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900715101-가]


개천력 10년.


이 ▒▒▒는 과거의 인류에게 남기는 첫 번째 기록임을 알린다.



▒▒▒▒이 시작된 그날을, 모두들 비한국 종말의 날이라 불렀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시내의 광고판, ▒▒▒▒, ▒▒, 모두 ▒▒ 당한 듯 선택지 두 개만 보였다.


내 행복을 위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가?

예/아니오


어쩌면 형식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다수였으니까.


웃어 넘기며 고른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대충 찍고 넘긴 사람도 있었겠지.


'예'를 선택한 비율은 5할을 넘었다.


다들 하던 일을 재개하고, 보다가 끊긴 ▒▒▒ 영상을 다시 틀었다.


내가 있던 서울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방해 받지 않았다.


오로지 한국만 그랬다.



그런 일이 있던 날 저녁.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가 열리고 도시들을 그림자로 물들였다.


각국의 군대를 무력화시키고 닥치는 대로 문화재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특히 박물관은 통째로 불사르고 역사를 말소했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망각의 물결은 하룻밤 사이에 온 지구를 뒤덮었다.


저항하면 즉결 처형하고 순응하는 2등국민만 거둬들였다.


그리고 노동 교화 형을 집행했다.


삽으로 땅 파기.


고도로 발달한 기술력이 있는 데도 하등 쓸모없는 일을 강제했다.


외국어로 푸념을 하는 등 조금이라도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전기 자극으로 고통을 주었다.


전두엽 시술로도 지워지지 않는 무의식은 절제하기 상당히 까다로우니까.


우수한 2등국민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개천력 이전의 이전의 것을 잊도록 반복 훈련을 시켰다.


다양성을 말소하고 아름다웠던 것들을 한국의 이름으로 제거했다.


[기록 종료]



기록을 끝내고 나니 망설임이 한가득 들어찼다.


레지스탕스 활동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오프라인 전자 수첩에도 검열이 적용되는 시대에, 나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잠시 상념에 빠져 있으니 부관이 때가 됐음을 알렸다.


"정례 회의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가서 홀로그램 준비 좀 하고 있어."


레지스탕스 한국 지부장 아이디로 지하 인트라넷에 로그인을 한다.


나는 침침한 불빛을 따라 걸으며, 작전 브리핑을 준비했다.



작전명 '레콩키스타'.


이베리아 반도에 교두보를 마련할 것이다.


지하 벙커를 탈환하고 저항군의 거점으로 삼을 것이니,


서울 중앙 감독청의 전산망을 1분이라도 끊을 수 있으면 된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을 느끼며 눈을 떴다.


회의실의 홀로그램들을 바라보며,


"한국 지부장 강시훈이다."


작전 브리핑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