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이 누렇게 익어버린 플라터너스 잎사귀에게 부채질을 가해 낙화를 재촉할 무렵, 남자는 먼지와 지문으로 얼룩진 쇼윈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찢어져라 올리고 있었습니다.



쇼윈도의 바닥에는 ' 유리창에 손 대지 마시오 ' 라는 위압적인 붉은색 페인트의 철자가 적혀진 팻말이 플라스틱 인조잔디 위에 나사로 박힌 삼각대에 의지해 우뚝 서 있었고, 그보다 훨씬 큰 네모난 거치대를 손으로 짚으시고 구름과 수심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시고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서 계셨어요.



아아, 어쩜 저리도 아름다운지! 마치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라고 생각될, 가련한 수련 한아름과도 같으신 분입니다. 저 분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감싸 안아주시고, 상처입으신 짐승을 바라보시며 애잔함을 느끼시곤 돌보아 주실 것이 분명하십니다.



전두엽이 절제된 것 같이 너무나도 무표정한 얼굴은 오히려 청조한 아름다움을 부드럽게 뽐내시고, 가냘픈 목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기다란 무광색의 흑발은 인형에 입혀주는 비단 옷감을 연상케 합니다.



쇼윈도 속의 아가씨의 앞머리엔 머리핀을 대신하고 있는 ' 코요테 시즌을 위한 신상품! 799 달러! ' 라는 가격표가 보이고, 쇼윈도의 천장에 걸려선 돌돌이는 먼지가 가득한 환풍기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아주 섬세하게 휘날려 주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시킵니다.



게다가 쭈욱 뻗은 육감적인 다리를 희끗이며 뽐내는 옆구리 부분이 살짝 파인 붉은색 브릿지가 인상적인 드레스는 또 어떻습니까? 



 ' 5년간 품질 보증 및 무상수리 ' 라 적힌 셀로판 허리띠로 꽁꽁 둘러진 유선형의 허리는, 로망스에 불타 오르는 분위기에 취해서 화악 껴안아 버리면 똑하고 부러질 것만 같아요! 



쇼윈도 속 아가씨에게 완전히 반해버린지 어언 3달째, 아니면 3주 째? 어쩌면 3년 째가 되던 날, 남자는 자신이 입을 수 있는 가장 멋진 옷과, 그녀를 꼬옥 안고서 집까지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 물론, 자신이 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 튼튼한 인조가죽 구두를 신었습니다. 



색이 다 빠져 검정색이 연청색으로 보이는 연미복 외투와, 코 부분이 전부 까져 양말이 보일랑말랑하는 구두를 보고 그를 사랑해줄 거리의 아가씨들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적어도 이 쇼윈도 속의 수련께선 남자의 수줍은 사랑의 마음을 받아주시지 않으실까요? 



헤벌쭉해져선 어쩔 줄 몰라하며 시멘트 바닥에 발을 마구 굴러대는 남자는, 거미줄처럼 실밥이 죽죽 그어져서 떨어지기 직전인 외투의 주머니를 엉거주춤하게 잡고선, 쇼윈도를 차려놓은 가게의 문을 어깨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짤그랑! 하고 현관에 달린 길이 45mm 짜리의 황동색 윈드 차임들이 소리를 울려대며,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곤 카운터에서 길쭉한 붉은색 립스틱들로 가득찬 탄소섬유 가방을 만지작이는 그리서 스타일 복장을 한 키가 작은 주인장의 주의를 끌어대었습니다.



주인장은 가방을 만지작이던 손을 톡 내려놓고는, 양 손을 매만지다가 말굽 모양의 목조 카운터의 위에 손을 올려놓고선 코를 킁킁이며 기이한 차림을 한 남자를 한참 바라보더니, 영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입을 열었습니다. 



"뭐, 장례식이라도 갔다 오셨수? 아니면 이제 개최하려는 참인감?"



"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기, 저기. 쇼윈도 속의 아가씨, 지금도 파는 거 맞죠? 그렇죠?"



