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umamusme&no=263330&search_head=60&page=1



11월 8일 교토


이 날,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졌던 요도의 코스에서


새로운 전설의 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라이스 샤워는 언제나처럼 그 침착한 모습 안에서 조용히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반응은 발군


훈련의 피로도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이 날, 1번 인기를 받은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미호노 부르봉


라이스 샤워는 지난 경기에 이은 2번 인기


하지만 그 둘 사이엔 1번 인기와 2번 인기의 차이 이상의 간극이 있었다


미호노 부르봉의 단승 배율은 1.5배


라이스 샤워의 단승 배율은 7.3배


1번과 2번 인기의 차이라고는 믿기 힘든 지지도의 차이


1/5


미호노 부르봉의 무패 삼관 전설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라이스 샤워는 그저 조연에 불과했다






승부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라이스 샤워의 기백도 늘어만갔다


그리고 오후 3시 30분


드디어 피크에 달했다


마지막 한 마리, 다이이치 조이풀이 게이트에 들어가고


요도의 바람 속에서 메마른 금속음이 울려퍼졌다


언제나처럼 미호노 부르봉이 절호의 스타트를 보였다


하지만 바깥에서도 불타는 듯한 기세를 내뿜으며 선두로 달리는 말이 있었다






쿄우에이 보우건


역시나 그는 사전에 공언한대로 도주책에 나섰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미호노 부르봉을 제치고 선두로 서는 쿄우에이 보우건


처음 코너에서 미호노 부르봉과 쿄우에이 보우건의 차이는 약 3마신


그 뒤를 따라가는 세번째 위치에는 메이쇼우 센토로


그 뒤를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뒤따르고 있었다


미호노 부르봉은 후방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앞서가는 쿄우에이 보우건을 쫓는다


코지마 기수의 제지도 듣지 않는다


자신의 앞을 달리는 말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오로지 쿄우에이 보우건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미호노 부르봉


이렇게 된다면 무리해서 미호노 부르봉의 뒤에 붙을 필요는 없다


선두의 두 마리를 좋을대로 놔두어도 어떻게든 된다


마토바는 라이스 샤워를 다섯번째 위치로 붙이고서는 선두 싸움의 양상을 지켜보았다






1주째의 4코너를 빠져 나온 직선


쿄우에이 보우건이 마치 뒤는 없는 것 처럼 더욱 더 페이스를 올린다


그리고 그에 빨려가듯이 미호노 부르봉도 페이스를 올렸다


너무나도 빠른 페이스






마군은 뭉치지 못하고 서서히 대열을 이루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1코너, 2코너를 빠져나와


2바퀴째에 들어선다


쿄우에이 보우건과 미호노 부르봉의 거리는 여전히 3마신


좁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미호노 부르봉과 그 뒤의 메이쇼우 센토로 사이에는 무려 5마신의 차이가 벌려져 있었다


마토바의 머리는 기이할 정도로 냉정한 상태였다


이대로 마지막 코너까지 다섯번째 위치를 유지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마군이 길게 늘어져있으니 둘러쌓일 걱정도 없다


첫번째 직선에서 마토바는 대형 전광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 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라이스 샤워 또한 냉정한 상태였다


이 날의 레이스가 언제나의 경주보다도 더 거리가 길다는 것을 알고있는듯한 눈치였다


그에게 있어 킷카상이라는 단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지금까지 몇 번이나 패배를 맛보게 한 미호노 부르봉을 쓰러뜨리는 것


지금까지 반복된 전투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마토바의 심중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킷카상 우승이란 단어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


적은 미호노 부르봉 단 한필


그것을 쓰러뜨리는 것 만이 자신의 목적


우승은 그에 뒤따르는 부상에 불과했다




종반이 다가오자 네번째 위치였던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선두의 쿄우에이 보우건과 라이스 샤워의 거리는 아직 10마신 이상


슬슬 타이밍인가?


마토바가 고삐로 신호를 준다


라이스 샤워도 그 신호에 날카롭게 반응했다


역시 이녀석은 내 생각을 아주 꿰뚫고 있군


힘찬 반응이 되돌아 오는 것을 느끼며 마토바는 앞을 주시한다


긴 직선을 빠져나와 2바퀴째의 3코너


이 오르막길은 요도의 3000m 코스 중에서도 말들의 스태미너를 가장 많이 빼앗아 가는 지점


여기서 쿄우에이 보우건의 다리가 둔해지기 시작한다






기초 체력의 단위가 달랐던 미호노 부르봉은 그런 쿄우에이 보우건과의 거리를 점점 좁힌다


이젠 완전히 사정거리 안


이어서 메이쇼우 센토로, 마치카네 탄호이저도 선두로 붙어 올라온다


여기서부터 마지막 코너까지


요도 코스의 명물 장거리 내리막길의 시작


오르막과는 달리 체력보다도 말의 밸런스 잡는 능력이 요구되는 난관


하지만 「유토피아의 산」에서 나고 자란 라이스 샤워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말들은 저도 모르게 허리가 낮아지며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고전하는 그 구간을


