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 기념에서 9착으로 떨어졌던 날, 나의 하늘 높이 날던 자신감과 자긍심도 같이 떨어졌다.


그저 단순히 패배한 레이스였다면, 그저 한때의 패배로 치부하며 즐거움을 찾아 일어설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

그 아리마 기념 이후, 어렸을 적부터 나를 괴롭혀왔던 다리의 병증이 재발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아리마 기념 이후. 나는 트레센 학원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는 없었을 테지.


당주님께서는 나에게 '저택으로 돌아와서 제 그만 푹 쉬라.'고 위로하셨다.

하지만, 그 말은 나에게 있어서는 절대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레이스는 나의 즐거움이자 사랑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레이스를 즐거움과 사랑으로 만든 이는 다름 아닌 당주님이었고, 당주님께서는 레이스로 가문의 영광을 잇고 싶어 하셨기에 그리하셨다.


지금껏 나의 즐거움과 가문의 영광을 합치하게 한 분께서 나에게 마치 위로의 의미로 건넨 듯한 말.

그것은 한껏 홍차를 마시어 즐기곤, 쓰임새가 다한 홍차 잔을 찬장에 넣어두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렇게 저택으로 돌아온 날.

나의 세계와 끊어진 날.


신기하게도 울음은 나지 않았다.

그것은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말라버린 눈물로 인한 것이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심 '이것으로 끝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저택으로 돌아온 나를 찾는 이는 없었다.


나의... '억지'.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억지라고 부를 만한 행동을 할 때마다, 나를 찾던 황제께서는 내가 그저 저택 안에 콕 박혔다는 것을 알곤. 더 이상의 걱정을 하지 않으려는 듯 연락 한번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를 찾을 이가 없었다.

나를 찾을 이를 생각해보니, 루돌프 한 명밖에 생각나질 않는다니. 이 무슨 추태인가.


나의 트레이너는 그저 당주님께서 이어주신, 트레이너의 일로서 충실한 이였다. 아리마 기념에서 패배한 이후 창백해졌던 그의 얼굴이 기억난다. 나의 병증이 재발했다는 말을 듣자 더더욱 창백해졌었지.

그와의 계약과 관계는 그 계약을 이어주었던 당주님의 통보 한 번으로 끊어져, 그저 내 휴대전화에 짧디짧은 문자 하나만을 남긴 사람.


애당초, 그에게 거는 마음도, 기대도 없기야 했다.

다른 이들의 트레이너처럼 무언가를 말해주길, 행동해주길 바랐느냐고 묻느냐면... 아니다.

정말로.. 나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존재는 필요 없었으니까.


단지.. 눈에 들어오던 이들과 비교가 되었을 뿐이었다.


레이스에 꿈이 없는 듯이 구는 아이를 고생을 자처하며 담당으로 맞이하여 이끄려는 이.

부상으로 인하여, 레이스로 복귀하기 힘들다는 아이를 위로하며 도와주어 그 꿈을 안고 가려는 이.

그저 패배해도 해맑게 웃는 재능뿐인 아이에게 같이 웃어주고, 그저 한 번의 승리를 위해 앞을 보며 나아가는 이.


그런 이들... 그런 트레이너를 가진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래, 어리석게도. 지금까지 말해 온 것들을 부정하겠다. 그것을 부럽다고 말하려는 나 스스로가 애석하여 숨기었으나, 그것은 진실로 부러웠다.

그저, 그런 따듯한 온기가 부럽지 않다고 했던 조금 전의 나는 어리석고 어렸다고 해야겠지.


어쩌면, 나의 트레이너에게도 나에게 그런 면을 보여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내가 레이스에 대한 관심을 그에게 약간이나마 쏟았다면, 그를 그저 디딤돌의 역할 그 이하로만 보지 않았다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어두운 후회뿐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내다보니 더 검고 어두운 후회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남은 것이 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저택의 정원에서 홀로 홍차를 마시며, 그 홍차 잔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다가 깨트려버리며 마음속이 썩어가던 어느 날.

아르당. 나의 동생이 찾아왔다. 자신의 트레이너와 함께.

트레이너와 함께 제 마음속에 따듯한 온기를 품은 채,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던 나를 찾아왔다.


나의 동생도 나와 같았다. 한때 다리를 아프게 앓았었고, 지금은 그 다리로 자신을 빛내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 다리도 한계를 맞이할 테지.


그러나, 그 다음은 나와 달랐다.

동생의 트레이너. 동생만큼이나 따듯한 마음을 품은 채로 온 그 트레이너는 그저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따듯한 온기가 배어나오고 있었고, 언젠가 나의 동생이 부러지더라도, 하나의 지팡이가 되듯이 동생을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 다짐하는 듯이 보였다.


