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umamusume/7200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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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하아..."



여름 합숙이 끝나고 며칠 지난 후의 어느 여름날.


저는 평소와 같이 아침 훈련을 위해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 트레센 학원 근교를 가볍게 몇 바퀴 달리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해가 뜨고 트레이너님이 출근하시면 본격적인 아침 트레이닝을 시작해야 하는 만큼, 새벽의 자율 트레이닝은 너무 과하지 않도록, 그저 잠자는 동안 굳은 몸을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진행하는 편.


하지만 장마철이 지나고 어느덧 여름도 절정에 달해가면서 무더위가 심해진터라, 나름 가볍게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 있었습니다.



"음, 탑로드인가."


"아, 에어 그루브 씨."



일단 좀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마침 막 건물에서 나오시던 에어 그루브 씨와 마주쳤습니다.


저희 둘은 같은 반인데다가 저는 학급위원장, 그루브 씨는 학생회이 부회장 직을 맡고 있는 탓에 업무적으로도, 그리고 사적으로도 꽤나 친밀한 사이입니다.


그루브 씨는 잠시 제 모습을 지켜보시더니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트레이닝인가. 과연 학급 위원장이로군."


"아하하... 전 오페라오 씨나 아야베 씨 같은 다른 분들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걸요. 그러니까 그만큼 더 노력해야죠."


"너무 스스로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너와 그 친구들은 바야흐로 지금 트윙클 시리즈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오히려 지나친 겸손은 다른 이들에겐 모독이 될 수도 있지."


"그렇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군. 그럼 오늘 하루도 건투를 빌지."


"예, 수고하세요. 에어 그루브 씨."



저와의 대화를 마친 에어 그루브씨는 빠른 걸음으로 교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학생회의 멤버분들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나리타 브라이언 씨를 제외하고는 항상 업무에 쫓기는 탓에, 하루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셔서 이렇게 트레이닝 도중에 얼굴을 마주치곤 하는 일이 잦습니다.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하다 발걸음을 돌립니다.


제 방으로 들어가니 룸메이트는 이미 자리를 비운 후였습니다.


덕분에 기다릴 필요 없이 샤워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기뻐지네요.


지방의 트레센 학원이나, 다른 우마무스메 분들이 학원 입학 전에 거치곤 하는 트레이닝 클럽 등지의 샤워실은 칸막이만 쳐진 공용 샤워실이라고 이야기로 들었습니다만, 다행히도 중앙 트레센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더 부유한 덕분일까요, 기숙사 방마다 제대로 된 샤워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뭐, 욕조가 없어서 제대로 물에 몸을 푹 담그려면 공용 목욕탕으로 가긴 해야 하지만요.


쏴아아아-


수도꼭지를 돌리자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트레이닝으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조금 찬물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털어낼 수 없는 마음 한 켠의 미혹이 있습니다.



[미안, 아야베. 아직 덜 진정 됐나봐... 한 번만 더 신세질게.]


[으으... 너말야...!]


[아야베...]


[트레이너...]



찬물을 뒤집어 쓴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릅니다.


여름 합숙의 마지막 날 보았던 풍경.


뒤엉키는 두 개의 인영.


오고가는 음어와 울려퍼지는 물소리...


물론 저도 고등부이니만큼, 그... 성적인... 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그걸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은 다르다고나 할까요...


마치 저 하늘의 별처럼 고고하던 아야베씨가 바닥에 깔린 채 짐승처럼 신음하고, 항상 상냥하던 아야베씨의 트레이너는 그런 그녀의 위로 올라타 미친듯이 허리를 움직입니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한 풍경...


으으으...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던 걸까요.


전 그냥 방에 놔두고 와버렸던 가방을 가져오려고 돌아갔던 것 뿐인데... 설마 그런 광경을 보게되다니...



"아아..."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제 손으로 스스로의 소중한 곳들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딱딱해진 가슴의 끝, 물이 아닌 무언가로 축축해진 다리 사이.


그곳을 손가락으로 괴롭힐때 마다 묘한 쾌감이 찌릿찌릿 느껴지고 하복부에는 간질간질하고 무언가 애타는 듯한 감각이 피어오릅니다.



"으읏... 하아...!"



부끄럽지만, 샤워보다 다른 일에 더 열중해버리고 말았습니다...



===



"그럼,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탑로드 양."


"트레이너님도 수고하셨습니다."



트레이닝 이후의 미팅 자리.


맞은 편의 소파에 앉아계신 중년의 여성분, 제 트레이너님께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며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싶은게 있군요."


