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랭한 걸음걸이로 대지를 활보하는

포식자들의 위엄을 보라

거인들의 세상에 녹아들기 위해

미약한 본능이나마 잠시 숨 죽인다


악취를 뚫고 찾은 생선 뼈 한 점에

허겁지겁 코를 박는 것도 잠시

우렁찬 암컷 거인의 포효에 놀라고

손에 들린 거대한 몽둥이에 매질 당할까

꽁지 빠지게 달음박질 친다


달콤한 열매와 풍족한 고기들로

우거진 수림과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동굴로

무성한 더위와 쓰라린 한파를 견디게 해주었던

우리의 낙원은 오간데 없이

세상은 거인들의 발자취에 맞춰

거대한 아성을 이루었다


나날이 곯은 배에 허기를 달래고자

애처로운 울음으로 끼니를 동냥하니

포식자들은 온정 깃든 투박한 손길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


섞일 수 없는 관계임을

분명 자각하고 있음에도

기대고자 하는 마음은 점차 커져

발걸음 딛는 곳이 사자의 아가리 속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끝내 생사를 건 처절한 승부수를 던진다


간혹 거인의 눈에 밟혀

안락한 울타리 속에 구속되길 자처하는

종의 본능과 위엄성을 상실한

동족들을 안타깝게 여겼으나

나의 말로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


자유를 속박 당한 미련한 신세라도

당장의 따뜻한 한 끼와 보금자리가

내겐 그 누구보다 절실하기에


밟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그림자 위로

두려움 섞인 한 걸음을

오늘도 딛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