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지난 여름날 나타났다.


 그것이 일본에서 시작된 것인지, 이곳 중앙에서만 나타난 것인지, 이미 전세계에 퍼져나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과 함께 전국가적인 정전이 발생했고 당국은 이의 원인을 대규모 폭동이라 발표했다는 것이다. 트레센 학원에도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라는 국가의 지침이 내려왔고 이에 따라 학생회는 기자회견 중인 이사장을 대신해 학생들을 각 동에 위치한 대피소로 피난 시킨 뒤 차후 이어질 교사진이나 정부의 대응을 기다렸다.


 그것들이 살아있는 우마무스메를 뜯어먹는 것을 보기 전까진.


 사태 발생 직후 심볼리 루돌프로 부터 '그것'의 분석을 명령받은 아그네스 타키온은 학생들의 증언을 모아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1] 그것에 감염된 인간은 개체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구토, 어지럼증, 환각과 환청등을 호소하며 고열로 인해 24시간 안으로 사망한다. 치사율은 100%에 이르며 현재 알려진 백신 중 치료나 예방은 물론,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사망 직후, 그것에 의해 사망한 인간의 육신은 다시 '소생'한다. 소생한 인간은 이성을 상실하고 광견병과 비슷한 흥분 증상을 보이며, 신체 능력과 공격성이 대폭 상승한다. 또한 청력 기관을 제외한 모든 신경이 퇴행하며 시각과 통각은 거의 상실하고, 청각에 극도로 의존해 작은 소음에도 예민히 반응한다.


[3] 감염의 매개체는 감염자의 타액과 혈액이며, 공기 감염은 확인되지 않았다.


[4] 우마무스메는 그것에 감염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 역시 그것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전염이 퍼진 초기에는 영화나 게임에서 따와 감염자들을 '좀비'라 부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트레이너, 혹은 가족이 감염되는 것을 눈 앞에서 본 학생들의 강한 반발에 그러한 명칭은 곧 사라졌다. 이런 상황 속에도 시니컬한 성격을 유지하고있는 몇몇은 '깨무는 것'이란 이름으로 감염자들을 부르기도 했지만, 현재 트레센 생존자들의 자치를 맡고있는 학생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은 그보다 더 간단명료했다.


'그것'


 그리고 그것이 나타난 날로 부터 113일 후.

 

“‘켄타우로스(Centaur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간도, 우마무스메도 아닌 포악한 괴물들. 그 피는 맹독과 같아 영웅 헤라클레스의 육체마저 썩어 문드려트렸다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청중을 향해 타키온은 물었다.

 

"어떤가? 그것을 칭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도 없지 않은가?"

 

“그것이 정말로... 우마무스메라고?”

 

"의학자로서 명명하길 '켄타우로스 변이 바이러스(C-Virus)'. 이런 복잡한 학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인간을 우마무스메로 만드는 감염체'라고 이해해도 좋네. 그 근력, 속도, 그리고 급격한 열량 소모. 그것이 우마무스메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나? 외형적인 부분에서 좀 차이가 있다는 건 인정하네만."

 

"그냥 좀 차이가 정도가 아니잖아 저건! 어떤 미치광이 과학자가 인간을 우리로 만들려 했다는 건 그래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왜 대체 결과물로 저런 좀비들이 나온건데?"

 

 놀라 되묻는 아마존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대체 누가 바깥에 돌아다니는 저것들을 우마무스메라 생각할 수 있을까? 타키온 본인 역시 그렇기에 지난 백일 동안 갈피조차 잡지 못했던 거 아닌가. 그녀가 사랑하는 과학적 이론들에 대해 설명해봤자 여기 있는 9할 정도는 알아듣지도 못할 터.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좋은 생각이 든 듯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 중 혹시 어릴 때 ‘본격화’로 고생해본 사람 있나?”

 

 그 자리에 모여있던 학생들 중 몇명이 손을 들었다.

