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괜찮아요?”

옆에 있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이러다 졸음운전 하면 큰일이니 쉬었다 가요.”

“괜찮아요. 그냥 집 도착해서 얼른 쉬고 싶어서 그랬어요.”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소리에 자고 있던 한솔이가 깨어났나 보다. 백미러를 통해 확인해보니 한솔이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엄마, 벌써 집에 온 거야?”

아내는 한솔이에게 말했다.

“아직이니까 우리 한솔이 더 자요.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으니까. 도착하면 엄마가 한솔이 깨워줄게요.”

한솔이는 여전히 피곤한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근데 엄마, 이제 우리 그러면 더는 할머니 집 안가?”

아이가 아무 생각도 없이 내뱉은 소리였겠지만 그 소리가 어딘지 기분 나빠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당신 뭐예요!”

나에게 순간 신경질 내던 아내도 내 표정을 봤기 때문인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의 정적이 이어지고 아내는 고개를 뒤로 돌려 아들에게 한소리 했다.

“한솔이 너, 엄마가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했지?”

오늘은 실은 어머니를 보내주고 왔던 날이었다. 삼일장을 끝내고 어머니의 집에 가 어머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어머니께서는 딱히 사고를 당하셔서 돌아가신 것은 아니었다. 정말 단순하게 노환, 남들이 말한다면 어쩌면 천수를 누리고 가셨다고 할 수 있었다. 병실에서 우리를 맞이해주던 그 마지막 날까지도 어머니께서는 아픈 기색도 없이 웃고만 계셨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말 어머니의 그 웃음이 미웠다. 그 웃음을 볼 때마다 마치 세상이 내게 비웃는 것만 같았다. 너는 태어나기를 세상 모든 미움을 받게 되는 후레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너의 어머니는 너를 언제나 사랑한다고 한단다. 내가 마음에 박은 대못을 개의치조차 않고 웃는다. 그게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란다. 나는 그게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태어나기를 양아치로 태어났다 생각했다. 한량인 아버지 밑에서 건달의 자식이 태어나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이치 아닐까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밤낮으로 항상 술을 마셨다. 술을 퍼마셨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 아닐까도 한다. 지금 내 이마에 생긴 상처도 아버지에게 술병으로 맞아 생긴 상처였다. 그 인간은 돈을 벌지도 않았다. 항상 일하는 건 등이 굽을 대로 굽은 우리 어머니였다. 그 인간이 움직일 때는 오로지 집에 막걸리가 부족하다고 신경질 부리며 집안에 모든 물건을 집어 던졌을 때뿐이다. 한바탕의 지랄이 끝나면 그 인간은 언제나 침대에서 곯아떨어졌다. 치우는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었다. 나는 항상 난장판이 되어있던 집을 정리하는 어머니의 뒤태를 보면서 생각했다. 미련한 인간, 저 인간이 대체 뭐라고 당신의 전부를 저 인간에게 가져다 바치는 건지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를 해봤다. 어머니를 죽일 듯이 패는 것을 보고 이대로면 어머니가 죽을 것만 같아서 벌벌 떠는 손으로 경찰에 전화했다. 아버지는 찾아온 경찰을 보자마자 헛웃음을 지었다.

“아내라는 새끼가 남편을 도저히 공경할 줄 모르니 집안의 질서를 가르친 겁니다. 경찰 선생님들”

실로 미친 소리였다. 그 미친 인간은 뒤로 한 채 경찰은 가장 먼저 어머니의 의사를 물어봤다. 어머니는 경찰의 추궁들에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나의 남편이고 내 새끼의 아버지다. 절대 감방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어머니의 굳은 의견이었다. 경찰들이 나서서 설득했지만, 어머니는 완강했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던가.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돌아가자마자 그 인간은 혈색이 달라져 술병을 든 채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네 새끼가 신고했냐? 그래 네 놈 말대로 오늘 네 엄마도 죽고 너도 죽고 나도 죽고 해보자.”

그 말을 듣자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아래에는 피떡이 된 그 인간이 나에게 마구 욕을 퍼붓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어쩌자고 그런 것이냐,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어쩌자고 이런 것이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기를 붙잡고 112를 눌렀다.

“내가 그 새끼 죽여 팼습니다. 어서 와서 날 잡아가세요.”

전화를 끊자 어머니는 날 끌어안고서는 펑펑 울고만 있었다.

