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대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바닥에 축늘어져 부들부들 떨고 있다.


'일어나- 빨리. 다른 발가락도 자른다?'


가늘고 쉰목소리가 여인에게 들렸는지 여인이 꿈틀하며 움직였다.


목소리는 말하고 있지만 그 어디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마치 방음벽에 막혀 헤드폰으로 들리는 듯한 그 소리는 큭큭 대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길고 선명한 붉은색의 무언가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복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여인의 잘린 발가락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피.




챕터1: 끝없는 방


엘리스는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스치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주변을 탐색하다가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곳은 그녀의 방이 아니었다. 벽은 어딘가 익숙한 벽지로 덮여 있었지만 창문이나 문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끝없이 펼쳐진 복도만이 그녀의 시선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게... 무슨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의해 미세하게 떨렸다. "내 침대... 뭐야 어떻게 여기..."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서 발가락으로 바닥을 탐색했다.


차가워.


그녀의 발걸음 소리는 복도를 따라 메아리쳤다. 양팔을 앞으로 뻗으며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꿈이지? 이거." 그녀는 자신에게 짜증내며 말했다. "안깨고 뭐하는거야? 진짜..."


그러나 복도를 걸으면 걸을수록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하단걸 인정하고 있었다.


심장 박동은 귀에 울리듯 명확했고 공기의 차가움은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대조를 이루었다.


복도를 따라 걷다보니 주인공은 자신의 방과 똑같은 방문들을 지나쳤다.

당연히 열려고 해봤지만 어떤 손잡이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뭐야... 아직도 꿈인건가?"


그녀는 중얼거렸다. 불안한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저기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허공에서 응답하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메아리뿐.


그녀는 멈춰 섰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정신 차리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신 차려. 꿈이야. 꿈.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꿈이야."


그녀는 꾹 눈을 감고 깨어나길 바라며 몇 번이고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 그녀는 여전히 같은 공간에 서 있었다.


'짜증나...'


그때 먼 곳에서 무언가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소리였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발걸음 소리 같았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그녀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그녀가 소리쳤다. 하지만 다가오는 것은 무언가... 이상했다.


엘리스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눈을 크게 뜨고보니 분명히 개였다. ...엉덩이만 있지만...


그녀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뭐야... 이게?"


머리가 어지러워서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치다가 벽을 짚고 겨우 멈췄다.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게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나... 이럴 리가 없어. 이런 일이 어떻게..."


그러나 개는 그녀의 공포나 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 순간 이 끔찍하고도 이상한 곳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저거 진짜 개야?'


개는 머리 대신 두 엉덩이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웃는것처럼 엘리스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개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에게 친근함을 느끼는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지? 너는... 넌 누구니?"


 개에게 물었다. 개에게 물었다? '내가 미쳐가고 있구나' 잠시 멍한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끝도 없는 복도에 누구도 없는 곳에 엉덩이가 양쪽으로 달린 개라니 머리도 없고... 


잠시후 개는 대답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리스를 돌아보며 멈춰 섰다. "따라와"


그녀는 주저하면서도 개를 따라갔다.


"따라가네. 내가 미쳤지..."


결국 참지못하고 중얼거리며 혼잣말했다.


복도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당연했겠지만 주변은 개미 한마리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이상한 개와의 동행은 주인공에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두려움. 호기심. 그리고 미묘한 안도감.


"넌 정말 길을 아는거야? 아니면...?" 그녀는 말하면 사실이 될까 입을 다물었다. 하려던 말은...


'아니면 날 속이는거야?'


그때 개는 또 다시 멈춰서서 뒤돌아 주인공을 바라보았고 다시 길을 안내했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그녀는 점점 더 무서워졌다. 그래서 더 많이 떠들었다. "너도 여기서 나가고 싶니? 아니면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개가 안내하는 대로 엘리스는 계속해서 따라갔다.


복도는 끝없이 이어진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엉덩이만 있는 개가 앞장서며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따라오라는 듯 몸짓을 보였다.


