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짝 늦어버린 점심을 카페테리아에서 해결하고 트레이닝 룸으로 돌아왔다.


"어..? 뭐야?"


아까 나갈 때 트레이닝 룸의 문을 잠그고 나갔기에, 문을 열려고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그런데 열쇠는 무언가 걸리는 느낌 없이 허무하게 헛돌아, 나를 당혹케 하였다.


"분명 잠궜었던 것 같은데.."


아까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아까 '점심시간 늦었다.'라며 한숨을 쉬면서 걸음을 재촉하며 나가기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문단속은 제대로 하고 나갔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내 트레이닝 룸의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이 있단 말인가.


"...."


열쇠를 다시 빼낸 문고리를 살짝 바라보다가, 이윽고 나는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트레이닝 룸의 풍경은 아까 내가 나갈 때와 같이, 커튼이 쳐지고 전등은 꺼져있어 살짝 어두운 그대로의 풍경...


...인줄 알았으나.


트레이닝 룸 중앙에서 살짝 치우친 곳에 있는 소파. 그 소파 위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


그것도, 아무 말 없이.


놀라서 소리 지를뻔했으나, 이내 그 형상이 내게 익숙한 누군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입에서 튀어나오려던 놀람의 비명은 다시 삼키고, 옆의 전등 스위치만 살포시 눌러 전등을 켰다.


"...무슨 일이야. 파머? 놀랐잖아..."


"...."


형상만 살짝 어렴풋하게 보이던 어둠이 전등에 가시자, 소파에 앉아있는 파머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울었어?"


"..응..."


살짝 고개 들어 답해오는 파머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살짝 메말라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줄게."


나는 그렇게 답하고, 이내 트레이닝 룸 한쪽의 전기포트로 향해 걸음을 옮겨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딸깍-/


탁자 위에 코코아 두 잔이 내려앉으며, 살짝 소리를 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 두 잔은 살짝 달콤한 향을 풍기었지만, 코코아를 앞에 둔 파머의 가라앉은 분위기는 달콤함과 무관하게 떠오르지 못했다.


"옆에 좀 앉을게. 괜찮지?"


"..응."


그 파머의 가라앉은 분위기는 내가 풀어줘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노력하고 있다.


파머가 이런 분위기를 꺼내 오는 사람은 나뿐이고, 그만큼 파머가 나를 믿고 자신을 맡긴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나는 우연히 파머를 담당하게 되었다. 보낸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나는 파머가 종종 우울감과 좌절감을 속으로 삭이는 듯한 모습을 보았었다.


나름의 같잖은 어른의 책임감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트레이너로서 담당마의 컨디션 관리를 한다고 해야할까.


나는 그런 파머의 우울감과 좌절감을 나한테 털어놓길 권했었고, 파머는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천천히 나에게 그것을 쏟아내기 시작했었다.


처음으로 내가 받아들인 파머의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홍수와도 같았다.


듣는 나조차 그 우울감에 젖어 휩쓸릴 뻔했지만, 이내 '나도 듣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파머는 직접 겪으며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주며 버티자, 파머는 점차 자신이 가라앉아있던 부정의 바다에서 빠져나오는 듯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파머는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변했었으니까.


물론, 그 한 번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파머의 우울감을 종종 나눠 들었고, 파머는 그늘진 얼굴보다 밝은 얼굴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파머는 나름의 성과도 거두었다. 메지로의 다른 이들과 비견될 만큼, 아니면 더 뛰어날지 모르는 성과를 레이스에서 거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파머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파머는 성과도 거두고,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자신감을 내보이는 모습도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우울함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요 몇 달간 뜸해졌던 일이 아니던가.


갑작스레 이야기도 없이 찾아와, 그저 내 트레이닝 룸 소파에 앉아있던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


파머는 대답 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숙였다.


"파머...?"


혹시, 나에게 말하기 힘들 정도의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란 말인가. 버티기 힘들어서 찾아왔음에도, 정작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로.


"괜찮아. 다 들어줄 테니까. 나한테 말해줘."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숨기고, 나는 살짝 웃으며 파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듯이 어루만지면서 달래듯이 물었다.


"...."


"파머?"


그러자, 파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젖어든 파머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는, 젖어있다기보단 어슴푸레한 밤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둡고 축축해서, 잘못 발을 헛디디면 파도 속에 삼켜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말해줄래?"


순간 나도 그 눈동자 속에 빠져버려 말을 잃을 뻔했으나, 이윽고 정신을 차리어서 파머를 달래며 물을 수 있었다.


"...."


파머의 입이 살짝 열리려다 닫히고, 닫히고 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입은 이윽고 열렸다가 닫히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그 안에서 말을 토해냈다.


"....트레이너 때문이야."


"...어?"


그 안에서 튀어나온 말은, 어째서인지 모르게 나를 탓하는 말이었다.


그 갑작스러움에, 나는 살짝 신음했다.


