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의 이야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겨우 중앙 트레센으로 올 수 있었던 트레이너.

어린시절의 오락은 골동품 게임기와 무료로 볼 수 있던 tv 채널에서 중계하는 중상경기들이었다.

특히나 그 마장에서의 드라마들은 가난하다고 놀림받던 초등학교, 친구 없이 공부만 하던 중학교, 알바도 겸하며 툭하면 코피를 쏟던 고등학교, 도합 12년의 학창시절을 버틴 유일한 낙이었다.

이후 자격증까지 따내고 마침내 꿈을 이루러 온 것이다.

그가 지닌 어릴적 칙칙한 추억들 때문인지 더더욱 그들의 청춘 드라마가 부럽기도 했고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했다.

그러면서도 교육자임을 잊지 않고 부푼마음을 진정시키며 가지고 열심히 팀원을 꾸렸다.

그렇게 꾸린 그의 첫 팀이었는데 라인업이 이상해졌다.

아그네스 디지털, 다이이치 루비, 사토노 다이아몬드, 파인 모션.

팀 단위로 훈련을 하게되면 컨테이너 박스로 된 팀 룸을 하나 배정 받는다.

그 컨테이너가 그녀들의 트윙클이 끝날 무렵엔 조립식 주택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학교 부지니까 아담한게 좋겠죠?"


라는 다이아의 말에 따라 2층짜리 펜션 비주얼의 건물 하나가 만들어졌다.

지금 그가 사는 집보다 방도 많고 상태가 좋았다.

학원의 허가는 받았다고 하지만 해도 되는 일인가 싶었다.



루비의 집사가 따라주는 홍차와 파인이 가져온 디저트가 당연해진 네 명 사이에서 그 혼자 끝까지 적응을 못 했다.

서로 금전감각이 너무도 달랐다.

물건을 함부로 다룬다거나 아끼질 않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단위부터가 천지차이였다.

충동적 구매일지라도 금액이 금액이라서 오히려 과감한 투자라고 납득할 것 같았다.

그녀들의 몸에 밴 태도와 사고방식도 마찬가지여서 트레이너가 배려받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나마 디지털하고 말이 조금 통하나 싶었지만 그녀가 대충 던져 놓던 가방, 종종 꺼내 쓰던 만년필,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안 쓰던 코트, 막 다루던 물건들이 서민이라서 알 수 없었던 브랜드들이었단 사실을 깨닫고는 한 차례 머리를 쮜어싸맨 적도 있었다.

그에게 에르메스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고 몽블랑은 상점가 빵집에서 신메뉴로 내놓았던 과자일 뿐이었다.

교육자로서도, 어른으로서도 그녀들 앞에선 작아질 수 밖에 없었다.

배려를 해주는 것이 더더욱 가슴이 아팠고 그녀들이 벌이는 일들의 규모 때문에 머리또한 자주 아팠다.

한 번은 파인에게 어릴 때 자주 갔던 라멘집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값싸고 양이 많아서 그나마 가족끼리 할 수 있는 외식장소였다.

얼마 후 가게를 다시 찾아가자 내부 공사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건물주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사장님께 들을 수 있었다.

그 바뀐 건물주가 정체는 사실은 파인 모션의 입에서 들을 수 있었다.

맘에 들어서 건물 채로 샀다는 말에 sp분들께 눈을 돌렸지만 그녀들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 중앙 트레센엔 잘 사는 집 아가씨들이 많다는 건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단지, 하필이면,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교내에서도 규격외의 학생들을 여럿이나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음 팀원을 새로 받아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고 있다.

일단 지금은 그저 버틸 뿐이다.

병실에서 버티고 있는 아버지처럼, 나와 같이 대출 빚을 갚으려 일하고 계실 어머니처럼, 어릴 때 놀려대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던 것 처럼, 그에게 버티는 것은 익숙했다.

다만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 혼자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제일 큰 문제였다.




[다이이치 루비의 이야기]

원래는 오롯이 진지하게, 앞만 보고 달려나갈 각오를 했었다.

일족에 걸맞는 달리기를, 승리를, 손에 담기 위해 그것을 따라올 수 있는 트레이너를 원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처음 봤을 때부터 성실한 모습과 반반한 얼굴에 호감이 있었다.

거뭍한 피부색이 조금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순박하단 이미지에 가까웠다.

가난이 몸에 밴 것인지 돈 때문에 아둥바둥하는 것도 꽤 귀엽다면 귀여웠다. 

