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전을 배우지 못 한 연애허접 플래시씨



6펄롱 1분 14초, 평소의 기록, 그러나 얼마 전 보다는 나빠진 기록.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기록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트레이너씨가 트레이닝을 바꿔 주셔도, 주법을 교정해 주셔도, 작전을 바꿔 주셔도. 기록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2400m 트랙을 한 바퀴 다 돌고 저는 트레이너씨… 에게 향했습니다.


“하아… 하아… 기록은… 어떤가요?”

“2분 30초 9. 이거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네…”


제 최 전성기 였던 ‘일본 더비’의 기록을 한참 밑도는 기록. 일본 더비 이후 출전한 ‘고베 신문배’, ‘재팬컵’ 모두 우승하지 못 한 저는 지금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있습니다. 그 결과는 트레이닝 에서도 적나라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최악의 타임이라는 결과로…

저는 식지 않는 열을 식히려 물을 마시려 물병에 손을 뻗었습니다. 


“물? 잠깐.”


트레이너씨가 몸을 숙여 물병에 손을 가져 댄 순간, 저희의 손이 겹쳤습니다. 트레이너씨의 손.

그 접촉이 어째선가 당황스러워 저는 황급히 손을 땠고, 살짝 놀라신 트레이너씨가 멋쩍은듯 물병을 건내주셨습니다.


“아, 미안. 자 여기.”

“그, 죄송합니다.”

“아냐.”


저는 물을 마시는지 어떤지도 모른 체 그저 액체를 목으로 넘기는 대에만 집중했습니다. 요즘 왜 이러는 걸까요…


“플래시씨!”

“팔코씨?”


트랙 위에서 담당 트레이너씨와 함께 지나가던 저의 룸메이트, ‘스마트 팔콘’씨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직 트레이닝중인데 잡담이라면 조금 나중에 해줬으면 좋겠는데…


“플래시씨, 오늘 밤에 계획 있어?”

“오늘 밤에요?”


라고 말씀 하시면서 트랙까지 내려오신 팔코씨. 저는 수첩을 꺼내 스케쥴을 확인해 봅니다.


“아뇨, 오늘 밤 스케쥴은 딱히 없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별로-☆ 오랜만에 얘기나 좀 할까 해서?”

“그럼 오늘 밤에 중요한 얘기를 스케쥴에 추가 해두겠습니다.”

“중요한 얘기 까지는… 응, 중요한 얘기야! 꼭 기억해둬! 분명 플래시씨의 장래에 아주 중요한 얘기 일테니까!”


그리고는 제 양 손을 꼭 잡으면서 눈을 반짝이십니다. 제 장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요?


“그럼 이따 봐!”

“네, 이따 봬요.”


한 바탕 폭풍이 몰고 지나간 듯한 피곤함이 몰려옴니다. 지끈거리는 머리…


“죄송합니다, 트레이너씨. 트레이닝을 계속 할까요?”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플래시도 푹 쉬어둬.”

“네? 오늘 트레이닝 시간은 아직 22분이나 남았는데요?”

“지금은 피로가 쌓이지 않게 하자. 정리운동 하는거 봐줄께.”

“하지만 지금 제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트레이닝이 필요할탠데…”


저는 이대로 트레이너씨에게 버려지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옵니다.


“아직 슬럼프의 원인을 모른 체 트레이닝만 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야. 지금은 조금 지켜보면서 부상을 최대한 피하는 쪽으로 하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트레이닝을 마친 저는 트레이너씨와 짧은 미팅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부상 방지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방침을 정한다. 그것이 전부였던 짧은 미팅. 저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점점 불안감이 몽글몽글 커져만 갔습니다.



=====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니 방에는 팔코씨가 저를보며 미소짓고 계셨습니다.


“벌써 목욕을 끝내고 오셨네요?”

“응. 아, 꼬리 빗겨줄게.”

“부탁드릴게요.”


팔코씨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녀 나름대로 말을 꺼낼 분위기로 풀어나가려는 거일 테니까요.

저는 머리를 빗으면서 팔코씨의 말을 기다려 봄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였지만, 제 장래에 중요한 얘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제 슬럼프에 관련된 얘기일지도 모름니다. 저는 괜스레 긴장이 되어 손이 떨림니다.

그런 제 손을 팔코씨가 잡아줍니다.


“손이 떨려 플래시씨. 괜찮아?”

“네? 아, 네.”


손의 떨림이 멈춘 저는 다시 머리를 빗습니다.

팔코씨는 다시 저의 꼬리를 빗겨 주십니다.

제 수첩에 적힌대로라면 오후 9시 32분에는 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긴장돼서 말을 꺼낼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그때까지 진정하면 되겠죠.


“플래시씨.”

“네.”

“나 알고있어. 요즘 고민 있지?”

“네…”


역시 제 슬럼프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팔코씨라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까요…


“혼자서만 끙끙 앓고 있던 거 너무 늦게 눈치채서 미안해. 나한테 얘기할 수 있으면 얘기해도 되니까, 나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


팔코씨는 부드럽게 제 꼬리를 빗어 주시면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응응…”

“요즘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슬럼프가 너무 심한 게 고민이에요…”

“응… 응…?”

“제 일본 더비 성적은 2분 26초 9 였는데 지금 타임은 2분 30초… 일본 더비 이후 출전한 고베 신문배나 재팬컵 모두 우승하지…”

“잠깐, 잠깐 플래시씨!”

“네?”


저는 깜짝 놀라 말을 멈췄습니다.


