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노 탑건!!! 천재 우마무스메가 나카야마를 집어삼킵니다! 반면 인기 1번의 나리타 브라이언, 네 번째 착순으로 결승선에 도착합니다!]




"......"




침음성을 삼키며 눈 앞의 대참사를 바라본다.


졌다.


천황상, 재팬컵에 이어 아리마 기념마저도.


결승선을 넘어선 나리타 브라이언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서있었다.




"...브라이언!!"




그 모습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경기장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멈추라는 경비원들의 지시를 무시한 채 브라이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챘다. 그리고 무작정 걸어가 그대로 패덕을 떠났다.


그녀를 뒤로 숨긴 채 사방에서 몰려드는 기자들에게서 간신히 빠져나가자 해질녘 어둠이 잔뜩 내려앉은 거리가 나왔다. 


곧바로 기숙사에 데려다준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내 손아귀에 맥없이 끌려오는 그녀의 상태는 말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서있는 것만으로 휘청거린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버릴듯 내게 기대오고 있다.


흐려진 눈동자는 어디를 보는건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이런 상태의 나리타 브라이언은 처음이다.


가끔 한숨을 내쉰 적은 있어도, 이렇게 거동조차 힘겨워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기, 브라이언..."


"......"




고개를 푹 숙인 브라이언은 대답 대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그녀를 부축해주며 정처없이 끌려다녔다. 


걸음은 도시를 떠나 인적이 드문 공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멈췄다.


문득 차오르는 울분에 목이 매어왔다.


마른침이 삼켜질정도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모양 이꼴이라니.


트레이너로서 살아온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젠장... 젠장...!!


나 자신의 무능함과 억울함에 이빨을 꽈악 깨물었다.




"......"




그러나 다시 한번 브라이언을 보자 들끓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래. 지금은 무능이라느니 억울함이라느니 그런 이상한 감상을 할 때가 아니다.


내가. 


담당 트레이너이자 어른인 이 내가. 


지금의 브라이언을 위해 뭐라도 해야만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언..."




그러자 고개를 든 브라이언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텅 비어버린 눈동자로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브라이언!"




그제서야 브라이언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작게 미소지었다.


가슴 속의 울분을 숨긴 채, 눈가에 고여가는 눈물을 참으며.




"미안해, 트레이너. 조금 생각할 것이 있어서... 대답하지 못했어."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은 얼굴로, 답지 않게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틀림없이, 슬퍼하고 있었다.


패배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나와 단 둘 밖에 없는 이 순간까지도 강한 척을 하고있는거야?




"내가, 내가 미안해 브라이언..."


"...!?"




멍하니 바라보던 브라이언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눈물.


그 누구보다 강인했던 트레이너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미안해, 내가 조금 더 뛰어난 트레이너였다면...!"




위로해 주고 싶다. 하지만 백면서생인 나는 여자를 위로하는 법 따위 알지 못했다.


패배에 대해 이야기하면 더욱 상처받을게 뻔한데, 어떻게 입에 담을 수 있을까.




"네 탓이 아니야, 전부 내 잘못이라고...!"




어린아이처럼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트레이너.


그 모습을 보는 브라이언 역시 쌓여왔던 울분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트레이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주먹이 덜덜 떨릴 정도로 꽈악 쥐었다.


마음같아선 그녀도 울어버리고 싶었다. 


좋아하는 트레이너가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따위,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눈물을 보일 순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기대를 짊어지고 있는 죄인이었다.


설령 트레이너 앞일지라도, 약해져선 안된다.




"ㅡ저리가!"




힘겹게 트레이너의 손을 뿌리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트레이너가 그녀를 바라본다.




"...난, 정말 괜찮으니까."




그 한 마디에 트레이너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

.

.






브라이언이 떠나고 나서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감정을 삭히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내 무능함에 대한 자괴감,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 그 모든 것들이 발목을 붙들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진심을 다했는데도, 끝까지 신뢰받지 못한건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문득 뒷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의아함에 뒤를 돌아보자 두터운 철봉을 들고있는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뒤도 안보고 도망쳤겠지만 멘탈이 있는대로 갈려버린 지금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퍼억! 




멍하니 올라가는 철봉을 바라보던 중 극심한 통증과 함께 귓가에 수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시야가 땅바닥에 쳐박혔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리자 그제서야 남자의 얼굴이 명확하게 보였다.


그래, 분명 객석에서 돈이니 뭐니 노름질을 하던 녀석이었지.


붉어진 얼굴로 딸꾹거리는걸 보니 어지간히 만취 상태인 모양이었다.




"야이 씨발놈아!!!"




남자가 뒤이어 철봉을 내려쳤다. 계속해서 내려친다.


머리를 얻어맞은 내가 할 수 있는건 팔다리를 움츠려 급소를 피하는 것 밖에 없었다.




퍼억! 퍼억! 퍼억!




