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https://arca.live/b/worldliterature/68015693

1장

 소년은 운명에 따르기 위해(어쩌면 맞서기 위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길을 나섰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길 끝에 다다르려면 목적지와 자기 형편을 알아야 한다. 목적지가 없는 자라면 형편이라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주머니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지?’ 

주머니를 열자 눈부신 빛이 튀어나와 소년의 눈을 감겼다. 

거기에는 금화 세 닢이 들어 있었다. 동화도, 은화도 아닌 금화. 

금화는 가난한 하인 한 명이 밥도 먹지 않고 일 년은 새경을 모아야만 겨우 한 닢 손에 쥐어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면 아무리 부가 많고 풍요롭게 살아도 화폐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볼 일이 없다. 

이런 물건을 소년의 아버지가 갖고 있는 이유는 역시 얼마 전 길을 잃어 마을에 불시착한 유랑 상단밖에는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정말로 귀한 물건이잖아.’ 

농부가 물려준 금화는 장사꾼들이 물건을 얼마에 파는지 알지 못하는 소년이라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가치높은 물건이다. 

이 종류의 돈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간다고 하더라도 금은 어디서나 비싼 물건이고 욕망이 있는 족속이라면 누구나 탐하는, 본능을 자극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연유이다. 

처음 모험을 떠나보는 이에게 이런 것을 세 닢이나 들고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면서 동시에 몸이 무거워지는 족쇄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돈은 있지만 여행길을 가면서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이다. 

퍼머슨도 농사가 안 되어 굶어 본 경험은 여럿 있지만 사람이 많이 굶어 본다고 굶어죽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자연히도 첫 번째 목표는 이웃마을에 가서 여행길에 필요한 먹을 것과 물을 담을 부대를 구하는 일이 되었다.


 소년은 고향마을을 벗어나본 일이 없어 이웃마을까지 가는 길을 몰랐다. 

물론 사람이 다니는 길을 따라간다면 사람이 사는 곳으로 이어지겠지만, 그 전에 나자빠질 공산도 크다. 숙련된 경주가라면 다들 알듯이, 험한 경주로보다 진이 빠지는 길은 끝이 어딘지 모르는 경주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년은 잠시 꾀를 내어 궁리해보고는 저 멀리 보이는 산을 올라타 인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본다는 말이 있던가, 소년의 선택은 충분히 분별력 있는 선택이었다. 산꼭대기에 올라간다면 산에 가려진 인적뿐만 아니라 먼 곳에 있는 마을까지도 까마귀가 내려다보듯 훤히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풀이 헤쳐져 만들어진 길에 의지해 걷고 또 걸었다. 잡초도 무성하고 돌도 많이 박혔지만 누가 먼저 닦아 놓은 길을 발견한다는 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편히 걸을 수 있게 한다느니 마차를 굴릴 수 있게 한다느니 하는 건 길의 부차적인 역할일 뿐이고, 길이라는 것이 해주는 가장 큰 일은 어디로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아무리 절박한 나그네라도 길 없는 데로 쏘다니느니 짐승길이라도 택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설령 짐승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더라도 누군가 지났던 길이라면 그처럼 막막한 평원에 내던져진 사람은 고맙게 따라갈 것이다.


 산까지 가는 길의 도움을 받아 퍼머슨은 거의 지평선에 걸쳐 있던 산까지 걸었다. 

그렇게나 많이 걸어 본 것은 처음이기에 산기슭에 다다를 즈음해서는 녹초가 다 되어 있었다. 

때마침 산허리를 둘러 흘러가는 시냇물에 신께 감사를 올리며 타는 목을 축이는 와중, 어딘가에서 희미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이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의아했다. 이런 바위산에 사람이 살 이유는 별로 없기 때문에 왜 들려오는가는 더 큰 수수께끼였다.

 어릴 적 아비가 들려 준 신화 이야기 속에서는 산마루에서 신들이 연회를 열고 신주를 마시며 수금 퉁기는 소리를 즐긴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것은 신이 부는 피리 소리란 말인가? 

