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의 나는 별다른 꿈이 없었다.

유복하진 않지만 가난하지도 않고, 화목하진 않지만 불온하지도 않은 분위기의 가정에서 태어나, 많지는 않지만 몇몇 친한 친구들을 만들고…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그저 몸을 맡긴 채로 흘러갔다.

그럭저럭 높은 편차치의 고등학교의 입학시험을 앞둔 어느 날, 매일 지나다니던 하굣길에 있던 대궐같이 큰 집 앞에서 풀이 죽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소녀를 만났다.

가끔 창가에서 거리를 멍하니 보고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손질이 잘 되어서 그런지 윤기가 나는 갈색 머릿결에 몸집이 작은 아이로, 특징적인 귀와 꼬리로 말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이때가 내 생에 처음으로 실제로 말딸을 만난 날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근처에 있기만 해도 거동 수상자로 통보 당할 것 같아서 그저 지나치려고 했으나,


꼬옥, 하고.

소매를 잡혔다.

자연스레 풀고 가는 것은 당연하게도 불가능했다.

인간과 말딸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신체 능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을 나는 현실에서 나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아이에게 잡힘으로써 통감했다.

그 상태로 실랑이로 벌이기도 뭐해서 …라는 이유보다도 소매를 잡는 것만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물리력을 행사한 소녀에게 겁이 나서 그나마 가까운 공원의 벤치까지 함께 걸어 가면서 막과자를 조공으로 바침으로써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한 달 용돈이 날아 갔지만, 어린애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참아야지. 결코 겁먹은 것이 아니다. 난 어른이니까!

말수가 적은 얌전한 아이였지만, 아무래도 집안에서 받는 엄격한 교육에 억눌려있던 놀고 싶다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몰래 빠져나온 모양이라. 막상 집 밖으로 나오니 되돌아갔을 때 혼나지 않을까, 모두가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된 모양이다.


 "밖에 놀러 다니고 싶다는 건 네가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좋은 일이야."

자기를 격려해주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을까? 나를 바라보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론 이번처럼 말없이 혼자 나오면 다들 걱정하겠지만 그것도 네가 그만큼 소중하니까 그런 거니까 놀고 싶을 때, 나가고 싶을 때는 제대로 말씀 드려야 된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순찰 중인 순경에게 발각되기 전에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비록 조리 있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눈앞의 말딸이 엇나가지 않는 데 도움을 줬다는 묘한 만족감을 얻었다.


장래엔 말딸들을 지도하는 트레이너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애한테 한 말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집안의 따님 같은 느낌이었으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테고 괜찮겠지…


/


트레센 학원의 아침은 분주하다.


수많은 말딸들이 자율적인 트레이닝을 위해 운동복을 입고 지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해 황금빛으로 물든 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저마다의 각질을 뽐내는 한편, 몇몇 말딸들은 이제 막 기상하여 아침 식사를 위해 몸단장을 하고 있을 시간.


 "이걸 어쩌지…"

손끝에 느껴지는 미끌미끌하면서도 꺼끌거리는 비늘의 감촉.

…나는 손에 들려있는 참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절찬리 고민 중이다.


 "참돔의 물고기 말이 대체 뭐냐고…"

비린내가 벤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골드 쉽의 말을 되새겨… 봤자 아무 의미 없나.


 "대개 골드 쉽의 기행에 의미를 찾아봤자 손해일 뿐이지."

그렇다면 유효하게 활용하는 것이 이제 숨을 거둬 움직임이 사라진 참돔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식당에 가져가면 되려나?"

식탐의 화신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기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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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쉽과 만난 것은 말 그대로, 굉장한 우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트레센 학원의 트레이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나는 트랙에서 열심히 달리는 말딸들을 보며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트레이너로서의 의욕을 잃은,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 온 상태였다.


무언가를 이룬 것도, 뼈가 부러지고 살을 태울 정도로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저 『중앙』을 목표로 달려온 나에게 트레센의 수준은 너무 높았다… 는 것은 변명인가? 그래, 그저 강렬히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어 타고 남은 장작(열정)이 서서히 잿가루로 변해가듯이 그저 평범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을 관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직장인처럼 흔하게, 의욕을 잃었다.


열정 대신 몸을 채우는 것은 공허함과 무료함.

아무런 꿈도 가지지 않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무기력함.

그래도 말딸들의 트레이닝을 보면서 그녀들의 미래를, 가능성이 넘쳐나는 말딸들의 데뷔 레이스부터 이어지는 G1 제패를 상상할 때는 근심도, 무료함도 잊을 수 있어… 그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다.

그녀들을 지도할 방법은 어느 정도 머리에 들어있으나, 직접 이끌어 가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무엇보다, 의욕이 나질 않는다.


