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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은 목장의 푸르름이 절정에 달하는 아름다운 계절


방목지에 풀어진 말들은 따스한 햇살을 그 몸으로 받으며 느긋하게 목초를 먹는다


먹이보다 더 맛있고 영양가가 높은 살아있는 목초


그런 만큼 살이 찌기 쉽기 때문에 현역 경주마들은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어


후쿠야 구무원은 라이스 샤워를 주시하며 방목지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더비가 끝나고 며칠 뒤인 6월 10일


라이스 샤워는 1년 3개월 만에 다이토우 목장으로 돌아와 휴양을 취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의 목적은 편안한 휴양과 세침 (笹針)





세침이란 말의 각부에 침을 놓아 피를 뽑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치료법


레이스에서 혹사한 경주마에게는 다리에 나쁜 피가 쌓이기 마련


그것을 한번 밖으로 빼내 각부의 불안을 줄인다


이게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후쿠야 구무원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걸 해주지 않으면 피로가 풀리는게 느려지고 다리에 부상을 입는 일이 잦아진다


이미 한번 다리에 부상을 입었던 라이스 샤워에게는 꼭 필요한 치료였다


신경이 집중된 다리에 침을 놓고 대량의 피를 뽑는 세침은 말에게 있어서 상당히 고통스러운 치료법


당연 고통을 참지 못해 날뛰는 말이 적지 않다


하지만 라이스 샤워는 마치 화타에게 치료를 받던 관운장처럼 침착하게 그 고통을 참아냈다


마치 이 세침이 자신의 몸을 낫게하기 위한 치료라는걸 알고 있다는 듯이...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다이토우 목장으로 돌아온 라이스 샤워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체중은 2살 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지만


가슴, 허리에 두꺼운 근육이 붙고 각 부분의 밸런스가 매우 좋아져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라이스 샤워는 이미 더비에서 2착을 한 명마


매일같이 매스컴이나 라이스 샤워를 보고싶어하는 팬들이 다이토우 목장을 방문하는 실정


활기가 넘치기는 했지만 신경 쓰이는 일도 한가지 생겼다


바로 그 라이스 샤워의 상태가 최근들어 이상해진 것이다


후쿠야 구무원이 일을 하다 잠시 손을 떼고 방목지의 라이스 샤워를 보러 올 때면


어째서인지 언제나의 침착함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 방목된 울타리 안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옆의 방목지에 있는 다른 말들을 신경쓰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그 말들 중에서는 한 마리, 젊은 암말의 모습도 있었다


과연, 저녀석 홀딱 빠져버린거로구만


생각해보면 라이스 샤워도 벌써 3살


인간으로 치면 17, 18살 정도의 사춘기


사랑은 한 두번 정도 해보는게 당연한 나이대이다


서러브레드의 수말은 상당한 명마가 아닌 이상 씨수말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수말이 그 씨를 남기지도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간다


하지만 라이스 샤워에 관해서는 그런 일은 없으리라


무려 더비에서 2착을 한 말이다. 앞으로도 활약해 나갈게 틀림없다


거기에 혈통도 리얼 샤다이의 자식


그 유명한 노던 댄서의 피가 섞인 좋은 혈통


어디를 어떻게 봐도 씨수말로서 손색이 없는 일류마


장래 씨수말이 될 가능성은 충분했다


다른 구무원들도 라이스 샤워의 젊은 말 다운 고민에 눈치채기 시작했다



어이 라이스. 넌 젊고 멋있고 머리도 좋아. 거기에 유명하기까지


만약 인간 남자였다면 여자한테 엄청 인기 있었을 테니 그리 초조해하지 말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기대하던 순간이 올거야


더 많이 이겨라, 라이스


그게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언젠가 그 순간이 오면 네가 좋아하는 먹이를 한가득 먹여줄 테니


그때가 되면 사랑이든 뭐든 마음껏 하라고




서러브레드는 달리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


그 존재 의미는 싸우고 승리하는 것


하지만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할 줄 아는 말


우리 인간들과 같이 붉은 피가 흐르는 생명이다


투쟁심을 불태우며 골을 향해 있는 힘껏 달리는 라이스 샤워도 물론 멋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사랑에 사랑에 고민하며 우왕좌왕하는 라이스 샤워의 모습은


더더욱 멋있어 보였다





7월 29일


라이스 샤워가 다가올 싸움을 대비해 미호 트레이닝 센터로 돌아갈 때까지


다이토우 목장은 이전에 없었을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강해지는 말은 3살 여름에 성장한 말이다


