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딱 열흘이 걸렸네요.


1장을 읽고:

스미노 요루의 문체는 섬세했다. 꼬마 아가씨가 주인공인 소설의 작가가 아저씨라는 점은 나를 의아하게 했지만,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긴 시점에서 나는 납득하고 말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대중을 위한 작품이라면, 이 소설은 자신을 위해 썼다는 얘기가 있던데, 과연 어떨까? 스미노 요루는 꼬마의 시선을 빌려, 행복에 대해 무얼 말하려는 걸까.


다 읽은 후: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쓰여서 그런지 동화 같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북 트레일러의 소개말에 걸맞게 애들이 읽을 만한 내용은 아니다.) 섬세하고 귀여운 문체 덕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후반부의 반전은 적당한 여운을 남긴다. 다만 그런 반전을 감안하더라도, 소설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편이다. 대표적인 감성팔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 비하면 (물론 얘도 나쁜 작품은 아니지만) 제목도 그리 과격하지 않고, 누가 죽는다거나, 결말이 슬프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나름대로 아이의 입장을 빌려 행복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전작은 대중을 위해, 이 작품은 스미노 요루 본인을 위해 썼다는 얘기가 그럴 듯 하다.

그러나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주제를 감히 다뤘다기엔, 소설이 주제를 충분히 깊게 파고들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스미노 요루가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 곰곰히 내용을 되짚어보아도 잘 떠오르는 게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이마를 탁 칠 만큼 무게있는 논의는 하지 않은 것이다. 애써 내용을 짜내보자면: 행복은 달콤한 푸딩처럼 일차적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 외에도,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이 소설이 행복에 관해 다루고 있는 건 대략 이 정도 수준이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 이 소설이 행복에 관한, 어떤 중요한 비밀을 가르쳐 줄 것이라 기대하며 읽은 사람들은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걸 두고 이 소설을 흠잡을 수는 없다. 철학적 주제를 깊게 파고 들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가볍게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장르가 '라이트 문예'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소설은 훌륭하게 해내주었다. 사실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류의 감성팔이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 속, 아바즈레 씨의 말처럼, 푸딩의 달콤한 부분만을 좋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