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혈통표 보는 법



위에 보이는 키타산 블랙의 혈통표에 나와있는 [리파르 4x4 (12.5%)] << 이 부분이 바로 인브리딩 정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인브리딩이란 쉽게 풀어 말하면 근친교배.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창작물 속 근친과는 거리가 좀 멀고, 경마계에서는 5대 내에 혈통 중 동일한 선조를 가지게끔 설계하는 것을 인브리딩이라고 한다. 보통 앞에 오는 숫자가 부계, 뒤에 오는 숫자가 모계혈통을 의미하니 키타산 블랙은 부계 4대조와 모계 4대조에 모두 리파르가 위치해 있다는 뜻이다.


조금 더 복잡하지만 참고를 위해 5대까지 나와있는 키타산 블랙의 혈통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2. 인브리드 이론


인브리드 이론은 기본적으로 근친교배를 통해 원하는 유전적 형질이 발현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인브리딩은 딱히 서러브레드 뿐만 아니라 닭의 산란성을 높이거나 특정 품종의 반려견/반려묘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는 이론이다.


다들 알다시피 근친교배는 집단 내의 유전적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정도가 심할수록 열성 유전병의 발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지만,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인브리딩은 우수한 형질을 유지하고 혈통의 순수성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특히 혈통의 스포츠라고 불리는 경마에서 인브리딩은 당연한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찰스 다윈의 사촌이자 회귀분석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은 자식은 부모로부터 유전자의 50%를 물려받는다는 유전 이론을 고안해냈다. 부모는 나와 유전자를 50%씩 공유하고, 조부모는 25%, 증조부모는 12.5% 를 공유한다는 말이다.



이런 골턴의 유전 이론을 경마계에 도입한 사람이 바로 라이오넬 알프레드 럭후 & M. S. 피츠패트릭 (줄여서 피츠럭)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 측 주장) 이 둘은 우수한 성적을 낸 경주마들의 혈통을 분석해 본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증조부와 고조부가 동일한 3x4 18.75% 인브리드(또는 4x3)를 통해 태어난 말이라는 점이었다.



이러한 18.75% 인브리드 이론은 1940년대에 미국과 일본에 소개되었고, 일본에서 이 이론의 입지를 공고히하게 만드는 전설의 말이 일본에서 탄생했으니, 그 주인공이 바로 토키노 미노루. 우마무스메 내에서 타즈나의 원본마로 알려진 그 말이 맞다.


10전 10승, 무패의 성적으로 사츠키상과 더비를 제패하고 17일만에 갑작스러운 파상풍 후유증으로 사망한 전설의 2관마. 출주한 10개의 경주 중 무려 7개의 경주에서 일본 레코드를 경신하며 엄청난 충격을 준 말이기 때문에 좋은 경주마를 생산하고 싶어하는 목장 입장에서 3x4 인브리드 이론은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토키노 미노루는 더 테트라크를 3x4 인브리딩 한 결과물인데, 더 테트라크 또한 엄청난 명마로 7전 7승의 전적에 영국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2세마 / 1919년 영국&아일랜드 리딩 사이어였으니 그야말로 훌륭한 선조의 혈통을 후대에 그대로 발현하게 한다는 인브리드 이론의 걸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토키노 미노루 이후 이 18.75% 인브리드 이론은 대세 교배이론으로 자리잡았고, 18.75%는 '기적의 혈량'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여담으로 한국에도 이 훌륭한 인브리드 이론을 만족하는 사례가 존재하는데, 바로 놀랍게도 신라의 태종 무열왕 김춘추다. 


문흥왕 김용춘진지왕진흥왕입종 갈문왕
지소태후
사도태후박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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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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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공주진평왕동륜태자진흥왕
사도태후
만호부인 김씨입종 갈문왕
지소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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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는 '진흥왕 3x4 18.75% 기적의 혈량'으로 탄생했으며, 신라 역사상 최고의 청년 정복군주로 꼽히는 진흥왕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덕분인지 김춘추 또한 능수능란한 외교능력으로 신라를 삼국통일로 이끄는 초석을 마련했다.

 


그런가?



3. 인브리딩이 과하면 어떻게 될까?


근친교배가 좋지 않다는 점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의외로 경마계에서 3x4보다 더한 인브리드는 수도 없이 존재하고 그 성과도 꽤나 좋은 편이다. 그 중 묵직한 인브리드로 유명한 예시를 몇 종류 소개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총 인브리드 혈량이 50%가 넘으면 그걸 보통 위험 배합이라고 부른다.)