“고민이 그거였어?”

“네? 반대로 그거 말고 고민이랄께 있나요?”

“에에에에…”


뭔가 실망하신 기색이 역력하신 팔코씨. 대체 무슨 얘기를 기대하셨었던 걸까요…


“좋아 플래시씨. 그럼 이렇게 얘기를 해보자. 나, 플래시씨가 왜 슬럼프에 빠졌는지 알 거 같아.”

“저, 정말인가요?!”

“플래시씨, 레이스에서 달릴 때 무슨 생각 해?”

“네? 그야 당연히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그럼 누구를 위해?”

“그야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과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저를 위해 힘 써주신 트레이너씨를 위해서요?”

“다행이다.”


갑작스레 안심하신 팔코씨.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요?


“그럼 다음! 슬럼프에 빠지고 나서 트레이닝 할 때 호흡이 어때?”

“호흡 말인가요? 잘 안정되지 않는 달까요… 호흡이 잘 돌아오지 않는 달까요…”

“좋아, 그럼 다음!”


팔코씨는 굉장하게도 조금씩 제 슬럼프의 근원에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호흡이 잘 돌아오지 않을 때, 트레이너씨가 옆에 있지 않았어?”

“그야 당연히 옆에 계셨죠. 타임을 여쭤보거나 지시를 듣거나 하러 옆에…”

“옆에 갔지?!”

“네…”

“좋아, 그럼 다음!”


팔코씨는 자신의 추리가 맞아가는 것에 기분이 좋으신 듯 어느새 제 옆에 앉아 얼굴을 마주하고 계십니다.


“트레이너씨와 대화할 때 눈을 쳐다볼 수 있어?”

“네? 그야 당연히…”


어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건 기본인데… 어째서…


“아마 눈을 마주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확실히 해야해 플래시씨!”

“아마도…”

“’아마도’는 안 돼!”

“최근에는 그런 기억이 없는듯 한…”

“좋아, 그럼 다음!”


어… 뭐죠…? 지금 이 취조는…?


“최근 트레이너씨와… 신체 접촉을 한 적은…?”

“그… 오늘 물병을 집으려다… 손이 닿았어요…”


얼굴을 붉히는 팔코씨…


“플래시씨 지금 얼굴이 빨개…”

“네…?”


제가요?


“지금 누가 떠올라…?”

“그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 이름. 어째서죠… 평소라면 당연히 나왔을 이름인데… 지금은 왜 이렇게나 부끄러운 걸까요…


“플래시씨?”

“그야…”

“누구?”

“……”


저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플래시씨. 이제 알겠어…?”

“뭘 말인가요…”

“자신의 마음.”

“제 마음요…?”

“왜 방금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


저는 베개를 껴안아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플래시씨? 지금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 져야해.”

“그, 그게 제 슬럼프와 무슨 관계가 있는거죠?”

“의식하고 있는 거야.”

“의식하고 있다뇨?”

“매일매일 달리면서, 그 사람을 의식하면서 달리기 때문에 집중하지 못 하고 있는거야.”

“……”


그런건가요...


“플래시씨의 마음을 들려줄 수 있어?”

“…… 여기까지 와서 꼭 제 입으로 말해야 하나요… 저도 지금 깨닳은걸요… 팔코씨 때문에…”

“말로 해야만 하는게 있어. 그게 지금이라고 생각해.”

“그런가요…”

“그런거야.”


저는 한숨을 내쉼니다.


“트레이너씨를 좋아한다는 걸… 말이죠…?”

“응.”


저는 베개를 더욱 꽉 끌어안습니다… 저도 제 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트레이너씨를 좋아한다는 그 마음을. 더 이상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둘 수 없었습니다. 


“그럼 앞으로 저는 어떻게 하면 좋나요…”


팔코씨는 저를 가슴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트레이너 씨에게 천천히 어필하는 거야.”

“어떻게요? 저희는 이제 고등부 1학년이고, 트레이너씨는 어른이세요. 저희를 여자로 보지도 않을탠데…”

“그건 어떨까? 시비 선배네 부모님은 트레이너랑 담당 우마무스메 였는대 두 분이서 사랑의 도피를 하면서 결혼 하셨다는대?”

“정말인가요?”

“정말이야. 그리고 만약 플래시씨랑 트레이너씨가 잘 풀리면 슬럼프도 해결될 수 있을거야.”

“그래선 너무 늦어요…”

“아하하…”



=====



그 뒤로 팔코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조금 나눴습니다. 그리고 곧 도래한 취침시간이 되어 둘 다 각자의 침대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팔코씨.”

“나야말로 얘기해줘서 고마웠어 플래시씨.”

“안녕히 주무세요, 팔코씨.”

“잘 자, 플래시씨.”


저는 무드등의 조명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 썼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거군요. 트레이너씨를…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하지만 내일 아침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내일 트레이너씨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내일 트레이너씨와 빨리 뵙기를 바라며…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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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한가지 풀자면


트윙클 시리즈 3년은 설정상 학년이 시니어급이 되도록 설정했음.

예를들어 고등부 2학년인 에이신 플래시는 시니어 클래스가 고등부 2학년이니 주니어급은 중등부 3학년때 데뷔를 했다는 설정.

그러니 중등부 2학년때 독일에서 일본에 왔다는 설정.

그래서 지금 에이신 플래시는 고등부 1학년임.

그럼 여기서 고등부 3학년, 1년이 남게되는데 남는 1년동안은 트레센에서 진로교육을 한다는 설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