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날리기는 억울해서 올린다.


"그러니까는... 그 이름이 조... 약돌씨...?"




이 소리만 벌써 수십번째이다. 나는 끊임없이 내 이름에 대해 본명이 맞는건지 묻는 이한테 해명을 해야만 했다.


"그거 가명이오."


'아' 하는 납득이 된 듯한 탄식소리와 함께 또 제정신 아닌 새끼가 굴러들어왔다는 듯 머리를 쥐어싸는 남자가 있었다.



아, 이 남자가 주인공인게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다.








그래, 그래서 이 이름이 본명이냐면은 아까도 말했지만 아니다. 성이 조씨냐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진짜 본명을 내가 까먹어서 모르지만 아마 조씨는 아니었고 김이박 중 하나였다.



이제 너희들 중 날 미친놈이라 생각하면서 왜 그딴 가명을 지었는지 궁금하겠지. 사실 안 궁금해도 다 말할 거기 때문에 상관없다. 



일단은 그냥 내 부모가 싫어서 가명을 쓰는 거라고만 알아두면 되겠다. 우리가 아직 친한 사이도 아니고 어차피 구구절절히 말해봤자 관심도 없을게 뻔하니 적절한 타이밍에 말해주기로 하겠다.



지금은 일에 집중하도록 하자. 아까 면접을 봤던 남자가 나한테 일자리를 주었다.



"그... 일단은 우리 집 배선수리 좀 하세요..."



나는 이 남자의 주택에서 배선수리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배선을 수리하던 중이었다. 애새끼가 와가지고는 나한테 물총을 뿌려대는게 아니겠는가.



"얌마, 그러다가 큰일 나니까 그만해라."



이쯤이면 알아먹을거라 생각한게 오산이였다. 애새끼는 아까보다 더 물총을 세차게 쏴재꼈다.



그 때 수리하고 있던 전선에 물이 튀면서 스파크가 튀었다. 전기가 순식간에 내 몸을 휘감았다.



"끄아아악!"

"우와! 아빠 이것 봐, 아저씨가 춤춘다!



그 때 집주인이 아들이 외치는 소리에 달려왔다.


"야, 이 쌍노무새끼야! 뭔 짓거리여, 이게. 여보! 119 좀 빨리 불러!"



와중에 집주인 마누라는 발을 동동 구르다 신고는 안 하고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왠 바가지를 갖고왔다.



바가지에는 대량의 물이 있었는데 그걸 나한테 뿌리는게 아니겠는가.



"그아아악!"



"아니, 씨발! 당신 미쳤어? 왜 감전 당한 사람한테 물을 뿌리고 지랄이야!"



"아니, 왜 소릴 지르고 그래요. 호랑이한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정신 차리라고 물 같은 걸 뿌렸죠."



씨발, 모자가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그렇게 이 모자의 개지랄로 감전 당해 죽어가고 있었다.




"어떻게요? 지금이라도 구조대 부를까요?"


"쓰읍. 돈만 나가, 이런건 걍 된장 바르면 낫는거야."



씨발, 이제 보니 가족새끼들이 단체로 지랄하는구나. 그러니 나 같은 폐급새끼한테 배선수리나 맡겼지.



슬슬 시야가 흐려지고 몸의 근육이 풀린다는게 느껴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렇게 눈이 감겼고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 순간 칠흑 같던 어둠이 지나가고 새하얀 광명이 내게 비추어졌다.


어, 씨발 이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인가 그건가... 

나 유물론자인데 좇됐네, 씨발...


하지만 내가 가는 곳은 사후세계가 아니었다. 눈을 뜨니 뭐 천사들이 나팔 불고 구름으로 온 세상이 뒤덮인 곳이 아니라 중세풍의 거대한 방에 내가 고급침대에 누워 있었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빙의물? 나는 거울을 가져와 내 얼굴을 확인했다. 거기선 내 얼굴이 아닌 왠 잘생긴 금발청년의 얼굴이 있었다.



결혼회사에서는 적령기의 남녀들한테 등급을 매기고는 했다. 나는 거기서 등급 외 인간이었다.