그래서 가끔씩 놀려주다보니 점점 재미가 붙었다.

이대로 둘이서 가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 다른 아이들을 막아보려했지만 그럴 새도 없이 사토노의 금지옥엽과 아일랜드의 왕녀가 팀에 들어왔다.

물론 그는 담당이 늘어 좋아했다.

이제야 팀 다워졌다고 기뻐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웠다.

그가 좋아하니 결과적으론 잘 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들이 나와 같은 골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1착은 넘길 수 없다.


아버님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의 창백한 표정에 가슴이 조여왔다.

애써 다른 팀원들 앞에선 괜찮은 척을 했다.

우리가 학생이라도 그정도는 알 수 있다.

합숙 둘째날 밤, 빚 때문에 몰래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으며 굽신거리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는 그의 어깨가 너무도 애처로웠다.

클래식 중반이었지만 그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정도로 그의 뒷모습은 초라하면서 아련했다.

여자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뭉클함이 있었다.

그 짐을 어떻게든 덜어주고 싶었고 품어주고 싶었다.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지만 그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겉으로 보이질 않으니 더 걱정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직접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게 눈높이를 맞추며 그는,


"그래도 역시 루비아가씨 밖에 없네요."


하곤 웃어보였다.

평소엔 그냥 루비라고 부르면서 이럴 때만...


어서 트윙클이 끝났으면 한다.

트윙클의 끝이 내가 게이트에서 뛰쳐나갈 순간이다.

당신이란 결승점에 도착하는 건 나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1착은 넘길 수 없다.




[사토노 다이아몬드의 이야기]

상당히 일을 잘하는 사람 같았다.

그룹 비서실에서 종종 보던 실장님들처럼 날이 선 느낌은 없었지만 능력은 비슷한 것 같았다.

오히려 그 부분이 좋았다.

능력있으면서 상냥한 느낌이 딱 내 취향이었다.

나나 다른 팀원들과 달리 금전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힘든 삶은 보내고 자란 것이 느껴졌다.

우리의 돈 씀씀이에 놀라던 것도 있었지만 물건을 쓰는 것 외에도 일처리 또한 낭비가 없었다.

그는 우리를 대할 때면 섬세하면서도 믿음직스러웠고 내용 또한 군더더기가 없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고 일을 잘 하는 사람도 많지만 열심히 잘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성품과 능력이 둘 다 필요한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합격점이었다.

출신배경은 자잘한 것으로 생각해도 될 인재였다.

아버님이 쓰러졌단 소식에 힘들어했지만 우리 앞에선 내색을 안 하려 했다.

급한 불은 껐다고 말하면서 정작 빚을 내서 입원을 했단 사실은 한참을 숨겼다.


"학생은 자신의 미래와 장래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괜히 이런 아저씨 지갑사정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나 이렇게 보여도 어른이라고?"


하면서 그는 웃음을 지었다.

그에 대해 알아봤을 때, 그는 절대 웃을 상황이 아니었었다.

지금의 빚과 그와 가족들의 재정 상태를 생각하면 당장 앞길이 어두운 상황이었다.

어머님도 일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난 문득 우리가 쓰고 있는 컨테이너에 눈이 갔다.

이곳에서 제일 오래 있는 건 트레이너였다.

적어도 이곳에서라도 아늑함을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그가 내 능력을 꽃피워줬으니 이번엔 내가 그의 능력을 피워줄 것이다.

그리고 둘이 함께 같은 결승점을 바라본다면 행복할 것이다.

다만 숨기면서까지 걱정을 끼친 건 갚아주고 싶으니까 대부업체 자체를 사버린 건 비밀로 할 것이다.

나중에 알려주거나, 혹은 다른 곳에 쓸 수 있을지도?




[파인 모션의 이야기]

원래는 샤커가 있는 팀에 들어가려 했었다.

그러나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친구의 연애를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후에 그쪽에서 권유해주긴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샤커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은 남자라서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은 들었다.

좀 더 고민해볼 겸, 마침 신메뉴가 나왔다고 한 라멘집에 갔었다.

그곳에서 트레이너를 처음 만났다.

빨리 먹으면서도 깔끔하게, 가끔 데여서 움찔하면서도 꿋꿋하게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그의 팀에 들어가게된 것은 특별할게 없었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고 sp들하고도 무난하게 지내는 것이 꽤 좋은 사람 같았다.