그것이,


너무 부러워서.


홍차 잔을 들던 손을 떨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트려 버렸다.

참을 수 없을 듯한 구역질을 간신히 참았다.

동생을 상대로, 나와 같은 아픔을 공유했던 나의 동생을 상대로 질투를 할 지경이라니, 나의 마음은 어디까지 영락했단 말인가.


그 떨어져 깨진 홍차 잔에 놀라서 나를 살피려던 동생과 트레이너였으나, 나는 그들에게 역정을 쏟아내듯이 매몰차게 내쫓아 버렸다.

차라리, 그들이 온기를 품고 가져왔으나, 역정으로 답한 것에 실망하길 바랐다. 그렇게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고, 그저 내 부러움과 질투는 몰랐으면 하였다.


그렇게 황급하게 그들이 떠나는 뒤에서, 나는 떨어져 깨진 홍차 잔을 보며 홀로 눈물 흘렸다.

레이스가 나의 삶에서 떠났음에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었는데, 이런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외로움은 나를 진실로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역정을 쏟아내어 나의 동생과 그 트레이너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며칠 후. 아르당은 없이 그 트레이너만 홀로, 전과 같이 정원에서 홍차를 마시고 있던 나를 찾아왔다.


그 트레이너는 쭈뼛거리면서도 '자신과 아르당의 방문으로 의도치 않게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다.'라며 사과를 전해왔다.


본디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무례한 언행을 저지른 내 쪽일 터였으나, 그는 그저 나를 아껴주듯이 배려와 온기로 그 사과를 전하러 온 것이었다.


내 어둠이 가득한 길에 마치 태양이 비치는 듯한 온기였기에. 나는 그것이 더 참을 수 없었다.

이성으로 꺼낼 수 있는 말은 나오지 않고, 그저 본능으로 움직이는 행동이 그를 향했다.


나는 동생의 트레이너를 껴안은 채, 그대로 울음을 터트렸다.

나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하던 그였으나, 나를 이해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는 나의 울음을 받아주려는 듯이, 나에게서 벗어나려 버둥대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내가 혼자서 울지 않도록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


그렇게, 그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가 입은 셔츠의 가슴께가 나의 눈물로 다 젖어버릴 정도로, 나 자도 나에게 그렇게나 많은 눈물이 있는 줄은 몰랐었다.

울음이 그치고, 보기 흉한 얼굴이 되었을 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려 하자, 그는 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내 얼굴을 손수 닦아주었다.

마치, 자신에게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이.


울음기가 진정되고, 가까스로 추하지 않을 모습으로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아르당도 그에게 종종 울음을 토해내던 때가 있었기에, 자신에게 익숙했던 것'이라고 말해왔다.

나의 동생은 힘들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제 트레이너에게 울음을 토해내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

나 또한 그런 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질투로 변할듯한 부러움을 참던 나의 눈에, 그의 젖어버린 셔츠가 다시금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지금껏 그와 아르당에게 해왔던 일을 사과하며, 그 셔츠를 더럽힌 것에 대한 사과도 건네었다.

그는 나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다만 아르당을 향한 사과는 본인을 마주 보고 직접 할 것을 조언해주었다.


셔츠에 대해서는 '그냥 눈물이니 말리면 족하다.'고 말하며,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적당히 다른 옷을 드릴테니 갈아입으라.'며 말하며 다급하게 일어서다가, 그만 그를 붙잡으려다 말고 넘어졌다.

그럭저럭 일상생활은 가능하다는 다리였으나, 다급하게 움직이려는 마음을 따르지는 못하고, 그만 다리가 꼬인 탓이었다.


그렇게 넘어졌음에도, 느껴지는 고통은 없이, 다만 기분 좋은 따듯함만이 나를 감싸주었다.

넘어지며 눈을 감았었기에, 잠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잘 몰랐으나, 이내 들려오는 신음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넘어진 나의 아래, 그가 나를 받치고 보호하며 깔려있었다.

넘어지던 나를 급하게 받아주느라 제대로 받아내주지 못한 듯했으나, 자신이 일종의 쿠션이 되어 내가 다치는 일은 없도록 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에게 놀라 황급히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렇게 일어난 그에게 사과를 전했으나, 이내 그는 연신 '괜찮다.'라고 말하며, 살짝 흙이 묻은 옷을 털어내었다.


그는 사과하며 고개를 영 들지 못하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고, 이내 돌아서서 저택에서 떠나려다가-



-순간 발목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놀라서, 주저앉은 그가 잡고 있는 발목을 살펴보니, 점차 붉게 변하며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도 방금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한 고통이었으나, 주저앉고 나서야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이 입을 다문 채로 그 고통을 참아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아마도, 넘어지려는 나를 받쳐주었을 때, 그때 생긴 부상이리라.