엘리스는 개에게 속삭였다. "넌 무서운 것도 몰라? 여기 진짜 완전 이상하다니까?"


머리가 띵해질것 같다. '아... 엉덩이가 둘인 머리 없는개...'


개는 대답 대신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양의 머리를 한 늑대였다.


늑대는 짐승의 본능으로 엘리스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이런 씨발!?" 엘리스는 소리쳤다.


엉덩이만 있는 개가 앞으로 나서며, 위협적으로 짖어댔다.


목이 메어 왔다. "꺼져! 꺼지라고 미친 새끼야!"


하지만 늑대는 그녀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때 엉덩이만 있는 개가 용감하게 늑대에게 달려들어 싸움을 시작했다.


"으르르를를르- 왈왈!"


주인공은 개의 용기에 감동받았지만 잠시뒤 둘 사이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지자 두려움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지금이야! 도망쳐!'


그녀는 복도를 따라 황급히 달렸다. 심장은 격하게 뛰었고 숨은 가쁘게 차올랐다.


그러다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곧바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문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순간, 발밑이 텅 비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채로 추락했다.


훅- "아아아!"


 공포에 찬 외침을 질렀다.


첨벙!


그녀의 몸이 수영장의 차가운 물에 부딪혔다. 충격으로 숨이 멎는 듯했지만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물속에서 눈을 떴을 때 자신을 둘러싼 것이 인간의 머리카락 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물속은 마치 검은 미역으로 가득 찬 바다와 같았다. 미역이 아니라 머리카락이지만...


"허...헉!" 그만 놀라서 헉소리를 내었다.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수영장에 질겁한 그녀는 수영장 밖으로 다급히 헤엄쳤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머리카락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영장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그녀는 물에서 빠져나와 크게 숨을 쉬었다.


위를 돌아보니 양머리 늑대가 그녀를 따라 수영장으로 뛰려고 하는게 보였다.


첨벙!


하지만 이번에는 늑대가 주인공을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수영장의 머리카락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늑대를 붙잡고 수영장 깊숙이 끌어당겼다.


원한이라도 가진듯한 머리카락들은 늑대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것을 무시하며 밍기적 밍기적거리며 그러나 확실히 감싸안으며 익사시켰다.


엘리스는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심장이 튀어나갈것처럼 격렬하게 뛰었지만 두려움보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살았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공포와 위기 속에서 벗어났다는걸 깨달은걸까 긴장이 풀리고 힘이 빠지며 벽에 기대쉬었다.


---


챕터 2: 기어다니는 인형


엘리스는 20대 중반의 프랑스인 여성으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접고 최근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타투니스트다.


삐리리리리리-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침대에서 반쯤녹은 치즈마냥 늘어져있던 엘리스는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깨고 전화를 받았다.


"누구...여보세요?"


전화반대편에선 엄청화난 엘리스의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몇신데 아직도 자고 있는거니? 배도 안고파?"


엘리스는 막깨어나서 정신이 멍한 상태로 대답했다.


"먹을거야 걱정마"


"캘리포니아 까지 가서 성공하겠다고 엄마랑 약속한거 기억하지? 얼른 일어나서 밥먹고 알았지?"


"알았어. 사랑해 엄마."


엘리스 엄마는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


"나도. 뭐 부족한거 있으면 연락하고. 끊을께."


 그녀의 타투 스킬은 점차 인정받기 시작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서서히 이름을 알리며 유명해졌다.


엘리스의 타투는 특유의 예술적 재능과 열정으로 여러 음악인들, 미술가들, 문학인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게 되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보낸 시간 동안 독특한 미학과 기술을 습득했고그녀의 타투 스타일에 독특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뒤 일본에서의 경험, 이제 캘리포니아라는 새로운 환경이 그녀의 작업에 특별한 깊이와 다양성을 부여했다.


어느날 밤 캘리포니아에서의 새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파티를 열었다.


그녀의 작업실 겸 집에서 열린 파티는 예술과 음악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화려한 밤이었다.