이후로 그와 종종 라멘을 같이 먹으러 다녔다.

라멘을 먹을 때 그의 버릇을 다른 팀원들은 모를 것이다.

그는 라멘을 면을 조금씩 집어 먹는다.

그러나 느긋하게 먹는 것은 아니다. 

처음 가는 가게라면 꼭 한 번은 급하게 첫 젓가락을 떼다가 뜨거워서 놀라곤 한다.

조금씩 빠르게, 그렇게 먹는 버릇이 든 것은 어릴 적부터라고 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외식이 라멘이었고 그는 그걸 또 아껴먹으려 했다고 한다.


"근데 또 냄새를 맡으면 그럴 수가 없어서 결국 느긋하게 먹질 못하더라고, 매번 생각하면서 매번 그런다니까."


그는 시골 소년처럼 순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점점 더 그를 알고 싶어졌다.

그와 함께 더 많은 가게를 돌아다니며 그걸 빌미로 짧게나마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가졌다.

못해도 주에 한 번은 같이 나가 내가 고른 가게로 향했다.

그에게 더 맛있는 라멘들을 맛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먼저 가고 싶다는 가게가 있었다.

맛은 무난했고 풍성하다는 느낌보단 실속이 있다는 느낌의 가게였다.

가난한 가족이 외식장소로 고르기에 딱 좋다는 느낌이었다.


"아저씨, 근데 진짜 가게 닫아요?"

"너도 이제 비싼거 먹으러 돌아다닐 수 있잖아? 굳이 이런 곳을, 가르치는 학생까지 데리고 와야겠냐?"

"맛있으니까 오죠."


가게 사장님과는 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 같았다.

아, 여기가 '그' 가게구나.


"건물주가 나가라는데 이참에 나도 은퇴해야지?"

"아저씨 같은 장인이 벌써 은퇴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아요?"

"그렇게 아부해도 이제 달걀 서비스는 없다. 너도 돈 버니까 돈 내고 추가해."


그는 앞에선 웃었지만 돌아가는 길엔 꽤나 아쉬운 것 같았다.

만약 이 가게가 계속 남아있을 수 있다면 그의 행복 하나를 지켜주는 것이 될까?




[디지털의 이야기]

이 팀에 오고나서 굉장히 행복했지만 지금은 다소 미묘하다.

어떻게 이럴 로열 클래스들을 한 팀에 모아놓을 수 있었는지 트레이너의 수완에 무릎을 꿇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 처음엔 그랬다.

지금은 그냥 무섭다.

많이 살벌하다.

그걸 트레이너 혼자 눈치채지 못 하는 것 같아 더더욱 두렵다.

트레이너는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못 내리는 걸까?

전형적인 그거다.

인터뷰에서 미남 배우들이 본인의 얼굴에 대한 자각이 없어서 외모가 컴플렉스라고 말하는 그런 거.

장담하건데 이사장님이나 타즈나씨의 반응도 조금 미묘한 것이 아마 그분들도 같은 상황일 것이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트레이너의 멘탈도 좋은 상황이 아니다.

우리들의 씀씀이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다.

정확히는 나를 제외한 아가씨들의 그것이지만.

서로 기싸움이 한창이라 물러서질 않는다.

트레이너가 힘들어하는게 보이니까 자제하다보니 어느새 트레이너는 가끔 몰래 다가와 내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우마무스메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 훈련도 잊어버릴 정도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한 번은 면전에 대고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역시 디지털이랑 있는게 편해~"


하면서 풀어진 미소를 짓는다.

그걸 보여주면 또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슬슬 우리의 트윙클 시즌이 끝나가고 있다.

트레이너의 아버지는 아직 우리 병원에 있다.

당시엔 생각할 겨를이 없어 일단 이쪽으로 모셔 왔지만, 결과적으론 잘한 선택이 되었다.

우리의 팀룸은 수면아래에서 권모술수가 넘쳐 흐르는 판국이라 이곳에서나마 약자를 보호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쓰러진 사람을 인질로 삼을 생각들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긴 납치를 생각하는 분도 계신데 인질은 우스운걸지도 모른다.

앞에선 보여줄 수 없는 사악한 웃음도 그나름의 매력들이라지만 그래도 공사구분은 해야한다.

훌륭한 팬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그래도 만약 이대로 그녀들에게서 멀어져 트레이너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면,

그땐 나도 꿈에서 깰 각오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또레나의 외모는 대충 신인시절의 원빈을 생각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