익살스러운 빈정거림에 맞받아치는 대꾸는 커녕, 무스를 조금 과하게 발라서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쭈욱 넘기신 눈가가 흥분으로 바르르 떨리는 덜떨어진 연미복 차림의 손님의 질문 공세에, 주인장은 에 하고 말을 길게 늘리면서 카운터를 손가락으로 토독 토독 두들겨 대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음, 코요테 시즌이라고 적힌거 말이지비? 당연히 아직도 팔고 있지. 그리고 아가씨라니, 젊으신 분이 늙은이들 말투를 따라하면 쓰나. 운전면허증이나 신분증 주쇼. 이거 좀 간단하게 쓰시고... "



더 냅뒀다간 간질이라도 일으킬 판이로구만. 



속으로 중얼이며 간단한 신원조회서 및 서류를 스윽 내밀고는 쇼윈도 쪽으로 다가가는 주인장은 까치발까지 뛰면서 쇼윈도를 뚫어져라 기웃 기웃거리는 남자가 행여 돌발행동을 할까봐, 허리춤에 걸린 2.5인치 짜리 리볼버의 그립의 윗부분에 왼 손을 휘휘 흔들어 대고는 쇼윈도의 잠금을 풀러내었습니다.



달그락거리는 자물쇠가 풀리는 소음과 함께, 쇼윈도의 여닫이문이 돌돌돌 굴러가며 개방되었습니다. 인조잔디에서 저 가녀린 하이얀 발을 놓으시느라고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저 갑갑한 쇼윈도에 갇히셔선 얼마나 오랫동안 남자를 기다리셨을까요?



주인장은 쇼윈도 속 아가씨의 허리를 양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고는, 천천히 끌러내어선 공주님 안듯이 가슴팍에 폭 안고선 카운터로 되돌아 왔습니다.



허나 남자는 서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는지, 볼펜도 잡지 않고, 제 이름 한 자도 적지 않았던데다 신분증까지 올려놓지도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구매 의사가 있기나 한 걸까요? 주인장은 너무나도 기이한 손님을 당장에라도 내쫓아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쇼윈도 속 아가씨는 남자를 마주 바라보시며, 카운터에 엉덩이를 붙이곤 앉아버리신지 오래셨습니다.



하물며 주인장은 벌컥 화를 내면서 밀어붙이는 성격이 아닌, 상대가 눈치를 채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허둥대는 것을 더욱 즐겼기에, 팔짱을 끼고선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목덜미를 감싸고 피어난 난 ' 82 공수 ' 라는 문신을 과시하며 목을 가다듬었을 뿐이었습니다.



"저기, 여기 돈이요. 돈 있으니까... 됐죠? 그렇죠? 이제 가도 되나요?"



그러나 이 눈치 없는 남자는 허겁지겁, 뜯겨지기 일보 직전인 외투 주머니에 손을 마구 쑤셔넣고는, 꼬깃꼬깃한 초록색 지폐 뭉치들을 한아름 꺼내어 아가씨의 옆 편에 꺼내놓았습니다. 



이게 진짜 지폐이긴 한걸까요? 수량을 제대로 맞추긴 한 걸까요? 그리고 구겨진데다가 이 누런 건 뭐랍니까? 혈흔? 아니면 코카인 자국? 하다 못해 귀퉁이마저 찢겨진 것들이 있지 않나요. 



결국, 주인장은 매우 심기가 불편해진 표정으로, 입술을 실룩이는 리볼버의 그립에 왼 손을 완전히 올리고는, 오른손으론 카운터 아래에 놓인 둥그런 전화기의 수화기에 가져다 대어 뽑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젊은이. 내 충고하건대, 허튼 짓 말고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 "



"자, 아가씨! 우리 사랑의 도피를 해요! 립스틱은 하나만 가져갈게요오오!"