다시 다급하게 사과를 전하고, 그에게 다른 곳을 다치진 않았는지 물으며 확인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가 다친 곳은 한쪽 발목 외에는 없는 듯하였다.


연신 사과를 건네며, 그가 다친 발목을 움직이지 않도록 부축하며 일으켜 주었다.

저택 내에는 인간이나 우마무스메에게 간단한 응급 치료를 해줄 수 있는 주치의가 머무르고 있는 의무실이 따로 있었기에, 그곳으로 데려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나를 만류하였다.

그 만류에 어리둥절한 나였으나, 이내 그의 말을 듣고 왜 만류하였는지를 이해하였다.

자신은 '아르당이 제 언니를 걱정하였기에 몰래 왔고, 주치의 씨가 아르당에게 내가 다쳤다는 말을 전할 수도 있어서 안 된다.'라고.


그렇다고 한들, 어쩌면 삐거나 한 사소한 부상이 아니라 큰 부상일 수도 있기에,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를 의무실로 데려가려 했으나, 그는 한사코 나를 말리면서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그의 신음만 커지고,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가, 이내 내 방에 있는 약품과 의료도구가 떠올랐다.

혹시나 외출 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하여 따로 챙겨두었던 물건이었기에, 그에게 사용할 만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곳이라면 다른 이들에게 그가 다친 것을 안 보이게 할 수도 있으리라.


이내 그에게 나의 방으로 갈 것을 권하였고, 그는 나의 방으로 간다는 것에 남성으로서 살짝 거부감이 있는 듯하였으나, 이내 다른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듯이 승낙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를 부축하며 천천히 나의 방으로 이끌었다.

그의 얼굴에 서린 붉은 기색이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만 그렇게 그를 부축하고 있으니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천천히, 그를 내 침대의 한자리에 앉도록 하고, 방의 한곳에 보관했던 약상자를 통째로 들고 와 꺼냈다.

그는 스스로 제 발목을 살피고 '그냥 삔 것이 확실하다.'고 말하면서, 내가 건네준 약상자 안의 도구로 응급처치하기 시작했다.


다만, 응급처치해도 삔 발목이 바로 낫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고통은 잦아들긴 해도 발을 움직이기는 불편할 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메지로 저택에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찾아왔으니다친 발목으로 운전하여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 걱정되었다.

이에 그것에 관해 물으니, 그도 나와 같은 것을 걱정하였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답해왔다.


이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저택의 운전기사 중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운전기사에게 그를 트레센으로 보내달라고, 다만 지금 당장은 아니니, 다시 연락하면 움직일 수 있도록 대기 부탁하며 입단속도 부탁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운전기사를 당장 부르지 않고, 다시 연락하여 부르겠다고 한 것은 이왕 그를 내 방으로 데리고 왔으니, 천천히 그와 대화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는 나의 통화를 듣다가 '다시 연락하면 움직여 달라.'라는 구절에서 얼굴에 놀란 마음이 드러났었으나, 나의 욕심을 이해해주기라도 한 것일까. 잠시 후 그 얼굴에 드러났던 놀람은 다시금 모습을 숨겼다.


그렇게 그를 침대 한쪽에 앉혀둔 채로 끝나지 않을 듯한 대화를 나눴다.

동생에게 들었던 나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그가 보았던 나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하는 나의 이야기가 나왔었고.

이내 동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가 아르당, 내 동생에게 품고 있는 사랑이 눈에 보일 정도로, 그 말에서는 사랑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몹시 부러웠다. 그런 사랑을 나도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그의 손에 내 손을 뻗어 겹쳐 잡았다.

제 손이 나에게 붙잡히자, 그는 당황한 나머지 새된 소리로 물었으나,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나도 그 사랑이 몹시 부러웠으므로.

그래서, 그 사랑을 받고 싶어서.




비록 은퇴하고 다친 나였으나, 힘으로 그를 붙잡는 것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그는 버둥대며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이미 그의 손은 붙잡혔고, 입고 있던 옷은 천천히 뜯겨져 나갔다.

이윽고 나의 품으로, 그의 온기가 사르륵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나의 몸에 그의 온기가 흘렀다.

나의 귀에 들리는 것이 사랑의 말이길 바랐으나, 들린 것은 절망과 당황에 찬 신음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했다.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 사랑이 몹시 부러웠을 뿐이었다.

그것이, 동생의 사랑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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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점 있으면 말해줘.


아르당 트레이너는 NTR이 제맛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