외모, 직업, 성격 무엇 하나 잘난게 아무것도 없어서 평생 모쏠아다새끼로 살 거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이면 1등급 정도는 우습게 받을 거다.



금발의 잘생긴 청년의 얼굴에다 나름대로 운동을 한건지 몸도 근육질이다. 방 하나가 내 집의 10배는 더 큰 걸로 보아 재산도 꽤 있어 보였다.


대학동기 중 애니를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종종 이세카이라는 것에 대한 얘기했는데 찐따 히키 주인공이 이세카이라는 곳에 잘생긴 부르주아로 환생해 여자들과 붕가붕가를 하는 내용이란다.  



아무래도 그가 갔어야 할 이세카이를 내가 직접 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냐고?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었다. 이 정도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냥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어차피 다른 일들처럼 나쁜 꿈도 아니니까.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고용된 가정부로 보이는 늙은 여자가 나한테 아침 인사를 했다.



"예, 보다시피 잘 자고 일어나 있죠."


가정부는 날 놀랍다는 듯이 보았고 그때 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



"도련님, 왜 저같이 미천한 년한테 존댓말을..."



아무래도 여기 사회에서는 신분제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뭐, 지금 이 건물의 건축양식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방으로 나왔다. 저택은 궁전마냥 넓고 저택 안에서는 수많은 양복이나 하녀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자기의 일을 하고 있었다.



하인들은 날 식탁으로 안내했고 그곳에는 이미 화려한 드레스와 멋진 유럽식 귀족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는 군복 차림의 늙은 남자, 상대적으로든 뭐든 누가 봐도 딸뻘 같아보이는데 옆에 같이 앉아 애정행각을 벌이는 걸 보니 트로피 부인인 것 같은 가슴 큰 귀부인, 그리고 그런 여자하고 별로 나이 차이도 안 나 보이는 금발미녀가 있었다, 이쪽은 아마 앳되보이니 나보단 어린 거 같았다. 아마 원래 이 몸의 주인의 가족 쯤 되는 것 같았다.



식탁에는 내가 평생 보지도 못할 호화로운 음식들이 차려졌다. 뭔지 모르겠는데 맛있어 보이는 거, 푸아그라, 트러플 수프, 칠면조 고기 등이 올려졌다.



나는 음식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날 놀랍게 쳐다 봤다. 이번에도 원래 주인이 평소에 안 하던 특이한 행동을 한 것 같다.



"평소에 공부한다면서 식사는커녕 간단한 샌드위치조차 안 먹더니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구나."



다행히 유야무야 넘긴 것 같다.



"그런데 대학에서 쓰고 있는 논문은 잘되가고 있는 거겠지?"



이 말을 들은 순간 난 씨발, 좇됐구나라고 느꼈다.

일단은 내가 대학을 나오기나 했냐면 그건 맞다. 그런데 그게 사실상 고졸이나 다름없는 지잡대니 그렇지.



언제는 내가 영어영문학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젊긴한데 툭 튀어나온 아저씨 배 때문에 언밸런스해 보이는 미국인 강사가 수업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수업 내용이 뭔지 아는가? Apple의 철자를 가르치는 거였다.



세상에, 내가 아무리 못 배워쳐먹었다지만 대학교 와서 사과가 뭔지를 뉴턴 빼고 배우리라 생각 못 

시험은 더욱 가관이었다. 강사는 라이언킹의 대사집을 가져왔다. 여기서 문제가 뭔지 아는가? 심바와 무파사가 무슨 관계인지 묻는 문제였다. 아니, 딱 무파사 뒤지는 장면 대사를 가져와서 심바가 아버지하고 오열하는 이런 대놓고 알려주는 걸 날 빼고 3명 정도가 그 문제를 맞추었다. 



덕분에 나는 그쪽에서 디게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수업이나 주변 애들이 이 꼬라지였던만큼 아무리 중세라지만 내가 논문 같은 글을 쓸 수 있을리가 없었다.



일단은 그래도 혹시나 싶어 논문의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논문은 황제와 신에 대한 찬양, 우리가 어째서 그들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게 왜 다행이냐고? 뭐 지구과학이나 물리학, 수학 내용이었어 봐라. 지잡대 문과인 내가 뭘 알겠나.



