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 프롤로그 -


국무총리가 단상에 오르자, 사방에서 플래쉬가 터진다. 

곧 카메라가 국무총리의 얼굴을 비추자, 국무총리는 무거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그 오늘 어느 때보다 결연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대책은 무엇보다도···."


진눈깨비가 날리는 로데오거리.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하교하는 학생들 사이에 홀로 걸어가는 소년이 있다.

넋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걷기만하던 소년.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 목소리에 걸음을 멈춘다.

소년은 옆을 돌아봤다. 길 옆 편의점 스크린모니터엔 국무총리가 나와 대국민담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곧이어 담화내용을 설명하는 뉴스자막이 올라왔다.


"학교폭력 '경찰적극 개입', 일진문제는 '경찰서장이 직접 지휘'."


소년은 뉴스를 한참보다 발걸음을 되돌리며, 허탈하게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는 이내 흐느끼는 울음소리로 바뀌어간다.




...




2020년이 한, 두어 시간 남았을 무렵, 승연은 편의점 냉장고에서 호가든 4캔을 꺼낸다.

냉장고 문을 닫으려 할 때, 그의 눈에 제주 위트 에일이 띈다. 승연은 잠시 고민하다 호가든을 되돌려 놓고 제주 위트 에일을 꺼낸다.

계산대 앞엔 사람이 꽤 있었다. 대부분 연말을 만끽하러 온 취객이었고 그 속에 너저분한 옷차림을 한 소녀가 섞여있다.

승연은 소녀 바로 뒤에 섰다.


곧 소녀의 차례가 다가왔다. 소녀는 우물쭈물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급식카드를 내밀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소녀의 급식카드를 리더기에 꼽는다. 그러나 리더기는 소녀의 급식카드를 인식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난처한 표정을 하더니 소녀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다.


"고객님, 지금 리더기가 카드를 인식하지 못해서요. 죄송하지만, 뒤에 계신 고객님 먼저 계산하고 도와드려도 될까요?"

"아, 네···."


소녀가 뒤로 물러선다. 승연은 계산대에 맥주를 올려놓으며 아르바이트생에게 담배도 한갑 달라고한다.


"14,500원입니다. 봉투 20원인데 필요하신가요?"


아르바이트생의 질문에 승연은 "네, 하나 주세요." 대답한다. 

아르바이트생이 맥주를 봉투에 담는 사이, 승연은 자신의 뒤에 서있는 소녀를 힐끗 쳐다본다.

그리고 자신의 카드를 돌려주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저기···."

"네?"

"제 카드로 저 여자애 것도 같이 계산해주세요."


아르바이트생은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 당황한 표정으로 승연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봉투도 같이요."

"아, 네!"


아르바이트생은 계산이 끝나자, 승연에게 카드를 먼저 돌려준다. 승연은 "수고하세요." 말을 남기고 재빠르게 편의점을 나갔다.

곧 소녀가 다시 계산대 앞으로 왔다. 그리고 다시 급식카드를 아르바이트생에게 내밀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주눅 든 소녀를 보다가 그녀의 급식카드를 되돌려주며 친철한 목소리로 말해준다.


"계산은 방금 전에 다 끝났습니다. 고객님."




...




승연은 입가에 매캐한 담배연기를 머금으며 어두운 골목길을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넷플릭스를 뒤지며 밤을 지샐 드라마를 찾는다.

이때, 멀리서 앳된 여자아이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아저씨!"


승연은 뒤를 돌아봤다. 편의점에서 봤던 소녀가 헉헉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소녀는 승연을 따라잡자 뜀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승연에게 묻는다.


"아저씨가 저 대신 계산해주신 분이죠?"

"아뇨. 사람 잘못보신 것 같은···."


승연은 대답을 다 끝내기도 전, 소녀가 아르바이트생에게 다 물어봤다고 대답한다.

승연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 끝내 고개를 끄덕인다.


"에이, 어쩔 수 없네. 다른 이유는 없고 너무 안쓰러워보여서."

"제가 아저씨 소원 한가지 들어드릴게요!"


소녀의 말에 승연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소녀는 베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전 그 사람의 간절한 소원 한가지를 이뤄주는 능력이 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어···.


승연은 고민하는 소녀를 보며 피식 웃는다.


"늦었는데 빨리 들어가자라.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라 오빠야."

"진짜인데! 정말이에요."


소녀는 소리치며 믿어달라 말한다. 하지만 승연의 눈에는 감수성 풍부한 소녀의 허풍으로 보일 뿐이다.

승연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소녀를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린다.

가만히 서있는 소녀는 멀어지는 승연의 뒷모습을 보며 크게 소리친다.


"아저씨! 아니, 오빠! 그러면 자기 전에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순간을 떠올리고 자요! 그럼 그 때로 돌아가있을거에요! 근데 돌아오진 못하니까 정말 후회하는 순간을 떠올리고 자세요! 꼭이요!"


승연은 허공에 손을 흔들며 알겠다는 대답을 대신한다.




...




술기운이 얼큰하게 올라왔다. 승연은 취기에 흐느적거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순간이라."


그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가 다시 뜬다.


"너무 많아서 간추릴 수가 없는데."


승연은 몸을 뒤척인다. 그리고 팔을 베고 누워 스탠드를 빤히 바라본다.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그 오늘 어느 때보다 결연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대책은 무엇보다도···."


승연은 눈을 찌푸렸다. 그는 곧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으며 문뜩 떠오른 기억을 떨쳐내버린다.




...




진동 대신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가 귓가에 울린다. 승연은 '내가 알람소리를 바꿨나.' 생각하며 핸드폰을 찾아 손을 뻗는다.

곧 한 손에 들어갈만한 그러나 두께감이 있는 물건이 손에 잡혔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스마트폰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작고, 무엇보다 모니터가 느껴지지 않는다.

승연은 베개 속에 파묻었던 고개를 홱 들어올린다. 그의 손 안에는 중학생때 썼던 폴더폰이 쥐어져있었다.




---




네, 새로운 걸 좀 써보고 싶었어요. 원래 이게 먼저인데.

원래 쓰던 건 좀 나중으로 미루고 이걸 우선적으로 써보려합니다. 헤헤.

장르는 학원성장물 정도가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