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시다. 계십니까?

일단 소설 컨셉부터 물어봅시다. 이게 수호천사같은 거에요, 아니면 자기가 사랑을 쟁취하는 거에요?

일단 프롤로그에 들어왔습니다. 뭔가 처음부터 있어 보이는 듯한 말을 하더니 씬이 나오고 애들 시체가 널려있고 감성팔이가 지나가더니 프롬겜을 처음 마주한 남성마냥 소리지르는 장면이 나오고 땡입니다.

주인공은 이 작품에서 뭐 하는 인물이에요?

결국 작가님의 소설은 주인공의 존재감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잖아요.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건 연출의 실패를 의미하고.
그럼 이 존재감을 살리려면 주인공이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서사를 시작해야겠어요?

못했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 제대로 쓰는 게 중요할 거 아니에요. 뭐가 그리 소극적이에요. 내가 존재감 얘기를 하고 개성 얘기를 꺼냈으면 이러이러한 서사를 집어넣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어봐도 모자랄 판에, 자기가 뭘 잘못했니 이건 확 갈아엎어야 하니 한탄만 하면 뭘 어쩌자는 거에요. 내가 이러이러한 서사를 짜줄 거라고 기대만 하고 있어요?

그럼 방향은 그렇게 잡혔다고 치고, 이제 1화로 들어가봅시다.

0화

용사! 드디어 만났군요! 자 저랑 같이 아카데미에..

카이넬 말하는 거라면 아까 마차타고 가던데?

내가 더 빨랐다. 이 악역영애야

난 대가리 껴져도 소꿉친구 커플 지지해~를 좀 부드럽게 쓰면 될것같고

1화는 이제 
키배뜨는거 나오고 이것때문에 빙의되다니. 
용사가 소꿉친구랑안이어지면 하렘루트라고? 미친게임 아님?
=소꿉친구 커플을 지키면 모두가 순애루트라 자동으로 지키는게 되는것

2화(기존의 3화) 마차에서 수작질하는거 나옴. 은 어떤가요?

그걸 두고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고 해요. 원래 집필중인 소설과 설정을 비슷하게 가져가면 그냥 작가님이 원래 가졌던 단점을 담습하는 꼴밖에 안 돼요.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면서, 독자가 납득도 할 수 있으면서,
얘가 아카데미에서 뭘 할지 기대감을 만들어보라고요.

키배는 그냥 주인공이 가진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연출일 뿐이에요. 거기에 꽃혀서 소설을 이리저리 흩뜨려놓으면 안 돼요.

'흑기사'라는 단어의 여러 뜻을 생각해봐요. 세속적인 뜻으로는 뭐가 있어요? 그냥 철갑기사보다 멋있으니까~하고 정한 거라면 또 모르겠다마는.

뭔가 이런 식으로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뽑혀야 하는데, 작가님은 한 장면 장면에 집착하다 보니까 핍진성을 놓치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보내온 메일은 바로 휴지통에 버려라.

왜냐고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내가 지금 그걸 못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게임의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게임의 캐릭터 하나를 좋아했다.

특별함을 따지자면, 후속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것 때문에, 나는 이 망할 게임에 떨어졌다.



일단 짧게 하나 써봤습니다. 길게는 지금 써볼게요.

아직 쓰고있어요?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아직까지도 잔불길이 남아있는 황무지.

다 타버린 채 누워버린 무기 쪼가리. 미약하게 들려오는 신음 소리. 곳곳에 섞인 비명.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쓰러진 동료들, 어느새 먹먹해진 귓가와 어두워진 시야.

별 거 아니다.
그냥 망겜이 '망겜' 해버렸을 뿐.

"진짜, 답이 없나?"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해피엔딩 이벤트의 빈칸.
올 클리어까지 필요했던 마지막 1%.
나는, 이번에도 게임 클리어에 실패했다.

<나이트 하트 트릴로지>.

많은 게이머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유명세를 달리던 1편, <나이트 하트>.

그 유명세를 모조리 까먹고 이제는 기억하는 유저도 거의 없는 2편, <검은 심장>.

3편은 어디 갔냐고? 2편에서 거하게 말아먹은 탓에 제작 여부조차 불투명한 지경이다.
1편의 반이라도 갔으면 됐을 텐데, 병신같은 놈들.
결국 서버에 남아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인원은 1명. 나 혼자만이 남아버렸다.

"……."

접어버릴까, 이딴 게임.
1편 주인공은 2편이 시작되자마자 뒤지고.
새로운 주인공이랍시고 내세운 캐릭터 둘은 온갖 떡밥은 다 뿌리더니 결국 동반자살이나 하고.
걔네 둘이 죽은 탓에 스토리는 산으로 가더니 이윽고 디지털의 벽을 넘어 현실에까지 좆같음을 선사했다.