잠시 쉬어가려던 소년은 호기심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원래부터 꼭대기에는 오르려 하기도 했고, 어쩌면 그곳에서 피리 부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힘이 되돌아올 때까지 숨을 가다듬은 후에 소년은 바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맨땅을 지나는 것보다 산길을 오르는 것은 힘이 든다. 대략 산 중턱부터 소년은 자기가 멍에를 지우고 땅을 갈리우던 소들을 떠올렸다. 

그가 농부로 살아가던 날들은 소와 함께하던 날들이었다.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던 퍼머슨 일가에는 소가 몇 없었다. 

농사가 안 되어 말라죽을 고비를 넘겼던 해, 부자는 마지막 남은 소의 목을 쳐야만 했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이듬해의 땅은 부자가 직접 쟁기를 들고 갈아엎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 해에 그들의 팔과 다리는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으며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머리가 핑핑 돌지 않은 날도 한 번 없었다. 

소년은 새삼 감사했다, 그들이 한해간 죽을힘을 다해야 했던 그러한 고역을 소는 등에 묵묵히 이었음을. 

소는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족들에게 사로잡힌 것도 아니면서 바위와 같은 인내심으로 인간의 삶을 짊어지는 것이다. 

 꼭 그들이 메는 보습을 끌고 걷는 것처럼 소년의 팔과 다리는 무거웠다. 그러나 온갖 애를 쓰며 산을 오르자, 피리 소리는 점점 커져왔다. 정상에 도착한 소년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소리쳤다. 

 “너는 사람이냐, 유령이냐? 누구든 날 좀 도와 다오.”

 그는 대답했다. “한때는 유령이었으나 이제는 나도 사람. 내 부모는 모두 수도 출신에 어머니는 노예였다네.”


 사내는 약초꾼이나 사냥꾼 같은 산사람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천리 밖에서도 보일 시뻘건 옷에는 우스꽝스러운 프릴과 레이스를 달았고, 신발끈은 하늘로 솟아오를 것처럼 뾰족한데다 해괴망측한 무늬의 천을 기워 만든 모자에는 방울이 여럿 꿰여 있었으며 얼굴에는 웃는 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손에 든 피리는 매끈하게 갈아낸 뼈 같기도 하고 상아 같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어딜 봐도 어릿광대 같은 차림이었다. 


 “안녕, 내 이름은 이드. 넌 뭐하러 여기까지 올랐냐?”

 “피리 소리를 따라 올라왔어. 아니, 그건 내가 할 질문 같은데? 왜 그런 이상한 옷을 입고 산마루까지 올라와서 피리를 불고 있는 거야?”

 “너같이 멍청한 모험가들이 진땀빼면서 산꼭대기로 올라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지. 어때, 꽤 성공적인 것 같지 않아?”

 사내의 목적이 그것이라면 분명 사내의 행동은 성공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사내의 그 말은 대답이 되지 못했다. 적어도 소년이 생각하기에는.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고 먹을 것이나 가치있는 것이라곤 전혀 없는 바위산에 모험가들이 굳이 찾아올 까닭이 만무할 뿐더러, 그 전에 그런 얼토당토않은 일에 힘과 시간을 쏟아 제 목숨을 위협하는 짓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소년은 이 광대 복장을 입은 이상한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여기를 지나치는 모험가가 그렇게 많을 리 없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여기까지 찾아왔지.” 그 말은 소년의 정곡을 찔렀다. 

 “그렇기는 해. 하지만 잠깐 지나쳐갈 뿐인 나와는 다르게 너는 여기에서 머무르고 있잖아. 도대체 어째서?”

 “왜긴? 누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니까. 그리고 넌 아직 내 물음에 대답을 안 했어. 뭐하러 여기까지 왔냐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리소리만 울리던 하늘에 웃음소리가 드리웠다. 

“푸하하하하하! 그래서 점쟁이 말을 믿고 아무 것도 없이 네가 살던 곳을 떠나왔다고? 너 제법인데! 나보다 더 미친놈이잖아! 우히히히히.” 사내는 아예 돌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 웃겨? 나한테는 진지한 꿈이라고. 단순히 속아넘어간 게 아니란 말이야.”

