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풍기위원장, 뱀부 메모리. 이름이 이게 맞나? 오늘도 죽도를 하나 꼬나잡고 교문 앞에 서서 복장부터 풍기를 어지럽힐 생각 만만인 우마무스메들을 족치고 있다. 트레센 학원이 뾰이촌이라는 음해를 듣는 것은 모두 흐트러진 풍기 탓이고, 그건 사실상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그녀의 눈과 손을 움직인다. 다행히 오늘 등교하는 학생들 중에서는 풍기를 문란하게 할 의도를 가진 우마무스메가 없는 듯 하여 그녀는 안심하고 있다.


“모두 훌륭함다.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교문 인사는 마치고ㅡ”


“기다려! 잠깐만! 뱀부 선배!”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는 금발 우마무스메, 뱀부의 룸메이트 골드 시티다. 분명 아침에 깨우고 나왔는데 어째서 지금에서야 도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각은 마음의 흐트러짐이요, 마음의 흐트러짐은 풍기 위반이다.


“갈! 골드 시티 양! 제대로 정신 차리는 검다!”


“아하하, 미안해요. 분명 5분만 더 잔다고 했는데......”


귀신 풍기위원장 역시 한 명의 꿈 많은 우마무스메 소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시티의 얼굴을 보면 도저히 모질게 굴 수가 없다. 너무 무르지 않냐는 지적을 받아도 시티를 용서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콧잔등을 문지르며 통 크게 교문을 열어준다.


“어쩔 수 없는 아이인 검다! 오늘은 봐주는 검다!”


“아핫, 고마워요, 뱀부 선배! 그럼 이만!”


헐레벌떡 뛰어들어가는 골드 시티의 주머니에서 종이곽 하나가 떨어졌다. 여전히 덤벙이인 검다, 아빠미소를 지으며 유실물을 집어든 뱀부 메모리의 표정이 싹 굳어버린다. 수상할 정도로 소수점 아래 숫자가 낮은, 초초박형 따위 글자가 느낌표 세 개와 함께 대문짝만하게 적힌 상자. 뭔가 바닥에 떨어진 소리에 돌아본 시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골드 시티!”


“뱀부 선배,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이 죽도가 믿게 만들려면 제대로 말해야 할 검다......”


죽도 끝을 까딱거려 어깨에 짝짝 부딪히면서, 뱀부가 으르렁거렸다. 한참을 두뇌를 풀가동하는지 굳어서 있던 시티가 양 손 검지를 수줍게 맞부딪혔다.


“그건, 인자 커버잖아요.”


“인자 커버임다.”


“저는 인자봉이 없으니 그걸 쓸 일이 없죠?”


“없슴다.”


“그러면, 제가 그걸 들고 있어도 풍기 위반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요?”


“......확실히 소지만으로는 풍기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슴다.”


“게다가 전 그걸 사용할 수 없잖아요. 교내에서 사용한다면 풍기 위반이겠지만, 사용할 수 없으니 풍기 위반의 가능성도 없는 것 아닐까요?”


뱀부 메모리는 사고를 촉진시키듯 죽도를 까딱까딱 정수리에 부딪혔다. 돌부처같은 표정 아래 그녀의 마음은 지금도 염라와 같은 공명정대함으로 사안의 경중과 유무죄를 따지고 있었다. 피식, 그녀의 입꼬리가 골드 시티를 비웃듯 올라갔다.


“물론 시티 양 혼자라면 그 말이 맞는 검다. 하지만 분명 시티 양의 트레이너는 남성인 검다.”


“그, 그치만 제 트레이너가 저걸 쓸 리가 없잖아요! 저, 저도 그런 녀석 따위 아무래도 좋고.”


‘거짓말쟁이가......’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알아채지 못하는 바보가 세상에 있겠냐고 뱀부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미 갈 데까지 갔다고 해도 믿을 놈들, 풍기를 어지럽힐 것이 틀림 없다. 그걸 거짓말로 무마하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았슴다.”


하지만 교칙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내용은 없다. 거짓말은 나쁜 행동이고,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것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풍기위반은 아니다. 사적으로 뱀부 메모리의 기분이 언짢든 말든, 공적으로는 교칙만을 적용하면 그만이다. 공과 사의 철저한 구분 역시도, 귀신 풍기위원장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인 것이다.


