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견에서 시작되었으나, 마법소녀는... 못 쓰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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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빌어먹게 넓고, 그렇기에 누군가는 싸우고 있을 것이다.

내 고향 사람들은 흔히들 사람은 뒈지면 지옥에 간다, 라고 말했다.

근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을지도?

빌어먹게 차가운 곳에서 일어나 하늘을 봤을 때,

내 머리 위로 천사 모양의 링이 붕붕 떠다니는 것까지는 내가 생각한 사후 세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군인인데다가 최근 들어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죽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서 그다지 감흥도 없었다.

근데...

무언가 없어진 걸 보니, 아무리 봐도 사후 세계에선 성별조차 변하는가 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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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들여다 봤다.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조끼의 부직포도 좀 손봤다. 

싸우는데 탄창이 튀어버리면 내가 지옥으로 직행해버리잖아?

총은 꽤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손에서 오래 굴러서인지, 손때가 잔뜩 묻어있었다.

솔직히 최근 들어 갓 나온 신상 총들, 특히나 독일제는 보지도 못했다.

탄창을 끼웠을 때, 깔끔하게 소리가 울렸으니 총은 딱히 이상이 없다.

머리에 올라가 있던 야간투시경을 내렸다. 

순간 밝은 빛들이 눈으로 달려들었다가 점점 뿌옇게 변하며 앞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린 도시, 특히 달조차 뜨지 않은 오늘같은 밤은 이만한게 없다.

문을 열고 나와, 복도로 슬그머니 발을 들였다.

발소리를 가능한 줄이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뭇잎이 흩날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계단에 발을 대자, 아래 층에서 문이 젖히는 소리가 들렸고, 달려오는 발소리는 계단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총을 앞으로 뻗었다.

턱턱.

옅고 둔탁한 총성 이후, 한 남자가 총을 떨구며 쓰러졌다. 

그게 나라는 걸 인지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배에 들어오는 심한 통증에 무언가를 붙잡을 틈도 없이 계단을 굴러 떨어졌다.

머리가 바닥에 닿는 순간, 날 쏜 사람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 전우였다.

... 젠장.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머리에 들어오는 감각에 온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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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기억에 따르면 프래깅을 당해 죽었다.

난 얼굴은 깐 적도 없다. 그냥 총만 쏘던 놈이었는데 왜 프래깅을?

뭐, 적이랑 거래를 했다 하면, 얼굴을 깐 적도 없으니 죽여도 가장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빌어먹을 곳에는 다시 안가도 된다는게 굉장히 좋긴 하지만.

... 그래서 얼굴은 왜 가리냐고?

고향은 얼굴을 까고 다니는게 죄악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어릴 때 얼굴을 가릴게 없어서 곤란했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여자 남자의 구분이 어려워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 적이 없..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근데 군대에 들어오고 전우들이 아내나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은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는데 새삼 부럽더라.

아무튼 그것이 없으니 내가 주도 입장에서는 못하겠지만.

손가락을 꺾었을 때 심하게 아픈 걸 보면 꿈은 아니다. 사후세계가 맞을 것이다.

가슴은 본래 내 수준이니까 성별이 변한 것은 아닌가?

... 그건 아닌 것 같다.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있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피부가 뽀얗고 키도 원래 나보다 엄청 작았다.

적어도 초등학생, 아무리 많아야 중학생 되어보이는 몸.

그리고 결론적으로, 내가 거울을 찾아 날 바라봤을 때...

( 삽화 )

이게 여자지, 남자겠냐고. 

백발 적안, 그렇지만 피부색을 보면 백색증은 아니었다.

오히려 백색증이어도 나오는게 불가능에 가까운 아주 진한 붉은색 눈동자였으니...

" 이게 뭐야...? "

심지어 목소리조차도 여자아이잖아?!

나는 길거리에서 얼굴을 다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붙잡고 물어도 '남자'라고 답할 정도로 목소리가 굵은 편이었다.

근데 아주 여린 여자아이 목소리가 난다고..?

... 나는 죽음으로서 나이가 아주 어려짐과 동시에 성별도 변해버렸다.

사후 세계에서 제 2의 인생을 가지는 것은 나도 항상 원했던 것이니 상관 없지만,

아무리 봐도 적응까지 아ㅡ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일단 주변을 둘러보자, 진정해.. 진정. 아마도 전생이었던 삶에서는 특수부대원이었잖아? 그렇지..?

하지만 몸이 변하면서 마음도 변한 것인가, 갑자기 두려움과 공포가 머리를 가득 매웠다.

결국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은 포기. 그리고 지금 잠옷 밖에 입고 있지 않아서 굉장히 추우니 옷부터 찾자...

방에 딸린 수많은 수납장 중에서 옷이 들어갈만한 수납장들을 찾아 열었지만 갖가지 잡것들만 들어 있었지 옷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운이 겁나 나빴던건지, 좋았던건지, 침대 아래 서랍장에 옷이 있는 걸 찾아냈다.

가능한 가볍고 단순한 후드티랑 적당한 주머니가 달린 긴 바지를 입고 목도리를 목에 둘러 입까지 올렸다.

습관이었으니, 전생의 생활 양식이나 습관은 그대로 딸려오나보다. 아니면 자아는 전생이라 같아서 그런가.

옷을 입고 나서야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조차 고풍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고목 침대.

아기자기한 갖가지 장식품이 달려 있고, 나무를 통해 마치 중세와 같은 느낌를 살린 물건.

