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 나 참 말도 안 나오네."



굳이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한 벤치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트레센 학원의 베타 트레이너. 시리우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트레센 학원의 우마무스메. 시리우스 심볼리였다.



"세상에 동명이인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바로 눈 앞에다가 놓고 보는 건 처음이네."


"그, 그러게요."



신분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두 사람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름 만큼은 두 사람 모두 같은 이름이었다.



남자는 조금 긴장됐는지 아무 말 없이 빨대를 빨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은 시리우스는 여전히 복잡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이."


"예?"


"아까 전부터 뭘 그렇게 마시고 있는 거야?"


"커피입니다..."


"어... 안 뜨거워?"


"예, 익숙해 가지고요."



조그마한 빨대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빨아 먹는 남자를 본 시리우스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면, 남자는 그녀의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벤치에 찾아온 목적을 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끊기자 어색한 기류가 두 사람을 감싸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하늘을 보면서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고 있었고,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리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봐, 당신도 트레이너지?"


"예... 베타긴 하지만요."


"그래도 시험이랑 채력 검정, 면접은 다 봤을 거 아니야."


"그, 그렇죠."



남자가 대답하기 무섭게 시리우스는 고개 숙인 남자의 턱을 붙잡아 강제로 고개를 세운 뒤 자신을 바라보게 턱을 돌렸다.



그러자 시리우스의 자신감에 가득 찬 눈과 가면 속 남자의 허무한 눈이 서로 마주쳤다.



"네가 보기에 나는 어떤 우마무스메같아?"


"예? 무슨 말씀이신지..."


"실력 말이야. 실력."



시리우스는 그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어딘가 불만스러운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반면, 그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기는 커녕 일반적인 교류도 별로 없었던 그는 그저 이 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 만을 기도했다.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시리우스 씨가 달리는 걸 본 적도 없고, 볼 기회도 없으니..."


"... 그래?"



남자의 기운 없는 대답이 끝나자 시리우스는 살짝 김빠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놓았다.



"하아... 그래, 지하에서 나올 일도 거의 없는 베타 트레이너한테 뭘 물어 보겠어. 괜한 걸 물어봐서 미안해."


"아하하..."



김이 쭉 빠져버린 시리우스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가을이 가고 점점 겨울이 오기 시작한 하늘을 높고 청명했다.



그녀는 이런 하늘을 좋아했다. 다만, 그는 이런 하늘이 낯설기만 했다.



애초에 지하에서 나오지를 않는데 무슨 하늘을 본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하늘을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신 땅은 많이 봤다.



땅을 보는 데에는 별 이유가 없었다. 그저 하늘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니 땅이 보이는 것일 뿐.



"난 먼저 일어날 거야. 당신도 너무 농땡이 피지 말라고."


"예..."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좀 고쳐,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예?"


"당신, 오지랖인건 알고 있는데 자꾸 그러면 이상한 오해 사고 그런다?"



시리우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남자는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쳐다보다가 이내 가면을 벗고, 얼굴을 쓸어 내렸다.



"후우... 이상한 사람이시네."



그의 손에 들린 가면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가면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그였다.




#




그와 시리우스의 만남으로부터 대략 4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하아..."


"무슨 일 있으세요?"


"일 없어."



그 날부터 그와 시리우스는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벤치에서 만났다.



거의 매일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 그는 시리우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그녀의 꿈이 무엇인지까지.



"으으으으으으...!"


"오늘도 권유는 실패하신 모양이네요."


"응, 잘 아네."


"만난지가 몇 달째 인데요."



모든 우마무스메들의 꿈. 트윙클 시리즈.



시리우스도 그걸 꿈꾸고 있지만, 정작 자신을 담당해줄 트레이너는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래가 기대되지 않으니까.



트레이너들은 참으로 냉정하기 그지 없어서 가문이 특출나게 좋다거나 아니면 장래가 기대되는 유망주가 아니라면, 쉽사리 담당 계약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되려 자신의 커리어에 흠이라도 생길까. 노심초사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에 시리우스처럼 '가문 안에서 문제아' 취급이라던가 '한때는 유명주였으나 이제는...'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우마무스메들은 자기 담당이 되어줄 사람을 찾기가 굉장히 힘든 것이다.



"그놈의 장래.... 젠장, 나 보고 뭘 어쩌라고!"



시리우스는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래 보여도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력을 보일 기회조차 박탈 당했으니 분통이 터질만도 했다.



물론, 시리우스의 상황과는 달리 그는 그저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듯이 그녀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알파도 아닌 그는 시리우스와 잠깐 대화를 하면서 공감만 조금 해줄 뿐,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해결 해 줄 만한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맞다. 당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어떤 건가요?"


"베타들은 담당이 생기면 어떻게 돼?"


"아, 그거 말이죠."



시리우스의 질문에 그는 커피를 마시면서 대답했다.



"베타 트레이너들은 각자 사정이 있어서 담당을 맡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서요. 일단 이사장님한테 보고한 다음에 이사장님께서 판단하시기에 담당을 맡아도 될 정도로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보시면 그떄부터는 알파로 전환이 돼서..."


"음... 한 마디로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거네?"


"그, 그렇죠? 그래도 트레이너이긴 하니-"



그의 말이 끝나기 바로 직전, 시리우스는 그의 손목을 확 낚아 챘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가 조용히 의문을 표하자 시리우스는 갑작스럽게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그를 이끌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좋아. 당신, 나랑 이사장 실로 가자."


"ㅇ... 예? 가, 갑자기요? 무슨 일로?"


"나랑 계약 해줘."


"예???"