"네, 말씀해주세요. 트레이너님."



서류를 모두 파일에 집어넣어 한 켠에 쌓아두신 트레이너님이 절 바라보십니다.


꿀꺽-


트레이너님은 온화한 인상의 여성분이시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할때면 그 강렬한 눈빛에 항상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맙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요?



"별건 아니니까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여름합숙 이후로 트레이닝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 하는 듯한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건가요?"


"예?"



여름합숙 이후라면 그...



"왜 그러는건가요, 탑로드 양?"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트레이너님께서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절 쳐다보십니다.


으으... 이걸 어떻게 변명을 해야...


트레이너님은 어물쩍거리는 제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뭐, 좋아요. 탑로드 양에게도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 할 고민 한 두가지는 있을 테니까요. 다만 우리의 다음 목표는 국화상. 클래식 3관의 마지막 대회인만큼 다른 라이벌들도 작정을 하고 덤벼올텐데, 그렇게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두세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좀 정리된다면 제게도 그 고민에 대해 알려주면 좋겠네요. 우리 트레이너와 우마무스메는 이인삼각의 관계잖아요? 크게 도움이 될 만한 답변은 못 드리더라도, 부담을 조금은 나눌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네, 트레이너님."


"그럼 전 업무가 남아서 이만. 탑로드 양도 돌아가보도록 하세요."


"예. 실례했습니다."



드르륵-


트레이너실의 미닫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옵니다.



"하아..."



전 정말로 바보인가봐요.


벌써 한참 전의 일인데, 아직도 이렇게나 미혹에 사로잡혀서...



"으으으...!"



찰싹찰싹-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트레이너님의 말씀이 옳아요, 이런 정신상태로 다음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게다가 트레이닝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 했으니, 어떻게든 추가 훈련으로 만회해야만 해야겠네요.


한동안 더욱 바빠질 것 같아요.



"좋았어, 힘내자!"



===



우우웅-



"흐아암~"



여름 합숙이 끝나고 일주일 가량 지난 주말의 어느 날.


지금 난 오랜만의 휴일을 맞이해 집 안에서 에어컨을 틀고 빈둥대는 중이다.


평소라면 휴일을 맞이해 아야베와 데이트라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겠지만...



[그러게 내가 그만 하라고 했잖아! 다! 당신! 때문! 이라고!]


[으, 으아악! 그만! 아파, 아프다고 아야베!!!]


[입 다물어! 그냥 죽어! 죽어 이 변태!]



...여름 합숙의 마지막 날, 저녁 식사 겸 파티를 한 뒤 모두가 떠난 방에서 아야베와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그것을 그만 탑로드 양에게 들키고 말았다.


뭐, 내 잘못이 맞긴 하다. 처음 한 번으로 끝내자던 아야베를 내가 계속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니까...



"으으, 맞은 곳이 아직도 쑤시는 것 같네."



우마무스메에게 전력으로 두들겨 맞았다가는 진짜로 죽어버릴테니, 아야베도 자기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하긴 해준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아프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덕분에 아직도 몸 이곳 저곳에 파스를 붙히고 있는 신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야베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는지 그날 이후로 나랑 대화는 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요즘은 트레이닝 시간이 아니면 얼굴 보기조차 힘들다.


어떻게든 일이 커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탑로드 양을 찾아가봤는데 그녀도 날 발견하자 마자 도망가기 바쁘고...


다행히도 학원의 입 가벼운 우마무스메 아가씨들께서 잠잠한 것을 보면 어떻게 그날 일을 퍼트리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띠리리리~



[통화가 거절되었습니다. 삐 소리가 난 후-]


"하아... 역시 안 받네."



그래도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좀 가라앉았을까 싶어 점심 초대를 할 겸 전화해봤는데, 전화가 연결되기를 무섭게 통화 거절당했다.



"쩝... 나가서 대충 먹고 와야지."



장마철도 지났고, 무더위가 한창 절정을 이루고 있는 요즘이지만, 혼자 밥 해먹고 혼자 치우기도 궁상맞고, 휴일이라고 방에만 너무 틀어박혀 있다간 진짜 폐인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옷장에서 적당한 옷을 꺼내 걸친다.


선택한 옷은 얇은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햇빛을 막을 챙 달린 모자.


조금 촌스럽긴하지만... 어차피 혼자 집 앞에 잠깐 나갔다 오는거니까.



"어디, 오늘은 오랜만에 규동이나 먹으러 가볼까~"



끼익-


그렇게 문을 열고 나선 순간, 어째선지 눈에 익은 인영이 보였다.



