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정신병 하나쯤은 앓고 있기 마련이다.



다만, 일상 생활이 가능하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일 뿐.



[이번 역은 XX. XX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지금 전차에서 내리고 있는 이 남성의 이름은 시리우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베타 트레이너였으나 담당이 생기는 바람에 알파로 승격한 사람이었다.



더 많아진 인센티브와 트윙클 시리즈에 참가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그를 우러러 보는 사회적인 시선들까지.



알파와 베타의 차이점은 이리도 명확한 것이었으나 그는 알파가 된 것이 크게 기쁘지가 않았다.



"어서오세요. 환자 분 성함이 어떻게..."


"시리우스요."


"아...! 시리우스 씨였네요... 가면을 바꾸셔서 못 알아 봤어요."


"선생님은요?"


"잠시만요. 곧 만나실 수 있을 거에요."



담당이 생겼다는 것은 곧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이 생겼다는 얘기다.



그리고 책임질 것이 생겼다는 것은 베타로 살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업무와 빡센 근로 환경이 제공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시리우스 씨. 들어와 주세요."


"예."



의사의 호출이 들려오자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의 앞에 앉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시리우스 씨. 오시는 길은 어떠셨나요?"


"여전합니다. 다들 절 광대 보듯이 보더군요."


"그런 가면을 쓰시면 당연한 일이지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가면을 보았다.



하얀색 가면 바탕 위에다가 우는 듯한 얼굴을 그려 넣은 가면.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운 물건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부셨나요?"


"그게... 담당이 한 명 생겨서요."


"오오... 웬일이에요? 당장이라도 일 그만 두실 것 같이 굴던 분이."


"그냥 일이 좀 복잡하게 꼬였어요. 그렇게만 알아두세요."


"예, 예. 알겠습니다."



열심히 컴퓨터를 두들기면서 차트를 작성하는 의사와 가면을 만지작거리는 남자.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손에 들고 있었다가 누가 볼까. 재빠르게 가면을 바꿔 끼웠다.



"뭐하세요?"


"감정표현입니다. 가면을 쓰면 얼굴이 안 보이잖아요."


"그냥 가면을 벗으시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 아닌가요?"


"그게 안 되는 걸 잘 아시잖아요."



그의 말에 의사를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시리우스 씨. 언제까지고 그런 식이면 전혀 발전이 없다니까요?"


"... 그건 맞지만, 딱히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대신,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 있죠."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듣다못한 의사가 소리를 한 번 지르자 그는 잠깐 움츠러들었다가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저랑 시리우스 씨랑 만난 지 벌써 몇 년째 인지 아세요? 7년이에요! 7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시리우스 씨는 그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고요."


"그, 그렇죠..."



의사의 꾸짖음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뒤로 넘겼던 그의 흰 머리카락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하아, 시리우스 씨. 주변 사람들이 시리우스 씨를 뭐라고 부르시나요?"


"... 음침한 놈, 흰 가면, 약쟁이 새끼, 폐륜아.-"


"그런 거 말고 좋은 쪽으로요."


"트레이너?"


"그건 좋네요."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프린터를 작동시켰다.



잠시 뒤, 프린터는 제 할 일을 마쳤고, 머리를 식힌 의사도 자기 할 일을 마저 하고 있었다.



"시리우스 씨의 2형 트라우마는 심각한 수준이에요. 치료가 시급합니다. 그런데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시리우스 씨 본인도 이곳에 오시는 보람이 없어요."


"예."


"다음 시간에는 저희 둘 다 유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네요."


"... 노력해보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의사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다.




의사의 컴퓨터에는 '진전 없음'이라는 글자만이 깜빡거릴 뿐이었다.





#





트레센 학원에 출근한 그는 출근카드를 찍은 다음 자신에게 배정된 트레이너 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배정 받은 곳은 트레센 학원의 제일 외곽.



지하에서 근무시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한적한 장소였다.



"후우..."



트레이너 실 안에 들어온 그는 가면을 잠시 벗었다가 이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가면을 다시 썼다.



그러고는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잠시 꺼내들었다가 이내 약봉투를 쓰레기통 안에 신경질적으로 던져 넣은 뒤, 자신이 가져온 노트북을 책상 위에다가 펼쳤다.



어쩌다 보니 담당이 생긴 지라 신세에도 없는 담당 관리가 시작되었지만, 그는 이 점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 



대략 3시간 정도 지나자 타자치는 소리만이 울리던 트레이너 실의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우와...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출신이 출신이다보니 어쩔 수 없죠."



해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트레이너 실로 들어온 시리우스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얼굴로 트레이너 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서 지나치게 깔끔한 내부와 텅 빈 공간, 심지어 소파조차 놓지 않은 곳이 바로 이 트레이너 실이었다.



시리우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의 옆에 앉았다.



"뭐, 당신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앞으로 하나 하나 필요한 걸 가지고 오자고."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응,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불만스럽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여기는 보나마나 창고 같은 곳이었겠지. 다른 트레이너들이 쓸 공간도 부족하니까 안에 있던 것들은 어딘가에 대충 쑤셔 박은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내부가 황량한 거고."


"그렇겠죠. 학원 부지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나참, 이런 곳이 일본 제일의 우마무스메 육성 학원이라니. 이 나라에는 세금 도둑밖에 없나봐?"


"아하하..."



불만에 찬 얼굴로 투덜거리는 그녀와는 달리 그는 여전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당신. 뭐 하고 있어?"


"스케줄을 짜고 있습니다. 시리우스 씨랑 본격적으로 상의하기 전에 짜 놓은 거라 중구난방 하기는 한데,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리우스는 목을 쭉 빼면서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음... '클래식 3관'이라..."