① 인브리드 총합 53.13%, 엘 콘도르 파사

(스페셜과 리사델은 부모가 같은 '전형제'인데, 이 경우 혈통표에서는 동일한 말로 취급한다. 혈통이 완전히 같기 때문.)


개선문상 2착, 몬쥬와 숙명의 대결을 펼쳤던 명마 엘 콘도르 파사는 총합 53.13%의 인브리딩으로 탄생한 그야말로 인브리딩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서러브레드의 혈통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혈통표만 보아도 질질 쌀 수 밖에 없는 명마들이 즐비한데, 킹맘보/네아르코/새들러스 웰즈/노던 댄서/네이티브 댄서/나스룰라/누레예브 등 그냥 당대 유명했던 서양 종마들의 올스타전이 혈통표 위에서 펼쳐진 셈이다.


엘 콘도르 파사의 경우 혈량의 총합이 높다 뿐이지 놓고 보면 3x4 이상의 극단적인 근친교배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애초에 교배단계부터 이러한 인브리드를 계획하고 생산된 말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이후 자식들의 활약도 좋았기 때문에 종마 생활 중 단명한 것이 아쉬운 점.


② 킹조지&퀸엘리자베스 3승, 개선문상 2연패 "쌉가능좌" 이네이블


G1 11승, KGVI&QES 3승, 개선문상 2연패, 브리더스컵 터프까지 제패한 미친 커리어의 세계 최고 암말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이네이블. 놀랍게도 이네이블은 새들러즈 웰스 3x2 37.5%라는 미친 인브리드(삼촌과 조카)의 결과물로 탄생한 괴물이다. 여기에 니어크틱 5x5x4, 헤일 투 리즌 5x5라는 인브리드까지 얹어서 총 혈량 56.25%라는 정신나간 수치는 덤.


일본에서는 여전히 3x4 인브리딩이 대세인 반면, 유럽에서는 오히려 이보다 더한 2x3 인브리딩이 심심치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애초에 일본의 대종마 노던 테이스트도 2x3 인브리딩으로 태어났고, 2x3 인브리딩 부모의 자식은 무조건 3x4 인브리딩을 달고 태어나니까 괜찮을지도? 라고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엔 2x3 인브리딩은 일단 좆간이 좆간한 미친 근친교배가 맞긴 하다.


③ 남매 근친으로 개선문상을 따낸 코로네이션


2x2 인브리드는 한마디로 이복남매간의 근친. 생각만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 미친 인브리드의 결과물인 코로네이션은 1949년 개선문상을 우승한 암말로 커리어를 놓고 보면 20세기 유럽 최고의 암말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과도한 인브리드로 인해 번식암말로 전환된 이후로는 10년간 불수태/사산을 반복했고, 결국 마주는 번식이 불가능하다고 판명된 코로네이션을 도축해버린다. 경주마의 핵심은 훌륭한 특성을 후대에 전달해주는 것인데, 과도한 인브리드는 오히려 이를 방해해 쓸모가 없다는 것이 판명난 안타까운 사례.


하지만 코로네이션의 사례에도 불구하고 2x2 50% 인브리드 혈통으로 태어난 말들이 극소수이긴 하나 일본 경마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기도 하고, 1x1 100% 인브리드(진짜 창작물에 나오는 그 근친 맞음)로 태어난 니크루크 벤세주바라는 암말의 혈통이 여전히 일본 경마계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후로 시간이 지나며 대가 많이 내려와서 그 피가 다 희석되기는 했지만서도.



4. 과도한 인브리드를 막기 위한 노력


일본 경마계는 이미 선데이 사일런스계의 피가 섞이지 않은 경주마를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고, 이로 인해 선데이 사일런스 인브리드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외국산 종마를 수입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하빈저, 드레퐁, 브릭스 앤 모르타르 등.


하지만 이런 노력이 진정성 있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하빈저의 산구인 2018 아리마 기념 우승마 블래스트 원피스가 종마가 되기는 커녕 승마로 전업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리마 기념을 우승한 숫말 중 최초의 사례로, 일본 경마계가 외국산 종마들을 단지 선데이 사일런스계의 인브리드를 피하기 위해 임시로 쓰고 버려버리는 희석액 취급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마일 챔피언십을 우승한 또 다른 하빈저 산구 페르시안 나이트 또한 종마가 되지 못하고 경마장 유도마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외국산 종마들을 선데이 사일런스계의 인브리드 희석액으로 취급한다는 루머는 꽤나 신빙성 있는 주장으로 취급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