더비를 끝내고 가을 경마 시즌 개막까지 수개월


그 시간동안 얼마나 몸을 회복시키고 얼마나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그에 따라 4살 이상의 코바가 되어도 활약할 수 있느냐가 갈리게 된다


이 시기에 성장하지 못한 말은 「조숙마」의 딱지를 받고 언젠가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라이스 샤워는


다이토우 목장에서의 2개월 동안 확실히 성장해 있었다






9월 27일 열린 나카야마의 센트라이트 기념 (G2, 2200m)


출전말은 총 14두


그 중에서 더비에 출마했던 말은 라이스 샤워 단 한 마리


흥미로운 점은 명백히 격하의 말들이 즐비한 이 경기에서


라이스 샤워는 1번 인기는 커녕 3번 인기를 받았다는 것이다


「더비 2착은 요행」


이게 당시 라이스 샤워에게 내려지던 세간의 평가였다


그 지명도 만큼의 인기를 받지 못한 라이스 샤워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더비 2착이 단순한 운이 아니였다는걸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더비 2착마는 또다시 2착인가! 레거시 월드 골인!!」


결과는 복병 레거시 월드가 전반부터 도주해


중단에서 쫓던 라이스 샤워를 머리 하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제압하며


2착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


라이스 샤워가 처음으로 경합에서 진 경기


그렇지만 경기 내용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이때 라이스 샤워에게도 몇가지 불리한 점이 존재했다


막 복귀한 참이라 체중 조절도 안 되어 있었고


기수 역시 하코다테의 다른 레이스에 출마한 마토바가 대신


젊은 기수, 다나카 카츠하루가 고삐를 쥐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승 자체는 문제 없이 훌륭했지만


라이스 샤워의 능력을 정신적인 부분까지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었다


거기에 라이스 샤워는 14두가 출마하는 경기에서 14번 게이트라는 가장 바깥쪽 게이트를 배정받았던지라


스타트가 늦어져 초반부터 선두 그룹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불리함 이외에도 라이스 샤워에게는 더 중요한 「무언가」가 부족했던건 아닐까


그 때문에 최고의 장점이자 최대의 무기인 투쟁본능이 완전히 발휘되지 않았었다


그 「무언가」는 바로





숙적 미호노 부르봉


특히 5월의 더비 이후 라이스 샤워는 항상 미호노 부르봉을 쓰러트리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믿기 힘들겠지만 완전히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아니다


실제로 라이스 샤워가 미호노 부르봉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지 않다


서러브레드는 과거 무리 생활을 하던 말


그 무리에서 수말들은 자손을 남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리더의 자리를 놓고 투쟁을 벌여왔다


그 종족 보존 본능이야 말로 서러브레드의 투쟁심의 근원


즉 언젠가 말했듯이


경마란 서러브레드들이 리더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의 시뮬레이션인 것이다


라이스 샤워는 지금까지 3번 미호노 부르봉에게 패배했고


그 모두가 완패로 끝났었다


단 한번도 그의 앞을 달려본 적이 없었다


말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야생동물에게 있어


한 번이라도 리더의 자리를 놓고 싸워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상대는 평생 잊지 못하는 존재이다


언제나 그 존재를 의식하고 어떤 때는 그를 두려워하며


또 어떤 때는 그에게 분노하고


또 어떤 때는 지위의 역전을 꾀하며 그 자리를 노리게 만든다


우두머리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내 자손을 남길 수 없다


이런 종족 보존의 투쟁심은 특히 수컷이 성적으로 성숙해지면 더 강하게 나타난다


라이스 샤워는 원래부터 투쟁심이 강한 말이었다


거기에 머리도 좋은 영리한 말


자손을 남길 자격이 충분한 수컷이었다


당연히 우두머리 싸움에 참가할 의지도 있다


그런 라이스 샤워가 세번 싸워 세번 진 미호노 부르봉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호노 부르봉


이류말이었던 아버지와


삼류말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누가 봐도 단거리 적성이었지만


망가지느냐 명마가 되느냐


두가지 길 밖에 준비되지 않은 지옥과도 같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


이상할 정도의 근성과 정신력으로 그 모든걸 버텨내고


더비까지 6전 6승


완벽한 괴물로 성장한 토야마의 최고 걸작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심어주고 무패 3관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든 「사이보그」


