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보에 잘 웃던 한 아이가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다.


한쪽 눈을 가릴 만큼 넘어온 흘러내린 흑갈색의 머리칼이 아름답던 우마무스메.


잔뜩 술을 마신체 골목에 앉아 비루하게 취해있던 트레이너는 굳은 머리로 천천히 눈앞의 여성을 떠올렸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즐거움을 나눴던 우마무스메, 항상 세상 모든 불행이 자신의 탓이라며 슬퍼하던 우마무스메였다.


"라이스.."


"너무 늦게 맞췄네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윽하게 바라보는 사랑이 넘치는 시선에 트레이너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밝고 아름다워서, 밑바닥을 뒹구는 자신은 결코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트레이너 였던 남성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라이스 샤워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감정일지 중요치 않았다. 자신은 그저 라이스 샤워가 자신같은 범부와 얽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오라버니, 라이스는 사실 다 알아버렸어."


말랑하고 따스한 손길이 차디차게 얼어붙은 트레이너의 뺨에 닿았다. 그녀의 열기가 굳은 얼굴을 서서히 녹여주며 감정을 나눠주었다.


"리그.. 브레이커라고 부르더라, 라이스는 트레센을 졸업하고 미움에서 벗어났지만 오라버니는 계속 미움받는 삶을 살고 있었구나."


"아니, 괜찮아.. 그런 시선 정도는."


라이스 샤워의 상냥함을 거부하며 트레이너는 그녀의 손을 밀어냈다.


"이건 내 선택이야, 너는.. 너라도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난 만족해."


트레이너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다 다시 한번 나자빠졌다. 바지에 흙먼지가 달라붙어 더욱이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유독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혈액이 돌며 트레이너의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라이스에 대한 나쁜 험담을 했던 트레이너를 혼내줬다가 징계 당했다면서..."


"그건 당연한거야.. 너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험담을 하니까..."


트레이너는 풀린 눈으로 라이스 샤워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성숙하여 어리숙한과 앳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랑이 넘치고 애교 넘치는 시선과 한쪽 눈을 가릴 만큼 흘러내린 머리칼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라이스 샤워가 서있었다.


"감봉되고 이혼까지 당했다고.. 정말 불행했구나."


"넌.. 라이스, 너는 나보다 나에 대한 걸 잘 알고 있구나."


라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즈나 씨가 알려줬으니까, 그런데 오라버니."


"응?"


"라이스가 떠나고, 라이스 때문에 그 만큼이나 불행해졌으면서 왜 나를 미워하지 않은 거야?"


트레이너의 시선이 핑 돌더니 조금 정신을 차리에 되었다. 뒷통수가 당겨지는 압력과 함께 트레이너는 제정신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스 샤워는 울고 있었다. 예전처럼, 부르봉을 꺾고 미움 받은 것 처럼, 메지로 맥퀸을 꺾고 미움 받은 것 처럼 그녀는 한 없이 흐르는 굵은 눈물 방울을 갸름한 턱으로 흘려내고 있었다.


"그야, 넌 내 최고의 파트너니까."


"정말, 정말 그것 뿐이었어?"


트레이너는 옷 안쪽을 뒤적이며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방금전에 넘어지며 꾸겨진 담배갑안에는 반으로 접힌 돗대 가 찢어진 옆구리로 담배잎을 흘리며 처참한 몰골로 있을 뿐이었다.


"후우... 사실 네가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힘들어해도 슬퍼해도 계속 꿋꿋이 나아가는 모습에 반했던 걸지도 몰라.. 나도 그럴 줄 알았지만 결국 범부였던 거지..."


"오라버니.. 여기 추우니까 일단 라이스의 집으로 가자."


무언가 확신에 찬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스는 트레이너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팔에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며 라이스 샤워는 말없이 쓰러진 트레이너를 부축하며 자신의 집으로 향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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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로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두통을 겪으며 눈을 뜬 트레이너의 눈앞에는 침대 위에 앉아 몸을 돌리고 있던 라이스 샤워가 먼저 보였다.


"아, 오라버니 눈 떴구나? 저녁 준비 해놨으니까 먼저 씻어."


"응."


라이스 샤워가 트레이너를 '오라버니'라고 부르게 될 즈음, 심심하면 놀러와 숙직실에서 자고가던 과거처럼 그녀의 말 한마디에 익숙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난 트레이너는 라이스의 부축을 받으며 샤워실에 들어갔다.


"집 좋네, 잘 사나보네."


"응, 라이스 그림책 작가 됐거든!"


"나도 초판으로 가지고 있어.. 기쁘더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응!"


아까의 시선과는 조금 다른 탁함을 느꼈지만 트레이너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으며 증기가 가득한 욕탕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몸을 씻으며 술기운을 벗어난 트레이너는 이제와서 자신의 전담 우마무스메의 집에 무례하게 들어왔다는 것에 부끄러운 행동을 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옥,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넓은 욕탕에 혼자 몸을 담구며 트레이너는 감상에 젖었다. 라이스가 달리다 넘어져서 울던 것, 수영하다 다리에 쥐가 나서 허우적 대던 기억, 라이스의 아름다운 미소를 봤던 기억.


드르륵


그리고 기억속에 잠겨 있던 트레이너의 시선에는 새하얗고 농익은 맨살을 드러낸 라이스 샤워가 서있었다. 흑갈색의 꼬리를 살랑거리며 쭈뼛거리는 표정은 예전 라이스 샤워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 맺힌 라이스 샤워는 이미 훌륭하게 성장한 성숙한 여성의 그것과도 같았다.