경찰 조사가 있었다. 얼굴에 피멍이 든 그 인간이 경찰서에서 만나 내게 처음 했던 말은 너 같은 후레자식을 꼭 감방에 보내겠다는 엄포였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를 비웃었다. 그, 거지 같은 입에서 두 번 다시 그런 쓰레기 같은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이빨을 다 부숴놓을 걸 그랬지 못했다고. 그게 내 평생의 한입니다. 나의 대답에 기가 찬 그는 형사를 잡고 존속살해라던가 아무튼 그런 죄목으로 이 새끼한테 사형을 선고할 수 없냐고 물었다. 그런 우리 둘 사이에서 어머니는 그저 울고만 있었다.

나는 법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간 아버지라는 인간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상습적으로 폭행하던 일이 정상참작된 결과라고 한다. 그래도 내가 행했던 폭행의 강도가 너무 높아 나의 행동을 단순히 정당방위로 볼 수만은 없다고 말이다. 그 인간은 내 형량이 너무 가볍다고 재판장에서 고래고래 소리쳤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새끼가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를 패는 것이 한국 법에 가당키나 하다는 의견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적반하장이 가득한 태도에 판사는 어이가 없어도 한참은 없었는지 퇴정하다가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아 이야기했다.

“그렇죠. 부모 자식 관계는 하늘이 점지해준 관계라는 거. 저도 매번 이런 부류의 사건을 맡으면서 판결문에 적을 정도로 좋아하는 말입니다. 물론 아드님의 행동이 천륜을 저버린 것은 맞습니다만, 먼저 천륜을 저버린 것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는 한 쪽이 받기만 하는 일방적 계약관계가 아니니 말입니다.”

그 인간은 억울하다는 듯이 판사에게 욕을 갈겼지만, 그저 퇴정 조치만 당했을 뿐이었다. 그 후로는 감옥에서 전해 들었던 것인데 술을 처먹고 행인을 폭행하다 감방에 들어가서는 술을 먹지 못해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소식만을 들었다. 그 소식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만 같았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났던 그 인간의 인생사를 들으니 나는 자연적으로 술에 대한 혐오감만을 가졌었던 것 같았다.

감옥 생활은 별 것 없었다. 처음 방에 들어가자마자 존속폭행이라는 내 죄명을 듣자마자 구타가 시작되었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모두가 안타깝다는 이야기만을 해줬을 뿐이었다. 그런 새끼가 아들을 낳을 자격이 있느냐를 운운하면서 말이다.

몇 달이 지나지도 않아서 모범수를 받았다. 모난 것 없이 행동했으니 말이다. 그런 행동들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5년 만에 사회로 나왔다. 딱히 이 사실을 어머니께 알리지는 않았다. 그 눈물 가득한 얼굴을 내가 본다면 나는 숨을 쉬고는 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감옥을 나오고는 감옥에서 만났던 인연을 통해서 조폭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감옥에서 달았던 모범수라는 딱지도 딱 그 감옥 안에서야 의미가 있던 거지 사회로 나오니 결국 전과라는 빨간 줄이였던 것은 매한가지였다. 특히나 존속폭행이라는 그 한 줄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견이 생기기 너무 좋은 죄명이었다. 그 누가 자신을 길러준 부모를 폭행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미물인 개새끼들조차 자기 부모가 소중한지는 알고 산다는데 나는 그런 개새끼보다 못한 쓰레기였다.

“너 이 짓거리 하면 천국에 들어갈 생각은 접어라. 그게 조폭의 삶이다.”

감옥에서 만났던 큰형님이 내게 항상 하던 말이었다.

“너는 조폭을 할 깜냥이 안되는 인간이다.”

그런 큰형님의 말들에 나는 항상 답했다.

“후레자식인 제가 조폭이 아니면 누가 조폭이 되겠습니까?”

조폭 생활은 내게 너무 제격이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그 인간 같은 쓰레기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부채라는 매우 그럴듯한 핑계로 그 인간과 같은 것들을 악랄하게도 괴롭혔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더욱 편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갓 들어온 신입 녀석과 담배를 나눠 피고 있을 때였다.

“형님은 대체 왜 채무자 놈이 술만 마신다고 하면 그렇게 난폭해지는 거랍니까?”

“갚아야 할 돈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 처마시고 노는 것이 괘씸해서 그런다.”

“평소에 형님 하시는 거 보다 보면 조폭은 무슨 젠틀한 것이 샌님 같은 은행원 놈들 저리 가라 하니까 그렇죠. 그 왜 있잖아요. 얼마 전에 애새끼랑 여자 하나 있는 집 털러 갔는데 형님이 그냥 나가자면서요. 그년 돈도 아마 형님이 다 대줬죠?”