그런데 여기서 나는 뭔가 분탕을 치고픈 마음이 들었다.

어째서냐면은 음... 그게 재밌으니깐?



일단 최대한 이 녀석의 서재를 훑어보았다. 내용들이 특이하게 외국어인데도 싹 다 한글처럼 인지되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용은 하나 같이 뭐 '왕이 곧 국가다, 신이 곧 국가다, 그러니 신과 왕을 위해 일이나 해라 이 노예새끼들아.' 같은 내용이었다.



오케이, 어떤 식으로 분탕을 칠 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세계에서 왕과 신을 좆까라고 하는 것이다.


자 그럼 무슨 이데올로기에 대한 글을 쓸까? 자유주의, 민주주의? 음... 원래 중세가 자유주의화, 민주화 된 거니 좀 식상했다. 사회주의도 소련이란 사례가 있으니 좀 식상하였다. 


문득 공산주의를 처음 배웠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걸 처음 배운 건 군대 시절이었다. 



왜 그걸 군대에서 배웠나하면 내 후임이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군대란 것은 대한민국에서 고추 달고 태어난 존재라면 세상에서 제일 상식이 안 통하는 불합리한 조직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좇좇소겠지.


나도 신검을 받을 때 알몸으로 벗겨져서는 도축장의 조만간 도살될 돼지가 등급이 매겨지는 것처럼 내가 군대를 갈 인간인지, 안 갈 인간인지 등급으로 판정되었다.



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신체적인 불편함을 딱히 못 느껴서 1급에서 2급 정도로 생각했지만 의사가 내 몸을 진찰하더니 동정하는 눈빛을 보내면서 그동안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왔냐고 그랬다.



알고보니 나는 한쪽 코가 막혀있다고 하는데 여태 나는 그게 그냥 심한 비염이라고만 생각했다. 어쩐지 담배 필 때 연기가 한쪽으로만 나오드라.


무튼 그것 때문에 3급이 나왔다. 당시의 나는 그냥 최전방은 피했다고 좋아라했다.



군대란 확실하게 야만의 사회였다. 

하나만 물어보고 싶었다. 국가라는 것이 정말로 국민을 위해서라면 어째서 국민과의 어떠한 합의 없이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집단에 강제로 몇 개월 동안 가둬놓는 것일까?



일단 훈련소에서부터 정신교육이라는 것을 받는데 여기서부터 날 국가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다치면 느그 아들이고 죽으면 누구세요 아닌가..




나는 군대라는 곳에서 폭력에 장시간 노출되었고 그것은 전역 이후에도 내 몸의 독소로 남아 날 괴롭혔다. 그 상황에서 음악과 내가 군대에 있을 때는 불온 서적으로 취급되어 읽지 못했던 책들이 내 유일한 해독제였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왜 청년들은 혁명가가 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 하다못해 이런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일을 없애기 위해 반전 운동이나 군대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답은 간단했다. 폭력에 노출되었기에 폭력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흔히들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 같은 망언을 하는 인간들은 대부분 늙은 남자들이다. 그들이 군대에 있을 때는 내부의 똥군기와 폭력은 지금보다 더 심했다. 그런 폭력은 그들한테 마치 코끼리를 속박하는 쇠살슬과 같은 존재였고 그들은 쇠사슬에 속박된 삶에 묶여 철창 밖의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적어도 지금의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어느 정도 짬을 먹었을 때 대학교의 선배가 후임으로 들어왔다.



나는 군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그를 심하게 갈궜다.

시도 때도 없이 구타하고 얼차려를 시켰다.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행위였다.


생각해 보면 볼 수록 그때의 기억은 끔찍했다.

나는 그 당시에 인간성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가 아닌 여기서 사지 멀쩡히 살아나가자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나의 위치를 확인시키기 위해 타인을 갈구고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


어느 날에는 그에게 사실은 내가 대학교 후배이고 그걸 알고 일부러 더 심하게 갈궜기에 미안 하다고 사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 했다.


그는 이후 내가 알기로는 어떠한 가혹행위나 후임들한테 강압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그한테 어떠한 가혹 행위도 강압적인 명령도 없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어떠한 불합리한 일도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저항하려 하고 불복하려는 마음이 클수록 굴복하고 순종하기는 쉬워집니다." 



