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해진 서양음악의 황혼기를 송두리째 뒤흔든 음악들.

홍석원 지휘자, 연광철 베이스, 그리고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여러 바그너의 오페라 음악,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듣고 옴.


일단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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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바그너: 〈탄호이저〉 중 입장행진곡

바그너: 〈탄호이저〉 중 '친애하는 음유시인들이여'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달란트의 아리아'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1막 전주곡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마르케 왕의 독백'


2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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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 사람이 얼마 있었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리뷰를 남기고자 함.

유의할 것은 난 화성악이나 악식론적 지식따위 하나 없는 허~~~접 아마춰 딜레탕트이기에

전문적인 비평을 기대하진 않길 바람. 그냥 음악에 대한 내 솔직힌 감상과 심정을 끄적일 것임...

...이라는 식으로 먼저 밑밥도 잘 깔았겠다 이제 시작.




공연 현수막. 마티스의 그림이 봄의 제전 속 장면과 퍽 어울린다.


1부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음악들을 감상했다. 바그너라 한다면 대개 깊고 심오한 매력을 지닌 후기 작품들을 (예. 트리스탄과 이졸데, 반지 사이클 등) 즐겨 듣던 나였는데,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리엔치 서곡' 정도?) 이렇게 전기 바그너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건 오늘이 거의 처음이었음. 그동안 익숙했던 바그너와 달리 아주 활기차고 경쾌한 매력이 물씬 풍겼음.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두 개의 곡을 감상함. 그중 첫 번째는 트리스탄 화음으로도 유명한 1막의 전주곡. 그런데 나는 그 트리스탄 화음 못지 않게 해당 음이 끝난 후와 다음 음이 시작되기 전 사이, 그 아찔한 정적의 순간도 좋아함. 단순한 적막을 넘어, 작은 부스럭거림마저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듯한 착각마저 듦. 이번 공연에서는 해당 정적에 깃든 심연의 여백을 뚜렷하고도 묵묵하게 직시하고 있어 참 좋았음.


두 번째로 감상한 곡은 2막의 '마르케 왕의 독백'이었는데 모든 부분이 다 좋았지만 특히 곡의 말미에서 마르케 왕과 대화를 주고받듯 침울하게 음을 내뱉던 클라리넷의 독주가 아직도 뇌리에 잊히질 않음. 과거 TUI 전곡을 들을 땐 솔직히 마르케 왕 독백 장면은 조금 지루하여 조금은 흘려듣거나 가끔씩은 스킵하기도 했었는데, (이에 더해 빨리 마지막 '사랑의 죽음'을 듣고 싶은 갈망도 크고...) 이번 감상을 계기로 그런 괘씸한 감상 습관을 반성함. 이곡이 이렇게나 애절하고 깊은 우수로 점철된 명곡이었다니! 역시 음악은 공연으로 직접 감상하는 것이, 음원으로 감상할 때와는 다른 특별한 감흥을 안긴다는 점을 새삼 느낌.


함꼐 협연해준 베이스님도 인상적이었음. 노래를 부르실 때에도 담당 배역에 깊이 몰입하여 진짜 연기를 펼치시는 듯 몰입하시더라.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바르트부르크 성의 영주가 무대에서 열창 중이었는데, 이내 그는 달란트 선장으로 변했다가, 어느새 또 마르케 왕이 되어버리다니. 자연스레 풍겨져 나오는 여러 감정의 아우라 덕분에 나도 더욱 빠져들어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음.


이날 여러 바그너 음악을 들으며 역시 바그너는 말과 음의 조화가 어우러져 자아내는 황홀한 음향감을 창조해 내는 데 탁월한 능력자임을 다시금 절감함. 즉, 바그너의 음악 세계 안에선 음과 말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님. 감정의 내연과 상황의 외연이라는 각자의 위치에서 출발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변증법적인 합일을 이루며 한층 향상된 차원의 효과를 이끌어내는데, 바그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성의 미학을 잘 알고 있던 작곡가였던 것 같음. 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나도 몰라 그냥 느낌이 그렇다고요.


아무튼 정말 이건 말이지... 말 그대로 음악을 마법처럼 '부리는' 기인(技人)이 따로 없다. 이런 속된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만, 바그너는 좀... 그 뭐시냐 그냥 미친 사람 같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냥 적당히 좋아하는 게 수준이 아닌 미칠 듯이 좋아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2부에서는 〈봄의 제전〉을 감상함. 이곡에 대한 감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야말로 충격과 혼돈의 난장판 그 자체라 할 수 있음. 그런데 오해하면 안 된다. 이는 정말 좋은 의미의 난장판임. 내 개인적인 생각에 이 곡은 베토벤처럼 준엄해서도, 멘델스존처럼 유려해서도, 차이콥스키처럼 감미로워서도 안 된다. 그 대신 야생의 원시적인 날 것 그대로의 맛을 살리기 위해 조금은 거칠고 뻣뻣한 앙상블이 필요하다고 느낌.


한 가지 첨언하자면 이는 어디까지 이는 이 곡에 대한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판단이다. 때로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베토벤이나, 엄숙하고 심대한 멘델스존이나, 냉랭하고 건조한 차이콥스키도 존재할 수 있고 때에 따라 필요하니까.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참 좋았음. 특히나 타악이 정말 너무나 큰 활약을 보여줬다. 다들 잘 알겠지만 이 곡은 모든 방면에서 모든 주자들에게 극악무도한 연주 난도를 선사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리듬이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는 난곡으로도 유명함. 이로 인해 타악기 주자들은 연주 내내 정신없이 바쁘고 고생할 수밖에 없음.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기필의 타악은 흠잡을 데 없이 엄청난 열연을 선사해 줬다! 이를 방증하는 듯, 커튼콜 때에는 타악 연주자들이 가장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던 걸로 기억함.


오늘 지휘한 홍석원 지휘자는 오늘 공연을 통해 처음 뵘. 그리고 경기필과 함께 아주 멋진 공연을 보여줬다. 특히 1부의 바그너 음악, 그중에서도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정말 큰 감동이었다. 기존에 내가 즐겨 듣던 칼 뵘의 1966년 바이로이트 실황 음반이 지닌 화끈하고 매운맛에만 얼얼하게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음악도 편식하면 결코 못 쓴다는 사실을 뉘우침.


2부 또한 참 좋았다. 악기별로 일부 사소한 실수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음향의 박진감이라든지 또 느슨해지는 틈이 생기지 않도록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모두가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에너지가 이 객석까지 절로 전해지는 그런 연주였음.



암튼 리뷰는 여기까지.

간단하고 짧게 쓰려고 했는데 태생적인 tmi 기질 못버리고 이렇게 주절거리고 말았다.

내년에도 경기필 라인업 좋은 거 많이 하던데, 행복하지만 돈도 많이 깨질 것 같아 그저 두.렵.다.

이제 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