"어라? 탑로드 양?"


"...?"



상체를 숙이고 있던 탑로드 양이 고개만 슬쩍 돌려 날 바라본다.


얼굴도 새빨갛고 머리도 땀에 완전히 젖었네.


이런 날씨에 훈련이라도 한 건가,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봐 정말로 열심히인걸.



"오랜만이야, 탑로드 양. 주말에다가 이렇게 더운데 자율 트레이닝 중인거야?"


"...?"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는 그녀.



"읏...!"



더위라도 먹은건가 싶어 살짝 다가가봤더니 마침내 날 인식하고는 당황 섞인 신음을 토해낸다.


아하하... 역시 그렇겠지.


그런 꼴을 보여줘 버렸으니, 아직 한참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트, 트레이너 씨..."


"안녕, 탑로드 양."



안절부절거리며 내 시선을 피하는 그녀.


괜히 아는 척 했나 싶어 미안해지네.


그런데 탑로드 양이 혹시 더위를 먹은게 아닌가 했던 내 추측은 맞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땡볕 밑이라고는 해도, 땀을 과할 정도로 많이 흘리는데다 시선도 흐리멍텅하기 짝이 없어.


역시 이런 상태면 내버려두기 좀 그렇지.



"엄청 힘들어 보이는데... 더위라도 먹은 거 아냐? 조금 쉬는게 낫지 않을까?"


"어. 여, 여기서 말씀이신가요?"


"아하하. 아니, 여기 내 집이거든. 보리차라도 한 잔 대접해줄 테니까, 어때?"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탑로드 양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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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괜히 긴장되어서 연신 마른 침만 삼킨다.


으으... 이상한 생각 그만해야 하는데...


탁-



"자, 여기 얼음 띄운 보리차야. 에어컨도 다시 틀어놨으니, 금방 시원해질거야."


"아. 감사합니다."



갑자기 다가오는 트레이너 씨의 모습에 조금 움찔했지만, 그래도 건네주시는 유리잔을 제대로 받으며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나저나 열심히인것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야? 오늘 보니까 33도가 넘어가는 것 같던데. 게다가 트레센에서 이 근처까지면 거리도 꽤 되잖아?"


"아하하... 그렇네요..."



제게 보리차를 건네신 뒤 트레이너 씨는 다시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냉장고를 뒤적거리시는 걸 보면 뭔가 따로 마실거라도 찾고 계시는 걸까요?



"그나저나 점심은 먹었어?"


"아, 아니요. 아직이에요."


"그래? 나도 아직 안 먹은 참이었는데. 그럼 같이 식사라도 하는게 어때?"


"어... 식사 말씀이신가요?"


"응. 오늘은 원래 아야베도 없으니까 대충 밖에서 규동으로 때울까 생각했거든. 그런데 손님이 오셨으니, 이 참에 뭐라도 제대로 된 걸 해먹을까 싶어서."


"아..."



꼬르륵-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갑자기 울려퍼진 꼬르륵 소리.


범인은 저입니다.


으으... 복잡한 머리를 비우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확실히 오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내 달리기만 하긴 했네요. 배가 고픈 것도 당연해요.


저는 붉게 변한 얼굴을 숨기려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까딱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트레이너 씨."


"아하하, 역시 배고팠구나. 그래 맛있는거 해줄께."



트레이너씨는 주방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재료들을 꺼내 탁자위에 늘어놓았습니다.


뭘 만들려고 저러시는 걸까요?



"그러고보니 탑로드 양.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전 뭐든 괜찮아요."


"으음~ 그럼 역시 더우니까, 뭔가 시원한 음식이 좋겠네."



저는 보리차를 홀짝이며 잠시 트레이너님의 모습을 구경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저기, 제가 뭐라도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응? 아냐 아냐. 괜찮아. 손님이니까 그냥 편하게 있어."


"아뇨, 너무 도움만 받는 것도 눈치보이니까요. 간단한거라도 시켜주세요."


"음~ 그렇다면 면 삶는 걸 부탁해도 될까?"


"네, 알겠습니다."



재료들은 이미 전부 꺼내진 상태.


저는 그 중에 트레이너님이 가리킨 중화면의 포장을 뜯고 냄비에 물을 받아 불을 올렸습니다.


트레이너님은 이런저런 야채들을 손질하고 계시네요.


평소에는 항상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하고, 그 외에 먹는거라고 해봐야 친구들과 밖에서 외식을 하는 정도.


그런데 이렇게 같이 요리를 하고 있으니 묘한 기분입니다.


