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알리는 종소리가 고요히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아니, 지옥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릴 것이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리라.
주변 일대는 시험의 시작을 적막하게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서로가 서로의 적인 이곳. 마법으로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전장과도 같은 현장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었다.
준비를 위한 시간이 구르고 이름모를 교향곡의 물살이 시험장을 갈랐다. 악장의 첫 음계가 반고리관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경쟁자를 배제시키기 위한 여러 무리의 맹수와도 같은 기세가 시험장을 휘저었다.
그 결과 사방에서 마법이 폭발했다. 이것은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 학생들은 공격과 동시에 방어막을 만들어 자기 자신을 방어했다. 마법이 방어막에 닿자 그 사나운 발톱을 감추고 사라졌다. 그러나 방어막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안타까운 하위권들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마법을 맞고 도태되었다.
곧바로 경쟁에서 패배한 탈락자들은 텔레포트에 의해 안전한 바깥으로 이송됐다. 그들이 떠나 사라진 공간에는 다시 새로운 마법이 적들을 할퀴기 위해 몸부림쳤다.
싸움의 시간이 흘러갔다. 서로가 서로를 해했다. 눈 앞의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였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적도 해치우기 위해 온 마음을 집중했다.
마법에 맞은 사람이 하나, 방어막이 깨진 사람이 하나, 타이밍을 놓친 사람이 하나, 해법을 알지 못해 쓰러지는 사람이 하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사람들이 경쟁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240여명의 경쟁자들 중 결국 남은 사람은 4명. 이전 시험에서도 저번 시험에서도 항상 엎치락뒤치락하는 최상위권. 그들의 다툼은 이제 시작이었다.
내 쪽으로 바로 마법이 날아들었다. 마법은 하늘을 꿰뚫어 바로 나에게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최상위권 중 한 명인 나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공격. 나는 바로 방어막을 형성해주어 마법을 파훼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역공. 이 정도면 아까 공격해준 사람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의외로 잘못된 생각이었다. 상대도 나의 공격을 어떻게든 받아낸 것이었다.
"어쭈, 생각보다 제법인데?"
상대방이 내 공격을 받은 후에 말했다.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그 목소리에는 약간 거만한 느낌이 차있었다.
"네가 센사 크레아였던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을테지. 여기서 사라져야겠다."
비록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그 말은 분명 착각이었다. 나는 그가 누구고 뭐하는 사람인지에 몰랐다. 나는 그저 다가올 공격에 준비하고만 있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준비했다. 마법을 발동하는 것을 보아하니 불 계열 마법이었다. 나는 바로 물 계열의 방어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화염은 빠르게 그의 손을 뒤덮었고 곧 나에게 발사되었다. 손에서부터 오는 뜨거운 화염은 내 방어막을 넘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방어막을 만든 속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법을 다 막는 것이 아니라 흘리는 쪽을 선택했다. 나는 방어막을 우측으로 살짝 치우치도록 만들어 마법이 그쪽 방향으로 가도록 조절하였다.
그 때 다른 누군가가 그 상대에게 마법을 퍼부었다. 금속 계열의 마법이었다. 보아하니 즉석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대검으로 그 상대를 노리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아까 교전했던 그는 그것이 매우 단단해 웬만한 불 계열 마법을 버텨낼 금속마법임을 직감하고 최대한의 화력으로 검이 날아오는 직선 궤적을 따라 길을 만들었다. 검은 그 길을 따라가다 마침내 녹아 없어졌다.
"메모리 로테!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내러왔다!"
"또 너냐 오네 토오네? 기어이 나를 이겨먹겠다 이 말인가?"
아까 나를 공격했던 남학생의 이름은 메모리 로테, 메모리를 공격했던 여학생의 이름은 오네 토오네였다. 이름을 들으니 얼추 기억이 났다. 저번 시험에서 메모리는 학년 2등, 오네는 학년 3등이었다. 다른 시험에서도 오네의 등수는 메모리의 바로 뒤라 오네가 메모리를 따라다닌다니며 승부를 건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그 광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오네가 메모리에게 물 공격을 시작했다. 물이 검처럼 단단하게 뭉쳐져 엄청난 수압을 만들어냈다. 오네가 메모리에게 그 물덩이를 날렸다. 그러나 메모리는 바로 흙 계열 마법으로 벽을 만들어 오네의 공격을 이겨냈다.