나는 그의 말이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된다.



그래, 뭐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그러지 않았었나. 우리가 계속해서 바위를 정상에 옮기는 시지프처럼 부조리를 타고났다고. 그러니 우리가 실존으로 얻게 되는 가족, 사랑, 종교, 물질에 집착하게 되는거라고.



만약 아니라면 그 인간은 자살하였을 거라고. 하지만 둘 중 그 무엇도 카뮈는 그게 옳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부조리를 안고 반복될 뿐인 실존, 그 실존 자체를 우리가 사랑하고 가치 있음을 여기는게 그 후임이 말하는 카뮈이자 자신의 인생관이었다.



그 후임은 그런 점에서 카뮈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부조리주의자였지만 또 공산주의자이기도 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카뮈는 원래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이었다고 한다. 다만 그의 공산주의는 내가 지금 독자적으로 알아온 공산주의하곤 좀 차이점이 있었다. 관념론적이었고 공산사회란 것에 대해 좀 냉소적인 견해를 보였었다.


이전에 후임을 개인적으로 만나 같이 불법다운로드로 설국열차를 본 적이 있었다.


열차의 서열을 머리칸과 꼬리칸으로 나누어 사람들 간의 차별을 불러일으키고 그러한 대립 속에 나의 머릿속에 먼저 든 생각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급 대립이었다. 이것은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도 나는 이 영화를 계급 대립으로써 보았다.


하지만 그는 다르게 얘기했다. 열차의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강요된 역할에 순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이는 모두 '인류의 생존' 이란 방향 아래에서의 신성불가침한 '목적' 에 그들은 인간이 아닌 부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는 작중의 악역 윌포드를 보라고 했다. 확실히 윌포드는 일반적인 부르주아 악역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랐다. 게으르고 사악한 노동자를 착취해 배때지를 불리우는 돼지란 이미지하고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윌포드는 초중반에 신격화에 가까운 세뇌를 받았지만 그는 자신을 단 한번도 메시아로 자칭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길리엄과 함께 이 열차를 위한 관리자란 존재임을 명시했다. 모든 승조원에게 임무가 주어지고 임무가 그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듯 자신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의 처지일 뿐이다.




그러니 아동착취는 악당으로써 하는 행동이 아닌 그게 임무였기에 그러할 뿐이었고 죽음 너머까지 생각해 후계자를 찾고 있단 점에서 이데올로기 저 끝에 서있는 종말론의 화신이라고 말했다.




덧붙여서 윌포드를 상징한 이러한 종말론은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적그리스도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되찾으리라고 주장하며 적그리스도의 종말로 인류역사의 종결을 말한 십자군 전쟁, 위대한 게르만족의 역사로 장식하고자 했던 나치, 자본계급을 종식시키고 공산 낙원을 이룩하겠다던 소련과 그 반대의 미국과의 갈등.



그 모든 것이 종말론적 이데올로기가 서구사회와 인문학에 불러온 병폐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종말론적 거대서사시에 반발하여 나온 포스트 모더니즘도 이를 이데올로기로써 포스트 모더니스트로써 자칭되는 자들에 의해 종말론적 거대서사시가 부여된다고 그는 말하였지만 솔직히 나는 그가 뭔 소릴 하는건지 아직까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럴 때 그도 여기에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나 혼자 논문 써야된다고 이리 죽치고 있진 않았겠지. 



일단 당연히 논문의 첫구절을 장식하게 된 문구는 공산당 선언의 문구였다.



지금 이 사회에 한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바로 공산주의란 유령이다...


생각해보니 독자들한테 감성팔이도 있어야 좀 먹힐 거 같았다.


이제 막 학문을 배워 이 학문으로써 세상으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저는 묻겠습니다.



의술을 배운 당신은 아마 의사가 되겠지요...




당신은 한 작업복을 입은 남자로부터 제발 아내를 살려달란 간절한 호소에 환자의 집까지 찾아왔습니다.




