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시 반 즈음에 집에서 나왔다. 며칠 전 신청해 놓았던 특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빠른 걸음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환승을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한참을 내려갔다. 

 운이 좋은 것일까 카드를 찍고, 다시 한 층을 내려가자 마자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열차는 곧 멈추었고, 환승을 위해 내리는 사람들이 곧이어 내렸다. 나는 탔고, 그 안에는 자리가 없었기에 열차의 열리는 문 맞은편에 등을 기댄듯, 기대지 않은듯 섰다. 한쪽 귀에는 연식이 꽤 오래 된 무선 이어폰을 꼽고, 아무 채색이 되어있지 않은 지하철 너머의 벽을 바라보았다. 덜컹이는 열차에서 이따금 들리는 다음 역에 대한 정보, 철지난 유행가를 듣고있던 차에 어디선가 누군가 말했다. 

‘한 푼만 줍서. 한 푼만 줍서. ’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니 한 노인이 객차 사이의 문을 열며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 나이때의 사람에게 다가갔다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 옆 중년의 사람게 또 다음의 사람에게 발을 옮겼다. 지하철 속 사람들은 그 노인에게 관심따위는 주지 않았다. 눈길만 한번 툭 던질 뿐 고개 조차도 돌리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히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에게 와서 적선을 요구 할 까봐. 나는 맞은 편 문 위에 그려진 지하철 노선도만을 바라보았다. 

 그 노인은 작은 걸음으로 목소리를 많이 내었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자 목소리는 조금만 내면서 큰 걸음으로 바꾸어 걸어갔다. 열차 속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 누구도 노인이 열고 지나간 문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곧 내가 내려야 할 역의 이름이 불렸다. 저편에서 조금씩 빛이 새어 들어왔다. 열차는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열차의 문과 승강장의 위치가 맞게 되었을 때 완전히 열차는 멈추었다. 문이 열렸고, 나는 그 문을 넘었다. 그리고는 승강장에 표시된 출구를 따라 걸어나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서 손을 내밀면 무어라도 쥐어줄 요량이었다. ‘

 그것은 쓸데 없는 변명이자, 제가 무엇이라도 된듯 한 느낌의 문장이어서 듬성듬성 켜져있는 허름한 지하철 역에 놓아두고 오고 싶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메모장에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 간략하게나마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