계속해서 철봉을 휘두르던 노름꾼은 지쳤는지 거칠게 숨을 고르며 휘두르던 철봉을 멈춰세웠다. 먹먹한 귓가로 맥없이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 나, 나는 말이지? 대기업 사원이야. H사 대리라고. 그런데 너어어 때문에! 내가 지금, 잃은게 많아서!! 숨도, 숨도... 못 쉴 것 같단 말이지?! 이번이야말로, 브라이언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퍼억! 퍼억! 화를 참지 못한 남자가 다시금 철봉을 내려쳤다.




"네놈 때문에! 너같은 것 따위가 브라이언의 트레이너라서!!"




끄윽 끄윽, 노름꾼은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내려는듯 헛구역질을 해댔다. 다시금 철봉을 다잡는 소리가 들린다.




"너... 이, 개같은, 내 돈 물어내. 돈 물어내라고 이 씨발놈아!!!"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매서운 철봉이 온 몸을 짖이겨 죽일 기세로 내리쳐진다. 




"씨발, 씨발, 씨바아아아...!? 우웁, 우웨에에엑!!!"




철봉을 쥔 그대로 메시처럼 구토를 시작하는 노름꾼. 


그 틈에 눈을 뜨자 매마른 아스팔트에 튀어오른 핏덩이들이 보였다.


죽을지도 모르겠다.


머리에 흐르는 피가 자꾸만 시야를 가려댔다.


괴로워하며 눈물 콧물을 짜내던 노름꾼이 입가에 미처 내뱉지 못한 구토를 주렁주렁 매달며 내게 외쳤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한순간에 빚쟁이가 됐어...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어버렸다고...! 나에게 사과해, 어서!!!"




간신히 한쪽 눈을 치켜뜨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트레이너라는 직업은 벼락출세하기 쉽지만, 원한 관계를 만들기는 더 쉽다.


조금만 활약해도 주변에 정적이 넘치게 된다. 안티가 산처럼 쌓인다. 이런 식의 보복성 폭력은 처음부터 예상했었다.


다만, 넋놓고 있던 중 당해버린 것이 못내 아쉬울 뿐.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말을 입에 담았다.




"...너 같은 쓰레기 새끼들이, 한 둘 인줄 아냐? 뭐? H사 대리? 어쩌라고. 건실하게 살았어야지, 새끼야."




그리고선 있는 힘껏 입꼬리를 올렸다. 매사에 침착한 그 남자처럼 비웃어주고 싶은데, 그런 표정을 지을 힘도 없었다.


죽기 싫다.


하지만 눈 앞의 노름꾼한테 사과하기는 더 싫었다.


내가 사과해야할 상대는 담당인 브라이언과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들이지, 저딴 돈에 미친 쓰레기 새끼가 아니었다.


남은 힘을 쥐어 짜 녀셕의 면상에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주, 죽일테면, 죽여봐. 좆밥새꺄."




놈의 주름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피투성이의 철봉이 하늘 높이 치솟는다. 시선은 정확히 내 머리에 꽂혀있다.


죽는다.


진짜로 죽는다.


두 눈을 감자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 다음에 눈을 뜬다면 답은 두개겠지.


브라이언의 감격한 웃음을 보든가.


내 목에 낫을 걸고있는 사신을 보든가.


기왕이면...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완전히 의식을 놓아버렸다.









"뒤져어어어어어어!!!!!"




노름꾼이 잔뜩 핏발 선 눈으로 철봉을 내려찍기 직전




-타앙!




총성과 함께 날아온 총알이 노름꾼의 다리를 꿰뚫었다.




"끄아아아악!!"




고통 속에 철봉을 놓치며 돌아보자, 사방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야쿠자들이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끄으으윽...! 뭐야, 너네 뭐하는 새끼들..."




-타아앙!




말을 끝맺기도 전에 머리에 총탄을 얻어맞은 노름꾼이 뒤로 넘어졌다.


쓰러진 노름꾼에게서 시선을 거둔 야쿠자들은 이윽고 피투성이인 트레이너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 남자구만. 아가씨가 원하던 트레이너가."


"아직 죽진 않은거같은데 들고 갈까요?"


"그래야지. 아가씨께서도 분명 좋아하실거다."


"형님. 총맞은 새끼는..."


"자살로 위장시켜."


"예."




그들이 떠났을 때 그곳에 더 이상 사람은 없었다.


그저 총상을 입고 사망한 대기업 사원의 시체만이 있을 뿐.


남은 거라곤 주변에 산화한 핏덩이들과 함께 질질 끌려간 듯한 핏자국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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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A 위원회는 몇 시간 전 나카야마 경기장 인근 공원에서 일어난 트레이너 살인 사건에 대한 긴급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지역 주민은 해당 공원에서 거친 파열음과 총격이 들렸다고 증언했습니다.]


[경찰은 당일 수사 결과 도박꾼의 우발적인 둔기 살인 및 권총에 의한 자살이라고 우선 판단했으며 이를 URA 위원회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아키카와 이사장을 포함한 일부 이사진은 그러한 수사 결과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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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




요즘 재밌는 괴문서가 많아서 너무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