이런 한심한 트레이너가 담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녀들에게 크나큰 결례가 되는 게 아닐까?

결국 사고는 마이너스로 되돌아간다. ―나 같은 범재가 중앙의 문턱을 넘어 명문가의 트레이너들과 같은 위치에 한발을 걸친 것은 그저 요행이었다고 절실하게 통감했다.


이제 관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으랴아아앗!"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햇빛을 머금고 찬란하게 빛나는 백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 말딸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제길, 어디 있는 거냐!" 

…그녀는 대체 무엇을 하고싶은걸까?


 "젠장, 고루시의 레이더가 가리키는 곳은 여기가 틀림없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곳에서 당장 피해야한다'는 직감을 느끼면서도, 처음보는 타입의 말딸에게 호기심이 솟아났다.

이윽고 그녀는 양팔을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


 "레이더 수신, 레이더 수신, 주변에 트레이너 반응 있음."

기묘한 몸짓을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더가 반응하고 있다면 틀림없어! 이 주변에 트레이너가 있을 거야!"

어라? 얘 진짜 위험한 애 아닌가?


 "트레이너라는 건 분명 녹색 피부에 어금니가 튀어나와 있는 생물일 텐데―"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내 앞에 멈춰선 별난 말딸과 눈이 마주쳤다.


/


출처가 불분명한 참돔을 처리한 다음날.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는 말딸들을 보고 있자니 잠시 감상에 빠져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때도 이렇게 하릴없이 말딸들의 트레이닝을 지켜보고 있었지.


 "그때는 엄청나게 당황했었지…"

감상적인 기분이 된 탓일까? 입에서 자연스레 혼잣말이 새어 나온다.

뇌리에 단단히 새겨진 첫 만남 이후, 골드 쉽에게 정말 아무나 좋았던 것인지 넌지시 물어본 적도 있지만,


 【하? 이 골드 쉽님께서 그렇게 간단히 트레이너를 정할 리가 없잖아? 앗?! 이 느낌은! 좋았어! 고루고루성의 계시다! 추트하자구!】

라고 적당히 흘려졌다.


 "요, 트레이너. 오늘도 한가한 면상이네."

―말은 커녕 생각조차 조심해야 하는걸까? 본인이 등장했다.


 "한가한 면상은 어떤 얼굴이야? 아무튼 좋은 아침이야 골드 쉽."

 "뭐, 처음 봤을 때처럼 딱 보자마자 엄청 한가해 보이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만면에 미소를 띈 채 성큼성큼 걸어오는 골드 쉽은 여느 때처럼 늠름하고


 "나랑 만나고, 네 인생도 좀 재밌어졌지?"

햇빛을 머금고 은은하게 빛나는 백발을 천천히 쓸어올리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평소에 볼 수 없던 차분한 모습이, 평상시의 기행에 가려진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그것이 시선을 사로잡아…


그저 한없이 아름다웠다.


.

.

.


 "핫?! 지금이야말로 고루시쨩의 시대가 올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 빨리 레이스하러 가자구! 고루시 워―프!"

…아름다웠다.


/


그날은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운영하시는 공장의 자금 사정이 나빠져, 폐업할 위기이지만 저에게는 그 일을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이었을까요? 저의 앞에서는 평소처럼 행동하시지만, 아버님께서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로 통화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방법을 찾고 있었으나 크게 떠오르는 방법은 없어, 창고에 쌓여있던 금속 배트를 몰래 길거리에 가지고 나가 어머님께서 들려주셨던 동화 '성냥팔이 소녀'라는 이야기처럼, 추위에 몸을 떨며 배트를 사 줄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을까요? 좀 더 방한성이 좋은 옷을 입었어야 했다는 후회감과 함께 피부를 찢는듯한 한기가 피부를 찌르고, 손발의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볼에 온기가 퍼졌습니다.


 "돈부리는 좋아하니?"

추위에 떠는 저를 보고 다가온 그녀가 자기 집으로 저를 이끌어준 덕에,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고개를 숙인 저를 보며 그녀는 어딘가 울적한 표적을 지었습니다.


 "나는 우마무스메지만 달리기는 잘 못 해서 라멘 장인을 노리고 있거든."

 "라멘…?"

우마무스메가 달리기라는 꿈에서 멀어져 데뷔를 포기하고 라멘집을 운영한다.

저에게 있어서는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너도 미래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서 사는 게 어때?"

방금 보여준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원하는 것… 그렇네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좋은 일이죠!"

―우선은 그때 심심함을 주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남성분을 찾는 것부터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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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트위터의 이 만화를 보고 오랜만에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한줄쓰고 막히거나 한장면 쓰고 막혀서 생각만 하다 이제서야 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