이런 공격이 몇 번이고 오갔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변에서 공격이 날아올 지 주의하였다. 그 때 다른 사람이 나무 계열 마법 응용의 번개 마법을 가했다. 나는 금속 계열 마법으로 피뢰침을 형성해 다른 곳으로 돌려보냈다.
"넌 또 누구냐?"
"프리바 테에드다. 너를 이기고 올라가야겠다."
프리바라면 분명 테에드 가문이었다. 돈 많고 자존심 강한 가문이라 자손에게도 마법을 배우기를 강요하기로 유명했다. 분명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것들을 많이 다녔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프리바가 나에게 다시 공격을 가했다. 이번 물 계열 마법이었다. 아까 오네가 했던 것처럼 수압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번 것은 좀 달랐다. 그 수압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막기 어렵도록 여러 번에 걸쳐 그 공간에 집중포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 학교 교육과정 외의 마법이었기에 필시 선행학습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그걸로 될 것 같냐?"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는 물이 얼기 쉽도록 마법으로 소금을 뿌리고 바로 그 물을 냉각하여 영하 18도 정도의 얼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얼음 주변의 물들도 모두 얼기 시작하여 프리바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프리바는 당황하여 얼음을 다시 불로 녹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유롭고 귀찮게 그 광경을 손 놓고 계속 보고 있었다. 어느샌가 프리바가 얼음을 다 녹이고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그곳으로 대충 금속 마법으로 기다란 철사를 하나 소환해주어 물 속으로 날려주었다. 그러자 프리바가 당황하여 그 철사를 막기 위해 방어막을 구축하려 하였고, 여러 갈래로 갈라졌던 물은 금새 사라져 한 줄기의 물로 줄어들었다. 나는 바로 그의 약점을 알아챘다.
아까의 공격은 분명 선행학습으로 배웠을 것이었다. 테에드 가문이라면 이 정도 선행은 당연한 할 터. 하지만 뭔가 하나가 부족했다.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일단 머릿속에 넣은 공격이었는지 기반이 약했다.
프리바는 물이 다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구축을 시작하려 했다. 그 때 나는 프리바가 다시 퍼뜨리려고 준비하는 물에 전기 마법을 가했다. 이미 물속에 소금이 많이 녹아 전기가 통하는 도체가 된 상태. 전기는 그대로 프리바가 마법으로 모아둔 물을 타고 프리바를 감전시켰다.
프리바는 그곳에서 바로 맥도 못 추고 쓰러졌다. 다행히 시험장 내의 시스템 상 어떤 일이 있어도 기절 수준에서 끝날 것이긴 했다. 그렇게 프리바는 탈락 판정을 받고 텔레포트로 밖으로 내보내졌다.
한편 오네 토오네와 메모리 로테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오네가 불 공격을 하면 다시 메모리가 물로 막고, 메모리가 전기 공격을 하면 오네가 부도체인 나무로 막아서고, 오네가 다시 검을 만들어 공격하면 메모리가 무쇠로 된 방패을 만들어 방어하는 치열한 형국이 반복되었다.
그 때 나도 가만히만 있으면 잘못하면 기권패 처리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 시간 동안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으면 부정행위. 이건 아무래도 피하고 싶었다.
나는 간단하게 지금까지 배운 가장 강력한 전격 마법을 오네와 메모리에게 동시에 쐈다. 속으로 한 놈은 맞겠지 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네와 메모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는지 금속으로 된 방어막을 띄워 그곳으로 전류가 가도록 유도했다. 귀찮아질 것이라는 걸 생각하니 골치아팠다.
"뭐야 너 생각보다 제법이던데? 뭐, 나도 이겨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여기서 탈락해줘야겠다."
"열심히 즐기고 있는데 넌 또 뭐야? 방해하지 말고 꺼져."
"또 귀찮아지겠네."
그렇게 오네와 메모리가 나에게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오네는 불 공격, 메모리는 전기 공격이었다. 나는 바로 금속 마법으로 피뢰침 역할을 할 얇은 도넛 모양의 금속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물을 퍼부어 불 공격을 껐다.
나도 바로 역공했다. 일단 방어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마력을 메모리를 공격하는 데 썼다. 그러면서 혹시 모를 오네의 공격을 대비했다. 일단 불 마법을 가했다. 최대한의 화력을 낼 수 있도록 하였다.
메모리를 향해 강력한 불 마법을 날렸다. 그러자 메모리는 당연히 물을 준비해 불을 향해 날리려 했다. 그 순간 나는 나무 계열 마법 중 바람 마법을 이용하여 불의 방향을 오네 쪽으로 급격히 틀었다. 불이 바람과 합쳐져 불이 더 거세졌다.