 “그렇겠지! 진지하게 그러고 있으니까 더 웃기다고! 크하하하, 우하하, 이히히히히히!”

 “내 생각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뭐야? 그러는 너는 얼마나 대단하길래 비웃는 건데?” 소년은 불쾌함에 얼굴을 찡그렸다. 

“마음에 안 들긴, 난 네가 아주 마음에 들어.” 사내는 가면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눈물을 닦았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게 바로 너 같은 사람이라고. 이런 녀석을 만나다니 역시 나는 운이 좋은걸.” 

사내는 갑자기 잰걸음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예상대로야. 너 남들이 못 보는 걸 보곤 하지?” 광대들에게 진지함이라는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불명이지만 그는 광대치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봐 그 부분은 빼고 말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말할 땐 그냥 말해. 어차피 그거 빼고도 충분히 이상한 사람 맞거든.” 

한 발 물러서서 사내는 말했다. “보통 이 정도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녀석들은 다들 그래. 어떤 놈은 밤에도 북소리가 계속 들려와서 잠을 못 자겠다고 북을 찢어버리겠다며 소리를 따라가다가 모험을 시작하기도 했지. 이상한 놈들이 이상한 걸 보는 건지, 이상한 걸 보고서 이상한 놈이 되는 건지 통 모르겠단 말야.”


 소년에게 문득 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을 이드라고 소개한 이 광대가 어쩌면 자기가 찾고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을지도, 혹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조금 미심쩍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눈 속의 신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점쟁이 노파와 이 광대 남자뿐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어?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지? 내가 가는 길 끝에는 뭐가 있는 거야?”

 “야, 한 번에 하나만 물어봐! 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가냐? 거 참 성질도 급해서는, 물론 난 네가 물어볼 만한 건 다 알고 있지만 알려줄 수는 없어. 알려주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설명해줘도 못 알아먹을 거거든. 내 말하건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니까.”

 “으음,” 설렘도 잠시, 소년은 김이 샜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는 것보다도 조금 기대하고 나서 실망할 때 그 깊이는 더해지고, 거기에 거의 잡았다고 생각한 기회가 별 볼일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사람은 배신감마저도 느낄 것이다. 

실제로 이 소년은 산에 올라온 것조차 후회되기 시작했다.

 “너야 그런 것들 때문에 길을 떠나왔겠지. 그걸 궁금해하는 건 아주 좋은 거야. 막상 집을 나와놓고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모르는 바보들도 있거든. 근데 너한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도 네 앞가림하는 방법이걸랑.”
 “내 앞가림?”

 “그래. 혈기넘치는 건 이해하겠는데 죽으면 말짱 꽝 된다고. 너 좀 봐봐. 여행자라는 게 밥도 안 챙겨 와서 사먹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애초에 넌 그럴듯한 모험 계획도 없잖아.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오겠다’고? 네가 시인이면 그런 허풍도 좀 쳐볼 수 있겠지만, 모험가한테는 목적지가 없다는 게 낭만이 아니라 묘비명이야. 내가 너 같이 대책없는 젊은이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대로 가면 틀림없이 개죽음 당할걸.”


 소년이 실망하거나 말거나 사내는 사실만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한껏 부푼 꿈을 안고 젊은이들은 모험을 시작하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떠난 이들은 팔 한 쪽만 남거나 아예 뼈도 못 추린 채 고향에 눈물겨운 소식만 안겨준다. 

꿈을 쫓다 실각한 자들이라면 차라리 낫지, 돈을 벌기 위해 도시에 올라갔다 되려 살길이 막막하여 길바닥에 얼어죽는 가난뱅이들도 있고 전쟁이 났을 때 군대에 바칠 것이 몸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싸움판에 끌려들어가는 청년도 많다. 

 산 자들은 단지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뿐, 이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있기 힘든 일(어떤 이들은 그것이 신의 기적이라고도 말하지만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태어나 살게 되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저주받은 것이라고 한탄한다)이다. 