수화기를 뽑는 것 보다도, 리볼버를 권총집에서 끌러내는 것보다도 훨씬 빠르게, 눈이 휘둥그레 돌아간 남자는 쾌활하게 웃으며, 아가씨를 화악 끌어안고선 탄소섬유 가방의 근처에서 노니던 붉은색의 립스틱을 잡아채고는 그대로 뒤돌아 가게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강도질을 하다니! 미친놈임에 분명하구만!



주인장은 뒤늦게 뽑아 올린 리볼버를 치켜들면서 수화기를 내던지고는 문을 열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이미 남자의 흔적은 오후로 넘어가는 태양을 등진 그림자 줄기 하나가 전부였답니다.



달리고, 달립니다. 숨이 차올라도, 땀이 목덜미와 뺨을 적셔도! 



자신을 바라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행인들과, 뭐하는 짓거리야! 당신 미쳤어?! 라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등 뒤에 숨기곤 그를 나무라는 부모들의 경악한 외침에도, 남자의 뜀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며 욕을 해도 상관 없습니다. 혀를 차고 신고하겠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양 손엔 쇼윈도 속 아가씨의 가냘픈 유선형의 몸선이 느껴지고, 천천히 남자를 바라보는 아가씨의 눈길엔 점차 따스한 온기가 감돌아가니까요!



어느새, 사랑을 손에 넣은 남자의 등 뒤를 웽 하고 울리는 사이렌과, 경광등 불빛이 감싸가기 시작했습니다. 협잡꾼들이자, 방해꾼들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매정한지라, 일개 인간이 사랑을 나누는 것도 묵과하지 않는군요!



"누구도 우릴 방해할 수 없어요. 아가씨! 우린 영화 속 멋진 주인공들처럼, 영원한 사랑을 향해 달려갈테니까요!"



나름 늠름하게 외치는 남자의 멋진 한마디에도, 아가씨께선 말 없이 그를 바라보시며 고개를 아주 천천히 끄덕이셨습니다. 드디어 미소를 지어주시는군요. 너무나 기뻐요! 생애 처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꼽이라 한다면야 바로 지금일 거예요!



그런 아가씨의 매혹적인 모습에, 남자는 뺨의 홍조를 미처 지우지 못하고는 자신의 거주지이자, 25번 스트리트의 맞은 편을 바라보는 교차로에 놓인, 멋진 신혼집이 될 수이디디오 모텔의 정문에 우뚝 선 VACANCY 네온사인 간판을 지나쳤습니다. 



모텔의 관리인이자, 정직한 히스패닉인 파블로는 모텔의 스테인리스 우수통을 스페너로 통통 두드리며 점검을 하던 도중, 부리나케 달려오는 남자를 바라보고선 스페너를 흔들며 인사를 하려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제자리에서 폭 엎드려버렸습니다.



"좋은 오후입니다! 파블로 씨! 아하하, 우수관 청소하시나 봐요?"



"세뇨르 리프! 뭐하시는 거예요?! 위험하잖아요! 내 앞에서 당장 그거 치우세요!"



"그거라니요. 말씀이 무례하시네요! 이 아가씬 저의 약혼자가 될 고귀하신 분이라고요!"



"대체 무슨 소릴... "



어안이 벙벙해선,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이며 웅크리곤 제 머릴 감싼 파블로에게 윙크를 한 남자는, 아가씨를 잠시 땅바닥에 내려놓으시고는 모텔의 104호실 문을 가슴팍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구부러진 열쇠로 열어 젖혔습니다.



덜그럭! 하고 녹슨 경첩이 밀어젖혀지자, 남자는 아가씨의 손을 잡아 끌면서 방으로 빨려들어가듯 들어섰습니다. 뒷발차기로 걷어차여진 문은 다시금 철컥 하고 닫혔고, 주차장과 저 멀리의 가로수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이중창엔 먼지가 나풀이는 커튼이 사락거리며 세상의 빛을 막아버렸습니다.