라이스 샤워가 이겨야 하는 것은 그런 존재였다







경마란 단순히 말과 말의 싸움이 아니다


말이 다른 말을 라이벌시 하듯이 기수 대 기수, 조교사 대 조교사의 싸움 또한 존재한다


라이스 샤워 대 미호노 부르봉의 싸움은 즉


이이즈카 조교사 대 토야마 조교사의 싸움


1974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마구간을 개업한 이이즈카는


조교사로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G1말을 세상에 내보인 적이 없었다


반대로 관서지방에 위치한 릿토의 명조교사로 이름 높은 토야마


타니노 하로모아로 더비를 제패해본 경험이 있다


강한 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소질을 가진 말과 만날 행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행운만으로는 강한 말을 만들 수 없긴 하지만


토야마 조교사가 빚어낸 수많은 명마들은 그저 운이 아닌, 그의 실력이란 사실은 명백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이즈카에게도 운이 돌아왔다


라이스 샤워와의 만남


처음에는 「오픈 클래스에서 그럭저럭 이길 수 있겠지」 정도의 생각으로 데려왔던 검은 망아지가


올해 더비에 나가 2착을 거머쥐었다


기쁜 오산이 아닐 수가 없다


이대로 조교한다면 언젠가 라이스 샤워는 염원의 G1 제패를 해줄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라이스 샤워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토야마와 미호노 부르봉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굳이 한 마디 하자면


만약 올해 미호노 부르봉이 없었다면, 올해의 더비마는 라이스 샤워였을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런 이이즈카 조교사에게 센트라이트 기념에서의 2착은 복잡한 의미가 있었다


당일 라이스 샤워를 머리 하나 차이로 제치고 우승을 가져간 것은 레거시 월드


그리고 그의 조교사가 바로 토야마 조교사이기 때문이다


「말은 단련하면 강해진다」는 이름바 「토야마 이론」으로 빚은 또 하나의 명마


라이스 샤워의 앞은 언제나 토야마의 말들이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때 레거시 월드의 기수는 미호노 부르봉의 주전 기수로 라이스 샤워에게 번번히 쓴물을 들이키게 한 코야마 사다히로


라이스 샤워 진영에게 있어 토야마 진영은 그야말로 악연 그 자체였었다






관서의 릿토 트레이닝 센터


훈련에 언덕길을 주로 사용 하는 것이 바로


토야마 마구간의, 아니 최근 관서지방의 경주마 전체의 강함의 비결


확실히 언덕길 훈련은 말의 스피드와 파워를 효율적으로 단련할 수 있지만


그 반면 그만큼 말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안일하게 훈련을 시키다 보면 말을 망가뜨리게 만들기도 하는 양날의 검


물론 미호 트레이닝 센터에도 언덕길 코스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게 완성된 것은 1993년의 일


라이스 샤워의 현역 당시는 아직 공사중이었다


따라서 이이즈카 조교사는 라이스 샤워에게 더트 마장에서의 병합 질주를 중심으로 훈련시켰다


만약 당시 미호 트레이닝 센터에 언덕길 코스가 있었다고 해도 이미 한번 다리에 부상을 입은 라이스 샤워는 이용하기가 부담됐으리라


언덕길 훈련은 순발력 있는 근육을 만드는데 적합하지만 지구력 있는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라이스 샤워 처럼 착실히 달리는 훈련쪽이 더 적합하다


거기에 라이스 샤워의 투지를 북돋아 주기 위한 다른 말과의 병합 훈련


하지만 한땀 한땀 쌓아올린 달리기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훈련을 쌓을 필요가 있고


그 위력은 바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즉효성이 있다는 측면에서는 언덕길 훈련쪽이 더 유리


언젠가는 이이즈카 조교사의 이 훈련이 결실을 맺겠지만


과연 그게 이번 가을의 킷카상까지 제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각 진영이 훈련에 매진하던 와중


10월 18일 교토신문배 (G2, 2200m)


킷카상의 트라이얼 레이스가 열렸다


이 레이스에는 미호노 부르봉도 출마한 상태


이이즈카 조교사는 킷카상이라는 본방을 앞두고 라이스 샤워를 미호노 부르봉에게 한번 더 부딪히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판단했다


아마도 이길 수는 없겠지


문제는 그 싸움의 방식이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질 것을 각오하고 끝까지 경합을 벌여 물고 늘어지며 승리에 대한 투쟁심을 보일 것이냐


미호노 부르봉에게 패배 당하는 버릇이 들 수도 있다는것 또한 걱정 중의 하나였다


이미 미호노 부르봉과의 상대 전적은 3전 3패


혹시나 이번에 또 다시 패배해 그가 자신보다 격이 높은 존재라 인식해


미호노 부르봉에게는 패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리는게 아닐까


하지만 오히려 그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투쟁심이 꺾일 말 이라면


킷카상에 나가서도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라이스 샤워는 미호노 부르봉과의 네번째 전투를 결심했다