인간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끈덕지게 살아남는 자들인 농부들조차 땅을 악착같이 파서 매년 버티는데, 그마저도 날씨의 변덕으로 생사가 결정되니까. 

특히 모험가들의 목숨은 모든 생명들 가운데 가장 가벼운 파리목숨이다. 

설령 맨손으로 나무를 꺾어 무너뜨리고 사람 키보다 넓게 벌어진 협곡 사이를 넘나드는 영웅이 모험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려 버린달지 실수를 하면 죽기만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죽음의 무게를 상기하자, 소년은 덜컥 겁이 났다.

 “네 말이 맞아. 챙겨온 돈이 떨어지고 나면 꿈을 따라가기는커녕 빌어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겠지. 그러니 알려줘. 어떻게 해야 나는 똑바로 서서 걸어갈 수 있는 거야? 나는 평생 밭을 일구며 살아서 방랑하는 삶에 대해서는 몰라.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사내는 호방하게 웃었다. 아니, 미친 것처럼 웃었다고 해야 할까. 과연 광대다운 몸가짐이다.

 “배우려 드는 자에게 지혜 있으라! 아무리 멍청하고 아무리 무모할지언정 자기 고집 꺾을 줄 아는 녀석이 제자리걸음하지는 않는 법이지. 가르침을 받고 싶다면 나를 따라와. 첫번째 수업부터 시작할 테니.”


 이드는 소년을 바위산에 난 동굴로 이끌었다. “모름지기 모험가라면 보금자리를 잘 잡아야 해. 자는 동안은 누가 업어가도 할 말 없는 거니까. 마을 여관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돈이 없다면 주민들에게 방을 빌리거나 마굿간에서 자게 해달라고 빌 수도 있지. 

 야영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아. 일이 잘못 돌아갈 때는 늑대밥이 되는 건 운이 좋은 편이고 산적에게 사로잡히기라도 하면 노예로 팔려나가서 평생 강제노역을 하게 되니까. 혹시라도 밖에서 자야 한다면 몸을 숨길 수 있는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아. 이런 곳 말이야.” 

사내는 들고 온 모포를 바닥에 깔았다. 


 “식량은 어떻게 해?” 소년이 묻자 그의 목소리는 동굴을 울리며 메아리쳤다.

 “아, 좋은 질문. 보통 모험가들은 자기가 먹을 식량을 챙겨 다니거든.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네가 몰랐다면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소년은 그를 째려봤다. 이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며칠 안 먹는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아. 살이 빠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시작인거지. 적당한 먹을거리가 없으면 사냥이라도 해야 할 거야. 

 그렇다고 사슴이나 토끼 같은 날랜 동물들은 잡을 생각도 하지 마. 뱀, 개구리나 딱정벌레 정도가 잡기 쉽겠지. 지금은 그런 걸 어떻게 먹나 싶겠지만, 그 때 가면 절로 알게 돼.”


 밤이 깊도록 이드는 소년을 가르쳤다. ‘가르침을 받는 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니, 소년이 이 모든 것을 진정으로 깨우치려면 직접 구르며 먼지를 마셔야만 한다. 별의 노래를 들으며 왕도를 걷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년은 이 낯선 이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명심한다. 

배우려는 자세만 되어 있다면 사람은 거지와 노예마저도 스승으로 삼을 수 있고, 그 같은 젊은이라면 특히 많은 스승을 두어야 한다. 

식견 없는 청년은 빈 석판과 같은 것이라 무엇이든 새길 수 있지만 힘들이지 않고 깎을 수는 없으며, 설령 힘을 들여 글귀를 파내더라도 그것이 훌륭한 글이리라는 보증은 누구도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석공들이 모여 문장도 새기고 그림도 조각해 넣어야 그 석판은 비로소 위대한 전설을 담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듯 선생질에는 손톱만큼도 어울려 보이지 않는 이 광대는 흙내음과 별바람만이 흘러들어가는 소년에게 모험을 가르쳤다.