친구들과의 웃음과 대화, 음악의 울림 속에서 엘리스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 다채로운 문화의 용광로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더 넓게펼쳐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파티가 늦게까지 이어지고 한참을 재미있게 놀자 지치기 시작했고 별 생각없이 침실로 향했다.


그날 밤 어떤 꿈을 꾸었는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눈뜨고 나니 자신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이상한 곳에 있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엘리스의 침실은 그녀가 익히 알고 있던 그 공간이 아니었다.


벽에 걸린 타투 디자인들 개인적인 소장품들 캔버스와 물감이 가득한 작업 공간까지 모든 것이 사라진 듯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고 애착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엘리스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공간 끝없이 이어진 복도에 놓인 침대 위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헉!


수영장에서의 끔찍한 위기에서 벗어나자 좀 쉰다는 것이 그만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축축하게 젖어 차가워진 옷의 한기에 입이 덜덜 떨려왔다. '단순히 건물이 엄청나게 큰거 아닐까?'


머리속으로 생각해봤지만 벌써 몇시간째 다녔는지 생각도 안날정도로 엉덩이만 있던 개랑 다녔는데 끝이 안보였다.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럽고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이야말로 똑바로 정신차리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야 한다. 나가야 한다.


무거운 침묵을 가르며 엘리스의 눈 앞으로 뚱뚱한 노년의 여성이 양산을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왔다.


헉헉헉! 허헉! 헉헉!


그녀의 숨결은 거칠었고 얼굴은 불안과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수영장가에 도착하자 여성은 엘리스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응? 살아있어?" 그녀는 놀란 듯 엘리스의 팔을 잡아채고는 망설임 없이 끌고 갔다.


그녀에게 끌려가며 놀란 마음에 외쳤다. "뭐.. 뭐야!! 이거놔요!"


"전에 저놈들한테 죽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여성은 숨을 헐떡이며 손가락으로 그들이 방금 달려온 방향을 가리켰다.


엘리스는 여성이 가리킨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복도가 꺽여서 보이지 않았다.


여성은 복도를 누비며 마치 이 곳의 구석구석을 외우고 있는 것처럼 여러 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은 잘 차려진 아기의 방이었다.


흰색과 파스텔 톤으로 꾸며진 방 안 조그마한 침대와 장난감들이 정돈되어 있었다.


여성은 문을 조심스럽게 닫은 뒤 벽에 귀를 대고 밖의 소리를 들으려 했다.


"여기는 안전한가요?" 엘리스가 속삭였다.


여성은 엘리스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불안이 서려 있었지만 입가에는 피곤한 미소가 걸렸다.


"헉헉. 일단 여기선 숨을 수 있어. 하지만 알지? 도대체가 멀쩡한게 하나 없는 동네잖아."


"아줌마는... 여기를 어떻게 알아요?" 엘리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와 진짜... 휴우. 후우- 여기 나가려고 엄청 뛰었어. 도망치고, 숨고, 아 진짜! 근데 계속 붙잡혔잖아? 그리고... 어디냐? 맞어. 다시 여기로... 후우- 돌아와."


여성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그러나 바로 뭔가 신경쓰였는지 눈썹을 씰룩대며 말했다.


"야! 언니라고 불러! 언니! 헉헉. 아줌마가 뭐야. 아줌마가."


엘리스는 좀 당황하며 사과했다. "아... 네. 언니."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으며 이곳의 규칙과 구조를 이해하려 애썼다.


역시 여성의 말은 이곳이 얼마나 혼란스러운곳 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저놈들이란 누구예요?"


"기어다니는 인형들..." 여성의 목소리는 떨렸다. "처음엔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그것들은..."


말을 미쳐 마치기도 전에 방문 밖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작은 구두가 또각거리는 소리 같았지만 뭔가 기분 나쁜 리듬이 실려 있었다.


엘리스와 여성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실려있었다.


여성은 조용히 속삭였다. "숨어. 절대 움직이지 마."


그들은 숨을 죽이고 방 안에 있는 큰 옷장 뒤로 몸을 숨겼다.


방문이 서서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무언가가 방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소리가 이어졌다.