“그런 일도 있었냐?”

녀석은 답답하기라도 한 듯이 땅을 마구 발로 차며 말했다.

“형님, 저희 직업 수명 짧습니다. 그래도 돈은 손에 쥐고 은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항상 주고만 사시는 겁니까?”

“다 그런 게 있다.”

나는 그저 그런 질문들에 항상 피식 웃어넘겼다. 나는 언제나 그런 막돼먹은 것조차 못한 인간이었으니까 말이다.

건달 생활을 하면서 또 하나의 장점은 나 자신을 숨기기에 너무 제격이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각지의 흥신소를 돌아다니면서 나에 대해 수소문을 했다곤 한다. 이 일을 하면 어디서 누가 누굴 찾는지 다 알 수가 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언제나 웃돈을 올려 어머니의 돈을 받지 말고 돌아가게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렇게 나를 고립시켜서 망가트렸다. 이게 천의 후레자식인 내게 가장 어울리는 꼴이라고 하지만 그런 내 꼴을 탐탁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큰형님이었다. 어느 날 큰형님께서는 자신과 자리를 가지자 하시더니 내게 술을 따라주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기현아, 너는 왜 항상 뭐든 잃고만 살려고 하는 거냐?”

“제가 절대 술을 안 하다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 답을 들은 큰형님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 일 그만둬라, 조폭이 술 한 잔 못하는데 그게 어떻게 조폭이겠더냐?”

“정말 제가 술을 못하는 게 이유인 겁니까?”

“그래, 그게 전부다. 네가 이 잔을 털어 넣을 수 있다면 없던 일로 하겠다.”

나는 술잔을 담긴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지만 얼마 안 가 기침과 함께 삼켰던 술을 전부 뱉어냈다. 큰형님은 혀를 차며 말했다.

“이런 새끼가 어떻게 조폭이겠냐. 지방에 카페 같은 거라도 하나 차려줄 테니 쥐 죽은 듯 떠나라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그렇게 나는 쫓겨나듯이 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큰형님이 마지막 배려차로 차려줬던 카페는 생각 이상으로 잘 되었다. 마치 이 일이 내 천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거기서 지금 아내를 만났다. 살기를 명랑하게 살아온 그녀는 내 웃는 표정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상황을 넘길 때 억지로 짓던 그 웃음이 그녀가 나를 사랑한 이유였다. 그저 잊기 위한 가벼운 만남으로 임했던 관계였지만, 나는 보기보다 ‘사랑한다.’라는 말에 너무나도 연약한 사람이었다. 내 품에 안겨있던 그녀는 내게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이야기했다. 텅 빔으로만 가득 차 있는 나의 삶에서 다른 무언가를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만 보였다. 내가 과연 결혼해도 되는 사람인지 싶었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하고자 카페를 닫고 며칠 동안 지방을 떠나 큰형님을 만나러 갔다. 나를 보자마자 큰형님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그래도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는 한가 보다.”

“사람이 되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너, 내가 너 처음 봤을 때 뭔 생각을 한 지는 알고 있냐?”

“뭔 생각을 하셨길래 그럽니까?”

“눈에 맞아서 곧 길에서 얼어 죽을 치와와 새끼”

“그랬나요.”

큰형님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조폭인데 치와와는 시발,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리지. 이런 새끼 별명이 시발 백사가 말이 되냐. 백사라니 아우 오그라들어”

큰형님은 웃으시면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기현아, 이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 면상만 봐도 그 값이 딱하고 나온다. 아 저 새끼는 짐승 새끼구나. 저 새끼는 딱 봐도 꾼이구나. 밤마다 칼에 찔리고 찌르는 세상인데 얼굴만 보고 읽어지지 않겠냐? 누가 찌를 새끼인지 말이야.”

“지금은 제가 그러면 어떻게 보이십니까?”

“그 어색한 웃음 안 지으니까 보기 좋다. 그 낯짝을 매번 보고 있으면 왜 매일 같이 애새끼 마냥 질질 짜는 건지 싶었거든.”

“그런가요?”

“내가 말했잖냐. 너는 깡패랑은 거리가 멀다고 겁쟁이 울보가 무슨 깡패냐 깡패는. 깡패짓이 애들 소꿉놀이도 아니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 감사하기만 하네요.”