 

"아주 좋아.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지. 개체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이지만 우마무스메도 인간의 성장통과 비슷한 것을 겪네. 급격한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신체가 근육통이나 열병 등을 호소하는 건 우마무스메나 인간이나 흔한 일이야. 특히 본격화 시기에 이른 우마무스메의 성장 속도는 인간의 그것과 비교 했을 때 10배 정도에 이르니 성장통도 그만큼 심한 편이라네. 그렇다면 생각해보게. 우리 우마무스메가 아닌, 좀 종차별적인 발언이긴 하네만 나약한 인간이 본격화를 겪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몸이 버티지 못하겠지."

 

"그래. 바로 그거야 기숙사장. 본격화의 부작용을 버틸 수 있는 건 우리 우마무스메가 그만큼 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허나 평범한 인간의 몸이라면 어림도 없어. 바로 신체의 재조직과 열병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 걸세."

 

"그럼 대체 왜 저것들은 아직도 저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거야?"

 

"그게 바로 이 사단이 난 이유지. 이 변이 바이러스가 아예 실패도, 아예 성공도 아닌 '어중간한 성공'만 이뤄낸 걸세. 인간으로서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우마무스메로서 살지도 못하는 '되다만 무언가'로 만들어버린 거지. 참 만든 이의 정신상태가 궁금해지는 물건이야. 그 흔한 임상시험 한번 해보지 않은건가?"

 

 잠잠히 타키온의 설명을 듣고 있던 루돌프는 긴 침묵 끝 물었다.

 

"그렇다면 치료도 가능하다는 건가?"

 

 타키온이 말하는 그것의 정체나 사단의 발단 따위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그녀가 관심 있는 것은 오직 학생들의 생존, 그리고 테이오가 하려던 짓이 옳았냐는 것 뿐이었다.

 

"아니. 불가능해."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치료할 것도 없네 저건. 편의상 바이러스라 이름 붙였지만 차라리 그것은 체력증진제에 가까워. 신체 능력의 향상을 목적에 두고 있다는 점에선 우리가 레이스를 앞두고 마셔대는 녹즙과도 별 차이 없는 거야. 도대체 어째서 이런 실패작이 감염성까지 가지게 됐는진 모르겠네만 이미 한번 감염된 숙주의 치료는 불가능해. 설사 가능하데도 이미 망가진 뇌와 신체장기는 어떻게 되돌릴 수 없어."

 

 루돌프는 안도하는 동시에 혹시라도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올까 두려워한 자신에 더 없는 경멸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심지어는 테이오 본인마저 테이오가 트레이너를 죽였다라 생각했지만 그 이유를 따져보면 그녀가 방아쇠를 당긴 이유는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 잘못된 판단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한 걸로 모자라 트레이너를 죽이고 테이오까지 그렇게 만든 자신을 루돌프는 그날 이후 단 한시도 탓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불가능하다는 건가..."

 

 그렇기에 그녀는 학생들에게 치료제에 대해 확언 했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비로소 오늘 그 답이 나오자 두려움에선 해방됐지만 자신과는 정반대로 어렵사리 눈물을 참는 학생들의 모습에 이런 자신이 더없이 한심하고 역겹게 느껴졌다. 허나 학생회장으로서 그녀는 같잖은 자기혐오 따위에 빠져있을 시간 따위 없었다.

 

"잘 알겠네. 하지만 고작 과학 시간 과제 발표나 하자고 우릴 전부 불러 모은 건 아니겠지?"

 

"물론이고 말고. 과도한 성장이 문제라면 치료는 불가능해도 '억제'는 가능하지."

 

"억제? 본격화 억제제를 말하는 거야?"

 

 아마존의 말에 학생회는 과연이라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지난 기동대 조직 이후 학생회 간부로 받아 들여진 마루젠스키만이 신조어를 처음 듣는 냥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였다.

 

"에? 억제제? 그게 뭐야?"

 

"설마 몰라서 묻는 건가? 앞서 본격화로 고생했다 손든 이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걸세. 본격화를 억눌러주는 약물이라면 이미 몇년도 전부터 시중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네."

 

"그... 그... 다들 어렸을 때 성장통 때문에 아프면 개구리 먹고 반신욕을 하면 낫는 거 아니였어...?"