오네는 갑자기 날아오는 불 마법에 기겁하여 바로 물 마법을 날렸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뛰어난 실력 덕분인지 오기 탓인지 물로 불을 많이 끄는 데 성공했으나 완벽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약한 화상을 입었다.
그러자 메모리는 이 때를 틈타 오네에 전기 마법을 가했다. 오네는 방어하려고 애썼지만 끝내 패배하고 감전되었다. 결국 그녀는 탈락 판정되어 텔레포트로 이송되었다. 시험장 밖으로 나가면 치유되어 원상태로 복귀할 것이리라.
"다시 봤어. 잔꾀를 써서 이기다니. 하긴 이건 어디까지나 일대일 대응으로만 마법을 이해하는 오네의 결말. 방법을 바꾸라고 해도 안 바꾸더니만 결국 이렇게 됐나. 아무튼 네가 오네를 쓰러뜨렸다고 나까지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메모리가 마법을 거두며 말했다. 거만해보이는 말투가 거슬려 불쾌했다.
메모리는 바로 단도를 만들었다. 사실 단도라고 하기에는 부엌칼 수준이었다. 그러나 날카로웠기에 맞는 순간 치명상이라는 것임은 똑같았다.
메모리는 그것을 10개 쯤 더 소환해내었다. 작은 크기인 만큼 양산하기에 쉬울 것이었다. 나는 대비를 위해 커다란 코일을 하나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메모리가 칼을 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모리가 단도를 날렸다. 십수개가 한꺼번에 날아왔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막기 힘들었을 공격이었다. 그러나 나는 코일에 강한 전기를 통하게 했다. 그러자 자기장이 유도되어 검이 코일에 달라붙었다.
"오, 신박한데? 이건 또 무슨 방법이냐?"
"내가 내세울 수 있을 만한 건 창의력밖에 없지. 단순 실력으로는 너에게 못 비비겠지만 이런 건 가능하거든."
나는 바로 물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자 메모리가 바로 토벽을 세워 막으려 하였다. 그 순간 나는 바람을 날렸다. 토벽이 서서히 흩트러져 가루가 되었다.
그러나 물 공격을 완벽하게 넣기에는 부족했다. 물이 사라지지 않은 흙의 일부와 합쳐져 진흙이 되었다. 진흙은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메모리에 가한 충격은 그저 진흙이 조금 묻은 것일 뿐이었다.
"기발한 묘기 그만 부리고 그만 끝내자고."
메모리도 나에게 물 공격을 가했다. 별 기술 없이 내 쪽으로 대량으로 날리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물을 막기 위해 토벽을 세울까 철벽을 세울까 고민했다. 결국 나는 토벽을 세우기로 했다.
그 때 메모리가 강한 전기 마법을 가했다. 그 순간 짐작이 되는 것이 있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연계공격이었다. 전기가 대량의 물을 분해하여 수소와 산소로 나뉘어졌다. 여기서 바람으로 수소를 날려보내지 않으면 죽음이었다.
나는 바로 흙의 벽을 없애고 바람 마법으로 수소와 산소를 최대한 날렸다. 그러나 메모리가 곧바로 오목한 철벽을 쌓아 바람을 막고 있었다. 이대로면 바람을 쏘면 오히려 나에게로 돌아오는 구조였다.
결국 나는 바람을 위로 날리기로 작정했다. 수소가 너무 많아 흩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수소는 곧 하늘 위로 올라가 철벽을 뛰어넘었다.
메모리가 철벽을 하늘 위로 올려 바람을 막았다. 이쯤되면 나도 이제 이판사판이었다. 나는 바로 수소를 날리는 것을 포기하고 바람을 타고 메모리와 아주 가깝게 날아갔다. 그리고 토벽으로 나를 방어했다. 그러면서 검을 준비했다.
내가 검을 그쪽으로 날렸다. 그러나 메모리가 철벽을 옮겨 검을 막았다. 그 때 나는 그 벽을 향해 수압을 크게 하여 벽을 뚫으려 했다.
수압이 높은 물이 철벽을 뚫는 순간이었다. 메모리가 전기 마법과 불 마법과 바람 마법을 동시에 날렸다. 물이 전기분해되어 발생한 수소에 불이 붙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수소가 바람 마법을 타고 내 쪽으로 날아오며 폭발하였다.