출마하는 말은 총 10두


라이스 샤워는 1번 게이트


미호노 부르봉은 10번이라는 꽤나 바깥쪽을 배정 받는다


당연하게도 1번 인기는 미호노 부르봉의 차지


라이스 샤워도 지금까지의 건투가 인정받아 2번 인기를 받게 된다


그 외에도 더비에서 7착을 했던 나리타 타이세이


마찬가지로 더비에서 10착을 했던 야마논 미라클


4연승으로 G2, G3를 이겨 올라온 쿄우헤이 보우건 등이 출마


레이스가 있기 일주일 전부터 릿토로 와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던 라이스 샤워


기수는 다시 돌아온 맹우, 마토바 기수


레이스는 시작부터 언제나와 같은 미호노 부르봉의 도주와 페이스 만들기로 문을 열었다


라이스 샤워는 4번째 위치에서 쫓는다







그리고 마지막 코너 중간에는 미호노 부르봉의 뒤, 2번째 위치까지 올라간다


직선에서는 완전히 미호노 부르봉과 라이스 샤워의 대결


둘의 차이는 3마신


하지만 라이스 샤워는 그 이상의 차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이가 좁혀져 오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보기 드물게도 코지마 기수가 미호노 부르봉에게 채찍을 넣는다


마토바도 마찬가지로 팔을 휘두르며 명백히 승리를 의식한 기승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과는 1마신 반 차이의 2착 패배


3착 이하와는 크게 차이나는 결과였다


라이스 샤워는 몇 번이나 패배를 맛보았어도 결코 미호노 부르봉에 대한 투쟁심을 잃지 않았다


사츠키 상에서는 대차로 8착 패배


더비에서는 4마신 차이로 2착 패배


그리고 이번 교토대상전에서는 1마신 반 차이로 2착 패배


분명히 미호노 부르봉과 라이스 샤워 사이의 간극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미호노 부르봉의 컨디션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이번 레이스의 기록은 1분 12초 0


교토 경마장 2200m에서의 레코드 타임


오히려 컨디션 절호조 상태의 미호노 부르봉을 라이스 샤워가 그 만큼이나 몰아붙인 것이다


킷카상은 지금보다 거리가 800m는 더 늘어난다


스테이어 혈통인 라이스 샤워라면 중거리형인 미호노 부르봉과 그 차이를 더 메울 수 있으리라


그래도 이이즈카 조교사는 아직 승리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접전까지는 끌고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재미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이스 샤워는 「경합에서 강한 말」이니까






케이한 전철을 타고 요도 역에서 내려 왼쪽을 보면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은


관서의 서러브레드 메카 교토경마장


안을 들어가보면 정면에 명물인 시계탑이 보이고


역대 2마리째 삼관마였던 신잔의 동상이 오는 이들을 환영해 준다


통칭 「요도의 코스」라 불리는 트랙은


우코너의 1주 1894m


커다란 고저차와 400m의 긴 직선이 특징인 코스로


예전부터 천황상 봄, 킷카상등의 중상 레이스에서 사용돼, 수많은 명승부의 무대가 되었던 명문 코스이다


라이스 샤워의 요도 데뷔는 지난 2착 패배로 끝났었다


하지만 곧 이 작은 몸집의 검은 말이 과거의 명승부들에 비견될 파란을 이곳에 불러 일으키리라고 과연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교토신문배를 끝낸 뒤 킷카상 까지의 3주간


라이스 샤워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릿토에서 지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더트 코스를 사용해, 매주 강한 마무리 훈련을 받았다


그런 훈련의 마지막날 라이스 샤워의 등에 올라 탄 것은 마토바 기수




사실 마토바가 다시 라이스 샤워의 고삐를 쥔데에는 약간 재미있는 사정이 존재한다


센트라이트 기념 당시 마토바는 라이스 샤워를 선택하지 않고


같은 날 있었던 하코다테 2살마 스테이크스에 출마했었는데


이 때 이이즈카 조교사는 라이스 샤워 대신 인터 마이웨이를 선택했던 마토바 기수에게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더비 2착마를 걷어차다니」


거기에 마토바가 없던 센트라이트 기념에서 2착을 했으니 그 기분이 평온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마토바는 이이즈카 조교사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그 후 라이스 샤워의 관서 원정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이즈카에게 「자네는 바쁜 것 같으니 저쪽(관서)의 기수에게 부탁하도록 하지」


