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 미팅을 하다보니 매일 하는 달리기일 뿐인데도 은근히 손에 땀을 쥐는 맛이 있었다. 육성하면서 십수 번씩 하는 경주인데도 그걸 또 사람과 하면 느껴지는 부분이 다르다. 시간과 운과 노력을 들여 완성한 내 우마무스메가 다른 사람의 그것과 정면대결하는 것이 여간 드라마틱하지 않다. 이기면 노력을 보상받은 것이고 지면 내가 쏟은 시간이 부정되는 듯한 외줄타기 같은 맛이 있다. 물론 여기 너무 빠져들면 연속으로 패배했을 때 홧김에 게임을 지울 수 있으므로 감정조절에 완급이 필요하다 하겠다.

 

현실에서는 보유마들의 스케줄에 따라 못해도 매달 한두 번씩은 경주를 겪는다. 친한 회원이 자기 말 뛴다고 오라고 부를 때까지 포함하면 웬만하면 매주 경마장에 가게 된다. 현실의 경주는 돈이 걸려있으니 게임 속 챔피언스 미팅보다도 더 신경쓰이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나올 법도 하지만, 정말로 상술한 미팅 수준으로 현실 경주에 마음을 썼다가는 스트레스 받아 쓰러질 게 틀림없다. 나는 오히려 현실보다 게임 쪽의 긴장감이 더 높다고 느낀다.

 

예전에 한번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명마를 얻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다. 이건 게임에서 인자를 따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어렵다. 전문적으로 관련 학문을 배웠거나, 오랜 시간을 들여 크게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사람이라도 ‘대박’을 건질 확률은 절대로 높지 않다. 내 경험담으로 말하면 친분이 두터운 동료 회원과(이 사람도 말 보는 안목이 높아서 돈깨나 벌었던 사람이다) 담당조교사를 대동하고 경매소에 가서 정말로 좋아보인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한 경주마가 내 여지껏 겪었던 최악의 성적을 안겨주었다. 이러니 그냥 기대를 안하고 말지. 이미 어지간히 뛰어서 검증된 명마가 아닌 한은 별다른 기대가 없으니 당연히 욕심도 크지 않고 그만큼 재미도 없다.


별도의 사유도 있는데, 게임의 입장은 트레이너이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방 사람들은 말산업만 평생 해온 곤조가 있는 사람들이다. 말만 대줬을 뿐인 비전문가가 미주알고주알 참견 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은 정도가 심해서 말 상태를 물어봐도 너무 시큰둥하게 답하니 섭섭하다. 마주가 요즘 얼마나 호구취급 받는지에 대해서는 언젠가 울분을 담아 토로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래서 좀 붕 떠있는 감각이 되는 것도 있다. 예컨대 가벼운 구보운동만 몇주째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왜 그러는 것인지 알려주질 않으니 어떻게 관심을 가지려 해도 어렵다. 건강이 나쁜 건지, 아니면 적응이 잘 안되는 건지 궁금하지만 연락을 넣어봐도 그냥 알아서 맡겨달라는 말만 공손하게 하고 끊어버리니까.

 

아니 그러면 게임보다도 현실이 재미없단 말인가?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경주마다 긴장감과 뿌듯함 혹은 실망과 좌절감을 느낄 일이 없단 말인가 하면, 딱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 있다. 바로 초보 호구시절 1~2년 정도이다. 그때는 조교현황도 매주 살펴보고 출전경기날마다 당근을 사들고 마방을 방문하며 심장을 쿵덕거리게 된다. 조교사나 관리사들이 엄청나게 귀찮아할 정도로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 아이가 데뷔 1년만 지나면 경마계의 제왕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김칫국을 마시면서 경주마와 투샷도 찍어간다. 물론 이러한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다. 여기서 실망하면 (현명하게)탈퇴하는 거고, 좀 더 지켜보자고 하면 물리는 거다. 나중 가면 친분 때문에 빠져나가지도 못해요…. 이쯤 되면 경주는 그냥 하늘에 맡기는 거고 다른 일에 더 관심이 많아진다.

 

그렇더라도 이왕 하는 일인데, 이름 석자 남겨보고 싶은 욕심은 있는 법이다. 회원들 공히 그것을 원동력 삼아 경주마의 성장을 지켜본다. 언젠가 수건이라도 한 판 돌릴 그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