"거의 모든 트레이너들한테 담당 제의를 했지만, 전부 다 거절 당했어. 그리고 베타 중에서는 아는 사람이 당신 밖에 없으니까. 이제 남은 건 당신 뿐이야."


"그, 그런 이유로 절 끌고 가시려고요? 너무 갑작스러-"



그는 시리우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 우마무스메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에 체념한 그가 몸에 힘을 풀자 시리우스가 뒤돌아서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게 아니면, 당신도 나 같은 놈은 담당하기 싫다는 거야?"



시리우스의 말투는 강하고 딱딱하며, 약간의 분노도 섞여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그 눈을 본 그는 그녀에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차마 그 눈을 보고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그의 여린 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




잠시 뒤, 이사장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이사장에게 이런 통보를 들었다.



"불허! 이유는 밝힐 수 없으나 허가는 불가! 돌아가 주길 바란다!"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보이는 이사장과 그 옆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타즈나 씨. 그리고 세상 험악한 눈을 하고 있는 시리우스까지.



"왜 안되는 지 이유라도 알려 달라고!"


"그것 또한 불허! 개인적인 사생활이라-"


"뭐?!"


"히, 히익! 타즈나아아!!"



한 순간에 늑대처럼 변한 시리우스 때문에 그는 울고 싶어졌으나 울 수 없는 이 상황이 그저 한스러울 뿐이었다.



허나 울고 싶은 것은 시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이사장실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것과 같은 심정인 그녀에게 이제 물러날 곳은 없었기에 그녀는 더 공격적으로 나왔다.



다만, 이런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타즈나 씨는 시리우스를 진정시키려고 부던히 노력하고 있었다.



"시리우스 씨. 지금으로서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일단은 돌아가셔서..."


"내가 그런 말을 몇 번을 들었는지 알아? 지난 2년 동안 계속 그 말만 들었다고.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야? 내가 졸업이라도 하면? 그때 가서 챙겨준답시고, 꽃 다발 하나만 주고 학원 밖으로 내쫓아 버리게?"


"아하하.. 그, 그게..."



심적으로 여유는 없었지만, 내뱉는 말 만큼은 논리정연한 시리우스의 말에 쩔쩔 매던 타즈나 씨는 이사장실의 문 너머로 들려온 노크 소리에 그녀와의 논쟁을 잠시 중단했다.



"잠시만요. 한 분 더 오셨네요."



타즈나 씨가 문을 열자 그곳에는 목에 주사 바늘이 꽃혔지만, 생글 생글 웃고 있는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완전히 박살난 방독면을 목에 걸친 남성이 한 명 있었다.



"어머나, 다이아 씨. 이 분은...?"


"예, 타즈나 씨. 저의 트레이너가 되어 주실 분이에요."



다이아의 손에 이끌려 온 남성은 지금 시리우스의 옆에서 불안함에 떠는 그처럼 베타 트레이너였다.



"이사장님, 전 이 분을 담당으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그, 하아... 불허! 이유는-"


"이사장님. 전 이 분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그게 안 된다고 말을..."


"이사장님."



이사장이 거부할 때마다 사토노의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졌다. 이에 불안함을 느낀 이사장은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의, 의문! 무언가... 말해보게..."


"전 이 사람을 제 「담당」으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어... 그, 그러니까..."


"허락. 해 주실 거죠?"



사토노는 쇄기를 박는 것처럼 생글 생글 웃으면서 이사장을 쳐다보았다. 물론, 이사장은 전혀 웃질 못했다.



"아저씨.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에요?"


"약이 안 들었어. 젠장... 그냥 부잣집 아가씨인줄 알고 방심하고 있다가 당했다."



그가 만든 마취약은 꽤 강한 약이었는데 그것조차 안 들었다니.



독한 약을 맞고도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무서울 정도로 느껴지던 그였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이사장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허, 허가하도록 하지... 대신-"


"와아!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이사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를 이끌고 이사장실의 밖으로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그녀에게 끌려간 남성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잠깐 궁금해진 그였으나 그는 이 의문에 대해 생각할 시간 같은 건 가지지 못했다.



"이봐!"



왜냐하면 그의 옆에 있던 시리우스가 이사장실의 책상을 크게 내려쳤기 때문이었다.



시리우스가 책상을 내려치자 잔뜩 쫄아있던 이사장은 '히익!'하는 비명과 함께 팔을 들어 보였다.



허나 시리우스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건 불공평하잖아! 저 쪽은 되고, 우리는 안 된다는 거야? 엉?!"


"시, 시리우스 씨. 일단은 진정하시고..."


"넌 가만히 있어! 대놓고 차별 대우를 받았는데 넌 분하지도 않아?!"



격분한 시리우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건 그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구석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봐야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그저 조용히 시리우스가 차별을 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뭘 많은 걸 바랬어? 담당으로 붙여 주던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라도 말해 달라고 했잖아. 왜 아무것도 못 해준다는 거야?"


"그, 그게... 학원의 규칙..."


"아, 그러셔? 대놓고 차별을 하는 게 학원의 규칙이다. 이거지? 그럼 내가 어디에 폭로라도 해볼까? 트레이너들을 알파와 베타로 나눠서 차별 대우하고, 학생들도 집안이나 뒷배경에 따라 혜택을 주는 사람이 트레센 학원의 이사장이라고 하면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겠는데?"


"으, 으윽... 타, 타즈나아아아..."



결국 멘탈이 깨진 이사장은 타즈나를 열심히 불러보았지만, 이미 심각하게 자충수를 둬버린 이사장을 구원할 수는 없는 것인지 타즈나 씨는 그저 한숨만 쉬면서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나자 시리우스는 이사장으로부터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궁지에 몰린 이사장의 눈물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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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쓰다 보니까 시리우스가 혐성이 돼는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