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랍스터는


대X 엑X포 공원에는 랍스터 식당이 하나 있었다. 테이블은 일곱 개. 네모진 목재 테이블 주위로 푹신한 소파 둘이 마주하여 꽤 아늑하고 그럴싸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갑천 천변 경치가 펼쳐져 있어서, 상대가 맘에 안 들어 파토난 소개팅처럼 별로 할 말도 없는 사람끼리 모인 어색한 자리에서, 서로에게 별 뜻도 없이 `경치가 참 좋네요' 라든가, `날씨가 참 좋네요' 따위의 말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주는 친절한 식당이었다. 식당 바로 앞의 수조에는 손님 앞에 대접될 랍스터들이 집게발도 안 묶인 채, 산 채로 기어 다니고 있어서, 갓 잡은 랍스터를 구워 올린다는 것을 어필하는 그런 랍스터 식당이었다.


엑X포가 막 열릴 때에 맞춰서 같이 개점했고, 엑스X 끝나면서 황금기가 끝난 그런 전형적인 유원지의 식당이기도 했다. 이따금씩 과학 공원에서 대규모 행사가 열리면 사람이 몰렸다. 그 행사기간 동안에는 하루에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 오곤 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세월이 흐르면서 뜸해졌다. 고급음식 하면 `랍스터!'하며 드라마에서도 연인끼리 레스토랑 가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랍스터만 뜯어제끼던 90년대가 지나버린 것이다. 이제는 좀 괜찮은 식당 소리 들으려면 덜 익혀 피가 질질 새는 고기 주위에 알록달록한 소스들을 전위적인 구도로 배치하는 프랑스 식당 정도는 되어줘야 하는 시대가 와 버린 것이다. 식당이 옛 전성기를 되찾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뜨문뜨문 가끔 오는 손님을 모시려고, 종업원을 계속 붙일 수는 없었다. 결국 식당에 남은 것은 주방장인 주인과, 수조 안의 랍스터들 뿐이었다.


주인은 종업원은 내보내도 랍스터는 버릴 수가 없었다. 수조 안의 랍스터는 손님에게 올릴 상품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요리가 싱싱함을 보여주는 간판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수조 안을 기어 다니는 그 랍스터들은 주인의 마지막 남은 요리인으로써의 자존심, 까지는 아니고 똥고집 정도 되는 셈이었다.


되지도 않는 식당 계속 열고 앉았으니, 안사람 바가지 긁는 소리는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처음엔 애들 학원비, 생활비 정도를 보채는 정도로 시작한다. 나중에는 생활비 타령 따위 안중에 없어지고, 웬수, 등신, 칠푼이 라며 한참 욕을 쏟아내는데, 끝은 꼭 너 같은 놈하고 결혼한 내가 미친년이지 타령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아내였던 사람은 서류와 도장을 내밀었다.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아무 말 않고 도장을 찍어줬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휑뎅그렁한 식당과, 수조 안의 랍스터들 뿐이었다.


지인들이 미쳤냐며 그러지 말라고 뜯어 말렸지만 고생한 아내한테 미안해서 유산으로 받아서 살던 아파트는 위자료 명목으로 아내에게 넘겨줘버렸다. 그 날부터 남자는 식당에서 먹고 자기 시작했다. 팔 물건이라고 사둔 랍스터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주인은 손님이 올 때까지 먹이를 주며 키우고 있었다. 가끔 오는 하릴없는 손님들은 유행 지난 랍스터 같은 거나한 식사는 시키지 않고, 커피콩 우린 시커먼 물을 다시 생수로 희석시킨 아메리카노라는 이상한 음료나 주문했기에 랍스터들이 주인 손에 척살되는 일은 나날이 미루어져만 갔다.


몇 년이 흘렀을까? 티비 하나 없는 식당에서 랍스터들만 춘하추동 끌어안고 살다 보니 주인은 어느 새 각 랍스터들에게 이름까지 지어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더듬이를 좌우로 흔들면 OK, 상하로 흔들면 NO, 화가 나면 집게발을 쩍쩍거리고, 기쁠 때는 수조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면서 자기 멋대로 랍스터들의 몸짓을 이리저리 해석하고 있는 지경이었다. (이 불쌍한 영혼에게 `랍스터가 더듬이를 대각선으로 흔들면 무슨 뜻인데?' 같은 것은 묻지 말자.) 마침 아홉 마리가 있다 보니, 각 랍스터들은 소녀시대 멤버 이름을 얻었다. `우쮸쥬 아이구, 우리 써니, 사료도 잘 먹네.' 라든가, `유리! 태연이하고 싸우면 안 되요! 집게발 들면 안 된댔지! 이쁘게 사이 좋게 지내요!' 같은 소리를 하며 넋 놓고 수조 속 랍스터들과 대화하는 주인 모습에 커피콩 우린 물 희석시킨 것이나 마시며 노가리 까려고 들어오던 남녀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손님은 더 뜸해졌다.