“그나저나 여기는 왜 온 거냐? 내가 분명 여기 다시 기어들어 오면 손가락 뽑아버린다고 했는데 차려준 카페라도 말아먹었니?”

나는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꺼냈다.

“어떤 여자가 절 좋다고 하더랍니다.”

“미친년이 있긴 한가 보구나. 왜 뭐가 문제인데?”

“천국에 못 간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냐? 왜 내가 주례라도 서주리?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응?”

“결혼한다고까지는 말씀 안 드렸는데”

“인마, 네 얼굴에 ‘이 여자가 너무 좋아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요.’하고 쓰여 있어. 내가 본 얼굴 중에 가장 좋구만은 그딴 게 걱정이야? 천국 못가는 게? 우리 백사 김기현이 죽어도 많이 죽었다. 채무자들 죽일 것처럼 들들 지지고 볶던 미친 새끼가 천국 걱정을 해?”

큰형님은 마시던 술잔의 술을 땅바닥에 버렸다.

“다시는 오지 마라. 네 인생을 살아 인마.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가 좋냐? 일부러 반항심에 망가트리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나가는 나를 향해 큰형님은 말했다.

“그리고 주례는 지랄, 너는 조폭 두목이 결혼식 주례 보면 그게 뭔 꼴이라 생각하겠냐? 신랑 깡패라고 동네방네에 자랑할 일 있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녀와 사귀기로 했다. 며칠 동안 대체 어디 갔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내가 그녀에게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카페 이전의 삶들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아버지를 팬 깡패 새끼라는 구절에 내가 우려했던 반응과는 달리 그녀는 길고 길기만 한 내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지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 미소가 그런 의미였는지도 몰랐던 아내가 도리어 걱정되어 내게 말했었다.

“혹시 제가 상처를 놀린 건 아니겠죠.”

“당신을 만나서 제가 웃은 건데요.”

그때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깡패라는 나의 출신 성분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장인어른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봐서였는지는 몰라도, 결국 결혼을 허락받았다. 단 식장에 내 쪽 손님은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로 채운다는 것이 장인어른의 조건이었다. 결혼식장을 깡패들로 채울 수 없다는 장인어른의 완고한 뜻이었다. 그렇게 허락도 받고 일사천리로 식을 올리고 한솔이를 가졌다. 한솔이가 한 살이 되었을 무렵 아내는 나에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대체 뭔데?”

“당신 어머니 집 주소”

아내는 나를 끌고 어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기현이냐?”

대문을 넘어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가 집안에서 외친 첫마디였다. 나오지 않고도 내 발소리만 듣고 내가 온 것임을 어머니는 아셨던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도망치듯이 대문 밖으로 나갔다. 저녁이 되어서야 아내의 돌아오라는 문자에 쭈뼛쭈뼛하면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20년 만에 나를 본 어머니는 별말을 하지 않으셨다. 으레 자식이 부모님을 보러 당연하게 왔듯이 그렇게 나를 대했다. 그 잠깐만은 내가 마치 내가 도망치지 않은 평행우주에 뚝 하고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내가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한가지 깨달았었다. 어머니도 나와 똑같이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말이다.

“아빠 잘못했습니다.”

뒷자리에서 한솔이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잠시 옛 생각에 젖어 있던 중에 아내가 아들의 훈계를 끝마친 듯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러면서 표정으로 다른 것도 아니고 이제 다섯 살짜리인 애가 그런 건데 언제까지 그렇게 꽁해있을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빠도 미안하다. 한솔아. 아빠도 처음이라서 말이야. 헤어진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

한솔이는 내게 물었다.

“있지, 아빠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떠나야만 하는 거야?”

아내는 아들의 그런 소리가 나를 혹여나 자극할까 봐 내 눈치를 살폈지만, 나는 숨이 차오르면서 아들에게 답했다.

“떠나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거야. 한솔이 할머니도 아빠도 엄마도 한솔이도 모두 흘러가고 있는 거일 뿐인 거야.”

“그러면 할머니는 어디로 흘러간 거야.”

아내는 아이의 그런 질문에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김한솔!”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질문에 답을 했다.

“글쎄, 아빠도 안 가봐서 잘 모르겠는걸”

“아빠도 모르는 게 있구나.”

“그래, 아빠도 너무 많은 것들을 몰라오면서 살았어.”

“당신….”

“좀 쉬었다가 가자. 갑자기 확 피곤해져서 말이야.”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태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차에서 나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당신 정말 괜찮아요?”

“응….”

