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꽤나 화창한 날이었다. 봄 샘 추위가 어제까지도 거셌던 게 거짓말이라도 된 것처럼 화창한 날이었다. 꼴에 남자라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 맹장 수술을 받은 친구의 병문안을 가던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한 두 정거장 가면 병원 앞이기도 했고 돈을 아낀다거나 하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서슴 없이 지하철을 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침부터 내 것도 아닌 물건이 든 가방을 메고 밝은데도 지하라 그런지 어둑어둑한 감각이 드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 감각에 인상을 쓰며 교통카드를 출입구에서 찍고 계단을 내려가자 승차장이 보였다.
아침 시간대임에도 출근 시간대라기엔 늦은 시간이었기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있진 않았다. 기껏해야 서로에게 바짝 붙어 오순도순 얘기하는 두 연인과, 놀러 가는 듯 친구로 보이는 또래와 어울리는 애 몇 명이 보였다. 모두 행복해 보였음에도 부럽다거나, 그립진 않았다.
그리워 할 순간도 없을뿐더러 인간관계가 귀찮았기에 그닥 연을 쌓지 않은 것도 나 자신이니 신세 한탄을 할 겨를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
쓸데없이 경쾌한 국악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설명과 안내문이 들렸다. 그걸 듣고 벤치에서 일어나자 맞춰서 전철이 덜컹거리며 들어왔다. 빠르게 들어온 전철은 점점 느려져 곧 멈추자 치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얼른 걸어가 전철로 들어갔다. 얼른 온 게 무색할 정도로 자리가 널널했다. 나는 오른쪽은 빈 자리고 왼쪽은 문인 자리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옆에 아무도 올 수 없도록 짐을 놓았다. 누가 내 옆에 있으면 불편하기만 할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거기다가 자리도 많으니 굳이 내 옆이 아니더라도 앉을 곳은 많으니 죄책감을 갖지 않기에도 충분했다.
거의 다 자리에 앉았겠거니 하며 오늘 시작도 나쁘지 않음을 확실할 때 즈음 내 앞에 누군가가 섰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160대, 옅은 갈색 빛을 머금은 긴 생머리가 예뻤다.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기에 그림자가 져 얼굴이 보이진 않았으나 내 또래 즈음 되는 것 같았다. 거기다 꽤 예쁘기도 했다. 연예인에 비해도지지 않을, 아니 연예인보다도 훨 예뻤다. 어느정도 과장을 하자면,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아름답다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외모에 마음속으로나마 감탄사를 내뱉기 직전 그녀가 내 옆자리를 가르키며 물었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자리가 여기밖에 없거든요.”
거짓말이겠거니 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방금까지 틈틈이 있던 자리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긴 고민을 하고 옆에 뒀던 가방을 안았다.
“아, 네. 앉으세요.”
그러자 그녀가 싱긋 웃고 옆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내게 감사를 표하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다리를 꼬거나, 다리를 쩍 벌린 것도 아니었으나 그녀에게서는 묘하게 강한 자존감이 느껴졌다. 이정도면 일부러 자존감을 높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한 자존감에 나까지 괜히 자존감이 느껴졌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바르고 곧게 펴져있는 등에서는 그녀가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는 게 느껴졌다.
가까이 하고 싶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가까워지면 피곤할 상이었다. 목소리부터 친화력이 높고 밝은 것 같았다. 나와는 정 반대인, 내게는 ‘그저 옆에 앉은 사람’이 그녀의 인상이었다.
그것보다, 이거 좀 불편하다. 가방을 품에 안은 채라 그런지 팔이 계속 내 옆에 있는 여자에게 닿았다. 거기다 조금 뜨거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 불편하다고 그녀에게 움츠려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불편한 채로 곧 덜컹이며 움직일 지하철이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곧이어 덜컹이며 지하철이 움직이자 그녀가 내 쪽을 힐끔 보았다. 뭐 말할 거라도 있나 싶을 때 즈음 그녀가 물었다.