 “여기까지야. 어차피 사람 손길 안 닿는 곳에서 한 몇 년 살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뿐이지. 그래도 떠돌이 생활 하면서 근근히 깨닫게 되는 것보다는 지금 알고 조금이라도 늦게 죽는 게 내 입장에서는 덜 불쌍하잖아?” 광대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가는 거야?”

 “아니, 마지막으로 보여줄 게 있으니 따라오라고.” 사내가 훌륭한 줄들을 매단 수금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서자 소년도 따랐다. 


 그들은 돌길을 걸어 경사가 바른 고원으로 향했고, 그 곳에는 벽돌과 기둥과 석상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비바람에 부서지고 돌이끼에 무뎌진 그 돌들 위에 남아 있는 돌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었다.

  “이 산이 처음부터 인적 없는 바윗덩어리는 아니었어. 촌뜨기들이 못 살겠다고 떠나버린 흔해빠진 폐허도 아니야. 여기는 네가 상상도 못 했을 태곳적의 전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고원의 낮은 곳, 폐허를 우러러볼 수 있는 곳에서, 사내는 모서리가 닳아 없어진 주춧돌에 기대어 수금을 어깨에 대고 안았다. 

 “이 곳에서 일어난 일은 문자가 없는 시대의 것이야. 그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다 글로 옮겨지지 못한 채 마지막 가인이 땅에 묻히는 순간 허공으로 흩어졌지. 그들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음유시인은 이제 나뿐이야.” 

사내는 굳은살 박힌 손끝들을 줄들 위에 올렸다. 


 “내가 그것을 들려주마.”

그런데 그는 뭐라고 노래를 불렀는가? 얼마나 훌륭하게 수금을 탔는가? 태고부터 불러져내려온 곡조는 또 어떻게 불려질까? 

나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설령 내게 종달새의 목소리와 빗소리처럼 수금을 타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 감히 말하거니와)음악의 여신께서 직접 내게 임하실지라도. 

아쉽겠지만 그대들은 그리도 오래 된 노래의 가락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의 여신들이여, 그 노래의 가사만큼은 내게 허락하시어, 내 음송을 듣는 자들 가운데 살아 존속하도록 전하소서.


    드높이 치솟은 탑이여,

    또 샘물이 흐르는 산이여,

    또 생명이 넘치는 땅이여!


    내가 너희를 그리워하니 눈물로 너희를 기억하리라.

    어찌하여 저희를 떠나왔는지 노래로 무리를 위로하리니,

    거짓으로 여기는 그날의 일이 진실로 저 땅에 일어났더라.


    수백의 세대를 거슬러가는 머나먼 고대를 이야기하노니

    그 때의 대륙은 텅 비어 있는 땅덩이를 작은 부락들이 채웠고,

    이러한 이들은 이들끼리 저러한 자들은 저들끼리


    울 없는 드넓은 대지에 점으로 박히어 지내었고,

    현자가 산다 하는 산정에야 도시를 지었다 하는데

    그곳은 말씨 다른 부족들이 한데 뭉치어 부대꼈고


    제자들의 통역을 받는 지혜로운 현자가 다스렸는데,

    그들의 흠은 덮어주고 그들의 힘은 드러냈으니

    아침과 밤이 다름같은 여러 족속이 어우러짐에


    도시는 날마다 부강해지고 나라의 울은 두꺼워짐이

    신들이 보기에 거북하여 그들을 어찌할지 의논하더라.

    한편은 우리가 돌탑을 쌓고 하늘에 닿자며 숙덕거리니


    바위를 깎아 뚫고 밧줄로 들어올림이 어찌나 날랬는가!

    말이 통하지 않음에 행함만이 이들을 규합했으니,

    오로지 빛나는 지혜가 섞이지 않는 민족들을 묶어두더라.


    지금부터 노래할 것은 전부가 허구 없는 사실이니

    사라진 머리가 수만에 잊혀진 무리가 셋이요,

    남은 것은 우리뿐이나 살았던 이름들을 말로써 기록하리.


