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웹소설의 진정한 재미는 군상극에서 온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제 소설은 주인공이 모험을 다니는 글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매번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이게 문제가 뭐냐면 이런 소설에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티키타카와 새로운 환경에 처하는 재미인데 호흡이 너무 길었습니다.


웹소설 작가가 되고 나서 웹소설을 완결까지 읽은 게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이유를 고민해보니 소설에 몰입하지 못하고 자꾸 분석하게 되기 때문인데, 나 혼자만 레벨업은 완결까지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몰입이 끊기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세계관이 복잡하지 않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보면서 놀란 것이 하나 있는데, 사냥이 주가 아니라는 겁니다.

주인공이 강해지려고 사냥하며 레벨업을 하지만 싸우는 장면은 많이 생략됩니다.

하루에 게이트를 여러 개 돌았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헌터 협회장과 길드장의 시점에서 주인공을 탐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모든 장치는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독자들이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고 독자가 보고 싶은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걸 보며 느낀 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소설 '이세계 회귀자'를 쓸 떄 지도까지 그리며 문화, 종족, 지역 환경까지 구상했는데, 그때의 저는 세계관이란 디테일하게 짜기만 하면 좋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착각이었죠.


세게관도, 악당도, 조연도, 모두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해야 하는데 말이죠.


제가 써오던 모험물 플롯은 호흡이 깁니다.

첫 소설에는 1개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거의 25편이 쓰였습니다.

세 번째 소설에서는 문제 하나 해결하는 데 대략 7편이 쓰였습니다.

호흡이 길면 글이 자칫 지루해지기 쉽습니다.


제 첫 번째 소설과 두 번째 소설, 그리고 세 번째 소설까지 대부분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주인공의 특별함을 보여주기 어려웠습니다.


주인공의 특별함을 보여주려면 주변인이 있어야 합니다.

내게 포르쉐가 있어도 지구에 혼자뿐이라면 특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차은우 얼굴을 가졌어도 지구에 혼자만 있으면 특별한 기분을 느낄 수 없죠.

주변인이 있고 다양한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세력들이 주인공을 견제한다든가 무시하거나 깔보면 사이다를 주기도 쉽고 특별함을 보여주기도 쉽죠.

군상극이 벌어지고 거기서 주인공이 도드라져 보여야 글이 재미있습니다.


소설 내 모든 세계관, 모든 설정, 모든 인물은

모두 주인공의 특별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만들어보겠다며 주인공 주변 인물의 성격, 취미, 특기, 키, 몸무게,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버릇, 출신 학교, 이상형, 콤플렉스, 생김새 등 이런 것을 짤 게 아니라 어느 타이밍에 나타나 어떻게 주인공에게 작용하고 어떻게 주인공에게 쓰일지를 생각하는 게 글을 쓰는 것에 더욱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3개 소설을 완결내고 4번째 소설을 쓰면서 경험한 것 중 무척 이상한 게 있습니다.

이번 소설을 연재하기 전에 'F급직업S급스킬'이란 소설을 준비할 때 그 어떤 때보다 설정을 디테일하게 짰는데 막상 글을 쓰다보니 내가 열심히 짠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지면을 할애하고, 인물들이 설명충에 빙의하며 글의 재미가 떨어졌습니다.


그 소설을 포기하고, 10분 생각해보고 시작한 소설 '9서클 마법사의 탄생'이 오히려 반응이 좋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설정이 크게 없으니 독자 입장에서는 가독성이 좋아지는 거겠죠.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주 2병 먹고 침대에 누워서도 읽으려고 들 때 글이 읽혀야 가독성이 좋은 거라고요.

심플하게 쓰라는 말입니다.

작가 특성상 온갖 기교를 넣고 싶기 마련인데 웹소설에서는 독이 되는 거죠.

문장을 수려하게 쓰면 같은 작가는 엄지를 치켜듭니다.

소수의 독자들이 알아보긴 하겠지만, 일반 독자는 휙휙 넘기며 봅니다.

대사만 보는 독자도 있습니다.


수려한 문장이 잘 쓴 소설로 직결되지 않습니다.

유료 랭킹을 올려준다거나 결제를 유도하지 않습니다.

웹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하고 다음 편에 대한 기대심이 들어야 결제를 합니다.

사이다가 있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주며 카타르시스마저 들어갔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몬스터 사냥하고, 함정 돌파하고, 식량 구하고...

이런 소설을 제가 주로 써왔다면 차기작에서는 이런 걸 부차적인 요소로 쓰며 군상극을 주로 가려고 합니다.

다양한 인물과 세력을 투입해서 주인공의 특별함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에피소드 호흡을 짧게 잡고 꾸준한 성장과 보상, 그리고 사이다를 주는 소설을 써보려고 합니다.


소설 초반에 주인공 원맨쇼로 인기를 끄는 소설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그 소설에 열광하는 건 그 원맨쇼(주로 훈련에 따른 성장)으로 인해 주인공이 보여줄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는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세계가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지요.


결론

독자들이 주인공의 솔로 플레이 자체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착각하지 말자.

독자들이 주인공의 솔로 플레이를 재밌게 지켜보는 이유는 후에 보여줄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원맨쇼 자체로 재미를 주는 천재적인 작가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무척 드물다.)

주인공의 특별함을 잘 표현하려면 빌드업을 잘 해야한다.

다양한 인물과 세력을 통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적재적소가 중요하다.

캐릭터나 세계관을 구축할 때 디테일에 매몰되지 말고 주인공에게 어떤 역할로 어떻게 작용할지에 중점을 두며 만들자.



추신- 이 글은 정룡필 작가님의 허가를 받고 쓰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