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2편


 

응?

 

“미안해, 그것만큼은 무리야.”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사토노가의 아가씨께서 보잘것없는 나에게 고백을 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다이아는 집안, 외모, 명예, 재력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여성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다이아의 고백을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이아의 고백을 받는다면 당장은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주변시선이 나와 다이아를 좋게 보지 않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거절하시죠? 뭐든지 들어주신다면서요.”

다이아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울상이 되었다.

 

 

“나는 너보다 훨씬 가난하고 좋지 못한 사람이야. 학창시절에는 싸움도 많이 했어.”

 

“그게 뭐 어때서요?”

 

“다이아, 너는 날 좋은 사람으로 볼지 몰라도 네 가족들. 특히 부모님께서 나를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고작 그런 이유라면 제가 해결할게요.”

 

다이아는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생각을 접게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런다면 다이아의 고집이 언제까지고 나에게 고백할 테니.

 

 

“다이아, 실은 나 옛날부터 좋아하던 사람이 있어서 그래. 나는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랑 결혼도 하고 싶어. 그래서 너랑은 사귈 수 없어.”

 

 

다이아는 울음을 멈췄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잘 알겠어요.”

 

“이해해줘서 고마워. 기분 좋은 순간에 갑자기 망쳐서 미안, 난 이만 가볼게.”

 

 

“그럼 저도 이만 귀가할게요.”

 

 

다이아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집사에게 데리러 오라고 하려는 거겠지.

 

 

 

 

“신호등이 빨간 불이네.”

 

나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주차돼있던 차 한대를 제외하면 주변은 조용할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무단횡당은 하면 안되지만 집에 빨리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길을 건넜다.

 

 

 

“어?”

 

 

내가 건널 때 길에 주차돼있던 차가 갑자기 전속력으로 나에게 달려 들었다.

 

한 순간이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공중에 떠있었고, 너무나도 큰 고통이 내 몸을 감쌌다.

 

 

 

‘빠그작.’

 

땅에 떨어졌다. 내 팔이 내 눈 앞에서 거꾸로 돌아간 것이 보인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오히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에서 붉은 피가 흐른다. 뜨겁다. 이렇게 죽는 건가? 아직 다이아한테 못해준 게 너무 많은데… 아무나 좀 살려줘….

 

점점 흐려져 가는 시야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다이아였다. 주변을 지나가던 것일까.

 

 

 

 

 

 

 

 

‘띠- 띠- 띠-‘

차가운 침대와 이불, 하얀 천장과 약 냄새. 여긴 병원인가. 난 살았구나…

 

 

살았다는 안도감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내 옆에서 다이아가 침대에 기댄 체 잠을 자고 있었다.

 

“다이아, 네가 날 구해줬구나.”

 

날 살려준 다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들었다. 이번엔 다이아가 날 구해줬구나.

 

“으음… 트레이너님?! 깨어나셨군요!”

내가 깨어난걸 보자마자 다이아가 나를 껴안았다.

 

 

“다이아… 아파…”

 

“죄송해요..”

 

“다이아, 혹시 내가 치였던 차 있잖아.”

 

“제가 트레이너님을 발견했을 땐 이미 도망가고 아무도 없더라고요.”

 

분명 치이고 얼마 안 가서 다이아가 온 것 같았는데?

 

“다이아, 근데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트레이너님을 이렇게 만든 차를 물어보시려고 한 거잖아요? 그건 이미 제가 찾아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응, 고…고마워.”

 

나는 아픈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왠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아직 일어나시면 안돼요.”

 

다이아가 일어나려는 나를 다시 눕혔다.

 

“일단 의사선생님을 모셔올게요. 기다려주세요.”

 

다리가 왠지 가볍다.

 

 

“깨어나셨군요. 기적입니다. 사고가 정말 크게 나셨어요. 받아들이시기 힘드시겠지만, 왼쪽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는 나에게 절망적인 통보를 하고선 자리를 유유히 떠났다. 다리를 잃은 것을 둘째치고 당장은 병원비를 낼 여유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있는 곳은 VIP들이나 쓰는 개인병실이었다. 일반적인 공동병실보다 돈이 배로 깨질 텐데…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트레이너님,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지셨어요.”

 

“괜찮아. 그냥 좀 걱정이 돼서, 병원비를 부담할 여력이 안되거든.”

 

 

“그럼 제가 도와드릴까요?”