평지와 다를 바 없이 달려 내려간다


선두 그룹은 이제 손이 닿을 위치로 와 있었다


마지막 코너 중간





드디어 쿄우에이 보우건의 힘이 다했다


대도주에 나선 마츠나가 기수의 꿈도 여기까지인가


지금까지 보여준 절호의 도주가 거짓말이었던 것 처럼 뒤따르는 마군에게 삼켜져 버린다


마치카네 탄호이저,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라이스 샤워가 앞서가던 메이쇼우 센토로를 제쳤다


마토바의 바로 옆에서 마치카네 탄호이저에 타고있던 오카베의 얼굴이 보일 정도의 거리


그 앞을 달리는 말은 단 한필


숙적 미호노 부르봉


승부다


미호노 부르봉이 선두로 마지막 코스를 빠져나온다


유토피아 목장의 네 남자가 또다시 작은 티비 앞에 모여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내고 있던 그 순간


관서 테레비의 명아나운서 스기모토의 마이크가 불을 뿜는다


「드디어 여기서, 드디어 여기서 미호노 부르봉이 선두에 섰다!」


「남은건 400m, 어디서든 누구든 덤벼보라는 듯한 미호노 부르봉!!」


그 목소리에는 확실히


심볼리 루돌프 이래의 무패 3관마가 될 미호노 부르봉에게 전해지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유토피아 목장의 남자들의 응원이 그 목소리에 지워지지만


상관없다


이기는 것은 「우리들의」 라이스 샤워다


라이스 샤워은 아직 충분한 여력이 남아있었다


채찍이 날아든다


끈질기게 미호노 부르봉의 바로 뒤를 쫓던 마치카네 탄호이저를 제친다






그만큼이나 멀리 있던 미호노 부르봉의 뒷모습이


지금,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이이즈카 조교사는 관계자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저 괴물을 드디어 물리칠 수 있다


라이스 샤워는 내가 단련시킨 말이다


경합이라면 결코 지지 않는다


질 리가 없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미호노 부르봉


그에게는 지금까지 보여줬었던 여유 넘치던 강자,「괴물」의 압도적인 모습은 없고


그저 필사적으로 달리는 한 마리의 경주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토바의 눈 앞에서


미호노 부르봉의 다리가 더욱 힘차게 지면을 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스태미너는 남아있지 않았던게 아니였냐


아직도 여력을 남겨놓고 있었단 말이냐


아직도


승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거냐


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쌓아온 고된 시간과 흘려온 땀방울들을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다


마토바의 채찍을 쥔 손에 마지막 기합을 넣었다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스프링S, 사츠키상, 일본더비, 교토신문배


4번의 전투동안 단 한 번도 닿지 않았던, 경합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그 작아지는 뒷모습만을 바라보기만 했던 괴물에게


라이스 샤워의 단검이 꽂혔다







라이스 샤워가 미호노 부르봉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를



제쳤다



스기모토 아나운서가 절규한다


「바깥에서 라이스 샤워! 라이스 샤워 제치는가! 라이스 샤워 제치는가!」


「아아, 라이스 샤워가 선두에 섰다…」


12만명의 함성이 비명으로 바뀐다


그 변화는 라이스 샤워의 다리가 지면을 찰수록 더욱 빨라진다


라이스 샤워와 미호노 부르봉의 차이는


확실히 벌어지고 있다


미호노 부르봉의


토야마 조교사의


무패 삼관의 야망이 멀어져 간다


이제 앞을 달리는자는 아무도 없다






라이스 샤워


그 이름에 걸맞는 영광의 버진 로드가


마토바와 라이스 샤워를 환영하고 있었다





요도의 전설은 막을 내렸다


라이스 샤워는 드디어 킷카상에서


올해의 클래식 레이스 그 정점에 섰다


이어지던 6연패






사츠키상에서도





더비에서도




언제나 그 뒷모습밖에 보여주지 않았던 숙적


미호노 부르봉에게 4번이나 겪어야만 했던 패배





그것을 모두 극복하고 영광을 쟁취했다


라이스 샤워가 미호노 부르봉을 누르고 결승선을 밟은 그 순간


유토피아 목장의 네 남자들은 더비때와 마찬가지로 말로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내뿜고 있었다


다 큰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서러브레드와 관련된 일을 하는 자들에게 있어


클래식 제패는 꿈이자 인생 최대의 목표


그것을 라이스 샤워가 이루어 준 것이었다


카와시마 구무원은 더비에서 2착일 했을 때 보다 오히려 더 냉정한 상태였다


표창식에 오르기 위해 이이즈카와 쿠리바야시 오너 부부와 함께 회장으로 나설 때 까지만 해도 전혀 믿기지 않았다


실감이 든 것은 다음날이 돼서였다


「참 굉장한 일을 해냈어. 라이스는 정말, 굉장한 일을 해내주었어…」


어제까지의 자신과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쿠리바야시 오너 부부에게도, 다른 관계자들에게도 믿겨지지 않았다