“어디 가시는거에요?”
그 물음에 일반적인 답은 이유를 묻는 것이겠지만 난 달랐다. 어차피 알아도 의미가 없을뿐더러, 제법 큰 가방을 메고 갈 곳이 궁금할 법도 했고, 가장 큰 이유는 그냥 귀찮아서였다.
큰데다 꽉 찬 가방을 안은 채 작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대로 말했다.
“병원이요.”
무감정하고 무표정하게 말했기에 그냥 “아, 네” 라던지 그런 답을 기대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생각 외였다. 그녀의 첫인상과 똑같이, 나 한 호기심 합니다 라고 말하듯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답을 뱉어냈다.
“어느 병원 가세요? 그리고, 왜 가세요?”
내가 좀 꼬인 사람이었다면 시끄럽다고 하거나, 시비로 들었을 지도 모를 말이었지만 다행히 나는 꼬이지도,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너그러운 사람이었기에 들어줄 만 했다. 시끄러운 건 싫었지만.
“**병원 갑니다, 친구놈이 다쳤대서.”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과장되게 힘 있게, 그리고 휘둥그레 뜬 눈은 꽤 컸다. 얼마나 컸던지 부담 될 정도였다. 그 예전에 SNS에 돌아다니던 모모귀신인가, 그 정도로 컸다.
그 반응의 이유를 묻진 않았다. 물을 정도로 내가 살가운 성격도 아닌 데다 물을 생각이 있었다 한들 물어 볼 새 조차 없이 그녀가 이유를 말했다.
“저도 그 병원 가요! 친구분은 많이 다치셨대요?”
방금 내가 들어줄만 했다고 했던가? 취소하겠다.
단번에 너그럽다 자부한 내가 말을 취소하고 싶게 만든 그녀는 대단한 것 같다.
한숨조차 쉴 틈이 없는 그녀의 벌레 떼 같은 말 공격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 제일 중요한 걸 안 물어봤네요.”
그녀가 눈은 웃는 상 그대로, 방금에서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 미소를 보고 처음 느낀 건, ‘예쁘다’ 라던지, ‘맑다’ 같은 감상이 아닌 ‘ 이 정도면 누구든 속일 수 있겠구나’ 였다.
내가 그녀에게 가진 인상을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표정을 유지한 채로 목소리를 냈다. 그녀의 입술이 조심스레 읇조린 내용은 정말로, 정말로 뜬금 없다 해야할까, 정말로 이 여자 정상일까 싶은 수준의 발언이었다.
“저희, 친구할까요?”
1초? 아니 길면 2초 간 뇌가 멈춘 것 같았다. 이 여자는 뭐길래 처음 보는 내게 친구가 되자고 말할 수 있지? 아니, 내가 요즘 트랜드를 모르는 걸까? 아니, 내가 아무리 트랜드를 모른다해도 이런 게 트랜드일 일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후로도 5초간의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실로 가벼운 의미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죠, 일단 나이랑 이름부터 알려주세요.”
나를 놀릴 생각으로 한 말이라 확신 했기에 한 말이었다. 어서 굳은 얼굴이든 비웃는 얼굴이든 하며 농담이었다고 하길 바랬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서 묻어 나오던 그 투명감을 그대로 간직한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점잖고 고지식 할 것 같았던 첫인상과 다르게 그녀는 내 또래, 아니 그보다 더 어린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저는 19살, 이다은이라고 합니다.”
19살, 나랑 동갑이었다. 처음에는 설마 말 할까 하는 생각으로 건 조건이었으나, 정작 들으니 딱히 반갑진 않았다.
“아, 저도 19살, 한로운이라고 합니다.”
받은 건 돌려준다. 이게 내가 유일하게 버리지 않은 의지였다. 그렇기에 이름과 나이를 들었다면 나이와 이름을 말해주는 게 내 방식이었다.