 

다이아라면 내 병원비를 용돈으로도 지불할 수 있겠지. 하지만 다이아한테 의지하는 게 맞을까?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올바른 어른의 자세가 아니잖아.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정말 힘드시다면 저에게 한 번쯤은 기대셔도 좋아요. 옛날에 트레이너님을 절 구해주지 않으셨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에요.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저에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속으로 수십 번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이아의 도움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런 한심한 부탁이나 하는 사람이라서 정말 미안해. 한번만 도와줘..”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리고 본인을 너무 폄하하지 말아주세요. 트레이너님은 저의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다이아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다이아의 따스한 품에서 나는 차갑고 비참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다이아는 나의 병간호를 하면서 활동에 차질이 생겼고, 트윙클 시리즈의 은퇴를 선언했다. 수많은 다이아의 팬들과 지인들을 아쉬워 했으나 다이아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트레이너님, 선물이 있어요.”

 

“선물?”

 

다이아가 내게 줄 선물이라는 것은 전동 휠체어였다. 심지어는 나를 위해서 주문제작 한 것이라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미안해, 다이아. 저번부터 계속 받기만 하고…”

 

“아니에요. 제가 트레이너님께 받은 것에 비하면 이런 건 별거 아니에요.”

 

나는 다이아의 도움을 받으며 다이아가 선물해준 휠체어로 몸을 옮겼다.

 

 

“요즘 몸은 좀 어떠신가요?”

 

“덕분에 아주 좋아졌어. 사고 이전보다 더 건강한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나는 일주일 후 퇴원하였다. 아직은 휠체어의 조작이 익숙지 않아서 다이아의 도움을 받아 사고 이전에 살던 집으로 갔다.

 

 

 

 

“나가. 짐 싸서 얼른 집 비워.”

 

“갑자기요?”

 

“총각이 집을 비운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진 알아?”

 

“밀린 집세라면 낼게요. 그리고 갑자기 방을 빼라고 하시면 제가 갈 곳이 없어요.”

 

“그건 총각 사정이고, 애초에 이 건물이 통째로 다른 사람한테 넘어갔어. 나가기 싫다면 같이 철거 당하던가.”

 

 

다리를 잃었을 땐 그게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집까지 잃었네.

 

 

“인생 정말 힘들게 꼬였네…”

 

“트레이너님, 제가 도와드릴까요?”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어차피 당장 갈 곳도 없으시잖아요. 마침 남는 곳이 하나 있어서요.”

 

“이미 많이 도와줬잖아. 지낼 곳 정도는 내가…”

 

“제가 도와드릴 수 있다니까요.”

다이아는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웃는 얼굴에서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른이 학생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도와드릴게요.”

다이아가 강하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더 이상 거절한다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내 직감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잘 부탁할게.”

 

 

 

나는 다이아의 안내에 따라 새롭게 지낼 곳으로 갔다. 내 편의를 위해서인지 트레센 학원과 꽤나 가까운 곳이었다. 심지어는 시설까지 내가 이전에 지내던 곳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좋을 곳이었다.

 

“덕분에 이런 곳에서도 지내보네. 고마워.”

 

“별 말씀을요.”

 

새로운 집은 비밀번호로 잠겨있었다.

 

“비밀번호는 저희가 처음 만난 날이에요.”

 

나는 다이아와 계약한 날을 입력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혹시 기억 안 나신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결혼기념일을 잊은 남자가 이런 기분일까? 비록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 날은 아무런 기념일도 아니지만 외우지 못했다고 문제가 생길지는 상상도 못했는데.

 

“혹시 언제였더라..?”

나는 다이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장난이시죠?”

 

“미안, 정말 모르겠어.”

 

다이아가 앞장서서 문을 열어줬다.

 

 

“비밀번호는 저희가 처음에 만난 몇 년 전의 그 날짜에요. 앞으로는 잊지 말아주세요?”

 

“고마워. 꼭 기억할게.”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편히 쉬세요.”

 

 

나는 다이아를 떠나 보내고 퇴원을 기념하는 의미로 힘든 몸을 끌고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후아, 오랜만에 씻으니까 개운하네.”

 

몇 달만의 샤워를 끝마치고 나왔을 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 누군구가의 시선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옆집인가?”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다이아가 옆집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이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라면 바로 전화를 받던 다이아가 어째서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이아가 왠지 안 받네.”

라고 말하면서 핸드폰을 내려 놓자마자 다이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 하아… 여보세요..? 트레이너님?”

전화 속의 다이아는 무엇 때문인지 숨을 가쁘게 쉬었다.

 

 

“다이아, 혹시 어디 아파?”

 

“아뇨, 괜찮아요. 잠시 운동을 해서 그런가 봐요. 무슨 일이신가요?”

 

“별건 아니고, 집에서 자꾸 누가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린가요. 누가 카메라로 지켜본다던가 할 리가 없잖아요?”

다이아는 모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됐어. 밤에 전화해서 미안해.”

 

속으로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지만 일단은 다이아를 신뢰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다이아가 나에게 해를 끼치는 짓을 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