집들이 서로서로 이어붙여져 요새처럼 변해버린 좁은 골목길에 다다라 깜빡거리는 등불 아래, 때가 덕지덕지 끼어 미끄러운 계단을 올라가 집에 도착하면 어둡고 차가운 방에서 초라한 침대 위 더러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운 환자를 보게 됩니다. 옆에선 누더기를 입은 잿빛 얼굴의 아이들도 보입니다.




크로포트킨이란 사람이 쓴 청년에게 고함의 문구인데 쓰면서 나도 모르게 좀 감정적으로 욱하는게 있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하고 겹쳐 보여서 그런가,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나 영화를 보면 감정적으로 욱한 적들이 많았었다.




이제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해보자.




아빠는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하는 사람, 일용직 노동자였다.




힘든 노동에 비해 들어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구하지도 못해 하루종일 집에 들어오는 것이 부끄러워 밖에 있다가 저녁 때 빈손으로 들어오곤 했다.




아빠가 공사장에 나갈 때도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냐고 할 때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해 굶어 죽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돈이라는 것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인간에게 있어 필수품인 것이다. 있으면 편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없으면 아주 큰일이 나는, 나에게 있어 돈에 대한 인식은 그러하였다.




그렇다면 가난하더라도 부모의 사랑은 받았냐면 그러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더라.




행복한 가정은 똑같은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그렇다면 나는 아마 그 제각기의 이유들이 종합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한테는 엄마라는게 있긴 있었다. 엄마는 솔직히 미인이긴 미인이었다.




엄마는 뚜렷한 이목구비와 맑고 하얀 피부, 탄탄하고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데다 이국적인 외모로 할리우드의 여배우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운 거 하나 없는 일용직 노동자에다 나이가 들며 술배만 찬 아버지를 남편으로 두고 있어 안타깝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엄마는 젊은 시절의 근육질에다 잘생긴 아빠를 사랑했었지만 배가 나오고 탈모로 머리가 빠지고 주름이 생기며 볼품 없어진 아버지를 뒤로 하고 점점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를 했고 아침부터 밤까지 싸돌아다니며 나와 아버지는 뒷전이었다. 




어머니하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 중에는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도 있었는데 이 때의 나는 갑자기 친절해진 역사 선생님이 왜 이러는 줄 몰랐다.




이처럼 어머니는 가정적인 부분이라곤 없었다. 나한테 있어 어머니는 아침 일찍 머리맡에 천원 몇 장을 주고는 돈가스나 김밥 사먹으라고 하거나 할머니 댁 가서 밥 먹으라고 하는 그것 뿐인 여자였다. 전업 주부임에도 자신의 소유와 자유에만 그리도 집착하였던 여자였다.




그렇기에 나는 엄마보단 할머니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다칠 때도 난 엄마가 아닌 할머니를 불렀고 초등학교 소풍 때 도시락을 싸주거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 날 선물을 챙겨주는 사람도 엄마가 아닌 늘 할머니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14살이 되던 날 돌아가셨고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 날 더이상 날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분이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가정을 보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난 그 나한테 단 한번의 사랑 한 번 안 준 사람이 할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 가증스럽고 역겨워서 화를 냈었다. 




너무한 거 아니냐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진짜로 그 여자는 가정적인 척일 뿐이었다. 




얼마 안 가 아빠와 이혼하고 늙은 부자와 결혼했다. 아버지는 이 때 그 충격으로 좋아하던 술도 끊고 시름시름 앓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당시의 난 대학생활로 바쁜데다 기숙사에서 생활해서 나중에 부패한 시체의 악취를 맡은 집주인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에는 어떤 사람도 없었기에 급히 수습하고 시신을 화장했다. 




이 아버지도 별로 좋은 인간은 아니었다. 애초에 본인의 능력에 비해 과분한 아내한테 열등감과 집착 비스무리한 걸 가진 아빠는 술을 마시고 엄마를 때리고는 했다. 




엄마가 가정에 소홀한 것과 집을 나간 것에는 어느정도 아빠의 책임이 있었고 둘의 잘못에 큰 피해를 입는 건 언제나 나였다.




내 기존의 이름을 까먹고 조약돌이란 이름으로 살게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였을 것이다.




부모가 물려준 이름으로 사느니 그냥 돌맹이란 이름이 더 나았다. 