라이스 샤워는 원래 오너 부부가 귀여워하던 말이었다


정말 좋아한 검은 망아지였다


그 라이스 샤워와 자신이 킷카상 표창식 무대에 서다니


쿠리바야시 집안은 일본 유수의 서러브레드 오너 브리더


1952년 아직 선대 시절


쿠리노하나가 사츠키상, 더비에서 우승을 했었다


그 이후 40여년


라이스 샤워의 킷카상 제패로 쿠리바야시 집안은 클래식 삼관을 달성하게 되었다


지금의 쿠리바야시 부부에게는 물론 처음 서보는 클래식 표창식이었다


이이즈카 조교사에게 「기수가 최고의 경마를 보여주었다」라는 칭찬을 받은 마토바 역시


킷카상 이후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기수로서) 미호노 부르봉의 삼관을 저지한 것 보다도 라이스 샤워에게 클래식의 왕관을 선물해준 것이 가장 기뻤다」


하지만 이러한 라이스 샤워 관계자들의 감개무량한 기쁨과는 반대로






세간의 반응은 냉정했다


1992년 킷카상은 라이스 샤워가 우승한 킷카상이 아닌


미호노 부르봉이 이기지 못한 킷카상이었다


심볼리 루돌프 이래의 삼관마 탄생


그걸 한 마리의 복병이 방해한 킷카상에 불과했다


라이스 샤워는 킷카상에서 이겼음에도


주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어떤 경마 평론가는 이런 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그 레이스는 미호노 부르봉에게 명백히 불리했다」


여기서 말한 「불리함」이란 물론 마츠나가 기수가 탄 쿄우에이 보우건을 뜻했다


이기지도 못할 말이 아무 생각 없이 억지로 선두에 섰다


그 결과 「주역」인 미호노 부르봉의 페이스가 흐트러져 재미 없는 방식으로 패배해 버렸다


그 경마 평론가는 분명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리라


라이스 샤워는 실력으로 이긴게 아니다


쿄우에이 보우건의 폭주로 얻어 걸린 것이다 라고


하지만 킷카상은


클래식 레이스는


누군가에게 삼관의 명예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무대가 아니다


1만마리의 3살마 중에서 뽑힌 18마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이길 권리가 주어지는 레이스이다


쿄우에이 보우건도


라이스 샤워도


그 중 한마리일 뿐인 것이다


거기에 쿄우에이 보우건은 지금까지「도주」를 무기로 이겨왔었다


킷카상에서 쿄우에이 보우건과 마츠나가 기수가 도주 작전에 승부를 건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16착의 대패를 당했지만


그 판단은 누가 어떻게 보더라도 정당한 작전일 뿐이었다


물론 그 때 쿄우에이 보우건이 도주하지 않았더라면


미호노 부르봉이 자신의 페이스를 만들어 기분좋게 달렸더라면


미호노 부르봉이 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단 한 마리의 말이 선두로 달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승리를 놓치는 말이라면


과연 그에게 클래식의 왕관이 주어지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거기에 라이스 샤워는 단지 운으로 이긴 것이 아니었다


쿄우에이 보우건이 만든 하이 페이스에서 달린 것은


미호노 부르봉 혼자가 아니었다


라이스 샤워 역시 같은 조건에서 싸운 것이다


거기에 이번 경기에서 라이스 샤워의 주파 시간은 3분 5초 0


종래의 기록을 0.4초 단축시킨 신기록이었다


이게 라이스 샤워의 3000m에서의 실력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미호노 부르봉의 삼관을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그런 것은 사소한 것이 불과했다


라이스 샤워가 신기록 달성을 하고 6연패의 악몽에서 벗어나


당당히 클래식의 왕관을 그 머리에 쓴 순간





교토 경마장은 박수 소리 대신 야유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고


그들에게 있어 라이스 샤워는


지금까지 미호노 부르봉에게 계속 패배해온 주제에


중요한 순간에 미호노 부르봉의 영광을 빼앗아간





「악역」에 불과했다





여담으로 이 경주에서 모든걸 불태운 미호노 부르봉은 라이스 샤워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하고 난 뒤


심각한 부상을 입어 경주마로서 재.기 불능 판정을 받아 은퇴하게 되었고


이에 가장 큰 쇼크를 받았던 것은 미호노 부르봉에게 조교사로서의 모든 것을 걸고 있던 토야마 조교사였다


킷카상 당시부터 암에게 그 몸을 갉아 먹히고 있던 토야마 조교사는 결국


이듬해인 1993년 5월


애마 미호노 부르봉을 잃은 실의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게 된다




6편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