파머의 눈동자에서, 아까 생겨나 있던 눈물자국을 따라 다시금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트레이너 때문이라고.. 내가 달리고, 응원받고, 좀 더 밝은 세상에 발을 걸칠 수 있는 건 트레이너 때문이었는데... 이제 트레이너가 떠나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해?"


"...."


나는 파머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제 파머와 내가 같이 보낼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만난 건 어디까지나 트레센의 트레이너와 담당마이기 때문이니까.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서로 헤어지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파머.. 계약만료나 졸업을 생각한 거라면, 너무 걱정하지마. 그 후에도 종종 만날 수 있는 일이니까. 파머가 만나자고 하면, 다른 일은 제쳐두고라도 갈게."


말 그대로 계약이 끝나고 졸업한다고 한들, 그것이 완전한 이별이 아니다. 그냥 평소의 관계가 바뀌고, 겹치던 일상의 공간이 사라질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파머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아?"


이윽고 나는 갑작스레 넘어졌다. 아니, 밀려서 넘어졌다. 다름 아닌 옆에 있던 파머가 나를 쓰러트리려는 듯이 밀어버렸기에, 소파에 앉아 있던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지듯이 몸을 뉘었다.


"..윽..."


다행히도 소파에서 떨어지진 않은 채로, 소파의 팔걸이에 머리를 댄 채로 누운 형상이 되었다.


"너무하잖아... 트레이너 씨는 이미 내 삶에선 완전히 떼놓을 수가 없어졌다고."


나를 밀어 넘어트린 파머는 완전히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방울진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져, 바닥과 소파에 떨어졌다.


처음으로 보는 파머의 표정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우울한 파머의 얼굴과는 다르게, 우울함과 분노가 섞인 듯한 표정.


"트레이너 씨 없이, 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야? 이미 트레이너 씨는 내 태양이랑 다를 바 없어졌는데!"


이윽고 파머는 그렇게 소리 지르며, 소파에 뉘인 내 몸 위를 짓누르듯이 기어왔다.


"..윽...진정해 파머..!"


"진정할 수 없어. 참을 수 없어. 나는 그럴 수밖에 없고, 트레이너 씨는 나한테서 떼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기어온 파머는 내 몸 위를 완전히 덮었다. 파머의 볼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내 볼에 떨어져 흘렀다.


파머가 흘리는 눈물이 마치 내가 흘리는 것처럼, 내 볼을 타고 흘러 눈물의 길을 만들며 아래로 사라져갔다.


"...진정해! 파머!"


가라앉은 분위기로, 토해내는 말로, 기어오는 몸으로 나를 짓눌러오는 파머를 향해서. 나는 진정하라는 말을 하면서, 이내 팔을 뻗어 파머를 밀어내려 했다.


...그랬는데.




"..아?"


"..어..?"


살짝, 파머의 어깨를 향해 밀어내려던 손길이 어긋나, 그 옆으로 향했다.


그 옆으로, 그리고 그 아래로.


그곳에 있던, 파머의 가슴께로.


"읏...?"


뭉클하게 닿은 가슴께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선명하게 감촉을 전해왔다.


"아... 미안해. 파머."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에 놀라, 황급히 손을 떼었다.


"이러려던 게 아니야. 정말로 미안해."


파머를 향한 사과의 말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그렇구나..."


파머는 무언가를 납득한 듯한 말을 흘렸다. 파머의 젖은 눈동자에 무언가의 빛이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그리고.


"..아-?"


"...흐.."


갑작스레 파머의 손이 내 손을 붙잡더니,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뭐, 뭐 하는 거야!"


그 손이 향하는 곳에 놀란 나는 반대로 팔을 움직이며 저항했으나, 향하는 것이 살짝 느려졌을 뿐. 이내 내 손은 아까와 같이 파머의 가슴께에 맞닿았다.


뭉클한 감촉을 전해오는 손의 느낌을 무시하고, 나는 경악한 채로 파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파머는 울면서 또한 웃고 있었으며, 눈물을 흘리며 또한 눈웃음을 짓고있었다.


미소지으며 울음을 토해내던 파머의 입이, 다시금 말을 꺼냈다.


"이렇게 하면, 트레이너 씨랑 이어지면, 그러면 나는..."


"...파머!?"


그런 말을 꺼낸 파머를 향해서, 경악의 신음을 담아 파머의 이름을 불렀다.


무언가, 무언가의 위험한 느낌이 경종을 울렸다.


천천히, 파머의 얼굴이 내려앉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빛을 내는 어두운 눈동자가 나의 눈동자를 향해 다가오고, 검푸른 듯 아닌 듯한 입술이 다가오더니




그리고는 이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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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를 잘 만나서 뽀송따닷하게 트레센 학원을 즐기던 파머가 졸업을 앞두고 점차 우울해 하다가, 트레이너를 붙잡아 연인으로 만들면 앞으로도 뽀송따닷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트레이너를 덮치는 이야기가 꼴릴 것 같지 않냐?


나는 잘 쓰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