본래 이름에는 그 사물의 본질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앉을 수 있게 하는 사물을 의자라고 부른다.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컵이고 바퀴가 네개가 달린 채로 인간을 빠른 속도로 이동시켜주는 금속 덩어리를 자동차라고 우리는 부른다.




그럼 개개인들한테 부여된 이름은 뭘까? 그 이름들은 최소한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바가 담겨진 것이다.




나는 내 부모한테서 지어진 내 이름이 그 작자들의 욕구가 반영되어 내가 그들이 원하는대로, 정형화된 삶을 살도록 구속시켜주는 것이란 것에 구토가 났고 그러하였기에 바꾸었다.




거기다 돌맹이로 이름을 지은데는 이유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의미가 아니라 나 자신이 원하는 의미로써 말이다.




다윈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아는가? 골리앗은 거인이었고 그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 어떤 이스라엘군도 감히 골리앗과 대적하려 들지를 않았고 이스라엘군의 승리를 위해서는 누가 골리앗을 쓰러뜨려야만 했다.




그 때 나선 자가 바로 다윈이었다. 엄청난 덩치 차이에 골리앗은 그를 비웃었지만 다윈은 그저 작은 돌맹이를 새총으로 날려 그를 죽였다.




아무리 작다고 무시받아도, 무한한 가치를 품는 존재. 나는 그러한 돌맹이가 되고 싶었었다.




그렇게 나는 가지지 못한 자의 설움과 울분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와 신분제를 갈아 엎고자 하는 열망이 논문에 채워졌다.


본래 자연상태는 루소에 의하면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문명이란게 생겨나면서 사유재산, 국가가 생기고 사람들에게는 쇠사슬이 채워진다고 한다.


여기 한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다.

경찰도 관리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잘 살아간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나서서 돕는다. 주민들 사이에는 내 것, 네 것이 없다. 이곳에 국가가 자리를 잡으면 사람들 사이의 도타운 정은 금세 사라진다. 옆집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이웃이 주제넘게 나설 문제가 아니라며 고개를 돌려 버릴지 모른다. 국민의 곤란함을 돌보는 것은 정부의 일이라며 말이다. 강도가 나타나면 경찰관이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며 정부에 떠밀어 버린다. '우리는 공동체' 라는 생각도 당연히 희미해진다. 


사유재산, 안보, 경쟁. 이것만큼이나 현대사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자유와 평등, 공동체와 같은 말은 이제 먼 옛날의 이상주의자의 발언이 되어있었다.


호모 호미니 루푸스, 인간은 인간에게 있어 늑대이다.


홉스가 국가의 정당성을 논할 때 비슷한 논지로 말한다.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오로지 서로 갈등과 경쟁 밖에 안 남아 힘의 논리로써 지배되는 야만사회임을 주장하였다.


트라시마코스가 말한대로 강자가 정의인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난다면 맹점은 많겠지.


강자는 언제든 나약해질 수가 있다. 그가 늙거나 병에 들었을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가 깊은 잠에 빠질 때도 그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강자가 나약해지는 순간, 그 강자에 대한 복종의 의무는 끝이 난다. 


그러니 강자든 약자든 서로를 위해 타협한 결과가 국가임을 홉스가 말하면서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만약 가설이 진실되었다면 그러한 무국가적 상황이 실로 공포스러운 것이었다면 당장에 무국가적 상태의 지속을 계속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최악의 국가적 상태를 차악으로 판단해 주저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공포술로 점철된 가설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상태는 근대적 인간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인간들 때문에 심히 왜곡되었다.


일단은 그들한테 가장 원시적인 공동체의 형태를 물어본다면 아마 공동체 중 가장 작은 단위로 볼 수 있는 가족을 그들이 떠올리겠지만, 가족은 문명화로 인한 공동체의 형태로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형태 중 의외로 문명으로 인한 유산이었다.


그렇다면 원시적인 공동체는 어떤 형태였냐면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군집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 사유재산도 없었고 경쟁도 없었다.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생존과 종족의 번영을 둘러싼 경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에서 인간은 공존이란 방식을 택해야만 했다.


