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이 되지 않아 펜촉을 예닐곱개 부러뜨린 날에 기자가 찾아왔다.


그리고 대뜸 내게 물었다.


“왜 동화를 쓰시는 겁니까?”


원래라면 상대도 하지 않았다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찾아오는 이런 비둘기 같은 놈들이라면.


“들어와서 얘기하지, 좋아하는 차라도 있는가?”


그러나 그날은 무슨 변심이었는지 그에 취재에 응했다. 어쩌면 그저 그날은 펜을 더는 잡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기자를 대충 아무 의자에나 앉힌 뒤 싸구려 홍차 하나를 내줬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나 기자는 그것도 모르고 좋아라 하며 나에게 감격의 눈길을 보낸다.


“고맙긴, 당연한 일이지.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아까 질문이 뭐였지?”


“아, 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문호님께서는 왜 동화를 쓰시는 겁니까?”


동화를 왜 쓰는지 묻는다라….


아마 다른 이들이었으면 이리 답했을 거다.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당연하다, 동화는 아이들의 행동을 제한 하기위한 그런 이야기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동화는 무엇인가? 내가 빨간두건을 쓴 이유? 그냥 빨간두건을 쓴 아이가 내 눈에 보여서다. 헨젤과 그레텔을 쓴 이유? 남매가 숲에서 빵을 먹는 모습이 내게 보여서이다.


나의 모든 동화는 그저 내 눈에 아름다운 모습을 한 아이들이 비췄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동화를 쓴 이유는 무엇이었나.


……



.




아아, 그래 기억났다. 내가 처음 동화를 쓸때 가졋던 그 마음가짐이. 지금처럼 사료를 먹기 위해 짐승마냥 쓰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썻던 그 동화들이.


나는 나에게 깨닫게 해준 기자를 바라보았다.


“저, 문호님?”


기자에 눈에 비치는 나는 어땠는가. 깨달음을 얻은 현자처럼 보였나 아니면 그저 환희에 찬 광인으로 보였나.


전자든 후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 그대여. 한낱 비둘기에 불가할 뿐인 그대여! 그대 덕에 나는 다시 펜을 잡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네!


“왜 쓰냐니 그런 답이 정해진 질문을 왜 하는가! 아름다운 소녀들이! 아이들이! 내 펜에서 춤춘다는 것이 정말로… 흥분되지 않나?”


나 자신에 대한 만족 그리고 흥분 그것이 내가 동화를 집필하는 이유였다.


성당에서 기도하던 그 노란 머리의 아이가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나는 동화를 썻다.


그 소녀가 내 작품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 소녀가 내 손에서 춤을 췄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기에 나는 펜을 찾았고 지금까지 그 펜을 놓지 않고 있다.


내 말을 다 들은 기자는 자기 짐을 챙겨 뛰쳐나갔다.


나의 환희에 놀라 뛰쳐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기사의 눈에는 아마 지금의 나와 같은 이체가 서려있었다.


아마 곧장 신문사로 달려갔겠지.


“흐, 하하!”


내일의 나는 어떤 인물이 되어있을까. 광기의 동화작가? 소아성애자 동화작가? 아니면 인간실격 동화작가?


뭐든 상관없다 내가 동화작가로 남을 수 있다면.


세간에서 날 뭐라 평가하든 난 동화작가이며 아이들은 내 책을 찾을 것이고 내 펜에서 아이들은 유린당할 것이다.


아니지, 유린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 그건 너무 잔혹한 말이다.


나는 피리부는 사내요. 아이들은 그저 내 피리에 홀린 것에 불과하니.


아이들은 그저 내 독주에 빠진 것일 뿐이니까.


나는 그 생각을 뒤로하고 나만의 피리를 잡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