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서명란에 이름을 적어넣는다. <루아 폰 모나르크>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자, 바람 한 점이 나무를 휘감았다. 붉게 물든 단풍을 떼어낸 바람은 불현듯 창문 사이로 들어와 단풍잎을 탁자에 두고 떠났다. 식물이 예쁘게 익어가는 가을. 살찌는 곳간과 두툼해지는 지갑에 환히 웃는 이들이 많지만, 누군가는 쌓여가는 서류 뭉치에 쓴웃음을 짓는다.

 

“칼라입니다.”

 

두툼한 나무문에 노크한 것은 내 비서였다.

 

“들어와.”

 

짙은 갈색 문틈으로 새카만 머리칼이 들어온다. 머리칼과 같은 색의 연미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얌전한 인상의 이목구비에 무표정을 띄운 칼라가 덤덤히 새 소식을 전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소개장을 지참하셨는데, 폐하께서 직접 작성해 주신 듯합니다.”

“폐하가?”

 

사람을 맡기시는 일은 처음이라 당혹감이 앞섰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소개장까지 써주셨다면 이래저래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소개장은?”

 

칼라는 대답 대신 봉투를 내밀었다. 장식 없이 간소한 흰 봉투였지만 찍혀있는 인은 틀림없이 폐하였다. 편지칼을 들어 봉투를 뜯자 짧은 편지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아야.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간 무탈했나 모르겠구나. 전에 거두었던 사람 하나 맡기마. 경이라면 무슨 일을 맡겨도 곧잘 해줄 게다. 바쁠 때 도움이 되면 좋겠구나. 

                                                       네 황제가.]

 

복잡한 인사치레는 전부 생략한 짧은 편지에 여전하시다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난처함이 몰려들었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으시는 분께서 소개장까지 써주시며 맡긴 사람이다. 다루기 쉬운 사람일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난색을 드러내자, 칼라는 짓궂게 웃으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 분은 아니신 듯했습니다.

 

결국 나는 깊은 한숨을 토하며 물었다.

 

“손님은?”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시라 말씀드렸습니다. 불편하시면 다른 날을 잡을까요?”

“아니, 금방 가겠다고 전해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닐 터. 어찌 되건 만나기는 해야겠지.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소곳하게 앉은 검은 복색의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목이 짧은 부츠와 면바지. 셔츠와 그 위로 덧입은 로브. 전부 검게 물들인 복색은 구깃구깃했지만 잘 세탁했는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응접실이 아니었다면 누가 흑요석 덩어리를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닐까 착각했으리라. 

손님은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각하를 뵙습니다.”

“한참 기다렸을 텐데, 편히 앉으시게.”

 

나는 손을 내저으며 자리를 권했다.

 

“각하께서 서 계신 데 제가 어찌 앉겠습니까. 일언반구도 없이 불쑥 찾아뵙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천한 야인일 뿐이니 말을 놓으시지요.”

 

단호하게 자리를 권하는 손님 덕에 나는 먼저 자리에 앉았다.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가린 묘한 손님은 기다리게 만든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공손했다. 

 

“아니야, 멀리서 온 손님을 기다리게 했으니 내가 송구할 일이지. 목이 탈 텐데 차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할까.”

 

내가 차를 권하자, 기다리던 칼라가 슬쩍 내 옆으로 와 물었다.

 

“늘 드시던 데로 준비해드릴까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찬 바람이 조금 부는 날은 그날대로 홍차가 각별하지.’라고 생각하며.

칼라가 고개를 돌리자, 손님은 짤막하게 “물을 조금 섞은 커피로‥.”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유나 각설탕은 필요 없으십니까.”

 

고개를 조금 숙이고 고민하던 손님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저 도리질이 왜인지 아쉬워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칼라가 차를 준비하러 자리를 비우자 응접실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긴장이라면 긴장일 테고, 여유라면 여유일 정적 속에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아직 이름을 모르는데, 물어도 괜찮을까?”

