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고 아주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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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뒈지면 지옥에 간다고들 말했다.

근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을지도?

빌어먹게 차가운 곳에서 일어나 하늘을 봤을 때 내 머리 위로 천사 모양의 링이 붕붕 떠다니는 것까지는 내가 생각한 사후 세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최근 전장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죽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서 그다지 감흥도 없었다.

근데...

음.

그게 없어진 걸 보니, 아무리 봐도 사후 세계에선 성별조차 변하는가 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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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들여다보니 시침은 11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쏟아진 포격으로 전방 부대의 피해가 만만하지 않자 사령부는 우리를 전방에 투입했다.

군화를 조심히 바닥에 내딛으며 고개를 숙였다.

만약 야간 경계 중인 적 기관총사수에게 걸리는 순간 몸이 벌집이 되어버릴테니까.

늦은 밤에 모래가 약하게 휘날리며 고요를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곁에 두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딱히 상관도 없다.

그 폭탄도 우리라는 폭탄을 곁에 두는 것이니까.

근데 나는 전우를 너무 믿었나보다.

적이 뿌려둔 대인 지뢰를 피해 전진하던 중, 뒤에서 총탄이 날아와 내 옆에 있던 지뢰에 꽃혔다. 

폭발음과 함께 몸이 붕 떴고, 이미 오른쪽 발목은 감각이 없는 상태였다.

몸이 바닥에 닿기 직전, 사이렌이 울리고 예광탄들이 우리 쪽 진지로 날아갔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


그러니까 단순히 말하면 프래깅을 당해 죽었다.

난 얼굴은 깐 적도 없다, 오로지 총만 쏘던 놈이었는데 왜 프래깅을?

돈이 궁한 놈이었을거고, 얼굴을 깐 적도 없으니 죽여도 가장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빌어먹을 곳에는 다시 안가도 된다는게 굉장히 좋긴 한데..

그곳이 없는 건 약간 곤란하다.

고향은 얼굴을 까고 다니는게 죄악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어릴 때 얼굴을 가릴게 없어서 곤란했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여자 남자의 구분이 어려워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 적이 없..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근데 군대에 들어오고 전우들이 아내나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은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는데 새삼 부럽더라.

아무튼 그것도 없으니 못하겠지만.

가슴은 본래 내 수준이니까 성별이 변한 것은 아닌가?

.. 그건 아닌 것 같다ㅡ 

무슨 관 같이 생긴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있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피부가 뽀얗고 키도 원래 나보다 엄청 작았다.

손도 작고, 다 작았다. 

적어도 초등학생, 아무리 많아야 중학생 되어보이는 몸이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내가 거울을 찾아 날 바라봤을 때...

( 삽화가 들어갈 예정 )

이게 여자지 남자겠냐고 젠장할...

백발 적안이었지만 피부색을 보면 백색증은 아니었다.

오히려 백색증이어도 나오는게 불가능에 가까운 아주 진한 붉은색 눈동자였으니..

" 이게 뭐야아... "

심지어 목소리조차도 여자아이잖아?!

나는 죽음으로서 나이가 어려짐과 동시에 성별도 변해버렸다.

사후 세계, 제 2의 인생을 가지는 것은 나도 항상 원했던 것이니 상관 없지만,

아무리 봐도 적응까지 아ㅡ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일단 주변을 둘러보자, 진정해.. 진정. 전생에는 특수부대원이었잖아? 그렇지..?

하지만 몸이 변하면서 마음도 변한 것인가, 갑자기 두려움과 공포가 머리를 가득 매웠다.

결국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은 포기. 그리고 지금 속옷 밖에 입고 있지 않아서 굉장히 추우니 옷부터 찾자...

방에 딸린 수많은 수납장 중에서 옷이 들어갈만한 수납장들을 찾아 열었지만 갖가지 잡것들만 들어 있었지 옷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운이 겁나 나빴던건지, 좋았던건지, 침대 아래 서랍장에 옷이 있는 걸 찾아냈다.

가능한 가볍고 단순한 후드티랑 긴 바지를 입고 목도리를 목에 둘러 입까지 올렸다.

습관이었으니, 전생의 생활 양식이나 습관은 그대로 딸려오나보다. 아니면 자아는 전생이라 같아서 그런가.

옷을 입고 나니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조차 고풍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고목 침대였고, 갖가지 장식품이 달려 있고 나무를 통해 마치 중세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전생에 내가 살았던 방보다 훨씬 넓었다.

일단 내가 입고 있는 옷부터 침대 서랍장에 스마트폰이 있었으니 중세는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돈이 좀 많은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보다. 

그리고 이제야 느낀건데, 링거를 꽃고 있었다. 링거는 반쯤 달아 있었으니 최근에 꽃은 것이겠지.

링거를 잡아 뽑았다. 여린 여자아이 몸이라 그런지 굉장히 따끔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문 앞에서 길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깨어난지는 얼마 안된 것 같지만,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생각해야겠..

" 아.. 아가씨...? "

" 네..? "

하지만 어느 남자에게 딱 걸렸다.

" 아.. 아가씨가 깨어나셨다!!! "

" 에...?? "

" 빨리 주인님한테 알려! 그리고 일단 아가씨는 잡아!! "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그래도 엄청 작은 것은 아니라 그런지 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체력이 엄청 딸렸다.

신체 능력은 적어도 며칠 간은 병상에 누워있던 아이일테니까..

결국 어떻게든 한계까지 뛰다가 계단에서 현기증이 와 넘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기억을 잃었다.

하지만 깨어났을 때, 몸이 변하지는 않았다.

아 젠장.

나 이제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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