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내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밤늦게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가 늦가을이었으니, 아마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가방끈을 조절하는 장치가 뭔가 잘못되었었던 건지, 묵직한 책들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왼쪽 어깨가 아프던 기억이 난다. 


나는 편의점에서 막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나오는 길이었다. 무슨 맛을 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막 포장을 벗겨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을 때 들었던 느낌을 기억한다. 


그때 김밥에서는 비린내가 났었다. 그때는 그것이 피비린내라는 것을 아직 알지 못했었다.




늦가을의 밤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내가 살던 곳이 완전 시골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도시도 아니었기에, 운이 좋다면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어두운 별들도 볼 수 있었다. 


나는 편의점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들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시각은 곧 오전 12시로 접어들고 있었고, 나는 이상한 맛이 나는 삼각김밥을 베어 물며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때 즈음 지나친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휴대폰을 빼앗겼으므로, 내게는 걷는 도중에 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만큼은 하기 싫었기에 나는 성적을 올리려 노력하는 대신 특이한 취미만을 하나 얻게 되었다. 별자리를 세는 것이었다. 


내가 매일마다 커다란 하늘에 빼곡한 별자리가 들어찬 지도를 작게 접어 다니는 건 선생님들도, 부모님도 몰랐다. 그렇게 지도를 들여다보다 잠이 들고, 또 그날 밤늦게 하늘에서 작은 빛들을 쳐다보며 서로 연결해 보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었다. 


비록 계절이 쉽게 바뀌지 않기에 매일 똑같은 하늘과 똑같은 별자리기는 하다. 그러나 그 또한 별자리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쉽게 바뀌는 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날도 하늘을 쳐다보며, 수십 번은 그렸던 페가수스자리를 다시 마음속으로 연결해 보면서 나는 걷고 있었다.


그때 익숙하지 않은 빛이 하나 보였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페가수스자리에는 말의 몸체가 되는 커다란 사각형 하나와 목으로 이어지는 선 하나, 두 앞다리를 표현하는 또다른 선 두 개가 있다. 


이상한 점은 그 사각형 안의 정중앙에 무언가 밝게 빛나는 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밝기는 시리우스나 카노푸스(노인성)에 필적할 정도로 밝았는데, 비행기가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눈가를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빛이 깜빡이지 않는 것을 보니 비행기는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빛의 정체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내 옆의 도로에서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 다음에야, 나는 내가 어느새 가만히 서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걷고 있었을 때는 주변에 자동차가 한 대도 없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손에 들고 있던 삼각김밥은 어느새 절반 이상 사라져 있었다. 처음 한 입 베어 먹은 후 손도 대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경황이 없었고, 빨리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했기에 딱히 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그만두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도로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의 어두운 빛이 깜빡였다. 전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죽 직진해서 사거리의 모퉁이에 도착한 후에야 나는 걸음을 늦추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통금에 그리 빡빡한 편이 아니었다. 


나는 자동차 하나 없이 텅 빈 사거리의 도로와 빨간불이 고장난 것인지 그냥 꺼져 있는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이 동네는 전등이 유난히 자주 고장났다. 더 이상했던 점은 밤에는 완전히 멈춰 버렸던 전등이나 LED라도 아침이 되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무슨 전력 정책 때문에 이 도시에 간헐적인 단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자주 불평하셨지만, 건전지로 작동하는 손전등도 꺼져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셨다. 


나 역시 소문이나 괴담으로만 이를 접해 보았고 딱히 깊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어두운 가로등의 불빛에만 의지해 사거리에 서 있자니 불안감이 서서히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도로에서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신호등을 쳐다보았다. 빨간색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이 없었고, 초록색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슬슬 내가 지나가야 할 타이밍을 이미 놓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서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단횡단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주변을 한 번 크게 둘러보고, 저 멀리에서 오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후에, 도로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대체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목이 갑자기 위로 들렸다. 내 목 관절은 마치 수십 년 동안 해 왔던 일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위쪽으로 꺾었다. 


나는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로 도로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당장 차에 치인다 해도 할 말 없는 이 태도에 내 손이 기겁해서 머리를 다시 내려오게 하려 했지만, 내 눈꺼풀은 굳건하게 하늘을, 그 속의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페가수스자리의 한복판, 커다란 사각형의 중심에. 나는 그 밝은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마법이 풀렸고, 나는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담장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로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거리를 넘어서 아파트 바깥쪽에 있는 울타리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나는 쓰라린 이마를 매만지며 다시 머리를 손으로 훑었다. 딱히 커다란 상처는 없었다. 


방금 그 강압적인 고개 올리기가 뭐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너무 피곤하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나 슬쩍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멍하고 지친 상태로, 더는 이상한 일들에 휘둘리기 싫었던 나는 가방을 다시 어깨에 들쳐메고 일어섰다. 빨리 집에나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내 옆으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입에서 비명소리가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나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얼빠진 신음을 내며 다시 한번 주저앉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그 물체가 뭐였는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살아 있는 비둘기였다. 