" ... 아무리 봐도 꽤나 비싸보이는데... " 

목소리가 여자아이인 것은 다른 것에 비해 적응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무튼 방은 전생에 내가 살았던 방보다 훨씬 넓었다.

그러나 내가 입고 있는 옷은 합성 섬유이고, 침대 서랍장에 스마트폰이 있었으니,

중세는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돈이 좀 많은 집안의 딸인가 보다. 

그리고 이제서야 느낀건데, 링거를 꽃고 있었다. 링거는 반쯤 달아 있었으니 최근에 꽃은 것이겠지.

왼손으로 링거를 잡아 뽑았다. 여린 여자아이 몸이라 그런지, 굉장히 따끔해 신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여기서만 버틸 수는 없는 터인데다가, 방이 어둡기는 엄청 어두워서 뭔가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문 앞에서 길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깨어난지는 얼마 안된 것 같지만,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생각해야겠..

" 아.. 아가씨...? "

하지만 어느 남자에게 딱 걸려버리고 말았다.

" 아.. 아가씨가 깨어나셨다!!! "

" 에...?? "

" 빨리 주인님한테 알려! 그리고 아가씨는 잡아!! "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그래도 엄청 작은 것은 아니라 그런지 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체력이 문제였다.

신체 능력은 적어도 며칠 간은 병상에 누워있던 아이일테니까... 

결국 어떻게든 한계까지 뛰다가 계단에서 현기증이 와 넘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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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때, 방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날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날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당신네 딸 아니거든...

하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애초에 입을 열어도 믿어주지도 않을걸?

일단 이 아이의 기억은 일절 없고 내 전생 기억만 가득하니, 내가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아이인 척 해야했다.

그리고 이 아이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을 알아가야할테고ㅡ.

왜냐면 돈 많은 집안이라 비서가 좀 많은 것 같거든.

그건 모르겠고 꽤나 부담스럽습니다...?

잠자코 바라보고 있으니, 손가락을 펴 나에게 흔들어보이는 남자.

" 이거 보이니...? "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몇으로...? "

" 3... 이요. "

갑자기 남자가 쓰러지자, 옆에 있던 하인들이 그를 부축해 방 밖으로 내보낸다.

" 저기.... "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라 내가 내는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 거... 거기 한분만 빼고 전부 나가주세...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지목한, 날 처음 발견한 남자 하인을 제외하고 전부 방에서 나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팔이 온통 까졌고, 링거는 다시 꽃혀있었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기에 다시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쌔한 시선이 느껴져 방에 남겨둔 남자 하인을 바라봤다.

그후로 몇분동안 계속 바라봤지만, 분위기는 여전했다.

어색하고, 미묘하게 기쁜 분위기.

" ... 아가씨, 절 기억하십니까? "

" 네...? 아니요... "

" 아... 절 가장 먼저 지목하셔서 기억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저는 아가씨의 시종인, 이사카 요시카와라고 합니다. "

" 아... 네.. "

" 편히 말하셔도 됩니다. 저는 아가씨의... "

시... 종이셨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 예전이라면 머리를 총알 구멍으로 장식해줬을테지만, 


지금은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부끄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감각은 이미 이 아이에게 동화된 것 같다.

하지만 내보내자니 외롭기도 하고, 지금의 목적인 아이에 대한 정보는 단 하나도 얻지 못했다.

" ... 이사카 씨... "

" 네, 아가씨. "

" 저는 저에 대해서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 

이 아이의 입장에선 맞는 말, 이전 삶의 입장에선 틀린 말.

거짓말이면서 거짓말이 아닌 말.

그 말을 꺼내고 고개를 바닥에 파묻었다.

본래 잘 안 울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왈칵하고 울음이 쏟아졌다.

이사카가 당황한 듯 나한테 다가왔지만, 잠시 멈칫했다.

아무리 아가씨가 운다고 해도 시종이 접촉을 한다면 짤리는 건 흔한 일일테니까...

하지만, 그는 등을 토닥이며 몰라도 괜찮다며 위로했다.

자신의 일보다는 아가씨가 중요하다는걸까.

본심은 남자인지라 호감을 가지는게 이상하겠지만, 그래도 같이 있어준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이사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 괜찮습니다, 다시 알아가면 되니까요. 그렇죠? 아츠키 시이노 씨. "

... 남자의 정체성은 버리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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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나는 이 이사카 씨한테 거의 모든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아츠키 가의 유일한 딸, 아츠키 시이노. 

나이는 현재 12살. 

7살 때 사고로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다가 지금과 같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내면의 정신이 변하긴 했지만...

만약 사후세계라면 실존하는 세계로 돌아갈 확률은 제로. 여기에 눌러살거나 해야한다.

하지만 사후세계로 보기에는 약간 애매하다. 

그렇기에, 시이노가 되는 것은 그다지 나빠보이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제 2의 인생... 이니까 말이다.

" 이사카 씨. "

" 네, 아가씨. "

" 저, 저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

나는 커튼이 걷혀 빛이 인정사정 없이 내리쬐는 창문을 가리켰다. 

" 엣, 그 몸으로 나가시게요? "

" ... 하하, 역시나 안되겠죠? "

"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

" 괜찮아요. "

나는 이사카 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온화한 미소를 보여줬다.

이사카 씨는 내 얼굴을 보곤 미안합니다, 라는 작은 말로 화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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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작성이 되었습니다. 몇달 버려놨다보니 한 3천자 정도 늘고 늘지 않았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