    그 중에 하나는 요정족으로 키가 크며 말랐고

    수풀을 좋아하는 민족이더니 본래는 숲에서 살더라.

    그들은 법도를 중히 하여 올바른 율법을 길렀고


    율법에 들지 않고선 말 한 마디도 않았다.

    이들은 성실한 일꾼들이니 묵묵히 돌을 옮기므로

    눈에는 띄지 않으나 거탑의 큰 공로는 이들의 것이라.


    그 중 또 하나는 난쟁이족으로 작으며 튼튼하고

    바위를 부수는 민족이더니 본디부터 산중에 살더라.

    그들은 지식을 귀히 여겨 진리와 앎을 캐냈고


    갖가지 도구와 기계를 몸에 달린 팔다리처럼 부렸다.

    이들은 유능한 학자들이니 탑을 머릿속에 그렸으므로

    구름과 별과 태양에 닿고자 머리를 맞대었노라.


    그 중 또 하나는 도깨비족으로 그 수가 희소하고

    매이지 않는 민족이더니 본래는 떠돌이로 살더라.

    그들은 자유를 사랑하여 노래와 춤을 빚어냈고


    장난과 말썽을 일으키는 익살스러운 행각을 벌였다.

    이들은 비상한 예술가들이니 더러는 돌을 장식하므로

    어두운 밤의 불빛이요 사람을 즐거이 하는 샘물이더라.


    여태껏 남은 무리는 인간족뿐으로 몸도 머리도 범상하고

    모이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니 본래는 가족끼리 살더라.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써 길을 나아가고

    

    계획하며 다스리기를 좋아하는 야심찬 정복자들이더라.

    이들은 용감한 선도자들이니 탑을 세우자 외쳤으므로

    그와 같은 믿음이 뻗어나가 제국과 나라가 지어지는도다.

    

하늘에 닿으리라는 소망은 아아, 헛된 욕망인고로.    

    올려다볼 정도로 탑이 높으나 그들의 지휘자는 만족을 몰랐나니,

    목에 핏대를 세운 신들은 이들의 오만을 벌하고


    탑을 허물고자 사람들의 사이에 전령을 보냈으니

    그 후부터 온누리의 무리가 말로써 생각을 통하였다.

    그들의 지도자는 같을지언정 그들의 생각은 달랐으니


    마음이 갈라진 고을은 현자조차 붙들지 못하렸다.

    도깨비족은 난장이족을 조롱하고 난장이족은 요정족을 모욕했으며

    요정족은 인간족을 비난하고 인간족은 도깨비족을 헐뜯었더라.


    위대한 산정은 버림받았고 온갖 무리들은 흩어졌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우리만이 적막한 대륙을 지키노라.

    불완전했으나 고고하던 돌탑은 신들의 손길에 허물리어


    이제 그곳에 남은 것은 참담한 과거의 흔적뿐이니라!

    그러나 오래된 전설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노니,

    영웅과 신들과 서사시의 시대는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잊혀진 민족들과 하나 되는 자만이 세계의 근본에 당도할 것이며, 그대들의 삶의 목적을 충만케 하리라.


 오래된 노래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음송을 마친 사내는 수금을 어깨에서 떼어 무릎에 올려놓았다. 소년은 팔을 들어 박수를 쳤다.

 “이것을 기억하도록 해. 네 목적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대단한 연주였지만, 이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나 신화 같은 것 아냐? 요정이라느니 수천년 전에 지어진 탑 같은 건 실제 역사가 아니잖아.” 소년은 의아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이야기가 허구라고 생각해? 하,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겠지. 결국 네 두 눈으로 보고 나면 믿게 될 테니까. 그런데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건 단순한 노래가 아니야. 두 번째 가르침이지.”

 “그게 무슨 말이야?” 사내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익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소년은 처음 듣는 이 모든 이야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네가 길의 끝을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네가 멍청하기 때문만은 아닐 거야. 그건 오히려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겠지.” 사내는 손에서 눈길을 거두어 폐허를 올려다봤다. 가면 속에서 그의 눈이 그리운 듯 빛나고 있었다. 

