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음성 표현으로 의사소통을 거의 다 하는 인간과 달리 자기 자신의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처음에는 미미하고 사소한 움직임이지만(말을 잘 다룬다는 사람들이 지닌 기술이 바로 이런 말의 사소한 행동 변화를 재빨리 알아채는 거다) 자신의 표현이 안 먹혔다고 판단하면 점점 행동이 커지는데 그 중 가장 강력한 의사소통 형태가 발로 차는 거다. 실제로 차지 않고 차려는 시늉만 해도 그 말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래서 키우는 말이 빈도에 상관없이, 발로 차는 행동을 한다면 그런 행동을 하는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냥 말들끼리 놀다가 장난으로 차는 거라면 상관없지만(상황에 따라선 더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유의 깊게 지켜볼 필요는 있음) 말이 어딘가 아파서 그런 거라면 바로 수의사를 불러야 할 것이고 '내가 왕이야'라는 식으로 하극상을 시도하는 경우라면 즉시 교정해줘야 한다.


말의 뒷 발차기는 보통 다음의 6가지 의미다.


1. '위협받는 거 같음.'


야생에서 말의 뒷 발차기는 포식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이었기에, 본능적으로 각인되어 있어서 평상시에는 점잖고 잘 따르는 말이라도 위협을 느낀다면 발차기를 날릴 수 있다.  진짜로 겁먹은 말은 먼저 위협이라고 느끼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도망 반응), 도망칠 수 없다면 자신의 귀를 접고 뒷발을 들면서 계속 그러면 차버린다는 경고를 날린다. 최종적으로 둘 다 안 먹히면 찬다. 


말은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다보니 사람처럼 특정 개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말이 궁지에 몰리면 뒷발이 날아가게 되는데 유사하게, 말이 진짜로 무섭다고 느끼는 걸 강요받으면(어두운 운송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든지) 발차기를 날릴 수준으로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말을 진정시켜서 불안감을 달래주는 수 밖에 없다. 무리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원인이라면 무리 구성원을 인위적으로 교체해줘야 하고, 조교 도중에 그런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겁먹은 말은 머릿속이 생존 본능으로 가득하므로 배울 수 없다. 그리고 말에게 접근할 때는 반드시 '나 여깄어! 지금 간다!'는 식으로 위치를 알려주고 접근해야 한다. 말은 시각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인 자기 뒤에서 오는 자극에 매우 민감한데 뒤에서 몰래 접근했다간 포식자가 온 줄 알고 바로 본능이 튀어나온다. 승마 교습 시간에 처음으로 배우는 게 '언제나 말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 아니다.


2. '기분이 좋다'


때로는 장난기 때문에 말이 차기도 한다. 말들을 방목시키면 서로 쫓아다니면서 장난을 치거나 뒷발차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건 말들이 넘쳐나는 에너지를 해소하고 몸을 푸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런 의도의 뒷발차기는 부상을 입히는 게 목적이 아니고 그냥 우연히 그런 거다.


이 유형의 발차기는 교정이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도 없다. 대신, 자기 자신과 말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말들을 방목시킬 때 '술래잡기'를 좋아하는 미쳐 날뛰는 젊은 말과 빌빌거리는 나이든 말을 같이 방목시켜선 안 된다. 그리고 방목시에도 부상을 입지 않게 조심해야 하며 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변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3. 아프다


산통(말에게 발생하는 복부 통증의 통칭. 원인은 장내 가스가 지나치게 발생한다던지, 장이 막혀서 발생하는 등 다양하다)의 주요 증상 중 하나가 말이 자기 옆구리를 발로 차는 행동이다. 그리고 말의 체형에 맞지 않는 안장을 얹으면 그 말은 아픔을 느껴서 차는 행동을 한다. 말을 빗겨줄 때 아무런 이유없이 뒷발을 찬다면 말이 불쾌하다든지 아프다는 뜻이므로 더 부드러운 도구로 바꿔주자.


고통 때문에 하는 발차기는 예비동작 없이 고통을 느끼면 바로 튀어나오며, 원인을 제거하면 곧 차는 행동을 멈추기 때문에 쉽게 알아챌 수 있다.


4. '실망했다'


말은 기초 대사량이 많아서(기본이 15,000칼로리로 성인 남자의 6배다. 활동이 많은 말은 더 많이 먹어야 한다) 열량이 응축된 곡물먹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자기 딴에 주인니뮤가 곡물을 늦게 준다고 생각하면 그 실망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마방 벽을 발로 차는 거다. 비슷하게 운송 트레일러에 실려서 목적지까지 왔는데 바로 내려주지 않으면 트레일러 벽을 차기도 한다. 장난으로 하는 발차기 처럼 유심히 지켜보되, 자기나 다른 말, 사람에게 해가 없다면 무시해도 된다.


5. '물러서'


개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말은 다른 말이 자기 뒤로 너무 접근하는 걸 싫어한다. 특히 무리의 보스인 암말들은 개인 공간에 매우 까다로워서 조금만 가까이와도 이런 의미로 발차기를 날린다. 사람을 절대 차지 않지만 같은 말에게는 자비없이 뒷발을 날리는 말들이 많은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말이 이런 이유로 뒷발을 날리면 즉시 짧은 채찍(crop, 경마 기수들이 경주 뛸 때 드는 그거 맞다)이나 고삐로 날카롭게 쳐서 하면 안되는 행동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말은 잘못한 즉시 교정하지 않으면 그게 잘못된 행동인 줄 모르기 때문.


발로 차는 버릇이 있었다면 꼬리에 빨간 리본을 달아서 '이 말은 축벽(차는 버릇)이 있는 말입니다.'고 경고해줘야 하며 집단으로 승마시에는 가장 뒤에 서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경기장에선 말이 당신과 당신의 지시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부상을 예방하는 건 말의 고삐를 쥔 당신이니까.


6. '이 구역의 왕은 바로 나야'


가장 심각한 타입. 야생에서 무리의 리더가 무리의 질서를 유지하고 교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수단이 발차기였다. 그런데 이런 의미로 발차기를 사람한테 한다? 이는 더 큰 조교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 그 말이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위협이라는 걸 학습했다는 거로, 말이 사람 위에 올라타려는 하극상이다.


이런 말들은 지배적인(dominant) 암말이나 거세마인 경향이 있다. 이들은 차기 전에 귀를 접고(자기 목을 따라서 접는데, 말이 굉장히 화가 났거나 공격을 한다는 신호다), '사나운' 표정을 지어서 위협을 하며, 엉덩이를 사람을 향해 돌리고 발굽을 까딱거린다.  겁을 먹어서 하는 발차기와 달리, 이런 의도로 뒷발을 날리려 하는 말들은 그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서 더 차려고 한다. 


보통 사람 위에 올라타려는 말들은 이렇게 사람들을 위협하는 게 예전에 먹혔기 때문에 똑같은 행동을 한다. 어떤 시점에서, 이들은 사람에게 차버린다고 위협을 하거나 진짜로 차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얻은 경험이 버릇으로 바뀌는 건 금방이다. 이게 오랜 기간 동안 고착화되면 교정이 극히 힘들다. 자기 방식대로 하는 데 오랫동안 습관이 된 말은 그 버릇을 고치기 매우 어렵고 벌을 주는 것도 도전으로 받아들여서 더 강하게, 정교하게 차려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말의 뒷발차기는 포식자에게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며 의사소통 수단으로도 유용하다. 하지만 사람이 키우는 말로서는 가장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다. 언제든 말이 차는 행동을 하면 그 원인을 파악하고 방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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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 때문에 말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