“통과임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는 검다.”


상자를 되돌려받아 콧노래까지 부르며 돌아가는 골드 시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뱀부 메모리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공명정대한 판단은 당사자 모두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사심없이 잘 판단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면서, 그녀는 슬슬 교실을 향해 걸어가며 하품을 했다.


“오후의 풍기점검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하겠슴다.”


다행히 교칙에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금지’라는 부분은 없다. 양심에 조금 찔릴 수는 있어도 풍기문란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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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난 오후시간, 풍기위원의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레이너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이 시간대야말로, 학원의 풍기가 그야말로 박살나는 때다. 현역 애슬리트인 우마무스메와 애슬리트에 준하는 훈련을 입증받은 트레이너, 한창 때의 남녀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만을 바라보며 절차탁마한다. 뾰이 각이 날카롭다 못해 일직선이 될 지경이다. 실제로 교내뾰이가 하루에도 여러번 적발되는 만큼 - 편견은 아니지만 주로 모브라 불리는 우마무스메들이 적발된다 - 뱀부 메모리는 신경이 날카로웠다.


“그야말로 군침이 싹 도는 상황임다.”


현행범으로 적발된, 당황하여 서로의 옷을 챙겨 입는 우마무스메와 담당 트레이너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면서 뱀부 메모리가 중얼거렸다. 그녀라고 좋아서 신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 역시 꿈 많고 사랑 많은 한 명의 우마무스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풍기는 레이스에, 레이스는 꿈에 직결되는 것이니 소중한 꿈을 위해 악역을 자처할 뿐이다.


“악역을 자처하느니만큼, 불필요한 마찰만큼은 피하고 싶은 검다만......”


벌써부터 한 트레이너실에서 거칠게 쿵쿵대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문 앞의 명패를 보아하니 메지로 라모누의 트레이너실이다.


“후훗, 당신, 꽤 하네? 내 움직임에 이렇게까지 따라올 수 있다니.”


“그야, 그야, 사랑을 위한 일, 이니까.”


“바보같긴, 사랑은 터프에서, 말하는, 것일, 진대......윽! 흐윽!”


얼핏 듣기에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대화지만 묘하게 말하는 템포가 리드미컬하다. 게다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숨소리가 거칠다. 중간중간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나오는 듯한 목소리까지, 뱀부 메모리의 센서가 이상상황을 감지한다. 하지만,


“크윽......”


뱀부 메모리는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들어올린 오른손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번에도 문 열었더니 둘이 트레드밀에서 뛰고 있었던 검다...... 나만 이상한 녀석 취급받은 검다......’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가는 분위기가 싸해지고, 음란마귀에 사로잡힌 이상한 우마무스메 취급을 받고 만다. 게다가 상대는 메지로, 어지간하면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 조금 더 공명정대한 판단을 위해 뱀부 메모리는 떨리는 귀를 문가에 가져다 댔다.


“허억, 헉! 라모누, 라모누!”


“으응! 당신! 사, 사랑해요!”


“나도! 나도야!”


대체 트레드밀을 어떻게 뛰길래 이런 대화가 오가는 걸까, 뱀부 메모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 치열한 종반의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격려하는 듯한 박수 소리,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어떻게든 억누르기 위해 애쓰는 낮은 으르렁거림까지 귀에 들어온다. 뱀부 메모리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떨리는 귀를 떼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무죄인 검다. 보나마나 트레드밀인 검다.”




하마터면 무고한 자를 풍기위반으로 몰아갈 뻔 했음을 안도하면서, 뱀부 메모리는 좀 더 사심없이 단속을 해야겠다 다짐하며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그녀의 날카로운 청력이 다시 한 번 이상한 사운드를 감지했다.


“이, 이건......!”


이건 100% 뾰이다. 살결이 맞부딪히지 않고서는 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건 100% 훈련이라고 볼 수 없다.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그녀가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간덩이가 부은 말딸이 신성한 교내에서 이런 행위를......”


<카와카미 프린세스의 트레이너실>


“아......”


뱀부 메모리가 명패를 보고 잠시 멈춰섰다. 그러는 동안에도 안에서는 의자인지 책상인지가 삐걱대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왕자님, 왕자님......!”