 

"...쨌든 그것을 조금만 손 본다면 치료는 불가능해도 '예방'은 가능하네."

 

"어째서 다들 아무 말도 없는 거야?!"

 

"그렇다면 일단 억제제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겠군. 본관에 남아있는 물량은 있나?"

 

"다들 어렸을 때 개구리 안먹어봤어...?"

 

"우리에게 닥친 또다른 불행에 대해 말할 때로군. 아쉽게도 여기 본관엔 남아있는 약물이 없네. 애초에 이곳은 트레센이야. 이곳을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은 이미 그런 약물이 필요한 본격화 초기는 한참 전에 지나버렸어. 플라워 군이나 토쇼 군이 개인적으로 지닌 약이라면 또 모를까 그들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고. 회장 생각은 어떤가? 이참에 개구리가 지닌 효능이 우마무스메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보는 것도 난 나쁘지 않네만?"

 

"이 상황에서도 농담이라니 그래도 자네는 잘 버티고 있어 다행인 것 같군.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지 않나?"

 

"나야 항상 회장의 그 끔찍한 말장난에 비하면야 꽤 유머러스하지. 뭐 역시 개구리보단 억제제가 더 연구에 도움이 되지만 말이야. 이 약물은 본격화로 고생하는 10대들 뿐 아니라 나이 등의 이유로 현장에서 은퇴한 중장년층에게도 수요가 커. 나이가 들면 뇌가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는 건 우마무스메도 매한가지니. 일상 생활에서의 사고와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도심지에 위치한 웬만한 약국이라면 다량의 억제제를 갖춰 두는 게 보통이지. 요컨데 '상가'같은데 말일세."

 

"상가..."

 

 상가라는 말이 나오자 루돌프를 포함한 몇몇의 얼굴이 어두운 낯빛으로 변했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나머지가 의아해하자 샤커는 오늘 이른 아침 루돌프에게 보고한 바를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오늘 새벽. 하코다테 쪽과 상가 모두 연락이 두절됐어. 솔직히 말해서 최악의 사태야."

 

"그게 무슨 말인가Yo? 하코다테에서 구조대가 오는 거 아니였나Yo?!"

 

"차라리 국제구호소 쪽은 예상이라도 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무전이 태풍에 관한 것이니깐. 여기도 슬슬 먹구름이 끼고 있는 게 보이겠지만 하필이면 바로 이 타이밍에 태풍이 오고 있어. 이미 기술부 애들 대다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보수 작업에 들어갔고. 하지만 이건 태풍만 지나가면 다 해결될 것들이야. 진짜 문제는 상가 쪽이지. 타키온의 말을 듣자마자 협력을 요청하려 무선을 보내봤지만 여태까지 아무런 답이 없어."

 

“상가가 그것들의 습격이라도 받았단 건가?”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시리우스가 묻자 그녀는 바로 부정하였다.

 

“아니 그렇다면 더 이상해. 제아무리 그것들이라해도 상가처럼 거대한 규모의 생존자 캠프를 하루 아침에 붕괴시킬 순 없어. 최소한 우리한테 구조 요청을 보낼 여유는 있었을거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술부에서 나온 제안이 하나 있어."

 

 샤커는 학생회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를 불렀다.

 

"이제 들어와."

 

"그대는...?"

 

 부스스한 머리결 위로 푹 깊게 눌러 쓴 비니. 그녀는 더 소개할 것도 없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기술부의 나카야마 페스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가 상가에 가겠어."

 

"미안하지만 나카야마, 여기는 회의실이다. 그리고 회의는 서로 의사를 표현함으로서 상대를 설득시키는 행위지. 결론 말고 대체 왜 그러한 결론이 나게 됐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나?"

 

“물론. 이 상황에 대해서라면 충분히 이해했어. 결국 답은 두 가지 중 하나란 거잖아? 상가가 우리한테 신호를 못보내는 거거나, 아니면 안보내는 거거나. 그리고 어느 쪽이든 기술적인 문제가 생겼을 경우가 아주 높지. 그렇다면 사람을 보내는 것도 걸어볼 만한 도박이야 이거."