바들바들 떨며 푸드덕거리는 그 비둘기는 몸이 젖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비둘기를 만져 보자, 끈적한 촉감이 전해져 왔다. 그제야 나는 이 비둘기가 피를 흘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 냄새를 맡자 나도 모르게 아까 전에 샀던 삼각김밥이 떠올랐다. 묘한 비린내를 풍기던 그것은 어느새 내 손에서 사라져 있었다. 뛰어오던 도중에 흘린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다시 한번 크게 돌아보았다. 너무나도 적막했다. 자동차가 없는 도로, 빛이 비치지 않는 가로등, 사람들이 없는 주택가. 그저 나와 이 피를 흘리는 비둘기만이 푸드덕거리며 소음을 내고 있었다. 


아마 풀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내가 담장에 몸을 부딪친 반동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비둘기를 상처 입힌 동물은 어딘가로 사라진 지 오래였는지, 아파트 울타리 건너편도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비둘기는 밝은 빛을 받으며 구슬프게 한 번 울었다. 아. 비둘기는 정말 그렇게 울었다.


머리가 조금 가라앉았으면 좋았겠지만, 갑작스럽게 시작된 편두통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시큰대는 관자놀이를 한 손으로 눌러 대며 비둘기를 살펴보았다. 


수의학과는 연관이 없는 나였지만, 이 비둘기가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가망은 없어 보였다. 발 하나가 통째로 잘려 나갔고, 가슴께에 상당한 깊이의 관통상이 하나 있었다. 가만히 놔둬도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비둘기를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는 한 가지, 이 비둘기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발광을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비둘기의 피 묻은 깃털이 어떤 밝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기에 그리 보이는 것 뿐이었다.


다시 하늘을 쳐다보자, 그 빛의 진원지를 알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페가수스자리 한복판에 있는 그 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별은 자신의 빛을 정확하게 비둘기에만 비추고 있었다. 


나는 비둘기를 한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빛은 여전히 비둘기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세 걸음, 뒤로 세 걸음, 그리고 양옆으로 아무렇게나 왔다갔다 해 보았다. 별빛은 집요하게 비둘기를 따라다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양손으로 비둘기를 들어서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깃탈이 반사한 별빛이 내 홍채로 들어오며 은은한 섬광을 남겼다.


이 비둘기가 성스러운 비둘기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이 비둘기가 신의 화신인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는 무교였다. 


그럼 이 비둘기가 빛을 끌어들이는 특이한 성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게 가능하다면 나는 벌써 노벨상을 받았겠지. 실없는 생각을 옆으로 흘리며, 나는 비둘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이든 간에, 치료를 하지 않으면 확실히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붕대도, 소독약도 없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치료를 하라는 말인가? 


나는 비둘기에서 시선을 돌려서 그 환한 별빛을 바라보았다. 페가수스자리의 한복판. 이제 보름달만큼 밝게 빛나고 있는 그 별빛은, 내게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어두운 밤의 한복판에서 그 빛은 내게 어떤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요? 나는 마음속으로 물었다. 별빛이 빛났다. 마치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별빛이 직접 말해 준 답이었다. 


나는 그것에 처음에는 놀랐다가, 그 뒤에는 거부하고, 다음으로 고민한 뒤에, 마지막으로 승낙했다. 내가 찬성의 뜻을 표하자, 별빛이 밝게 빛났다. 마치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울림이었다.


나는 어두운 밤중에 죽어 가는 비둘기와 마주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인 것처럼 가방을 뒤적거려서 안에서 조그만 가위를 꺼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적당한 크기의 가로수를 발견하고 그 아래에 쪼그려 앉았다. 


이때까지 체념한 듯 가만히 있던 비둘기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건지 갑자기 거칠게 푸드덕거리기 시작했으나, 나는 한 손으로 목을 단단히 잡고 다른 손으로는 가위날을 잡았다. 금속날이 별빛을 시퍼런 색으로 반사시켰다.


치료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편히 죽게는 해 줘야겠지. 나는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신도 알듯이, 어두운 밤과 그 속의 밝은 별빛들은,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홀리는 마력이 있다.


나는 비둘기에게 짧고 편안한 최후를 맞이시켜 줄 생각으로 가위날의 한쪽 부분을 단단히 잡았다. 비둘기가 울었다. 아까와 같은 구슬픈 소리가 아닌, 무언가 다급한 소리가 느껴지는 기색이었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가위를 꼬나쥔 손을 높이 들었다가, 그대로 아래로 내리찍었다. 


피가 튀었다. 그토록 조그만 생물에게서 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피가 튀었다. 