엘리스의 심장은 그녀의 가슴속에서 거칠게 뛰고 있었다.


마르타 로즈는 50대 초반의 경험 많은 지방 신문 기자로 평생을 특종과 진실을 쫓아왔다.


왕성한 호기심과 강인한 정신은 언제나 그녀를 새로운 모험으로 이끌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종을 찾아 떠난 여정은 그녀를 멀리 떨어진 목장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인 것이 전부였다.


깨어났을 때 마르타는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든 뭐든간에 분명 큰 음모가 있는거야."


마르타는 엘리스에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여기가 뭔지는 몰라도 끝없는 복도? 얘. 이건 이미 특종이야. 전부 써놓고 인생 특종으로 터뜨려야돼."


엘리스는 마르타의 이야기에 놀랐다.


"아니 이상황에서 기사를 써요? 그런데 어떻게 기록하죠? 여기선..."


"아, 그건 걱정하지 마. 난 항상 요 수첩이랑 펜을 가지고 다니니까. 기자의 습관이지." 마르타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수첩과 펜을 가르키며 말했다. "수첩은 제임슨이고 펜은 헨리야. 둘은 얼마전부터 사귀기 시작했는데..."


엘리스는 그게 뭔소리냐는 듯이 쳐다봤고 마르타는 말을 이어가려다 멈추고 헛기침을 한뒤 이곳에서의 경험을 상세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너도 봤다며 엉덩이만 달린개랑 수영장에 있던 머리카락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와 방들도 그렇고 우리를 쫓는 기어다니는 인형들까지. 말이 되는게 하나도 없어 진짜. 또 다들 우리를 죽이지는 않는다거. 그저... 감싸고, 깨어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공포 게임 하는거처럼 말이지. 무섭긴한데 안죽어. 분명히 깨는 방법이 있는거야."


뭐에 당황했는지 모르겠지만 당황했는지 말이 엄청 많아진 마르타였다.


"진짜요? 여기서 나가는 방법이 있어요?"


엘리스의 물음에 마르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쩝. 그야 나도 모르지.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포기하지 않해. 여기있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이곳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만약 우리가 탈출하잖아? 미친거지 완전 대박 특종이야."


그녀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마르타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종을 터뜨리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엘리스는 마르타의 결연함에 감명받았다. 두 여성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이 미지의 세계에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것.


"그럼, 계속 쓰셔야겠네요. 언니가 말한대로 이곳은 정말 특별한 곳이니까."


마르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깐? 아직 끝나지 않았어. 여기서 벌어지는 일, 분명히 뒤가 있어. 그리고 이건 대박 특종이 될거야."


또각. 슥- 또각. 슥-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뭔가를 끄는 소리가 다시 한 번 공포의 순간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제 마르타와 엘리스는 서로를 의지하며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기로 결심했다.


둘은 잠시 동안 기어다니는 인형들을 피해 숨을 고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르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그 인형들 역시 우릴 죽이려는 건 아닌 것 같아. 어쩌면 우리가..."


그녀의 말은 엘리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쩌면요. 그냥 돌아다니면서 잡고 다시 돌아오고 그게 다 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의 용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형들이 다가오면서 그것들의 얼굴에 사람의 얼굴이 섞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끔찍한 진실에 둘은 순간적으로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엘리스가 속삭였다. "언니... 그 인형들의 얼굴... 사람 얼굴..."


마르타가 가까이 다가가 더 선명하게 보려고 했고 곧 그녀는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꺅! 이게... 이게 뭐야. 응? 울고 있어...?"


두 사람은 인형들의 얼굴 중 일부가 고통에 찬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이들에게 너무나도 현실적인 공포를 선사했다. 엘리스는 견딜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렀다.


"언니, 도망쳐야 되요!"


그들은 도망치기 시작했고, 복도를 따라 달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는 그들의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때 마르타가 넘어지고 말았다.


우당탕!


"언니!" 엘리스가 소리쳤다.


그녀는 돌아서서 마르타를 도우려 했지만 이미 인형들이 마르타를 둘러싸고 있었다.