헐떡이는 숨과 함께, 달그락하며 켜진 전깃불 스위치에 의해 누렇게 변색된 형광등은 전등갓을 무덤 삼은 겨자씨만한 날벌레들의 시체 그림자를 비추었고, 보풀이 가득 돋아난 양탄자 위에 공손히 서신 아가씨는 남자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깍듯이 커트시를 하시며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제 사랑을 받아주신다니, 너무나 기뻐요! 그러니, 아픔을 달래어 주는 키스를 해주세요. 제 마음속 상처를 다스려 주세요.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은 매정하지만, 당신 만큼은 다정하시리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더듬더듬, 허둥지둥, 오락가락 하는 남자의 불가해한 말투에도, 아가씨께선 그저 웃으시며, 팔을 활 짝 벌리실 뿐이십니다. 남자는 환희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금빛 비단 위의 장미와도 같은 붉은색 립스틱을 꺼내곤 아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왼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아가씨는 리드라도 받고 싶으신 모양인지, 힘을 쭈욱 빼시며 남자에게 몸을 맡기셨습니다. 남자는 아주 세심히, 아가씨의 입술에 립스틱을 돌돌거리며 발라주었습니다.



철컥.



아아, 이것이야 말로 꽃에 태양을, 달에 별빛을 적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청조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에서, 생명을 홀리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변하신 아가씨의 차가운 입술에, 눈물 한 방울로 적셔진 남자의 갈라진 입술이 맞닿아졌습니다.








"경관님! 여기요 여기!"



상당히 놀란 모양인지, 파블로는 손을 벌벌벌 떨며 남자의 뒤를 쫓아온 흑백색 도장을 먹인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순찰차들의 행렬을 온 힘을 다해 유도하며 팔을 허우적거렸습니다. 



대체 리프 씨가 왜 저러시는 거죠? 이전만 하더라도 모노블록 의자에 송장마냥 앉으셔선, 문샤인으로 추정되는 힙 플라스크의 무언가만을 들이키시던 분이 몇 주 전부터 헤벌쭉해지시더니, 혼자 콧노래를 부르시질 않나... 



결국, 오늘 사고를 단단히 치고야 마신 모양입니다. 설마 누굴 해치고 들어온 건 아니겠죠? 파블로는 진작에 신고할 걸 그랬다며 속으로 후회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임에 분명 했습니다.



크라운 빅토리아들이 차벽을 이루며 모텔의 입구를 완전히 봉쇄했고, 곧이어 가슴팍과 등딱지에 경찰 이라고 적힌 청색 방탄복을 탄탄히 두르고선, 권총과 산탄총을 들고는 줄지어 달려오는 경찰관들의 청색 물결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손짓하는 파블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들만이 아는 수신호를 머리 위로 휘휘 저어 보내며 104호실의 주변으로 거리를 좁혔습니다.



"상황실, 현재 10 - 32과 대치중에 있음. 1명으로 추정. 물러나세요! 물러나!"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체구를 자랑하는 경찰관은 권총을 몸 가까이에 끌어당겨서 주변을 두리번이다가, 파블로를 바라보곤 손짓을 하며 당장 비키라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타앙!



천지를 뒤흔드는, 둔탁한 총성과 함께 무언가 텅 하고 고꾸라지는 소음이 울렸습니다. 그 진원지는 다름아닌, 104호실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경찰관들의 움직임은 더욱 기민하고 거침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목덜미에는 힘줄이 팍 올라오고, 돌입! 진입! 이라는 고함을 지르며 104호실의 현관에 비스듬하게 서선 산탄총으로 문고리를 날려버리곤, 그대로 힘차게 발로 문고리 아래를 걷어찼습니다.



녹슨 경첩은 결국 누적된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나가버렸고, 총구를 앞으로 휘두르며 104호실로 돌입한 경찰관들의 가슴팍에 걸린 무전기에선 동일한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상황 종료! 상황 종료! 용의자 자살!"



"으엑... 상황실. 10-32가 무력화 되었다. 응급의료지원을 요청한다."



