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이론적으로 정리하려고 노력했음.

최대한 간결한 정보로 만들어 전달한다면 나에게도 이득일 것 같아서 작성해 봄.




1. 공감과 경외


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조형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고 봄.

하나는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고,

다른 하나는 '경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경외와 공감이 무슨 뜻인지부터 확실이 짚고 가겠음.

다음은 경외와 공감의 사전적 의미임.


경외: 공경하면서 두려워 함.

공감: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


ex) 초부잣집 재벌가 엄친딸에 범접할 수 없는 차도녀st 히로인 수현. 자기관리에 매우 철저해서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고 매일 똑같은 루틴으로 퍼펙트한 하루를 사는 여자다. / 그러나 세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수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이며, 떡볶이를 먹을 때에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꾸만 국물을 흘려댄다.


이 예시에는 경외와 공감이 모두 들어가 있어. 슬래쉬로 나누어 봤을 때, 전자에 속하는 속성이 경외의 속성이고, 후자가 공감의 속성이야.


수현이처럼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대부분 자기관리에 실패하고 늘 다짐만 하며 하지. 초부잣집에서 태어나는 것 또한 흔하지 않아. 재벌가에 사는 친구를 뒀다면 운이 억수로 좋거나, 나도 재벌가쯤 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수현이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어떤 감정이 들지? '대단하다. 독하다.' 뭐 이런 감상이겠지. 현실에서 재벌가 자제를 만나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그 상황을 피하고 싶지 않을까?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대화도 잘 안 통할 거고, 그쪽은 돈이 있고 권력이 있기 때문에 왠지 움츠러들기도 하고 말이야. 이런 게 바로 경외에서 오는 매력이야. 두렵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지. 또 친해질 수 있다면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생각해 봐. 내 불알 친구가 알고 보니 대기업 아들이래. 얼마나 든든하겠어?

그런 수현이가 떡볶이를 먹을 때 노벨짱처럼 질질 흘려댄다는 건 웃긴 일이지. 이건 공감의 영역이야. '아 그래! 나도 저래!' 아니면, '내 친구 중에 저런 애 있어!' 이런 정도의 감상이겠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속성이기 때문에 호감을 가질 수 있어. 여기서는 '저런 재벌집 딸내미도 떡볶이에 환장하는구나' 라는 반전적 요소 때문에 더욱 부각되는 면이 있지만, 꼭 반전적이지 않아도 좋아. 내 소설의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진 캐릭터는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아.




2. 예시


이번에는 두 가지 작품 속 캐릭터로 예시로 들어볼게. 내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캐릭터들이야.


첫 번째는 <지겜디>임.

한서림이라는 캐릭터는 딱 수현이 같은 캐릭터야. 재벌가 딸내미에 엄친딸 느낌이지. 주인공의 제안에 따라 인디 게임 개발에 뛰어드는데, 늘 완벽하고 도도한 모습만 보이던 한서림은 어느 순간 게임 커뮤니티에 중독되어 버려. 자기가 만든 게임의 평가를 확인하느라 커뮤인간이 되어 버린 거야. 마치 소설을 올려놓고 무한 새로고침으로 조회수와 랭킹을 확인하는 작가짱들과 비슷하지. 또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커뮤니티를 보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한서림의 커뮤니티 타락은 재밌는 요소로 느낄 수 있어.

아윤아윤에게도 이러한 공감의 모먼트가 있어. 아윤이는 주인공 연호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져 버려. 근데 그 옆에 엄친딸 한서림이 있었어. 한서림에 비하면 자기는 너무 초라했지. 그래서 아윤이의 첫사랑은 10초만에 끝나 버리고 만다.... 아주 잠깐 짝사랑하다가 엄청난 경쟁자 때문에 포기하는 것. 이거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일이거든? 그래서 너무나 쉽게 공감이 되고, 또 주로 어렸을 때 이런 감정을 갖게 되니까 아윤이를 더욱 귀여워하게 돼.


두 번째는 <죽사헌>이야.

은백합 영애가 나오는 파트야.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이 좀 틀릴 수 있으니 양해 바람.... 황태자가 개자식이었고, 은백합 영애는 황태자의 약혼녀이자, 개망나니 황태자님을 보살피는 역할이었어. 로판 세계에 빙의된 주인공 김공자는 은백합 영애에게 사랑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은백합 영애는 자신만의 사랑을 알려주기 시작하지. 그 파트에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등장해.


Lesson 1.(기초) 사랑은 개새끼를 경험하는 데서 시작한다. (심화) 너도 개새끼다.

Lesson 2.(기초) 개새끼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심화) 상대보다 더한 개새끼가 되어라.

(오늘의 표어) 개새끼한테 착해지지 마라. 개새끼와의 연애는 전쟁이다.

-나무위키 펌


은백합 영애에게 사랑이란 망나니 황태자를 다루는 법이었어. 놀랍게도, 영애는 망나니보다 더한 망나니가 되는 것으로 황태자를 다루고 있지. 오직 은백합 영애이기에, 개망나니에 찌질한 놈이어도 나의 남편이 될 사람이기에, 반드시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이기에 은백합 영애는 그런 식으로 사랑을 배운 거야. 그리고 자신만의 사랑을 아주 훌륭하게 해내고 있고.

나는 은백합 영애가 보여준 '능숙함'에 경외가 있다고 봤어. 생각해 봐. 우리가 틋녀가 됐고, 웬 개망나니랑 약혼하게 되었어. 그 망나니 새끼는 폭력적이고, 폭언을 일삼고, 나를 그다지 사랑해주지도 않아. 그런 상황에서 우린 뭘 할 수 있겠어? 연약한 마음의 작가짱들은 그저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은백합 영애는 달라. 오히려 망나니 황태자를 휘어잡고 다소 폭력적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사랑하기로 작정한 거야. 엄청 능숙한 대처이자, 성숙한 삶의 태도지. 타인의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여기까지고, 덧붙이거나 반박할 의견이 있다면 얼마든지 적어줘.

캐릭터를 구상하는 데에 또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공유해주고.


누군가 공감해준다면 다음 번에는 공감과 경외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써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