아내는 다가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당황스러워 물었다.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담배 피우고 있는데”

“당신 어머니한테 들었거든요. 우리 기현이가 종종 힘들어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가서 꼭 안아주라고 말이에요.”

나는 당황스럽기만 해 말했다.

“그런 걸 말한 적이 있어? 나랑 있을 때는 별말 없으셨던데?”

“당신이야 언제나 어머니와 대화하기 무서워하니까 어머니 집에서 매번 도망치듯이 잠만 자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밤에 어머니께서 당신 이야기를 참 그렇게 많이 했어요.”

“흉이라도 보던가? 후레자식 놈이 이제 집에 기어들어 왔다고?”

“흉은 무슨, 당신 칭찬을 그렇게 많이 하더라고요. 뭐 학교에서 그림 그려서 상 받은 이야기, 공부 잘했던 이야기, 어릴 때 남 도와줬던 이야기 말이에요. 우리 아빠도 가만 보면 참 팔불출인데 당신 어머니가 더하면 더하셨지 덜하시지는 않으시더라고요.”

“어머니도 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당신 나이가 나이인데 아직도 당신 중학교 성적까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뭐 해 먹고 살았는지 혹여나 물어보기라도 했어?”

내가 어머니와 연락을 끊고서는 깡패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몰랐으면 했다. 아내는 말했다.

“말해야 하나 했는데 어머니께서 먼저 고개를 저으시더라고요.”

나는 피우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나의 행동에 아내는 놀라 말했다.

“당신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여기서부터는 내가 운전하고 갈까요?”

나는 지금까지 아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있지, 당신이랑 어머니 보러 갔을 때 말이야. 그때 기억나?”

“당신 문 앞에서 도망친 날 말하는 거잖아요.”

“동네 알던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그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 이야기를 하더라고.”

“저 댁 양반이 아들 때문에 밤마다 울어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말이야.”

아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유전인가 봐, 남 앞에서 절대 못 우는 거 말이야. 나도 그랬거든 항상 웃고 있는데 정말 죽을 거 같았어. 어머니도 그 순간마다 죽을 만큼 아프셨을까?”

머릿속에서 어머니가 웃던 그 모습들이 지나갔다.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내는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지 마요. 어머니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셨어요. 결혼한다는 거 들으시고 얼마나 웃으시던데요. 이렇게 예쁜 며늘아기 데려오는 거 보니 우리 기현이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나 보다. 하면서요”

나는 벌벌 떨면서 물었다.

“어머니,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프지 않으셨을까?”

아내는 나를 꽉 안아주면서 말했다.

“울지 마요. 그러면 어머님이 더 슬퍼하시지 않을까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죽인 것만 같아 우리 엄마. 분명 아프셨을 거야. 괜히 나 때문에 아프다는 말도 하나 못 하시고 웃고만 있으셨던 거라고”

“저랑 같이 의사 선생님 말씀 들었잖아요. 몸에 크게 아픈 구석도 하나 없이 돌아가셨을 거라고요. 천수를 누리고 가신 거라고 말이에요.”

“마음의 병은? 의사 선생님이라 해도 그건 발견 못 했을 수도 있잖아.”

“어머님께서 그날 전날 밤 제게 말씀해 주셨어요.”

아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나를 버리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안았던 것을 자신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하셨다고 했다. 자신의 출산을 도와주던 언니의 경고를 무시한 채 어머니는 태어난 나를 바로 자신의 품 안에 안았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곧바로 생각하셨다고 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아이는 웃을 수 있게 만들자. 나 때문에 태어난 아이니까 그 생각으로 그렇게 살아오셨다고 말이다. 아이가 혹여 다른 아이들한테 아비 없는 새끼라고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해서, 행여나 잘못된 교육으로 말미암아 내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될까 봐. 그렇게 나를 위해 살아오셨다고. 나를 찾으러 그렇게 흥신소를 들락날락하시면서도 제발 세상 어딘가에서는 내가 웃고 살아있기만을 진심으로 바랐다고 말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가 집으로 돌아오던 날에 입속에서 정말 많은 말들이 맴도셨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던 너에게 그 모든 것들이 상처가 될까 봐. 그렇게 어머니는 웃으셨다.

아내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부 전해 들은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내가 사랑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터벅터벅 차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한솔이가 곤히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같이 확인한 아내는 내게 말했다.

“한솔이 재워도 침대에서 재워야죠.”

“그래 그게 맞겠지.”

나는 라이트를 켜고 밤길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