“녹트입니다.”

“녹트라. 좋은 이름이야.”

 

녹트. 마법 문자로 밤하늘을 말한다. 한편으로 저 검은 옷에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폐하는 어떻게 뵙게 되었나?”

 

한눈에 보기에도 궁정에서 마주 볼 만한 사람은 아니다. 가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외유를 나가시는 폐하께서 바깥에서 마주한 사람일 터였다.

 

“몇 해 전에 스쳐 지나간 인연이 조금 길게 끌린 듯합니다.”

“뵙기 쉬운 분이 아닌데, 어디서 뵈었는지 물어도 될까?”

“올리브 카운티에서 산행하시던 때 뵈었습니다.”

“2년 전의 일인가.”

 

2년 전에 올리브 카운티에서 겨울나기를 위해 산에 사람들을 보냈다 짧은 기억상실과 함께 돌아온 일이 있었다. 충분히 확인할 필요가 있는 일이었지만 외곽의 작은 지구에서 겨울을 앞두고 사람을 많이 움직일 수는 없었다. 본래라면 근처 지구에서 조사단을 파견해 주는 선에서 끝날 일이었지만 일에 치이던 폐하께서 핑계 삼아 보름 동안 자리를 비우신 덕에 내가 일에 시달린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폐하께서 소개장까지 써 주시는 것을 보면 능력이 대단한 모양이야.”

“자랑할만한 재주 하나 없어 산야에 숨어 살던 사람입니다. 그리 높게 사지 마시지요.” 

 

내 앞에서 능력을 과시하지 않는 것은 겸손일까, 혹은 폐하께 선택받았기에 고작 공작에게 연연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필요 이상의 예의를 차리지 않는 담백함은 그것을 겸손으로 보이게 했다. 

호기심이 동해 질문을 더 하려던 찰나, 칼라가 차를 들고 돌아왔다. 쟁반에는 찻잔 외에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스콘과 잼 몇 가지가 들려 있었다. 

 

“가을이라지만 날이 아직 따뜻한데, 별달리 이유가 없다면 모자는 벗지 그러나.”

 

나는 이 얼굴 모를 손님에게 슬쩍 모자를 벗어보라고 권해봤다. 꽁꽁 싸맨 얼굴이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그냥 모자도 아니고 로브에 달린 후드를 눌러 쓰고 차를 마시는 일은 제법 불편할 것 같았다.

손님은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이었지만 내 권유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넓은 소매에 감추어져 있던 손이 모자를 걷자, 나는 조금 놀랐다. 

조막 한 얼굴에 백지처럼 흰 피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이목구비, 이백이나 간신히 넘겼을까 싶은 앳된 얼굴. 귀엽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인상이었으나 싸늘하게도, 소탈하게도 보이는 무표정이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렸다.

 

어투보다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혹 나이가?”

“올해로 스물셋입니다.”

스물셋? 단위가 다르다. 마족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손님은….

 

“인간이시군요.”

 

침묵하던 칼라가 입을 열었다.

인간이라. 제국에 인간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제국 곳곳에 차원 문이 있던 시절에는 교류도 많았고, 서쪽 지방에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도시도 제법 있다. 대화가 가능하고 생긴 것도 비슷한 존재가 만났으니 혼혈도 꽤 흔하다. 그러나 동쪽 지방 끝자락의 조그마한 마을에조차 인간이 있을 정도로 흔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그런 외곽에 자리를 잡았나?”

“아픈 일이 많아 세상을 등지기로 했지요.”

 

내 질문에 손님은 씁쓸하게 답했다. 

나는 입에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아픈 일이 많아 세상을 등졌다’라.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런 외곽의 산중에 숨었을까. 그렇게 세상을 등지려던 사람이, 무슨 뜻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을까. 생각이 많아지자 입에 머금었던 차는 금세 목으로 넘어갔다.

 

“오는 길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오셨는가?”

