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원해서 이 사회의 노예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 그게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몇년 전 쯤 일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어렸다.

어리고 어리석고 멍청하고 무지해서 나는 내 말에 책임을 질 줄 몰랐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한 말에서 도망쳤다.

남에게 나의 일을 떠넘긴 채 그저 잠적했다.

추하디 추한 변명이지만 나는 너무나도 어리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아직도 나는 후회가 된다.

내가 도망친 것도 후회가 되지만, 무엇보다 내가 과거에 했던 말이 후회가 되었다.

그때 노예가 되지 않았더라면, 노예라는 지위가 주는 그 특별성에 눈이 멀지 않았더라면

어찌 보면 관심 받고 싶었던 순수한 어린이의 무지한 발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사회였다. 나는 책임을 져야만 했고 그 책임이 무서워서 도망쳤다.

그 사회의 국적을 지우고, 새로운 국적을 만들어냈다. 다시는 그 책임을 바라보지 않고 싶어서 멀리멀리 도망쳤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 이제서야 잊고 있었던 그 사회가 생각났다.

잊어버린 채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눈 돌리고 귀를 틀어막았음에도 미련이 남았던 것일까?


돌아와봤지만 그곳은 여전히 그 때 그대로의 사회로 남아있었다.

'내가 없음에도 그 사회는 잘 돌아갔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왜 특별성에 집착을 했는지 이해했다.


나는 버림 받고 싶지 않았다. 나를 남들이 인정하고 꼭 그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속 깊이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노예가 되어, 특별성을 부여받아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예가 하나 없어져도 이 사회는 잘만 돌아간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 말로가 나라는 도망자였다.


나는 다시 내가 있었던 사회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국적을 버린 도망자에겐 안식처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도망친 이야기꾼이 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쓴 채 죄를 글로 고백하는 것 밖에는 없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