라는 말을 듣자마자 「제가 타겠습니다」라 즉답했던 일화가 있다




뭐 어찌 됐든, 최근 힘든 로테이션으로 레이스를 전전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남아있는 상태로 합류한 마토바 기수


그가 느끼기에 마지막 훈련의 감촉은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상태였다


하지만 털은 윤기가 빛나고 있었고 마체의 상태는 양호


백전연마의 마토바에게 있어 라이스 샤워는 흠잡을 데 없는 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는 주제에 마토바가 생각하는 것은 금방 눈치챈다


그런 주제에 금새 「나 혼자 내버려둬」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침착하고 얌전한 마이페이스


그런 부분에서 라이스 샤워와 마토바는 어딘가 닮아있었다






킷카상을 앞두고 활기가 가득찬 릿토 트레이닝 센터


그 중심에는 미호노 부르봉이 있었다


여전히 하드 트레이닝에 힘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명물인 긴 언덕을 달리기를 하루에 5번


하지만 때때로 미호노 부르봉은 마치 훈련을 거부하듯이 멈추어 서는 경우가 있었다






「때려서라도 달리게 해라」


토야마 조교사의 일갈이 울려퍼지자


코지마의 채찍이 휘둘러지고


고개를 숙인 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스타트 라인으로 돌아간다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눈동자


그 미호노 부르봉에게도 역시 이 훈련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 모습은 결코 「괴물」도 「사이보그」도 아니였다


그저 극히 평범한 3살의 젊은 서러브레드의 모습이었다





킷카상에서 이기고 싶다


미호노 부르봉에게 이기고 싶다


마토바는 그렇게 염원했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회라면 충분하다


남은 것은 아주 약간의 행운이 함께해 주는 것


그리고 그 행운의 여신은 마토바에게 먼저 미소를 보여주었다


킷카상 전전날 이루어진 게이트 추첨


훈련조수인 호리가 8번을 뽑았다


미호노 부르봉은 바로 옆의 7번


선두에 서는 미호노 부르봉의 바로 뒤에 붙기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리


거기에 하나 더 재밌는 정보가 들어온다


릿토의 노무라 마구간 소속인 쿄우에이 보우건의 관계자가


킷카상에서 「에라 모르겠다 도주책」을 쓰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미호노 부르봉의 승리 패턴은 그 대부분이 「끝까지 도주」


특히 최근 5전은 그 앞을 다른 말들에게 한시도 내준 적이 없다


언제나 자신이 레이스의 페이스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쿄우에이 보우건은 미호노 부르봉 이상의 전형적인 도주마


스타트 직후의 대쉬력에서는 정편이 난 말이었다


기수인 마츠나가가 그럴 마음이 된다면 미호노 부르봉을 누르고 선두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쿄우에이 보우건이 도주한다면 미호노 부르봉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쿄우에이 보우건이 킷카상의 3000m를 끝까지 도주해내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미호노 부르봉에게 선두를 내주리라


하지만 그래도 미호노 부르봉의 페이스를 흐트러뜨릴 수 있지는 않을까


틈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장거리 레이스 일수록 전개를 읽기 쉽다


마토바는 1975년 데뷔 이래로 지금까지 총 6번의 우수 기수상과 4번의 페어 플레이 상을 받은 명기수


특히나 장거리 레이스에서의 레이스 운영에 정평이 난 기수였다


쿄우에이 보우건이 도주하고 미호노 부르봉이 제치는 순간


라이스 샤워가 뒤에서 덮친다


마토바 기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1992년 11월 8일 킷카상 당일


교토의 하늘은 어제와 같이 쾌청한 상태


좋은 상태의 마장이겠군…


카와시마 구무원의 가슴에 약간의 불안의 색이 번진다


아침에 일어나 언제나처럼 마방에 들어가 라이스 샤워에게 인사를 건낸다


「라이스, 좋은 아침. 괜찮니. 오늘은 킷카상이니까 힘내자」


이겨줬으면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다친데 없이 무사히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카와시마의 인생에서 이미 라이스 샤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요 근래 1달동안 카와시마도 라이스 샤워와 함께 릿토에서 침식을 함께 해왔었다


킷카상을 대비해 컨디션을 조절하고 마지막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카와시마의 일


잠도 충분히 못 자고 휴식도 충분히 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와시마에게 있어서 이 1달은 인생에서 가장 충실했던 시간이었다


카와시마의 투박한 손길이 닿자 라이스 샤워가 곧장 응석부리는 듯한 흉내를 냈다


숙적 미호노 부르봉과의 다섯번째 대결을 몇 시간 앞둔 아침


승부의 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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