“황제께서 배려해 주셔서, 바이올렛 카운티까지는 전이 문으로 왔습니다. 이후로는 도보로 왔지요.”

바이올렛 카운티에서 스칼렛 카운티까지 도보 여행이라. 짧게 잡아도 보름은 걸린다. 길도 잘 정비되어 있고 중간중간 마을이나 도시도 많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마차라도 잡지 그러셨는가.”

“걷는 쪽을 더 선호하는 터라.”

 

마차를 타면 일주일 만에 올 수 있는 여행길을 보름이나 걸어서 오다니. 고집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사제직에 몸담았습니다.”

“사제라. 어느 교단인지 물어도 괜찮을까?”

“어려운 듯합니다.”

“이유가 있나?”

“본당을 나올 때 많은 것을 잊기로 했지요.”

 

더 묻지 말라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지은 손님은 목이 타는 듯 찻잔을 들었다. 사실 그가 교단의 이름을 말했다 한들 내가 그 교단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작았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작게나마 교단이 있기 마련이고, 개중에는 외부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폐쇄적인 종파도 있다. 제국의 공작이라 한들 그런 종파들을 전부 알 수는 없다.

 

“향이 꽤 진할 터인데, 커피는 입에 맞나?”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할 겸, 나는 화제를 돌렸다.

 

“집사께서 솜씨가 좋으십니다.”

 

옆에 앉아있던 칼라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비서가 다도에 일가견이 있으면 정말 좋단 말이지.

짧은 문답이 끝나자 응접실에는 다시 고요함이 맴돌았다. 손님은 내 질문을 기다리는 눈치였고, 칼라는 한발 물러나 있었다. 나는 차 한 모금을 더 머금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 문답이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폐하께서 맡기신 사람인 이상 이 사람을 내 사람으로 쓰는 것이 옳았다. 과거를 감추는 것은 확실히 수상하다. 하지만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을 내게 맡길 정도로 폐하께서 안목이 흐려지셨을까? 모두가 속내를 감추는 궁정의 정치에서, 사람 보는 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분이 아니시던가. 무엇보다 사람이 거짓으로 그만큼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대공으로서 수많은 암투에 시달려 왔기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 표정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사연은 캐묻지 않겠네. 다만 나는 이제 그대에게 일을 맡겨야 해서 말일세. 교단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도 되겠는가?”

“대체로 서류 일을 많이 했습니다.”

“혹시 어떤 서류였나?”

“간단한 건의 사항이나 현황 보고, 그리고 예산안 정도입니다.”

 

예산안?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내 탁자에는 매일 카운티 전역에서 올라온 서류가 수십 장씩 쌓인다. 하지만 건의 사항이나 단순 보고는 둘째치고 세금 신고서 같은 중요한 서류는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나오지 않게끔 경험이 많은 사람, 장부를 조작하거나 빼돌릴 염려가 없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건을 전부 맞출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사제 일은 몇 년 정도 하셨습니까?”

 

이번에는 칼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6년 정도입니다.”

“어릴 적에 입단하신 듯한데 일은 처음부터 배우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제직을 내려놓은 기간이 어느 정도 됩니까?”

“4년 정도 되었습니다.”

“교단에 계실 적에 서류 일은 매일 하시던 겁니까?”

“거의 그랬습니다.”

“그러면 예산안 서류는 어느 정도 받으셨습니까?”

“연말이나 반년마다 받는 서류도 있습니다만 월마다 받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외에는 거의 매주 영수증을 받아서 지출 보고서를 작성했지요.”

 

나 못지않게 일이 많은 칼라는 반색하며 이것저것 캐물었다. 칼라는 내 비서이기 이전에 집사장이다. 나는 사교계 참석을 꺼리는 탓에 집무실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는 것이 일의 거의 전부지만 칼라는 아니었다. 일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생기니 평소답지 않게 열띤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실례되는 질문임은 압니다만, 읽고 쓰는데에 지장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제국 표준어는 충분히 할 줄 압니다.”