 

"도박 중독 말기라 해도 실력 하나는 확실해 이 녀석. 그리고 기술부 녀석들 중에 그나마 총 같은 것도 쏠 수 있고."

 

"의료부의 탑으로서 나 역시 샤커와 나카야마의 제안에 찬성하지. 본래 억제제는 전문의의 처방이 없으면 구매하지 못하네만 이럴 때가 아니라면 언제 장롱 속에 쳐박아둔 내 의사 면허를 언제 쓰겠나? 나카야마 자네에게 무한정으로 처방을 허락하겠네. 있는 것 없는 것 모조리 다 가져오게나."

 

"정찰대에서도 찬성하지.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나카야마에게 호위 팀을 붙여주는 것을 제안하겠다. 다른 녀석들도 다 찬성하는 눈치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거냐 회장? 너만 좋다면 지금 바로 자원자를 모으러 가겠다."

 

"이 분위기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다만, 브라이언 경비대의 책임자로서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아. 미안하군. 나도 거부할 이유가 없지. 더이상 의논할 것이 없다면, 먼저 가보겠다."


 마치 딴생각이라도 하듯, 당황해 고개를 끄덕인 브라이언은 그 말을 끝으로 급히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요즘 들어 브라이언 씨가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회의에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게다가 또..."

 

 그녀가 한 밤중 번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소문, 그런 소문이 생존자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하였다.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자신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헌신하던 부회장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는 탄탄했지만 약탈자의 활동 영역이 점차 넓어지며 경비대의 역할이 막중해진 지금, 그 책임자인 브라이언의 언행은 사소한 것이라도 학생들을 불안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들을 달래며, 시리우스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한 마디 뿐이었다.

 

"...그녀도 그녀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

 

 그리고 며칠 전, 그것이 나타난 날로부터 96일 후.


"최근 그쪽에서 낙오된 학생을 발견하고 '약탈자'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졌어. 루돌프는 눈에 보이는 즉시 사살해도 좋다는 허락까지 내렸고."

 

 그것이 설사-

 

"그렇다면 더 꼭꼭 숨겨야겠네. 학생회의 부회장 나으리가 약탈자의 일원과 이러고 있다는 걸 알면 재미 없어지니깐."

 

 지독하기 짝이 없는 배신이라 할 지라도.


"...아니,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어. 이제 그만 귀환해라 로렐. 이 이상은 너무 위험해.”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숙적, 라이벌에 대한.


“어머 브라이언짱 지금 내 걱정 해주는 거야~?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네~ 하지만 말야, 잘 알고 있잖아 브라이언짱. 다른 누구도 아닌 네 부탁이라면...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는 거.“


 그 말 그대로, 맨처음 로렐이 첩자 노릇을 자청했을때 브라이언은 밤새도록 그녀를 뜯어말렸으나 그녀는 능청스런 미소를 흘렸을 뿐 씨끗도 하지 않았다.


“방금 네가 한 말 못 들었나? 정찰대에서조차 시리우스를 빼곤 네 정체에 대해 몰라. 더 이상 약탈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정찰대의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 약탈자들의 존재와 만행에 대해 알게 된 이례 학생회는 이들 사이에 파견할 첩자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하였다. 그 위험성 만큼이나 각별한 주의를 기우린 그들은 첩자의 존재에 대해 아는 것도 자신들 셋으로 한정지었다. 학생회장 루돌프, 정찰대의 시리우스, 그리고 경비대의 대장인 브라이언 자신까지 하여 오직 단 세사람만. 그 만큼이나 이는 위험한 임무였고, 적임자를 선출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브라이언짱도 학생회도 다들 걱정이 너무 많다니깐~ 내가 먼저 셋 말을 엿듣고 이 일에 자원하지 않았으면 영영 첩자도 못 보냈을 걸?"

 

 그때 학생회의 이야기를 엿듣고 스스로 자원한 것이 로렐이었다. 강인한 멘탈, 우수한 신체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상황에서든 태연자약한 그 태도까지. 세 사람이 생각하기에도 로렐 그녀 만큼이나 첩자에 적합한 이는 없었다. 인선에는 객관성을 가져야한다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의식적으로 그녀를 배제하려한 브라이언이 아니었다면 학생회는 그녀가 스스로 찾아오기도 전에 그녀의 이름을 호명했을지도 모른다.