“내가 말했던 것은 모두 사실이야. 이곳은 이제 너와 나만이 기억하는 전설이 잠든 곳이지. 자, 저 웅대한 궁전과 석탑들을 보라구. 저곳에 가라앉은 게 모든 종족들이 함께 지은 가장 처음의, 그리고 가장 마지막의 도시야. 처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가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산상의 돌무지뿐이었다. 구름의 안과 바깥을 이었다던 탑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곳에서 사내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누구라도 이 곳에 찾아와 잊혀진 역사를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인가. 

모를 일이었다. 그의 가면 쓴 얼굴은 미소만을 띠고 있으니. 


 “이 도시를 쥐락펴락하던 지도자는 너처럼 인간이었어. 용감했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지. 그가 요정이었다면 신들은 저주를 거두었을까? 난쟁이였다면? 도깨비였다면? 만약 그랬다면 도시는 그만큼 번영할 수 있었을까?” 사내는 고개를 소년의 쪽으로 돌리지 않고 얘기하고 있었다.

 “글쎄, 어쨌건 나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잖아. 그들은 선사인들이었고, 나처럼 모험가였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결국 내가 지금의 나로 살아야 하고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한 선택지는 없는걸.”

 “아니, 너는 요점을 못 잡고 있어. 산의 현자도 너처럼 꿈을 가지고 있었어. 만약 모든 것이 그의 바람대로 되었다면 언젠가는 그대로 멈추어도 좋을 정도로 순간은 그에게 아름다웠을 터야. 인간이니까. 꿈을 꾸는 종족도, 이루는 종족도. 하지만 그는 끝내 어떻게 되었지? 무력감과 실망만을 안고 뿔뿔히 흩어지는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했어. 보이지 않는 이정표를 따라가려는 힘은 혼자서 나아갈 때 넘어지고 발을 헛디딜 뿐이야. 맹목이지.”

 소년은 여전히 사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는? 그 현자는 백성 모두를 지혜롭게 다스린 것 아니었어? 그 도시가 멸망한 것은 신들의 시기 때문이라며.”

 “그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너 같은 모험가와 다르지 않았지. 왜 그가 수백, 수천에 이르는 사람들을 몰아넣어 겨우 탑 하나를 지으려 했을까? 네 생각에는 하늘에 달하리라는 그 현자의 꿈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리라는 너의 꿈과 그렇게 다른 것 같아? 신들의 저주는 표면에 지나지 않아.”

 사내는 엄숙한 목소리를 지었다. “탑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면 탑을 쌓지 않아야 해. 탑을 쌓고 싶지 않다면 탑을 무너뜨려야겠지. 그리고 그건 세계를 무너뜨리는 일과 같은 거야. 당연한 일이지, 인간에게 탑은 세계니까.”


 ‘여행의 목적지는 출발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소년의 아비는 이 같이 말했다. 그리고 사내는 자신의 세상에 갇힌 채 꿈을 꾸지 말라 경고한다. 이 길 끝에 살아 그가 돌아가야 한다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만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험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행자의 세상이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며, 여행을 떠난 이는 자신의 세계를 넓혀야 할 사명이 있다. 

그리고 고향의 따스한 모닥불 앞에서 소년들에게 말해야 한다. 저 지평선 너머에는 새로운 하늘이 있노라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직 너는 소년일 뿐이야. 당장은 네 하늘 속의 길잡이를 쫓아가는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기억해, 그건 어린애가 하는 일일 뿐이라는 걸. 하늘만 보고 걷다가는 우물에 빠질 테고, 그렇다고 발밑만 보고 걷다가는 길을 잃을 테지.” 사내는 돌무덤을 올려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소년도 폐허를 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정적을 깨고 이드가 헛기침을 했다. “벌써 밤이 깊어버렸네. 좋은 모험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길을 재촉하는 법을 알지. 알려줄까? 바로 일찍 자는 거야.” 생각에 잠겨 있던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드의 말에 따라 동굴로 가서 잠을 청했다. 