작은 비명이 내 손 안에서 울렸다. 비명이라기보다, 그 안에 남아 있던 숨이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가위를 다시 들어올렸다가 망치로 치는 것처럼 내려찍었다. 핏방울이 내 얼굴에 튀었다. 비둘기의 날개가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천천히 가위를 비둘기의 목에서 빼냈다. 진득한 액체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비둘기는 죽었다.


그리고, 손에 묻은 피가 차가운 바람에 채 식기도 전에, 내 얼빠진 얼굴에 서서히 경악이 떠오르려 할 때, 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맑고 청량한, 마치 어린아이가 즐겁게 웃는 듯한 꺄르륵대는 소리. 


나는 한 손에 가위를 든 채로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주변에 어린아이는 없었다. 저 멀리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행인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웃음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내게 들려주는 웃음소리였다. 나를 위해 들려주는 웃음소리였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별이 내게 웃어 주고 있었다. 아름답고, 또 찬란한 그 별이.


그때 내 몸이 다시 한 번 통제권을 잃었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별도 내게 웃어 주었다. 


나는 곧 큭큭대며 웃기 시작했다. 별도 꺄르륵대는 웃음소리를 들려 주었다. 나는 마침내 배를 부여잡고, 박장대소하며 바닥을 구르다시피 했다. 별빛도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 숨을 헐떡이며 웃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웃어 주었다. 그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야, 나는 그 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별빛이 비둘기를 점지해 주었던 것은, 그것이 살아남기를 바라셨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 비둘기를 치료해 주기를 원해 주셨던 것도 아니었다. 별빛은 비둘기를 첫 번째 제물로 삼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아, 나는 얼마나 무지했던 것인가, 비둘기를 살리려고 하는 미련한 마음을 품다니? 나는 몸을 경련하다시피 하며 웃었고, 웃으며 자책했다. 그러나 별빛은 나의 멍청한 실수를 용서해 주듯이 비둘기의 시체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움직여 주셨다. 


나는 즉시 웃는 것을 멈추고 가방을 챙겨 그 빛을 따라갔다. 별빛은 부지런히, 그러나 소리 없이 움직였고, 나 역시 그분을 본받아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빠르게 따라갔다. 그리고 이윽고 별빛이 목적지에 이르자 나는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까 전에 내가 말했던, 저 멀리 걸어가고 있던 행인이었다. 분명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던 행인은 어느새 몇십 미터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나는 주변을 보았고, 내가 어느새 원래 있던 곳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음을 깨달았다. 


집으로 향하는 방향과는 반대편으로 떨어진 곳이었다. 저 앞의 행인은 아직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듯,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하늘을 보며 걷고 있었다.


나는 들고 왔던 가방을 어깨에서 조심스레 내려놓고, 한 손으로 가방끈을 쥐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계산이 끝나 있었다. 크게 한 번 휘둘러서 뒤통수를 가격한 다음에, 행인이 넘어지면 턱을 집중적으로 가격한다. 그리고 들고 온 가위를 사용한다. 


별빛이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행인의 등을 밝게 비추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꾹 참은 뒤 한 손에 무거운 가방을 든 채로 행인에게로 접근했다. 행동할 시간이었다. 20m, 10m, 5m의 벽이 지나고, 나는 행인의 바로 뒤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행인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평범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별빛이 저자의 귀를 가려 주신 모양이었다. 나는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띠고,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그리고 친다. 손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가방이 회전을 시작했다.


그 순간 별에 구름에 가려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제정신이 돌아오자 가장 먼저 손이 떨렸다. 회전 궤도에서 벗어난 가방은 제멋대로 날아가더니 도로면에 불시착했다. 행인은 그 소리에 흠칫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보고 황급히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내 얼굴과 셔츠에 튀어 있는 비둘기의 피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멍하니 도망가는 그 행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주저앉았다. 챙겨 왔던 가위에서는 여전히 비둘기의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별은 구름 뒤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황급히 가방을 챙기고, 머리 위로 올려서 별빛이 내 몸에 닿지 않게 했다. 그리고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짧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다행히도, 그 행인은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아니면 내 인상착의를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거나. 


비둘기의 시체는 그 다음 날 환경미화원 분들에 의해 쓰레기장으로 옮겨졌고, 가로수 아래는 깨끗이 청소되었다. 다만 핏자국은 여러 날 동안 남아 있었다. 


나는 밤늦게 집으로 들어가 셔츠를 빨래통에 집어넣고, 얼굴에 튄 피를 닦았다. 그 다음 방으로 들어가서 별자리 지도를 꺼내 조각조각 찢어버리고,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학교로 등교했다.


그 다음 34년 동안,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없다. 특히 가을철이 되면, 아예 밤에는 집 밖으로 나가려 들지도 않았다. 해가 지고 난 뒤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별의 웃음소리를 다시 듣게 될 것 같았기에. 페가수스자리의 한복판에 있는, 제물을 원하는 그 별을.


***


예전에 괴담챈에서 썼던 거 하나 긁어와 봤음

앞으로도 종종 들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