그렇게 원가 이백 원짜리 음료를 사천 원에 마셔줄 호구 손님들까지 끊기자, 경영난은 확실하게 가시화되었다. 수도세 체납. 전기세 체납. 재산세 체납. 고지서마다 `독 촉 장' 보라색 도장이 꽝 찍혀서 오기 시작하자, 이 몽상가 같은 주인도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나? 장사를 그만둬야 하나? 아냐,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거 말고는 없잖아. 그러면 부업 삼아 새벽에 신문이라도 돌릴까? 아냐, 그러면 피곤해서 낮에 장사는 어떻게 해?' 등등. 대책을 찾으려는 명확한 의지가 있어서 하는 걱정이라기보다는 불안감에 몸을 떨며 방황하는 정도의 걱정이라서 얼마 못 가 딴 생각으로 옮겨 가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소파에 앉아 낮잠을 자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너무 빤짝빤짝 눈이 부셔 쥐쥐쥐쥐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수조를 광내던 어느 날. 근처 대X 컨벤션 센터에서 푸드 페스티발이 열렸다며 유달리 거리에 사람이 버글거렸다. 세상만사 관심 없던 주인도 사람이 모이자, 혹시 손님이 좀 오려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꽤 지나도 손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공짜 음식 주는 시식 행사장에 몰리겠지 하며 단념하고 테이블 한 자리서 두 다리 뻗고 앉으려는데 땡그랑 울리는 식당 문의 종소리. 손님은 일곱 명. 주인은 손님들의 깔끔하고 부티 나는 행색을 보고 직감했다. 분명히 대어라고, 콩 우린 물 희석한 물 따위나 먹고 갈 사람들이 아니라고.


신이 나서 어서옵쇼 인사하고 테이블 닦고 자리로 모신다. 손님들은 랍스터 집에 랍스터가 맛있겠지 짐작하면서도 거드름 피우며 뭐가 맛있나요 라고 물었다. 주인장은 몸이 달아올라서 랍스터 스프에 랍스터 구이가 아주 좋습니다 라고 침을 튀긴다. 푸드 페스티발 기간이라 세트 메뉴를 특별 세일가로 모신다면서 생각에도 없던 할인 이벤트를 지어내니, 손님들이 은근히 마음이 동하는 눈치였다. 이 얼마 만에 맡는 돈 냄새인가? 그렇게 7인분 세트 메뉴 주문을 받고 부리나케 수조로 달려간 주인은 아뿔싸 싶었다.


누구를 잡아야 하지?


손님들은 기다리며 잡담을 하다가 이십 분을 넘게 기다려도 랍스터 잡으러 간 사람이 수조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결국 일행 중에서 성질이 급해 보이는 한 사람이 거, 언제 음식 나오는 거요 라며 따지듯이 묻자, 주인은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린다.


아 그게, 저.


그거 잡아서 요리하는 거 아니요?


예, 맞습니다.


그럼 아직 시작도 안 했단 말이요?


아 그게, 저.


이 사람이, 장사 하자는 거요, 말자는 거요?


아 그게, 저.


주인은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죠. 서현이는 너무 앙증맞아서 못 잡겠고, 써니는 조카딸 같이 친근해서 못 잡겠습니다. 제시카는 쿨하면서도 새침한 모습이 좋아서 못 잡겠고요, 윤아하고 유리는 벌써 서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같이 노는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얘네들 중에서 하나라도 잡으면 다른 친구들이 너무 슬퍼서 펑펑 울 겁니다."


말을 할수록 주인의 목소리는 점점 물기가 묻어나더니, 이제는 누가 들어도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제가 이 귀여운 아이들에게 어떻게 손을 대겠습니까?!!"


주인은 눈시울이 시뻘개진 채, 우는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손님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자신들이 식당에 들어온 것은 맞는지, 저 놈은 제정신인지, 우리는 무슨 이상한 퇴폐업소에 들어 온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기 시작하려는데, 주인이 눈물을 훔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랍스터는 못 팔겠습니다! 제게는 모두 싸랑하는 가족이거든요. 나가 주세요!"


그렇게 주인과 소녀시대는 행복하게 참도 잘 살았겠다.


엔딩 BGM: Spankers - Sex on the Be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