후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테이오는 구부정하게 양손을 무릎에 받치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래그래~ 일단 진정하고 숨부터 고르도록 해. 워밍업만큼 쿨다운도 중요하다고 했던 거 기억하지? 자 어서"


나는 일부러 느긋한 말투를 쓰면서 테이오의 어깨를 토닥였다. 핵핵대던 테이오도 이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자세를 고쳐 천천히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테이오 쿨다운하면서 들어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말했지만... 이 트레이닝은 빠른 기록을 세우는 게 목적이 아니야.. 그러니까 무리해서 기록에 집착하지 않아도 돼 아무리 너라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긴 코스를 뛰는 건 좋지 않아."


요즘은 테이오에게 마무리 트레이닝으로 중장거리 코스를 달리게 하고 있다.


트레이닝 목적은 보다 효율적인 스태미나 분배와 라스트 스퍼트의 최고속도 유지 시간을 향상 시키는 것. 내 계획과 예상이 맞았다면 이는 분명히 테이오에게 잘 맞는 트레이닝 일 텐데..... 문제는 테이오의 승부욕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일단 테이오는 절대로 첫 번째 타임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본인이 만족할만한 타임이 나오지 않으면 몇 번이고 한 번 더 뛰고 싶다고 성화를 부린다.


"그치만~ 후..! 왠지 한 번 더 뛰면 더 좋은 기록이 나올 것 같단 말이야~ 후..!"


테이오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입을 삐죽거리며 불평하고 있었다. 


그 '황제'를 뛰어넘는 우마무스메가 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기에 나도 어느 정도 받아주고는 있지만, '그녀'에게 부탁받은 아이인 만큼. 그리고 이 아이의 꿈을 위해서도 무리를 해서 부상을 입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지금 테이오는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어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읏차.. 알았다구~ 아쉽지만, 오늘은 충분히 '절차탁마'- 한 것 같으니 이만 마무리할까!"


*절차탁마 -  칼로 다듬고 줄로 쓸며 망치로 쪼고 숫돌로 간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고 덕행을 수양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순간 자기 딴에는 꽤나 비슷하게 따라 하려고 노력한 테이오의 억양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뭐가 그리도 기쁜지 테이오도 뿌듯하다는 듯 따라 웃기 시작했다.


"못 말린다니까.. 자 슬슬 더 늦기 전에 들어가야겠다. 나도 테이오도"


"오케이~ 그럼 갈 준비해 볼까~"


테이오는 코스 밖에 던져두었던 스마트폰을 주워 들고 자기 물병을 챙겼다 

나는 그 틈에 내 물품들을 챙기며 자리를 정리했다.


"그럼 트레이너! 다음 주에 봐~! 아 맞아! 혹시 회장 만나게 되면 전해줘~! 이 테이오님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까 긴장하라고 말이야~!"


테이오는 제자리에서 빠르게 발을 구르다가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이내 릿토 기숙사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나는 금세 멀어져버린 그녀에게 자기 전에 스트레칭 잊지 말라고 소리치고 트레이너실로 지친 발걸음을 옮겼다.


학원 내부에 들어서니 몇몇 다른 학생들이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듯 채비를 하고 있었고, 교실은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교칙에 의하면 학생들은 기숙사 통금시간 전까지는 코스에서 자율 트레이닝을 하거나 교실에 남아 자습을 해도 상관없지만, 마치 암묵적인 룰이 있는 듯 금요일 저녁만큼은 유독 학생들이 적고 없을 때가 많다. 주말을 앞둔 평일 저녁만큼은 마음껏 쉬고 싶은 걸까


'아직 애들은 애들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트레이너실에 도착한 나는 테이오의 훈련 차트를 정리하고, 정장으로 환복한 뒤 자료 정리에 쓸 노트북을 챙겨서 트레이너실을 나왔다. 문을 잠그고 문뜩 뒤를 돌아보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노을빛에 복도가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괜히 기분이 센치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걸으며할 일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학생회실이 있었다.


'이크.. 멍때리고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난 집게손가락으로 미간을 한번 꾹 마사지하고 잠시 망설이다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간간이 들리는 종이 넘기는 소리. 사용한 필기구를 탁상에 내려놓는 소리. 그녀는 아직 돌아가지 않은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


난 가볍게 노크했다.


"(노크 소리) 루돌프 안에 있어? 들어가도 될까?"


내 노크 소리에 맞춰 잠시 모든 소리가 멈추더니 이내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트레이너인가 들어오도록 해"


난 천천히 문을 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익숙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Eclipse first, the rest nowhere-

[뛰어난 한 사람을 따라갈 자 없다]


쾌적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 공간이다.


광이 나는 바닥재 위엔 그에 맞는 고풍스러운 카펫과 소파 , 서재가 어우러져 있고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붉어 보이는 커튼 아래로 온화하지만 강한 미소를 지닌 아름다운 우마무스메가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야 루돌프..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네"


그녀는 작성하던 문서와 옆에 있던 서류를 겹쳐 내려놓았다.


"아- 할 일이 좀 남아있어서.. 그나저나 그렇게 말하는 트레이너야 말로 꽤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남아있지 않은가? 후훗.."


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약간은 지쳤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한 열정적인 우마무스메 덕분에 일정이 지연됐거든."


루돌프는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누구에 대한 얘기인지 알아채고는 웃음 지었다.


"후후 테이오인가.. 또 트레이너를 곤란하게 만든 모양이군 그 아이는 항상 기운이 넘치지.. 오늘도 테이오의 장단에 맞추느라 고생했어 트레이너.  .... 잠시 앉아서 얘기할까?"


루돌프는 내가 혼자 서있는게 마음에 걸렸는지 나를 소파에 앉히고 본인도 나의 맞은편 소파에 옮겨 앉았다.


"딱히 곤란하거나 하진 않아 열정이 있다는 건 좋은거니까.. 그 애가 원하는 방식에 맞춰 주려고 해. 물론 무리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방향으로.."


"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담당 우마무스메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옳은 길로 인도해주는 것. 트레이너가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란 걸 난 알고 있으니까.."


생각에 잠긴 듯한 루돌프는 다리를 살며시 꼬며 시선을 내리 낮췄다.


"테이오는 그 날 이후로 흔들림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구나.. 나를 넘어선다는 것도 정말 머지 않은 일 일지도 모르겠어 '후생가외' 인가.. 후훗.. "


*후생가외 -  뒤에 난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배는 나이가 젊고 의기가 장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진보는 선배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말.


싱긋 웃는 루돌프를 보며 나도 따라 웃음지었다. 루돌프는 그런 나를 잠시동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밖을 바라보는 루돌프에게서는 방금까지의 웃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약간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여전히 나랑 있을 때면 그런 얼굴을 하는구나.. 루돌프..'




 







괴문서는 처음 올려보는거라 가독성이나 내용이 재밌을지 모르겠네.. 반응 좋으면 뒷 내용도 가져와볼게





                        



2편 링크 -  [소설] '황제' 그 후... -2-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채널 (arc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