"……욕할 처지는 아닌가."

그런데도 게임을 못 놓는 내가 더 멍청한 놈일 테니.
괜한 호승지심에 데이터를 뜯어보기 시작했던 게 화근이었다.
게임사조차 <검은 심장>의 달성률 최고치가 99%라고 공인했는데, 마지막 업데이트에서 새로운 엔딩이 나타났으니까.

"후속작 떡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크립트를 검토해본 결과는 이거야말로 마지막 1%, 진짜 해피엔딩.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이 게임을 시작하게 만든 이유였던 캐릭터가 메인 히로인으로서 활약하며 모든 시나리오를 해결해내는 루트였다.
이름 한 번 거창했다. 그랜드 파이널 루트.
다른 루트는 각각의 캐릭터 이름이 붙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확실한 특별 대우였다.
뭐, 원래부터가 이름 없이 '백무녀'라 호칭되었을 뿐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엔딩은 못 봤어."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사회인 신분에 이르기까지의 약 5년.
<나이트 하트: 검은 심장>의 출시일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
청년이라는 단어보다 소년이 조금 더 어울리던 시기의, 나의 세계.
슬슬 나도 소년기의 아집을 버려야 할 때가 와버리고 만 걸까.

그럼 다음 내용이 뭐가 올지 감이 와요? 위에서 했던 브레인스토밍을 참고해 봐요.

[읽지 않은 메일이 1개 있습니다]

화면 한켠에 메일이 왔다며 알림이 뜬 건 그때였다.
스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메일을 보낸 주소가 게임사였다.
뭐야, 나한테 연락을 넣을 이유가 없는데?

[보내주셨던 자료들은 잘 읽었습니다.]

아, 예전에 보냈던 그건가.
엔딩의 존재는 알아차렸는데, 인게임에선 왜 그랜드 루트는 조건 충족이 안 되냐고 물었던 문의메일.
무시당한 줄만 알았는데, 용케 읽었던 모양이었다.

[적어주셨던 것처럼, 현재 그랜드 루트는 저희가 임의로 막아둔 게 맞습니다.]

깔끔한 인정.
게임 속에서 몸 비틀던 내가 불쌍하긴 했나 봐?

[그리고 예상하셨던 것처럼 이는 3편, <나이트 하트 트릴로지>를 마무리지을 작품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맞습니다.]

순간 두근거렸다.
이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조차 언급하지 않는 3편.
제작 여부조차 불투명한 그 게임의 베일이 벗겨질 여지가 보였으니까.

'그래도 두 번 믿으면 미친놈이지.'

눈을 부라렸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이번에는 세상이 미쳐있는 작품입니다~라며 드리프트를 틀어도 이상하지 않은 놈들이다.

[우선 감사를 표합니다. 게임을 계속 플레이해주셔서, '스토리'를 계속 진행해주셔서. 실제로 이 게임은 당신 덕에 유지되던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안 속을 거다.

[그렇기에 약소하지만 보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원래는 좀 더 빨리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합니다. 개발이 너무 오래 걸렸거든요.]

안…속을…거다….

[1편의 부제는 <나이트 하트>, 2편의 부제는 <검은 심장>. 각각의 작품들이 이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다뤘으니, 3편은 한번 '과거'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과거편?

[1편과 2편에 등장했던 모든 인물이 한 장소에 모이는 곳을 배경으로, 그들이 어째서 그러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지, 과연 결말은 바뀌지 않는 것인지, 당신은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가 이번 게임의 주된 스토리입니다.]

[3편의 부제는, <그랜드 하츠 아카데미아(Grand Hearts Academy)>.]

[<나이트 하트 트릴로지>를 사랑해주셨던 당신을, 이 게임의 첫 플레이어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그 아래에는 링크와 함께 파일의 해독키라며 복잡한 문자열이 쭉 적혀있었다.
게임 내부 이미지라며 나와 있는 일러스트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웃고 있는 사진. 전작의 주인공들이 모여 번영하는 도시를 바라보는 사진, '그랜드 루트 엔딩'이라 적혀있는 해피 엔드의 사진.

솔직하게 인정한다.
나는 혹했다.
호기심이 결국 적대심을 이겨버렸다.

도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이렇게나 시간을 들였는지.
내가 데이터로 확인했던, '그' 엔딩에 다다르려면 어떤 길을 밟아야 하는지.
링크를 클릭해 데이터를 확인했다.

—사랑이란 거, 한번쯤 해보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지금도 끌리고 있는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도 100개 좀 넘게 쓰니까 됐어요. 1부터 가르쳐주려다 보니 12시간쯤 걸렸네요. 막판엔 결국 내 필력자랑이 되어버렸는데... 애교로 봐주십사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