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최고의 명반을 뽑으라고 하면 아마 너바나(nirvana)밴드의 nevermind라는 앨범을 1위로 손꼽는다, 단순한 코드 진행이지만 강렬하고 귀에 익는 사운드,


프론트맨이였던 커트 코베인의 보이스가 합쳐져 앨범을 만들어낸 당사자도 무섭다고 평가할 정도로 명작인 앨범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흥하던 메탈류의 음악을 사장시킬 정도로 흥행하며 그런지(grunge)라는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지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디스토션을 가미한 강렬한 기타의 소리와 합께 쏟아내는 장르로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유행을 만들어낸 장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80년대 초 영국의 음악 산업은 당시 클럽의 일종이였던 레이브(rave)에서 사용하던 류의 댄스 곡과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이 흥행하였고 


이런 음악의 기원인 맨체스터에서 이름을 따 매드체스터(madchester)음악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nevermind 앨범이 나오고 나서 영국의 이런 분위기는 식었습니다.


그런지의 강렬한 사운드에 매료된 사람들은 영국의 노래보단 너바나의 고향인 미국의 음악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이에 영국의 밴드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하고 그 방안으로 찾아낸게 60년대로의 회귀였습니다.


60년대 비틀즈로 대표되는 밝은 분위기의 기타사운드를 기반으로한 팝 음악으로 영국의 문화적 분위기가 흘러가고 엄청난 흥행을 이루며 이런 류의 밴드가 브릿팝(Britpop)이라는 장르로 불리게 됩니다 됩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애증하는 오아시스의 가사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오아시스는 리암 갤러거와 노엘 갤러거라는 형제를 주축으로 한 밴드로 94년에 《definitely maybe》라는 앨범으로 데뷔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60년대로의 회귀라는 분위기에 정확히 들어맞는 락의 사운드와 비틀즈와 비슷한 분위기로 엄청난 성공을 이룹니다.


특히 가사에 들어차있는 밝은 분위기와 살짝은 이해할수 없는 가사들이 모두 합쳐져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대표곡인 live forever, supersonic, married with children의 가사에 그들의 분위기가 정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할지도 몰라


지금은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야 할 시간이지,

울고 있을 때가 아니야


너도 나와 같다고 생각해


우린 그들이 절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봐


너와 난 영원히 살거야'

Oasis-Live forever


이 가사에서 이해가 되는것은 가사에 담겨있는 밝은 분위기 뿐입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른 자신들도 이 가사에 담긴 의미는 모른다고 할 정도로 은유적인 표현들로 차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사에서만 느낄수 있는 낙관적인 분위기,

영원히 함께라는 단순한 주제로 브릿팝이라는 장르를 잘 드러낸 곡입니다.


그리고 1년뒤에 나온 2집 《(what's the story)morning glory 》라는 앨범으로 엄청난 성공을 이뤘습니다.


오아시스라는 밴드하면 이 앨범의 수록곡을 제일 먼저 생각할만큼 오아시스라는 밴드와 브릿팝의 정체성을 제대로 써낸 앨범입니다.


그 중 싱글 'don't look back in anger', 'wonderwall'은 영국의 국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또 자신들도 마지막 트랙인 'champagne supernova'의 가사는 '너희들이 해석해라, 우리에게는 관객이 별인것이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오아시스 1,2 집 가사 대부분은 난해하지만

밝은 분위기와 락적인 사운드를 가미시켜 브릿팝이라는 장르를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2집에서 힘을 너무 쓴 그들은 3집의 혹평을 시작으로 좌절하기 시작했고 두 형제의 마약 문제도 심해지며

침체기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3집의 경우 1,2집과는 대비되는 억지로 늘린 곡의 길이, 대중들의 지나친 관심, 무엇보다 떨여져버린 곡의 퀄리티 등 


평론가들은 이 앨범에

'브릿팝의 몰락이다'

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물론 평론가들이 이런 평가를 내린데에는

몇가지 원인들이 더 있습니다

브릿팝의 정치적 도구화,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국뽕에 가까운 분위기로 흘러가던 브릿팝 문화와


문화 산업을 주도하던 다이애나비의 사망

그로인해 잔잔하고 더욱 감성적인 분위기가 주류가 되어버린 문화


또한 당시 브릿팝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이 몰락을 예감하고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곡을 내기 시작한것으로 인해


결국 이로 인해 전세계를 들썩인 브릿팝은 10년이라는 전성기를 누리고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