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초대받지 못 한(1)



허울좋던 건물의 뼈대는 인간의 탐욕과 시기에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서민들의 기시감과 함께 폭삭 무너져내렸다. 말 그대로 붕괴. 남아있는 것이 없는 인재人災이자 하늘이 내린 천재天災였다.


쿵―. 아날로그 TV의 노이즈 낀 화면으로 바라보더라도 휘청거리는 건물이 바닥으로 쓰러질 때의 굉음과, 그것을 뚫고 나오는 탄성과 비명소리의 오디오가 좁디좁은 사무실의 방 안을 가득 메운다.


깡촌에서 힘겹게 날아와 도착한 곳의 서식지를 빼앗긴 철새들은 울고, 비싼 돈을 주고 호시탐탐 부자를 꿈꾸던 기회주의자들는 비열하게 굴고, 국가의 산업공단들은 죽은 사람을 묻었다. 


기호 2번 케로로의 사진이 자료 화면으로 나왔다. 나는 조용히 승리를 자축하는 위스키를 유리잔에 반쯤 따라서 홀짝이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에 보관을 잘못 한 모양인지 살얼음이 약간 서려있었다.



"이야, 내진 설계고 지랄이고 아주 개박살이 나버렸구만. 응?"



옆 쇼파에 앉아있던 토마스가 탁자 위에 하얀 종이를 평평하게 깔아 연신 대마를 말며 중얼거렸다.


두꺼비 1차. 두꺼비 2차. 그리고 두꺼비 3차. 녀석들도 생각이 있었는지 일본의 수도인 니시토쿄시의 호화로운 아파트를 본따 만들었다며 연신 광고하던 공공임대.


물론 정말로 그런 기술력을 도입하여 값비싸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구라를 쳤는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딴건 더이상 중요한게 아니었다. 놈은 이미 정계에서 추방당한 직후였으니까.



"그래도 케론당은 멸망하지 않아."


"어째서지 뽀로로?"



나는 자리에 일어나 TV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금마는 아직 젊으니까."



후우. 입 안 가득 머금은 담배 연기가 후끈하게 식도를 뎁히고는, 이내 화면 안에서 울먹거리는 케로로의 얼굴에 듬뿍 뿌려진다. 마치 싸구려 AV배우 같았다. 케로로는 매운 연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와 시민들의 폭언에 고개를 떨궜다.



'계보 정치, 패권 정치보다 강력한건 역시 돈 정치다. 모든 사람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공식선상에서 냅다 혀를 깨무는게 노후에 편하겠지.'



케로로는 이제 막 28세에 이곳으로 발을 디딘 신삥이었다. 고학력자에 여러 분야에서 실력을 증명했다 하여도 재수가 없다면 단 한순간에 판이 뒤집어지는 이 짝에서 나이는 곧 권력.


경험도, 인맥도 없는 싸구려 인력들은 정당에서 내쳐진다. 꼬리 자르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몸을 기대고 의존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돈 밖에 없다. 돈도 없다면 허름한 천장이나, 고목나무 가지에 묶인 신발끈 뿐. 



―이것은 케로로 후보의 단독적이고도 깅압적인 정책 실패였습니다. 대다수가 반대했지만, 그는 결국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우리 정당은……



케론당의 대변인이 참담함을 연기했다. 아무래도 다음 선거 때에는 저 녀석이 나올 모양이지.


이어서는 기자가 가족과 터전을 잃은 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우는 사람과 화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흙먼지에서 산소를 찾고자 뒤적거리고, 눈을 비비며,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허공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 사람들도 하늘이 원망스러울까? 그렇지 않았다. 가난하고도 바보같았던 그들은 역시나 멍청했기에 건물을 원망했을 것이요, 건물을 지은 노동자를 증오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비난의 화살이 케로로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가. 가장 무지한 사람들은 스스로였고, 그들이 말하는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 은 역시나 그들의 자화상이었다. 기자의 인터뷰에서 토해내는 울분은 스스로를 향해 뱉은 침이었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가래는 후회의 피가 뒤섞여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이내 하수구를 타고 흐르는 역겨운 액체는 다시 눈 덮힌 숲속 마을의 주민들이 사는 곳의 수도로 도착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들이키면서 뉴스를 보고 눈물을 흘리겠지. 무식의 악순환이다.



"……그나저나 밥은 먹었는가? 오늘 당선은 확정이라며 소소하게 식사나 대접한다 문자가 왔는데."



토마스가 거만하게 앉아 막 말은 대마를 입에 꼬냐물며 내게 물었다. 높으신 분들의 연회라며 웬만하면 가자고 손짓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사고 현장을 든든하게 봤기에 배는 불렀고 가득 찬 위장에서 위스키가 출렁거렸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어디로 모실까요 회장님?"


"회장님은 씨발……, 이제부터 보좌관이라 불러."


"아 알겠습니다!"


"뭘 또 보좌관 까지야.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니야 토마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그의 말은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너도 알다시피 아직 담굴 애들이 많아. 이 바닥에서 명줄 꼭 붙잡고 싶으면, 내가 밀어줄 때 팍 올라가야 하지 않겠나?"


"그래, 그래야겠지."



내가 만족스러운 위치까지 올라가지 못 한다면, 당장이라도 뒷통수를 후리겠다는 의미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래에는 몰라도 지금 토마스를 잃는 것은 위험하다. 토마스가 나의 적이 되는 것은 더더욱이. 함부로 그를 죽일 수 없는 이유도, 그의 등을 쳐먹을 수도 없는 이유도 오로지 내 안위를 위해서일 뿐.