"가! 빨리 도망쳐! 그냥 가!" 마르타가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엘리스는 마르타를 두고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인형들에 둘러싸인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마르타가 강하게 손을 뿌리치며 그녀를 밀어냈다.


그 순간 인형들이 마르타를 완전히 덮쳤고 그녀는 점점 그것들처럼 변해갔다.


아아아악!!!


엘리스는 공포에 질린 채로 달렸고 어느 순간 자신의 침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마지막으로 본 마르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돌처럼 굳어가던 그녀의 끔찍했던 모습이 뇌리에서 떨쳐지지 않자 허공에 대고 혼자 중얼거렸다.


"언니... 나 혼자 어떻게 살아남아? 대체... 씨발 나혼자 뭘 어떻게 하라고?"


그녀는 오직 마르타를 잃은 슬픔과 함께 남겨진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그렇게 침대에 몸을 묻고 무력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


챕터3: 동반자


마르타 로즈는 차를 몰고 외딴곳의 목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실종된 젊은 여성의 사건을 추적 중이었던 것이다.


실종되었다는 여성은 친구들과의 파티 후 갑자기 사라져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고,


결국 주변 사람들에 의해 실종 신고가 되었다.


마르타는 지방 신문 기자로서 최근 실종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목장의 창고에 도착한 그녀는 후레쉬를 키고 조심스럽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목격담에 따르면 실종된 여성이 이 목장 근처에서 보였다고 한다.


심장은 긴장으로 빠르게 뛰었다.


"이건... 아니, 이런..."


마르타가 속삭였다. 창고 안에서 젊은 여인의 시신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며, 자신의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실종 사건들, 모두 연결되어 있는 걸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건 분명 대박 특종이 될 거야. 잠깐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지."


그때 그녀의 시선이 무언가에 끌렸다. 창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뭔가 움직인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임이 느껴졌던 곳을 더 탐색하기 시작했다.


장면은 다시 바뀌어 엘리스의 얼굴로 돌아왔다. 엘리스는 넋이 나간 듯 벽에 머리를 기대고 멈춰 서 있었다.


그녀는 마르타가 인형들에 의해 덮이는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슬픔과 충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니... 왜..." 엘리스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는 마르타의 용기와 결단력을 떠올렸다. 그녀 덕분에 살아났지만 이제는 더 움직일 기운이 나지 않았다.


잠시뒤 복도 끝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스는 기겁하며 벽에서 몸을 떼고 바로 섰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확장되었다.


"또?" 엘리스는 손에 무언가를 쥐려고 했지만 빈손임을 깨닫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겁이 났지만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매 순간마다 마르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라서 두려웠지만 가까스로 이겨내며 전진했다.


"난 강해. 여기서 쓰러지지 않아. 반드시 나가고 말거야."


복도의 끝에서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것은 머리만 있는 개였다.


그것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개의 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머리가 공중에 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순간적으로 엉덩이만 있던 개의 머리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머리만 있는 개가 말을 했다.


"맞아. 난 그 녀석의 주인이지."


엘리스는 너무나도 놀라 자신이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게... 어떻게..."


"널 구해서 다행이야." 개는 한참을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가 웃는다니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제 우리 모두 살았어. 나갈 수 있어."


엘리스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멈춰 섰다. "살았다고? 나갈 수 있다고? 여기가 대체 어디야?"


개의 머리는 잠시 공중에서 멈춰 있었다가 휙날아 그녀의 눈높이에서 멈춰 섰다.


"이곳은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야. 모든 게 뒤섞인 상태지. 나가기 힘들긴 하지만, 방법과 필수 요소만 있다면 나갈 수 있어."


이제야 조금씩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간지대라니... 그럼 난 살아 있는 거야? 아니면..."


"살아 있어. 아직은." 개는 다시 한 번 공중에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너무 오래 머무르면 나가기가 더 힘들어져. 난 널 도와줄 수 있어.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엘리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개의 머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나가는 방법은 뭔데? 필수 요소는 뭐고?"