대충 듣기에도 귀에 속삭이는 헐떡임 섞인 달뜬 목소리, 뱀부 메모리의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당장이라도 트레이너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거기까지임다!’ 하고 외칠 듯 하다.


“크윽......!”


그러나 그녀는 멈춰서 있다. 장장 20분을 멈춰서 있었다. 요란한 소음이 잦아들어 다정한 속삭임이 되고, 다시 침묵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제서야 뱀부 메모리가 머리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기분 탓이었나 봄다......”


다행히도 아무 일도 없었던 카와카미의 트레이너실을 지나, 뱀부 메모리는 몇 군데를 더 단속한 뒤 회장에게 오늘의 풍기단속 보고를 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했다.




“흐앙! 앙! 아앙! 앙!”


그렇게 서류를 작성해 도착한 회장실에서는 귀를 믿기 힘든 하이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엿듣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꼭 과시하는 듯한 쩌렁쩌렁한 소리. 그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황제라 불리는 우마무스메의 것과 닮아 있었다.


“......”


뱀부 메모리는 팔짱을 끼고 서서 회장실 문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납득했다.


“회장님께서 저러실 리가 없슴다. 저게 심볼리 루돌프 회장님이란 증거라도 있슴까?”


“루나 기분 조아! 아앙! 더! 더어!”


“회장님께서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임다.”


“또레나, 또레나! 루나 더 꼬옥 해줘! 더 쪼옥 해줘!”


“좋은 일을 나누고 싶은 건 당연한 생각임다.”


“아앙! 또레나의 인O봉! 찔걱찔걱 기분 조아! 루나 갈 것 가타, 가버릴 것 같앙!”


“비유겠죠. 비유.”


서류철을 정중하게 문에 걸어두면서, 뱀부 메모리는 고개를 가볍게 절레절레 저어 웃었다.


“또레나아아! 루나 안에 내 줘!”


“트레센의 법이신 회장님께서 잘못되기라도 했단 말임까? 설령 그렇다 해도, 악법도 법임다. 그러니 문제 없슴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도 모르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회장실에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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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로 오늘은 풍기 위반이 없는 클린한 날이었던 검다!”


“잘 됐네.”


저녁 시간, 트레이너의 방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뱀부 메모리가 신나서 떠들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지금 그녀도 한 명의 학생으로서 죽도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이 시간만큼은 그녀는 귀신 풍기위원장 뱀부 메모리가 아니라, 한 명의 행복한 우마무스메일 뿐이다.


트레이너가 차려준 맛있는 밥상을 받아 먹고, 설거지를 돕는다. 살짝살짝 맞닿는 팔에 그녀의 기분이 고양되는 느낌이다. 괜히 꼬리가 움직여 트레이너의 허벅지에 살랑살랑 닿았다. 트레이너는 그 꼴을 보고 실실 웃으며 뱀부의 볼을 쿡 찔렀다.


“풍기위반 아니야?”


“이 정도는 건전한 이성교제임다.”


히죽히죽 웃으며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보다......”


갑자기 표정을 살짝 굳히고, 무언가 결심한 듯 그녀는 눈을 살짝 감고 양 팔을 트레이너를 향해 내밀었다.


“오늘도 학원의 풍기를 위해 힘낸 검다. 상을 받고 싶슴다.”


“그래, 그래.”


이 정도는 건전한 이성교제의 영역이다. 학원 내였어도 세이프였을 것이다. 단지, 조금 땀이 나는지 파커 지퍼를 그녀가 살짝 내리자 거기 있어야할 옷이 드러나지 않았다. 조금 놀라는 트레이너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시, 시작은 건전했지만 혹시라도 분위기를 타서 불순이성교제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됨다......”


“그거야말로 풍기위반 아니야?”


“......”


뱀부 메모리의 파커가 바스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 위에 슬금슬금 올라 앉으며 그녀는 조용히 머리띠를 풀어버렸다.


“......여기는 학원 내가 아님다. 그러니 교칙도 적용되지 않슴다. 그러니 위반도 뭣도 없슴다.”


공적으로 규칙이 어떻든 말든, 여기선 사적인 기분이 더 중요하다.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풍기위원장 덕에 오늘도 트레센 학원의 풍기는 지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