 

"...너 만큼은 이번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경비대의 대장으로서 브라이언은 오락부를 도와 치료실의 '환자'들을 관리하는 임무도 맡고 있었다. 대부분은 과연 이렇게 간호를 이어나가는 것이 의미있는가 싶은 그들 중에서도 단연 최악은 약탈자 무리에서 낙오되어 정찰대에서 발견된 그녀였다. 브라이언도 자세히는 아니지만, 얼핏 정도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소 소심해 존재감이 크지는 않았으나, 책과 독서를 좋아하고 성적이 우수해 누구의 미움조차 사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


'물러 서라! 완전히 이성을 잃었어!!!'


 그랬던 그녀가 짐승과도 같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 망가진 다리를 치료해주려 의료부가 접근하는 중에도 그녀는 묶인 팔다리를 대신해 이빨으로라도 그녀들을 물어 뜯으러 안간 힘을 썼다. 처음으로 그녀를 목격한 브라이언은 그것이 우마무스메에까지 퍼진 최악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지만, 그녀의 검진을 맡은 타키온은 그것을 부정하고 최악보다도 더 끔직한 분석을 내놓았다.


'발열은 전혀 없고 어떤 감염의 증상도 나타나지 않아. 대신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하네. 그것이 아니라... 분명 우마무스메가 고의적으로 낸 온갖 상처들이.'


 이것이 약탈자들이 자신들의 쪽수를 늘리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다른 생존자 그룹을 약탈해 식량과 같은 자원을 챙기고, 게 중 일부 학생들을 골라 '재교육'에 들어갔다. 로렐이 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 재교육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밀실에서 진행되는데, 그 상세한 과정을 들은 브라이언은 그날 그 좋아하던 고기 반찬이 나와도 밥 한 점 들 수 없었다.


"누구보다 네가 잘 알고있지 않냐. 그 녀석들은 완전 미쳤어."


"맞아. 그리고 트레센에서 개네들 정도로 미친 애가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미친 대상은 조금 다르지만 말이야."


 방독면을 벗고 윙크를 보내오는 그녀에 브라이언은 더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오직 이 말 밖에는.


"헤에~? 또 그 말이야? 브라이언짱이 날 이렇게 걱정해주는 건 좋지만 매번이러면 나도 부담-"


 그것이 설사-


"학생회에서 널 제적하기로 했다."


 지독하기 짝이 없는 배신이라 할 지라도.


 예상을 벗어난 그 한마디의 충격 때문일까, 벽 너머로 서있는 그녀에겐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정찰대 중 일부가 네가 약탈자에 섞여있는 걸 목격했다. 학생회는... 네 안전을 위해, 네가 무리에서 이탈해 배신했다라 발표했고."


 아니다.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변명이다. 네 안전 따위라는 것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변명. 이는 결국 임무가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학생회에서 벌인 꼬리자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난 며칠동안 브라이언도 시리우스와 루돌프를 불러놓고 제발 로렐의 귀환을 허락해달라 애원한 것 아닌가.


"그러니... 제발... 제발 부탁이다 로렐... 임무 따윈 상관없으니깐... 제발 귀환해라..."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이제 로렐은 배신자이자 공공의 적으로서 제적부에 오를 것이다. 이는 그러기 전 마지막 기회다. 브라이언 스스로가 이 지독한 배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마지막 기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줄테니..."


 끝내 무릎까지 꿇고 애원하며 자신에게 매달리는 브라이언에 로렐은 침묵을 깼다. 그것이 자신의 부탁에 대한 수락이라고,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자신을 배신한 자신에 대한 힐난이기를 브라이언은 간절히 빌었다.


"아니."


 그런데 너는 어째서-


"브라이언 짱은 그런 말 같은 거 안해."


 언제나와 같이 심술궂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걸까.





 본 작품의 장르는 로맨스입니다. 아무튼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