동굴 바닥은 차갑고 딱딱하고 거칠다. 퍼머슨은 사내의 모포를 빌려 그곳에 깔고 누웠다. 여전히 춥고 허리가 아팠다. 사내가 못마땅해하며 피리를 물고 부드러운 가락을 연주하자 소년은 이내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소년은 흘러들어오는 빛줄기에 눈을 떴다. 

이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먼 곳에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산꼭대기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며 ‘멍청한 모험가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 

그가 이곳에서 어떻게 굶어죽지 않고 사는지, 왜 그런 행색을 하고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졌다. 

그에게 중요한 건 바위로 된 산을 지날 때면 그의 머리에서 울려퍼질 피리 소리와 길고 이상한 노래일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소년은 몸을 일으켜 꼭대기를 찾아갔다.


 “깼냐?” 사내의 목소리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는 구름인지 물안개인지 모를 흰 대기에 감싸여 있었다.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마을로 보내뒀을 텐데 말야.” 그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자 엷은 안개가 겹쳐 산 아래를 가리고 있었다.

 “아쉽게 됐네, 마을을 찾으러 이리로 올라왔다고 했잖아.”
 “그러게, 망원경이 있다면 좀 나을 텐데.” 소년은 노파가 빌려 주었던 원통을 떠올리며 되뇌었다.

 사내는 번개라도 맞은 목소리로 놀랐다. “지금 망원경이라고 했어?”

 “응, 망원경. 멀리 있는 물건을 크게 볼 수 있는 도구. 왜 그렇게 놀라?”

 “이런 세상에, 그걸 빼놓고 얘기하면 어떡하냐!” 사내는 흥분에 돌바닥 위를 팔짝팔짝 뛰었다. 

“넌 인간족의 기술이 그런 신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다고 믿어? 아니, 촌놈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네가 그걸 봤다는 건 네 생각보다도 엄청난 걸 의미하고 있단 말이야. 그런 건 신들이나 가지고 있는 보물이라고!”

 그러자 소년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신이라고?” 

“그래, 네가 만난 건…” 사내는 쿡쿡 웃었다.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인걸, 단순한 어중이떠중이들이나 찾아올 줄 알았건만. 역시 나는 운이 좋아.” 

그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 온몸을 떨었다. 그리곤 갑자기 소년의 손목을 잡고 단숨에 산을 내려가버렸다. 

갑작스러운 일에 소년의 몸은 굳어버렸다.

 먼지가 잦아들자 사내는 말했다. “어쨌든 네 모험이 너한테 뭔가 대단한 짓을 하리라는 건 확실해졌네. 그 끝에 남는 것이 대단히 훌륭한 결과든, 대단히 끔찍한 말로든. 그 자들은 종잡을 수가 없거든.” 

그는 이어 말했다.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별을 계속 따라가 봐. 뱃사람들을 본 적 있어? 그들은 별을 이정표 삼아 뱃길을 찾지. 파도가 어느 쪽으로 치고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는 상관없어. 너도 그렇게 해 봐! 그냥, 내가 가르친 걸 잊어버리지만 말고.” 그리고 소년의 가슴을 뒤로 떠밀었다.


 “하지만 이웃마을에는… 이웃마을에는 어떻게 찾아가야 하지? 안개 때문에 앞도 잘 안 보이고 산을 내려와서 내려다볼 수도 없잖아.” 

소년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소리야? 이미 도착해 있는데. 난 이만 돌아갈게. 좋은 여행 해라.” 

사내는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돌아서서 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사내가 남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소년이 뒤를 슬쩍 흘겨보자 돌과 흙과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파랗게 타고 있었다. 


 아침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집과 사원과 광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비로소 소년은 들었다. 닭이나 소 따위의 짐승 울음소리, 사원에서 제물을 올리는 소리, 아낙네들이 흥정하는 소리, 그리고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희미한 피리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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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는 쓸 떄 느낌 좋았는데 이건 쓰면서도 아쉬웠어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고전챈 문학박사들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