고글과 선글라스를 쓰곤, 착잡한 표정을 짓는 경찰관들의 눈 앞엔, 낡아빠진 연미복을 입은 남자가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머리라고 불리었던 둥그런 분홍색 걸레짝의 뒤에 붙어 있던 뒷통수는 방의 벽 한 켠에 액션 페인팅처럼 흩뿌려져 있고, 감지도 못한채 뒤집어 깐 양 눈은 흐리멍텅해진 채 동공에 담긴 생명의 별빛은 심연에 의해 잡아먹혀 갑니다.



그러나 그런 남루한 남자의 양 팔은, 너무나도 다정하게, 그리고 사랑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28인치 정도의 총열을 지닌 무광 검정색의 산탄총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총열 아래에는 붉은색 포장띠가 발려져 있고, 개머리판엔 가격표와, 방아쇠울엔 5년짜리 품질보증 카드가 8자의 매듭으로 감겨진 산탄총.



그런 산탄총의 옆에 놓인 4번 샷이 삽탄된 2 1/2 인치 짜리의 붉은색 탄피가 데구르르 굴러가며, 뇌수와 붉은 살점들의 호수에 몸을 맡기고 있었어요.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눈을 손으로 가리다시피하곤 나온 경찰관은 선글라스를 벗고는 후 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입가에 손을 올리고는 104호실의 안 쪽을 바라보려는 파블로를 물끄러미 보고선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혹시 저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 아는게 있으세요?"



"리프 씨에요. 그런데 이름은 모르겠고, 사실... 저 사람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어요. 하루에 길게 나눈 대화가 열마디 남짓 정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아까 전에 몇마디 나눈게 그나마 길게 나눈 대화일 거예요. 세상에, 대체 무슨 일이람. "



"음, 뭐 어디 산다던가 그런 이야기도 없었고 말이죠?"



"전혀요. 세뇨르 리프는 남의 이야기는 얼마 정도 하시긴 했지만, 자신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하셨어요. 그런데, 이거 보험 되려나요? 자살 사건이라니... 내 참... "



리프라... 경찰관은 협조에 감사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곤 고개를 몇번 반사적으로 끄덕였습니다. 그리곤 다시 몸을 돌려서 사건현장을 통제하려던 찰나, 아하 하는 탄성과 함께 손가락을 탁 튕기는 소리에 다시금 뒤를 훽 돌아보았습니다.


"아. 맞아. 지금 막 생각난건데, 몇 주 전부터 앵무새처럼 그러시더군요. 사랑하는 상대를 찾았다나? 아까도 약혼자라니 뭐니 그러시길래, 실연이라도 당하셔서 훼까닥 하신 게 아닐까 하고... "



손바닥에 주먹을 툭툭 치면서 진술을 하는 파블로와, 귀담아 들으면서 턱에 손을 짚고 고개를 끄덕이는 경찰관의 그림자 너머로, 어느 여성의 형상이 자살한 시체의 앞에 땅거미 깔리듯이 잡혀갔습니다. 



몸의 반 쪽은 아리따운 아가씨의 형상이나, 나머지 반은 썩어 문들어지는 시체의 모습을 한, 쇼윈도 속 아가씨는 미처 감지 못한 남자의 어수선한 초점의 눈가에 숯과 염초 냄새가 풍기는 손을 들어 다정히 쓸어내려주셨습니다. 



눈꺼풀이 소리없이 감기고, 쏙 내뱉은 혀는 말려 들어갑니다. 풀려나간 수도꼭지마냥 꼴꼴 쏟던 코피는 서서히 멎어가며, 수염이 살짝 돋아난 턱과 구겨진 외투 속 와이셔츠의 주름살이 서서히 다려졌습니다.



어째서인지, 시체의 일그러진 입꼬리가 미소를 짓는 것만 같았습니다.



허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재수없고 구역질나는 신원미상의 시체 한 구가 추가된 것일 뿐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