결혼을 하신 부부분들은 이런 느낌일가요?


...윽.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죠.


부부라니...!



"응? 무슨 일 있어, 탑로드 양?"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트레이너님의 질문에 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일해서 그런지, 요리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완성되었습니다.


면 삶기나 야채 손질 따위는 크게 어려울 것 없었고, 제일 중요한 육수는 미리 만들어서 얼려둔게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식탁 위에 금새 근사한 히야시츄카 두 그릇이 생겨났습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응. 맛있게 먹어."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젓가락을 집어듭니다.


면발을 잘 섞어 육수가 충분히 베어들게 한 뒤 한 입 맛봅니다.


이건...



"정말로 맛있어요! 굉장히 굉장해요!!!"


"하하, 그런가? 별거 아닌데 말이야."


"아뇨, 진심이에요. 가게에서 파는 것 보다 더 맛있는 것 같은걸요?"


"그래? 마음에 든다니 기쁘네. 자, 어서 먹자."


"네!"



식사를 이어가며 트레이너님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눕니다.


여름 합숙 마지막 날의 일 때문에 어색해졌던 공기도 금방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탓에 너무 긴장을 풀어버렸던 걸까요?


꺼내면 안 되는 말을 꺼내버렸습니다.



"그러고보니 아야베 씨는 오늘 같이 안 계신건가요?"


"아..."



머쓱한 얼굴을 하시는 트레이너 씨.


으으... 제가 무슨 소리를...



"죄송해요, 트레이너 씨. 제가 실수를..."


"아, 그런거 아냐. 신경 쓸 거 없어."



트레이너 씨는 괜히 히야시츄카의 면발을 젓가락으로 몇 번 휘휘 젓다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요즘은 트레이닝 때 제외하곤 딱히 만나거나 그러진 못 했어. 그때 일 때문에 화가 엄청 났는지 전화도 안 받아주더라고."


"역시 그날 저 때문에..."


"아, 그런 생각 하지 마. 애초에 내 잘못이 더 크니까. 하하... 담당이랑 그런 관계인걸로 모자라서 합숙 도중에 그런 짓까지 해버렸으니까 말이야."


"트, 트레이너 씨는 딱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응?"



갑자기 당황한 얼굴로 절 쳐다보시는 트레이너 씨.


내가 또 무슨 소리를...



"그, 그러니까 담당이랑 그런 관계... 라던지. 딱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진짜 중요한건 사랑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그런... 짓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나 해야할까. 그러니까 그게..."


"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네, 네에..."



기껏 살아났던 분위기는 제 헛소리 때문에 다시 어색해졌습니다.


둘 다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 말도 없던 와중에, 트레이너 씨가 다시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나저나 탑로드 양도 다음 국화상에 나오는거였지? 역시 오늘 트레이닝도 그거 대비하던거야?"


"아, 네. 역시 강력한 분들이 많이 모일테니까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거라 생각해서..."


"음 확실히 그렇지. 다시 그 티엠 오페라 오와도 맞부딪혀야하니 말이야. 그에 대비해서 제대로 준비를 하려면 나랑 아야베도 얼른 화해해야 할텐데..."


"응원하고 있을게요, 트레이너 씨."


"응, 고마워 탑로드 양. 비록 라이벌이지만, 나도 널 응원할게."


"아하하 감사합니다."



그 뒤 저희는 식사를 마저했고 금방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설거지는 저 혼자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트레이너 씨가 괜찮다고 하셔서 결국 저는 옆에서 그분이 씻은 접시를 닦아서 찬장에 넣어두기만 했습니다.



"덕분에 맛있는 것도 먹고 잔뜩 쉴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트레이너 씨."


"별 말씀을. 나야말로 대충 끼니나 때우려 했는데 탑로드 양 덕분에 든든하게 잘 먹었어. 혹시 휴일에 심심하거나, 이 근처 지나가다 좀 쉬고 싶어지면 또 들러줘."


"아, 그래도 괜찮을까요?"


"혼자 집에 있어봐야 심심하기만 한걸. 아야베랑 같이 있을때도 있긴 하지만, 그녀도 친구가 찾아와주면 더 기뻐할거야."


"후훗,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응.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네 트레이너 씨!"



저는 인사를 드리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한 번 멈춰서 뒤를 돌아보니, 트레이너 씨께서는 웃는 얼굴로 절 아직도 배웅해주고 계셨어요.


저도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드렸습니다.


가끔씩은 이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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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3편으로 끝낸다 그랬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늘어나서 여기서 한 번 끊음.


아마 총 4편 분량 정도 나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