이 사실을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이에 의리와 정은 없다. 우리는 은행원보다 더욱 철저히 자본으로 움직이고, 병원장보다 확실하게 생명을 담보로 행동한다.


그러기에 정치인, 바르다正 생각하는 것 안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부끄럽고도恥 수치스러운 것이 가득 차있는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회장……, 아니 보좌관님."


"익숙하지 뽀로로? 내리기 전에 나랑 한 가지 약속하자."



토마스가 내 옆에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술은 다섯 잔 이상 마시지 않기. 돈과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입 닥치고 있기. 전화기 전원은 아예 꺼두기."



마지막으로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단순하나, 아주 치명적인 것을 피하라고 당부하였다. 그것은 바로 여자. 2차라 불러도 좋고, 매춘이라 불러도 일맥상통하며, 저급하지만 눈 덮힌 숲속 마을에서는 좆집이라 불렀다.


이것은 왜 이렇게 했냐, 이는 왜 이렇게 했냐. 정책에 대한 코멘트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상대의 기분을 조금 상하게 만들지라도, 그들조차 최대 이윤을 보고 움직이기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피를 나눈 의형제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이름 석 자 밑에 파렴치한 수식어가 붙는다면. 가령 성 상납의 성性자만 새겨져버려도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게 된다. 횡령도 고성방가도……, 좋다. 오로지 여자와는 엮이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철칙이자 철학이다. 사람들은 살인범보다 강간범을 더욱 말종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니까.



"너도 아주 잘 알다시피 그건 내가 도와줄 수가 없어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걱정하지마. 그정도는 나도 아니까."



루피나 패티나……, 어쩌면 내게 여자와는 필연적인 악재가 새겨져있는 모양이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토마스와 함께 차량에서 내렸다. 비릿한 바닷바람 냄새가 정겨우면서도 혼미스럽게 불어왔다. 



"뽀 후보, 왔는감?"


"반갑습니다. 이번 눈 덮힌 숲속 마을 군수로 출마한 뽀로로입니다."


"앉아 앉아. 토마스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던데? 많이 본받아야겠더라고. 공공임대를 짓는다는 게 퍽 어려운 선택인데……"



늙고 살이 찐 그들은 정치인보단 사업가나 수완가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툭 튀어나온 배. 그 모습은 언뜻 보기에는 정치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으나, 그들의 말투에서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말에서 돈냄새가 난다면 사업가, 피냄새가 나면 건달이며, 솔직한 맛이 나면 정치인이다. 그것의 십중팔구는 거짓말이기에, 그가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일반인과 구분이 어렵다. 사기꾼과는 일맥상통하면서도 결을 달리한다. 그러기에 포근해보이면서도 정다워보이는 인자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여, 날씨도 춥다춥다. 뜨끈한 화요 한 잔 해야쓰겄제?"


"암요. 뭘 못 마시겠습니까? 뭐라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역시 노는 게 제일 좋당 출신들이 아주 예의가 발러. 응? 자, 쭉 들이카. 쭈우욱 들이카!"



곁눈질로 토마스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능수능란한 처세술로 새로운 자금줄을 모색하는 모양이었다.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뜨뜻한 온기와 찻잔처럼 생긴 술잔의 두툼한 감촉을 느끼며 미지근히 뎁힌 화요 한 잔을 식도에 털어넣었다. 후끈하게 올라오는 부드러운 매운맛이 위장을 따스하게 감싸주며 알코올 향이 포근하게 덮어준다.



"회도 안 나왔는디 벌써 한 잔 해유?"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낯선 얼굴이 보였다.


나는 스끼다시를 한 점 먹으려다,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은 채로 싸늘해진 분위기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점마 누꼬? 야! 야이 씹새끼……"



내게 술을 따라준, 즉 가장 연장자이자 사업가이자 막대한 부를 가진 어르신이 자리를 벅차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곱게 늙지 못 한 이 사람도 한 성깔 하는 모양이지.


낯선 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티딕! 테이프가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어제부터 입맛이 비리다 비리다 하더만, 사시미집일 줄이야! 나는 회를 못 묵는디, 여 육회도 팔아유?"



그는 능청맞게 횟집 점원에게 질문을 느젓이 던졌다. 물론 어르신의 폭언을 듣고 깜짝 놀아 모른다며 손사레질을 치고는 주방으로 뛰어갔지만 말이다.



"무튼 사시미집인줄 알았음, 내 횟칼은 안 들고 오는건데……, 뭐 잘 됐슈."



은은하게 켜진 조명 탓에 잘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닌 길쭉한 사시미 칼이었다.


잘 못 본게 아니었다. 토마스는 끝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뒷문을 열어두었고, 음산한 기류도 낮게 깔려있었다. 횟칼에는 날 부분의 4cm을 제외하고는 갈색 테이프로 칭칭 감겨져있었다. 살인으로 번거롭게 법적 공방을 치루지는 않겠다만, 수틀리면 진심으로 찌르겠다는 의미였다.



"보통은 3cm만 남기는디, 이짝 사람들 인정이 참말로 좋아부러……"



터벅―. 그가 천천히 우리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에는, 아무 말도, 소리도 내지 못 한채로 올라오는 취기에 의미심장하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얕은 웃음만을 띄울 뿐이었다.






오랜만에 써보니 머쓱하면서도 약간 부끄럽네용...


+혹시 몰라서 올려보는 본인 인증입니다...! 여기서 뽀와르를 열심히 뚝딱뚝딱 오리지널로 바꾸는 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