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땅에 누워봤는데 우리가 누워 하늘보던 때랑 다르게 서울 바닥은 딱딱하더라구

이거 말해주려고 메일보냈어

하도 오래전 메일주소라 읽을지 모르겠네


*


처음엔 학교 끝나고 유난히 햇빛이 쌘 날 학교친구와 떠들던 때였다.


 "야 니 서울 사람 본 적 있나?"

 "뭔소리고"

 "아니 왜 서울사람은 타지 절대 안온다 안카나"

 "맞지이-"

 "근데 점마 서울말 아이가 "

 "확실하지-"


나름 이곳도 아파트랑 상가가 들어올 정도로 동네가 커졌지만,

어느 밤이든 고개를 들면 별이 보이고

100년 넘은 학교에 반은 2개고

조선시대 때 지어진 읍성 안을 겨우 빛내는 작은 동네였다.

아침엔 앞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깨어나고, 그 산넘어 바다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이곳에 왜.

서울사람이 왜 여기 온 것일까


 "파산해서 집팔았나?" 

 "그럼 경기도로 갔겠제"

 "이 참에 고기나 잡고싶었나 보지"

 "아빠가 서울놈들 그런거 억수로 싫어한다캤다.

햇빛에 타지 않게 요리하는 마냥 성벽 위의 모래들이나 건들거리며 하는 말이였다.


  "니같이 다른 광역시에서는 울동네 오는데 서울은 한국 인구 절반인데 왜 영 안보이나?"

  "... 서울은 영화관도 걸어서간단말이 있대. 심지어 억수로 크다카대"

영화관가려면 진해에서 창원시내까지 가야하는 우리에게 그 말은 서울이 어떤 곳인지 단박에 이해시킬 수 있는 말이였다.


  "니 먼저가라 난 점마랑 얘기 좀 할께"

나는 서울에 대해 충분히 알고있다 생각하기에 망설치 않고 녀석에게 걸어갔다.

  "너 서울에서 왔지?"

  "..?"

대책없이 내뱉은 첫마디였다. 그 애는 좀 멍때리다가 말했다.

  "어 맞아. 방금 여기로 이사왔어."

역시나 내 서울지식은 확실했다.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곳에 온 이유는 뭐 복잡하지만 대충 아버지 회사때문이라는 것 같았고, 앞으로 계속 여기서 살 것이라 했다.


그리고 꽤 잘맞았던거 같다.


"글러브가 있네? 좋은거로?"


몇 주 뒤엔 우린 캐치볼을 하며 노는 애들이 되었다.

그냥 편한대로 하루종일 주고 받기엔 재미없기에 가끔 다이빙해서 잡아야하는 공을 던지고, 잡고 놀았다.


  "야이 개새-"

그러다보면 넘어진채로 혼자 굴러가는 공을 보다가.

자연스레 믿을 수 없을 장도로 새파란 하늘을 보곤했다.

 

고등학생이 됐을때도 그런 날이였다.


흙먼지로 뒤덥힌채로 공을 던지며 난 말했다.

  "난 서울로 대학갈란다."

-툭

  "난 창원에서 살건데"

  "닌 나보다 공부 잘하면서 왜 서울 대학 안갈라는데"

-툭

  "닌 왜 서울 갈려는데"

나는 생각 못한 질문에 잠깐 당황하고 대충 대답했다

  "그야.. 서울은 살기 좋잖아"

  "과연 그럴까.. 너가 함 살아보고 말해줘라"

서울자식이 저런 말을 하니 생각보다 진지하게 들렸다.

난 던지려한 야구공의 두산을 보며 꽤 깊은 고민을 했던것 같다.


공은 내가 가져갔다. 관성처럼.


*


관성처럼 살다보니 어느새 서울 버스를 타며 퇴근을 하는 날이 왔던거 같다.

살기 나쁜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관성처럼 살아왔기에 고민하지 않았다.


-툭.. 툭

늦은 밤에 캐치볼을 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중학생인지..고등학생인지.. 잘모르겠다.


빨리 대답해줘야하는데 언제쯤 알려줄 수 있을까.

편의점 앞에는 흔치않은 공원 벤치가 있었다.

그곳에 누워 뿌연 밤하늘을 보았다.

  "불편하네.. 차라리 저 잔디가 더 낫겠다."

어차피 금요일이라 별 생각 없이 누웠다.

잔디밭이 그때 흙바닥보다 푹신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 어깨가 무거웠다.


아무래도 전해줄 답이 생각난거 같다.


그대로 하늘을 누운채로 폰을 들고 메일주소를 적었다. 핸드폰도 없어서 메일로 주고 받던 그때의 메일.


『오늘 땅에 누워봤는데 우리가 누워 하늘보던 때랑 다르게 서울 바닥은 딱딱하더라구

이거 말해주려고 메일보냈어』