"너의 의지 그리고 믿음이 필요해.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나갈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바로 나지. 너의 안내자." 개는 엘리스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알았어. 빨리 나가고 싶어. 그리고 나갈 수 있을거야."


"좋아. 그럼." 개는 말하며 엘리스를 이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둘은 오랫동안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분명 복도의 불은 켜져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어둡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을 이끄는 머리만 있는 개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갑자기, 엉덩이만 있는 개가 나타났고, 머리만 있는 개는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두 개가 하나가 되어 완전한 개의 형태를 이루었고 그 후 순식간에 수염이 많은 남자로 변했다.


"이게 대체..." 엘리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남자는 엘리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놀라지 마. 엉덩이만 있는 개나 머리만 있는개 보다는 낫잖아."


'맞는말이네.' 그의 모습에 놀랐지만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분명 헐벗고 있었지만 그의 몸에는 털이 너무 많아 마치 털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엘리스의 손을 잡고 바닥 없는 복도를 지나 거대한 종이 있는 방까지 이끌었다.


"이제 여기서 마지막 단계야. 준비됐어?"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를 생각하면서... 나가야겠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마음가짐이 중요해. 이 종을 울리면 너는 돌아갈 수 있어."라고 말했다.


엘리스가 종을 울리려는 순간 갑자기 벽이 뜯겨져 나가며 마르타의 얼굴이 나타났다.


"엘리스!" 마르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엘리스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언니?... 어떻게 여기에?"


그녀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를 기억해줘. 그리고 여기서 꼭 벗어나야 해. 할 수 있어."


남자는 조용히 엘리스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을 잘들어. 너의 의지가 중요해. 이 종을 울려."


엘리스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종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마르타의 용기가 함께했다. "언니 난 이제 나갈께..."


땡땡- 땡- 땡땡-


종이 울리는 순간 모든 것이 번쩍이며 변했다. 엘리스는 자신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눈을 떴고 자신의 방에서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다시 돌아왔어..." 엘리스는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마르타와의 만남 그리고 그녀를 통해 얻은 용기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엘리스는 자신의 방 안을 둘러보며 자신을 도와줬던 마르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고마워, 언니. 덕분에 나올 수 있었어."


어둠과 빛 사이에서, 엘리스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 자신의 삶을 더욱 단단하고 의미 있게 살기로 결심했다.


-에필로그-


엘리스는 피부 위에 섬세하게 타투를 그리며, 방 안을 가득 채운 라디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괴담 채널의 진행자가 최근 목장에서 실종된 50대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손길이 멈췄다.


그 여성의 이름은 마르타 로즈였다. 그 이상한 공간에서 도와준 바로 그 여성이었다.


"마르타 로즈... 그건 분명..." 엘리스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러웠고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어지러웠다.


"엘리스?" 앞에 앉아있던 손님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곧 현실로 돌아와 타투 기계를 다시 잡았지만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아, 죄송해요. 잠시 생각이 다른 곳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그녀는 다시 작업에 몰두하려 했지만 마르타 로즈에 대한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엘리스는 자신이 경험한 일들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 이상한 공간에서 나왔을 때 모든 것이 평범해 보였지만...


이제 마르타 로즈의 이름이 라디오에서 언급되자 혼란은 더욱 커졌다.


엘리스는 타투를 마무리하며 손님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그 미궁 속에 갇혀 있었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마르타 로즈는 정말로 그 이상한 공간의 일부였던 것일까?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고, 엘리스의 경험은 미궁으로 남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그 비밀을 알길 없는 현실 속에서 다시 일상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그녀와 마르타 로즈가 함께 겪은 그 이상한 세계의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몇일전


50대의 뚱뚱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피해자 여성의 주위에 떨어진 명함을 주워들고는 읽었다.


명함에는 젊고 활기찬 여성의 사진이 있었고 그 옆에 적혀있는 이름은 '엘리스 파커'


끼기기기긱-


칠판을 손톱으로 긁은듯한 파열음에 놀라 위를 쳐다본 마르타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형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걸 알게 되었다.


꺄아아아악!!


-끝없는 방-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