"예, 그... 학생 회장님 아시죠?"


"응, 아주 잘 알지. 지겨울 정도로."



스케줄 표를 확인한 시리우스는 다시 한 번, 의자에 몸을 기댔다.



"당신, 이런 건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되게 열심히 하네."


"아예 안 한다면 몰라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



남자의 말에 시리우스는 그의 가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거 좋네, 난 당신이 의욕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시간만 때우면 어쩌나 싶었는데."


"월급루팡질이라면 저도 사양하고 싶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웃는 얼굴이 그려진 가면으로 가면을 바꿔 썼다.



"어딘가에 고용된 입장으로서 '무능하다'던가, '필요 없다.'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거든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시리우스는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뭐야 그게?"


"감정표현입니다. 가면만 보면 웃는지 우는지 모르잖아요."


"진짜.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네."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넥타이를 꽉 붙잡았다. 그러자 그의 가면과 그녀의 얼굴이 서로 가까워졌다.



"나쁘지는 않아. 그런데, 이런 거추장스러운 가면. 그냥 벗으면 되는 거 아니야? 이젠 베타 트레이너도 아닌 데 말이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그녀의 손을 살살 풀면서 빠져나가는 것을 시도했다.



사람은 우마무스메를 이길 수 없지만, 시리우스는 그에게 위해를 줄 생각이 없었기에 넥타이를 잡을 손을 놓아 달라는 그의 행동에 아차 싶었는지 손아귀에 힘을 서서히 풀어줬다.



"말하자면 조금 긴 이야기가 가면 안에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시리우스 씨한테는 들려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요."


"그래? 무슨 사정이라도 있어?"


"예,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그저 너그러이 이해하고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디 그녀는 궁금한 것은 참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웃는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이 울고 있는 것만 같아 그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알았어. 당신도 당신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거겠지."



시리우스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뭐부터 할 거야? 훈련? 아니면 병주 할 상대라도 찾아 놨어?"


"아뇨, 애석하게도 둘 다 아닙니다. 오늘은 첫 날이니 다른 것부터 할거예요."



그는 책상 사물함 안에 들어 있던 스톱워치와 호루라기를 들고 일어섰다.



"오늘은 시리우스 씨가 클래식 삼 관에 도전할 역량이 있는지를 보도록 하죠.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노선을 택하겠습니다."


"... 처음부터 빡세게 가자는 거야?"


"그걸 원하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마치 자신을 도발하는 듯한 그의 말에 시리우스는 더 크게 웃으며 체육복을 꺼내 들었다.



"하하하하...! 당신,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네."


"아버지의 추악한 진실을 알아낸 것 같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말씀하시네요."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건 아니지?"


"긴장하시면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오시지 않잖아요."



체육복을 챙긴 채로 걸어나가는 시리우스와 자켓과 넥타이. 둘 다 벗어둔 채 와이셔츠만 입은 채로 터프로 나가는 트레이너.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도발에 가까운 말들을 건네면서 터프 위에 올랐다.



"클래식 삼관의 첫 관문인 사츠키 상이 2000M니까 2000M 정도 뛰어주세요. 판단 기준은 랩 타임으로 하겠습니다."


"알았어."



터프 위에 올라간 시리우스를 향해 그가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자 시리우스는 힘차게 터프를 뛰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2000M를 완주하고 돌아온 시리우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애매합니다."


"뭐...?"


"애매해요. 3펄롱까지의 가속도도 전반적인 자세도, 랩타임도 전부 애매해요.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건 절대 아닌. 그야말로 애매한 상태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시리우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 당신은 좀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똑같은 말을 꺼내는구나?"


"어디까지나 제 주관이지만, 한 의견에 대해 주관적인  의견이 쌓이다보면 객관적인 의견으로 변하지요. 시리우스 씨의 실력은 애매합니다.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요."


"... 젠장."



차마 반박할 수 없는 그의 말에 시리우스는 일단은 수긍했다. 그녀의 자신감이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녀의 이성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클래식 삼관은 포기해라. 이거야?"


"제가 진로 상담사나 단순한 레이스 관계자라면 그렇게 말할 텐데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는 건...?"


"어차피 잃을 명예도 친구도 없는 놈이니 제 주관대로 가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수첩에다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궁금해진 시리우스가 무언가하고 보니 일반적인 사람들은 상상도 하기 힘든 빡센 훈련 일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이게?"


"앞으로의 훈련 일정을 간단하게 정리해봤습니다. 재능이 부족하면 그 만큼 단련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의 가면은 그녀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웃는 얼굴로 바뀌어있었다. 그녀는 흰 바탕 위에 그려진 검은색 웃음이 가증스럽게 보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구원해 줄 한 줄기 희망처럼 보았다.



"당신..."


"이걸 할지 말지는 시리우스 씨의 선택에 맡길게요. 제가 아무리 하라고 해도 본인이 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법이니까요."



어느새 땀이 서서히 식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기 시작한 시리우스를 향해 그는 늘 끼고 다니던 검은색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시리우스 씨."



그녀는 그의 거칠고 상처 가득한 손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내 무언가에 홀린듯이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나도. 잘 부탁해. 당신."



두 사람의 손이 닿자 시리우스의 얼굴에는 웃음이 지어졌다. 드디어. 그 망할 황제 양반과 동등하게 맞설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저기..."


"응? 갑자기 왜 그래?"


"아, 아닙니다. 제가 냄새에 좀 민감해서요."


"냄새...?"


"예, 특히 '땀내' 나 '약 냄새' 같은 거에요."


"... 뭣, 뭐어?!"



다만 그 순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순간적인 당혹감에 얼굴을 붉힌 시리우스가 그의 다리를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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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에는 올렸었는데 여긴 안 올려서 늦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