 

자칫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임에도 손님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사실 큰 의미는 없는 질문이다. 폐하께서 문맹을 맡기실 리가 없으니까. 간단한 사실 확인일 뿐이다.

 

“마법 문자도 고대 문자까지는 다룰 줄 압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는 나도 칼라도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고대 문자?

“신대 시절 룬을 말하는 건가?”

 

이번에는 내가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 명궁으로 이름을 날리시는데 마법에도 조예가 깊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마법 문자(Magic Script)는 복잡한 주문(Spell)을 쉽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자를 적는다고 곧장 마법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마력을 불어 넣고 각인하는 공정이 추가로 요구된다. 반대로 고대 문자(Old Rune)는 문자 자체에 마법이 깃들어 있다. 한 글자만 쓰더라도 목적에 따라 즉시 완성된 주문으로 기능한다. 때문에 아무나 배울 수 없다. 

 

“가문과 조금 연이 있지. 한데 룬을 다룰 줄 안다면 마법에 식견이 깊은 모양이야.”

“어설픈 정도입니다만 좋게 보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겸손도 과하면 무례인 법입니다. 룬을 독서할 수 있는 분께서 어설프다면 어설프지 않은 학자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말씀을 거두시지요.” 

 

칼라가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그쯤 감을 잡았다. 이 사람, 스스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유능하다. 나로서는 이런 사람이 일을 맡길 때 부담이 덜해서 좋다. 할 수 있는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할지언정, 못할 일에 손을 대다 사고를 칠 염려는 없으니까.

 

“조금 늦은 질문일지 모르겠네만, 내 밑에서 일하는 것은 마음에 드나?”

“값진 기회라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유능한 사람이 와 주어 고맙게 생각하네. 아, 그대 호칭은‥.”

“경, 녹트 경이면 될 듯합니다.”

“그래, 녹트 경.”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앞으로는 가주님이라고 불러.”

 

호칭을 정정하며 나는 어투를 바꿨다. 나는 각하라는 존칭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각하라고 부르는 사람 셋이 있으면 그중에 둘은 정적인데 좋을 수가 없다. 저택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말을 낮추는 것도 나이 든 말투를 써 가며 관록을 보일 필요가 없어서였다.

 

“존명.”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경의 예스러운 대답에 나는 살짝 웃음을 흘렸다. 

 

“어떤 일을 맡길지는 내일 오전 중으로 전달할게. 칼라, 방으로 안내해 줘.”

“네.”

“아, 질문 하나 해도 괜찮을까?”

“답해 드릴 수 있다면 답해드리겠습니다.”

“아픈 일이 많아 세상을 등졌다고 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 세상으로 나왔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등을 돌린 경에게 나는 문득 생각이 들어 물었다.

“…….”

“대답하기 힘들면 괜찮‥.”

“황제께서 한 편에 묻어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경은 내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지만, 시선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창 바깥의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회한과 그리움이 짙게 묻어났다.

 

“10년도 더 전에, 제게 제가 필요하다 하셨던 분이 계셨지요. 열망으로 불타던 그 눈이 아직도 선합니다. 한데 그분과 똑같은 눈으로 저를 보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 하여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쯤은, 몇 년 정도는, 세상에 다시 나가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이.”

 

황금도, 명예도 아닌 그리움이라.

 

“그래, 그대 뜻은 알겠어. 내일부터 서로 잘 해보자고. 녹트 경.”

 

나는 얕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가주님.”

 

내 웃음에 무언가를 느꼈을까, 그 역시 살포시 웃으며 손을 잡았다.

나와 녹트의, 기념비적인 첫 만남이었다.





웹소라고 보기는 아마 어려운 글일 겁니다. 항상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한 꿈만 가지고 있던 사람이 몇년 전부터 플롯만 붙잡고 있던 작품이라서요. 다만 글의 완성도에 대해 호된 회초리가 필요할 것 같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