도통한 입술을 우물거리며 서서히 다가오는 라이스 샤워의 발걸음에 맞춰 그녀의 성장한 가슴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순간 시선을 둘리며 라이스 샤워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라이스 샤워는 당연하다는 듯이 욕탕 안에 들어와 트레이너의 앞에 마주 앉았다.


"오라버니, 파란 장미.. 만드는 방법 알아?"


"응?"


"파란 장미는 있잖아? 자연적으로 만들 수 없는 거래.. 유전적으로 재조합을 하거나."


"하거나?"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트레이너의 팔에 맞닿는 말랑한 감촉 이것은 분명 라이스 샤워의 농익은 열매와도 같은 마유통 이었다.


"줄기를 통해 외부의 색을 받아드리는거래.. 라이스의 말 알아들어?"


"라이스?"


천천히 트레이너의 몸에 똬리를 트는 뱀처럼 라이스 샤워는 몸을 일으키며 트레이너를 끌어안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트레이너의 색으로 라이스의 안을 채워줘♥"


"라이스?"


"쭉, 이 순간 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절대 놓치지 않을 거니까. 오라버니♥"


"잠.."


트레이너의 입에 손가락을 얹으며 라이스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라이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말 하지 말고 라이스가 원하는 걸 하게 해줘."


뾰족한 송곳니가 트레이너의 목덜미에 걸리며 라이스 샤워의 거친 숨결이 뜨겁게 느껴졌다.


"아, 아아.. 라이스는 정말 나쁜여자야.. 오라버니가 이혼 했다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 너무 기뻤어.. 드디어 몇 년동안 손꼽아 기다려왔던 라이스의 차례구나 하고."


라이스 샤워의 꼬리가 트레이너의 발목을 감아 당기고, 음흉한 손길이 트레이너의 복부를 터치하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열심히 기도했어, 라이스의 불행을 짊어진 가여운 오라버니가 라이스의 것이 되기를... 오라버니가 라이스의 불행을 안아줬으니 이번에는 라이스가 오라버니의 불행을 안을 수 있게 해달라고."


라이스 샤워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슬프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앓이가 얼마나 심했을지, 자신의 일 마저도 라이스는 스스로 불행이라 생각하며 몇 년을 살았다는 것을 알자 트레이너의 가슴이 미어져왔다.


말 없이 라이스 샤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품에 거뒀다.


"응?"


"나같은 변변찮은 트레이너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냐, 라이스에게는 오라버니가 행복의 전부인걸?"


"지금도?"


라이스 샤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음도 감정도 기운지 오래였다.


트레이너는 욕탕에서 함께 일어나 라이스 샤워의 턱을 잡아 기울이며 입술을 맞췄다. 끈적하고 미끈한 타액이 얽히며 두 사람은 눈을 지긋이 감았다.


말랑한 가슴 너머로 느껴지는 터질듯한 심장의 고동을 체온과 함께 나누면서 트레이너는 라이스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오라버니.. 굉장히 딱딱하고 거칠게 뛰고있어."


"라이스가 그만큼 예뻐 보여서 그런거야."


두 사람은 계속해서 입술을 짧고 길게 맞추며 몸을 씼었다. 학생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성숙한 라이스의 봉긋해진 마유통을 가볍게 쥐어 만지고 다리 사이에 허벅지를 비비면서 그녀와 육체적인 감각을 느껴갔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는 듯이 서로의 몸을 닦아주며 배시시 웃다가도 다시 한 번 입술을 포개며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침대 위에 올라와 서로의 몸을 정성껏 어루만졌다.


"오라버니.. 정말 사랑해."


조신하게 모으고 있던 다리를 천천히 벌리며 라이스는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는 트레이너를 받아드렸다. 굵고 뜨거운 것이 안을 휘젓는 통증에 허리가 떨려왔지만 서서히 올라오는 열기와 쾌락에 젖어 헐떡이기 시작한 라이스 샤워의 손에 깍지를 끼며 트레이너를 그녀와 맞부딪히며 서서히 속도를 높히며 육체와 정신의 교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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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샤워를 끌어안을 횟수가 두 자리가 넘어갈 즈음, 가슴에 통증마저 느껴질 정도의 하룻밤이 지나가고 트레이너와 라이스 샤워는 헝클어지고 땀 범벅이 되어 침대 위에서 멍하게 누워있었다.


이미 밤은 샜고, 숙취에 허리 통증까지 느껴지는 하루였지만 트레이너는 술에 쩔어 비관하며 살던 것과는 사뭇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차피 늦었지만 출근을 하려는 트레이너의 손가락을 아기처럼 살며시 쥔 라이스 샤워는 이불로 몸을 조신하게 가리며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다시 돌아올거지?"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과 떨리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그래, 이 참에 결혼날짜도 정할까?"


라이스 샤워의 귀가 팔랑거렸다.


"정말?! 라이스는 교회에서 해보고 싶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이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은 라이스 샤워인데.'


쓴웃음을 지으며 라이스 샤워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트레이너는 기지개를 폈다.


직장에 가봐야 어차피 미움받는 입장이고 이미 동년배 와는 척을 지게 되었지만 트레이너는 이제 새로운 돌아갈 장소를 위해 그런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일을 해야할 의무가 생겼다.





왓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