제아무리 강한 자라도 그것이 원시사회의 맹수들 앞에서 통하는 무력은 아니다. 결국 이들은 뭉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여성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남성의 능력이 그 제대로 된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 또한 문명의 유산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의 사회에서 무리를 이끄는 것은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인 경우가 많다.


남성의 주요업무로 알려진 사냥이 쓸모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냥은 리스크가 매우 높은 작업이기에 매번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심하면 죽는다.


그 때 생계를 책임지는 건 열매를 수집하고 애를 돌보는 여성이다. 열매를 수집하는 일이 사냥에 비하면 안전해보일지 모르겠지만 원시시대의 열매란 높은 나무에 자랐고 열매의 독을 알아내야하며 맹수의 습격을 받을 위협이 언제든지 존재하는 것이 누구나 시키면 할 수 있겠냐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쓰읍... 슬슬 내용을 너무 질질 끄는 것 같았다. 긴빠이 치는데도 한계가 있다.


나는 논문을 마지막 내용으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혁명은 시작되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역시 마지막은 공산당 선언으로 해줘야 수미상관에 맞는 것이겠지.


그렇게 난 작업을 마치고 잠에 들었다.


한편 그가 잠에 잠든 사이, 여동생 나타샤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작 논문 내용이 궁금하다고 방까지 들어오다니..."


그녀는 학문적인 호기심을 매우 타고난 여자였다. 지금 야밤에 몰래 들어온 이유도 지금은 조약돌이 들어있는 자기 오빠의 논문 내용이 궁금해서 들어오는 것이었다.


"과연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의 오라버니는 어떤 논문을 썼을까?"


그녀는 논문 속 충격적인 내용에 비명을 질러 모두를 깨울 뻔했다.


이게 지금 뭔 소린가? 지금 이 국가에 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국가의 지배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신분제와 국가를 노동자들이 뒤엎어야 한다?


본인도 학교에서 보고들은게 있어서 인민의 정부를 세워야한다, 왕을 투표로 뽑아야한다는 급진주의 학생들을 여럿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실행에 옮기거나 적극적으로 표출한 적도 없었으며 어른들의 평가도 혈기 어린 젊은이의 어리석음 정도로 밖에 평가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내용은 단순히 그럴 수준이 아니었다. 당장 반란 모의 혐의로 끌고가 공개처형을 시켜도 모자라지가 않았다.


나타샤는 충격적인 논문 내용을 황급히 덮어버리고는 침실로 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른 사람도 오라버니가 급진주의자였다니... 

사실 그들보다도 더 했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뭔가 속박된 것에서 해방된 듯한 느낌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식사를 하는데 여동생이 안색이 안 좋았다. 어디 아픈가...


그렇게 난 논문을 갖고 대학으로 갔다.


"자, 이제 발표를 해보도록 하세."


아니, 씨발 미쳤나. 뭔 논문을 발표해, 이 개 같은 새끼들아.


알고보니 그건 논문이라기보단 그냥 전교생한테 선전문구를 써서 낭독하는 것이였다.


에라이, 이렇게 조져버린 이상 내 좇대로 한다.


나는 내가 쓴 논문 그대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꼰대들이 뭔지 몰라 가면 갈수록 이상함을 느끼다가 연설의 마지막 선언에 사실상 확실시하며 날 끌어내렸다.


그렇게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아, 그리고 집에서도 덤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막 후회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이었으니 그러려니 하였다.


그렇게 난 아까까지만이라도 귀족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제는 현실에서 내가 입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나마 여동생이 개인적으로 물건을 판 돈으로 내게 지원을 해준 덕분에 난 일거리를 찾아보며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옷을 입고 난 이후 해당 계층의 사람들과 빨리 친해질 수가 있었다.


나는 거기서 곡식의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부르주아의 탐욕으로 수탈이 늘어나 남는게 없어진 소작농, 12시간을 일했지만 그마저도 돈이 부족해 잠자는 4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성매매에 종사하는 매춘부, 급진주의 청년 등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신문소년이라던지, 촉새 같은 급진주의 청년들로부터 나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며 사회의 빈부격차에 대한 한탄과 국가와 신분제에 대한 증오를 늘어놓곤 하였다.



이 때부터 의욕도 없어져서 이대로 끝. 그냥 미련 남아서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