이렇게 끝이구나 싶었다. 그렇기에 나도 바로 바람 마법으로 어떻게든 폭발의 방향을 바꾸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실패하였다.
그렇게 나는 폭발에 휘말려 쓰러졌다. 바로 탈락처리가 되어 바깥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결과가 떴다.
1등 메모리 로테, 2등 센사 크레아.
*
시험장 바깥 단체 대기실. 시험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이송되는 곳이다. 연 4번의 시험을 매년 치르기에 익숙한 곳이었다. 한쪽 벽에 등수가 쭉 나열된 표가 떠있었다. 나의 등수를 보았다. 2등. 아깝지 않은 등수였다.
대기실에는 프리바 테에드, 오네 토오네 등 아직도 나가지 않은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프리바 테에드가 나를 보고는 빡돌았는지 나에게로 걸어왔다.
"야! 네가 어떻게 나를 이길 수 있어? 어떻게 선행학습에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는데 너보다 낮을 수 있냔 말이야!"
예상했던 결과였다. 테에드 가문의 자식이 학원도 안 다니는 놈한테 졌으니 가문 안에서 얼마나 뭐라고 하겠는가. 나는 그저 먹이를 주지 말자는 식으로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프리바의 시비도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때 메모리 로테가 왔다. 그러자 오네가 기다렸다는 듯 메모리에게 걸어갔다. 메모리는 올 것이 왔다는 듯 그녀의 시비를 능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프리바가 나에게서 시선을 끄고 오네에게 시선을 돌렸다. 흐뭇하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팔꿈치로 나를 몇 번 툭툭 쳤다. 무슨 반응인가 했으나 곧 알 수 있었다.
"쟤네 핑크빛 기류 흐르는 거 안 느껴지냐?"
"갑자기 그건 또 뭔 소리야?"
"딱 보면 몰라? 이거 딱 오네가 메모리 좋아하는 거잖아. 맨날 졸졸 따라다니고. 왜, 소문도 많이 돌잖아. 쟤 부모님이 마법 배우는 데 방해된다며 연애금지 시켜서 이렇게라도 핑계를 만들어서 가까이 있으려 한다는 거."
"미안한데 처음 들어본다."
"하기야 그렇겠지. 너는 마법 외에는 다른 데 관심 없어보이더만. 나 솔직히 네가 부럽다. 마법을 좋아하니까. 가문에서 시켜서 억지로 하는 나랑은 다르잖아. 아까는 미안했어. 자존심이 상해서 욱했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의외로 빨리 풀리는 거였구나 하고 내심 놀랐다. 그렇게 프리바가 별 말 없이 대기실을 나섰다. 오네와 메모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그 때 프리바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의 말을 토대로 들으니 오네와 메모리가 전혀 싸우는 것 같아보이지 않아 신기했다.
얼마 뒤 오네도 밖으로 나갔다. 그 후 메모리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너 제법이던데? 나도 순간 질 뻔했다고."
시험장에서의 오만해보이는 모습은 어디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승부 앞에서만 강해지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고마워. 근데 아까 말했던 이겨야 할 이유라는 게 뭐야?"
아까 나를 이기려고 했던 것이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미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사랑 때문이었을까 궁금했다. 아까 싸웠을 때는 그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 그거? 부모님이 전교권에 못 들면 막 뭐라고 하시거든. 저저번에 학년 2위했는데도 이것밖에 못하냐고 한 거 있지. 그래서 이번에 어떻게든 이겨먹어야 했어."
그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니. 내면을 알고 나니 안쓰럽게 느껴졌다.
"우리나라가 뭐든지 마법으로 평가하잖아. 교육열이 하도 강해서 마법대학교 안 들어가면 2등시민 취급하고. 솔직히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한단 말이야."
"그거 참 안 됐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 배우거든? 근데 엄마는 자꾸 인기직종 가라고 하시니까 어쩔 수 없다고."
그런데 이런 말을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초면인 사람한테 자기 개인사를 술술 털어놓는 걸 보아하니 한이 많은 건지 아니면 입이 가벼운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 귀찮아졌다.
"아무튼 난 이만 가본다."
그렇게 나는 메모리 로테를 뒤로 하고 대기실을 나왔다. 메모리도 군말 없이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대기실 바깥. 시험이 끝나고 학교를 나서 학교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이 학교가 누군가에게 인생을 강요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법학교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경쟁이 다시 한 번 덧없게 느껴졌다. 몇 달 뒤에도 이렇게 또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인생을 건 싸움이 열리고 또 희비가 갈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학교 교문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