이다은이 잘 됐다는 듯 생글 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친구 되기 딱 좋겠네요! 아, 반말해도 되지?”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말했다.
“방금 친구 된 사람한테 부탁하기는 미안하긴 한데···.”
“응? 아, 말해.”
그녀가 반쯤 감긴 눈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 조금만 잘테니, 도착하면 깨워···주···.”
그녀가 끝까지 말을 잇지도 못하고 잠에 들어버렸다. 아까까지 잘 서 있던 고개가 아래로 툭 떨어지자 꽤나 요상한 사람이란 인상이 생긴 것 같았다.
*
“이야, 그런 상태로도 게임이 눈에 들어오냐?”
내 친구···답지 않은 친구놈의 병문안을 끝내고, 병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노트북으로 게임을 키는 녀석을 보며 탄식했다. 그러자 그가 내게 손을 획획 내저었다.
“갈거면 얼른 가, 방해 돼.”
“어휴, 어련하시겠어요.”
뒤돌아 병실 문을 열자 풍성한 백발이 눈에 들어왔다. 눈 같은 새하얀 백발을 보자마자 나는 작게 그녀에게 부탁을 했다.
“이가온 저놈 게임좀 그만하게 해주세요.”
그러자 그녀가 재밌을 것 같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내 옆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뒤로 들리는 “가온아, 나 왔어.” 같은 말과, “왔어? 고생했네.” 같은 말이 들렸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것도 아닌데다,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때마침 스마트폰이 진동을 만들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807호실이야! 와주라!]
역시 인위적인 것 같은 밝음이다. 이게 그녀의 성격이라면···뭐, 내 알 바는 아니다. 그저 나는 그저 그녀의 친구···라는 명목으로 병문안에 초대됐고, 그 초대에 응할 뿐이었다.
7층이었기에 한 층 올라가면 된다는 편리함 덕에 고민할 시간에 그냥 올라갔다. 너스 스테이션을 지나 807호실 앞에 서서 옆에 위치한 환자 목록을 눈으로 훑자 금방 그녀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문을 열자 생각 한 것보다 조용한 분위기였다. 환자들의 신음소리는 들렸지만,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다만, 금방 병실로 발을 옮겼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병실에 들어서자 창가에 위치한 그녀가 보였다. 그녀도 날 발견했는지 링거를 맞지 않은 손을 마구 흔들었다. 링거를 맞지 않은 손이라 한들 저러는 게 좋아보이진 않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예상대로 그녀가 흔드는 걸 그만두었다. 그녀의 하얀 환자복을 눈으로 훑으며 물었다.
“몸은 좀 어때?”
그러자 그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랄까, 의사같은 질문이네. 어떨 것 같아?”
이다은이 아까와 같으며 다른 미소로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충 링거나 안색 같은 걸 보다가 답했다.
“멀쩡한 것 같은데?”
그러자 그녀가 조금 더 어두운 미소로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나, 1년이래.”
“응?”
“시한부라구.”
“···뭐?”
그녀가 자신의 발 밑을 가르켰다.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가 금방 다시 알아듣고 침대에 걸려 있는 걸 보았다. 거기에 적힌 건, 실로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보다싶이, 나 전소병으로 죽는대.”
전소병, 현재 원인도, 조건도 밝혀지지 않은 이상한 병이다. 심지어 증상조차 다 제각각이다. 공통점이라고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금씩 몸의 온도가 올라가다가, 결국 죽는 병이다. 그렇다고 체온을 억지로 내리려 하는 것도 악영향이라고 한다.
그 병의 존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신경은 쓰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 내 앞에 그 환자가 있다. 갑작스레 생긴 친구라 해도, 신경을 안 쓰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이다은이 다시 어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관계로, 내일도 와주라!”
듣자마자 거절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보자마자 마음이 바뀌었다. 태연한 척 하지만 눈빛이 흔들렸다. 이런 그녀에게 미처 거절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답했다.
“그러지. 뭐···.”
예전부터 종종 책을 읽다보니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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